< 44화-최고의 게이머 >
결론부터 말하자면, 생각보다 그리 어렵진 않은 균방전이었다.
"세린 씨. 고개 숙이세요. 2...1. 지금."
"꺄아악!!"
과연 지금까지 해온 게 단지 감각에 의존한 것만은 아니라는걸까. 크로스보우가 한 발짝 떨어진 채 상대의 공격 위치와 타이밍을 정확히 알려줬기 때문이었다.
" 뭘...뭘...대체 뭘 보고 있는거냐. 분명 평범한 인간 주제에!!"
"경직 걸겠습니다. 2...1."
드르르륵─!!
"크아아악!!"
총을 쏴 계속 해서 경직을 걸며 오더를 내리는 크로스보우. 그는 빠르게 장전을 마치며 상대를 주시했다.
"...와."
이하린의 나지막한 감탄.
뭔가 흘러나오듯 느껴지는 불길한 기운. 온몸의 피가 싸늘해지는 듯한 감각.
묘하게 현실적이면서도 현실감 없는 광경에 크로스보우는 말을 이었다.
"옵니다. 스킬 발동할 거 같네요. 섬광으로 끊겠습니다."
"빌, 어먹을....빌어먹을...!!"
번─쩍!
"크아아아악!! 이런 개같은 새끼!!"
-뭐야? 어케하는거임?
-진짜 크보;
-그저 크─보했다
-아니; 어케하는거임? ㄹㅇ 모르겠어서 그런데
-이 분 오늘 처음 보는데 혹시 운영자인가요?
-아ㅋㅋ크보 올오버 영자설ㅋㅋ
-ㅋㅋㅋ짬탐 시청자들 어리둥절
"...뭐에요?"
얼빠진 모습의 하린. 크로스보우는 피식 웃고는 그녀의 목덜미를 확 잡아당겼다.
"어?"
콰앙!!
그러자 그녀의 앞으로 빗겨나가는 보스몬스터의 마법.
"...지, 지금?"
졸지에 구원받은 하린이 멍하니 그를 올려보고 있자 눈을 찡긋, 해보이는 크로스보우.
"캐리."
물론, 쓰고 있는 헬멧 덕에 보이진 않았지만 그 모습에 그녀는 입을 살짝 헤 벌렸다.
-캐뤼
-캐뤼ㅋㅋ
-ㅋㄹ
-캐리(게임승리의 주역이 되는 일)는 인정이지 아ㅋㅋ
그것도 잠시, 잔뜩 성이 나 온몸에서 시커먼 기운을 무럭무럭 피어올리는 보스몬스터.
"이, 이, 이 쥐새끼같은 놈들!!!"
"저런...화가 많이 났네요. 분노는 만병의 근원입니다. 제가 예방해드릴게요."
직감하건데, 균열방어전이 끝나가고 있었다.
"크보님! 3단 차징해도 되나요!"
"그럼요. 에너지포 형태의 스킬, 옵니다. 각각 순서대로 좌상단, 우상단, 정중단. 3...2...1."
"꺄악!"
투콰아앙─!
"대체...대체 어떻게! 어떻게 알고 있는거냐!"
"움직임이 다~ 예상이 됩니다. 움직임이."
-ㅋㅋㅋㅋ
-뭐하누~으허허허
-커맨더크코ㅋㅋ
패턴을 외우고 있는게 아니다. 올오버가 PC게임이나 증강현실 정도의 게임이었다면 아마 그도 이렇게는 못하겠지.
그러나 올오버는 가상현실.
실제와 전혀 다름없는 감각을 제공하는 게임이다.
오히려 더 쉽다. 크로스보우는 상대를 주시했다.
동공이 향하는 위치, 오묘한 무언가가 요동치는 느낌, 사람이라면 가질 수 밖에 없는 작은 버릇들까지. 그 모든 것이 마치 손에 잡힐 듯 생동감이 되어 다가온다.
그는 딸칵, 섬광탄 핀을 한 번 더 뽑아버리며 말했다.
"눈 감으세요. 이번에 잡죠."
그리곤 섬광탄을 마치 서브라도 하듯 높게 던져올린 그는, 타이밍에 맞춰 그걸 프라이팬으로 후려쳤다.
번-쩍!
"크윽?"
이명에 시달리는걸까. 크로스보우는 잠시 휘청이는 보스몹에게 냅다 달려가 머리를 마구 내리치기 시작했다.
까앙!!
"커헉!!"
"지금입니다!"
"우어우!!"
"야! 밟아!!!"
아무리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이상한 기합소리와 함께 다같이 달려들어 보스몹을 마구 때리는 4명의 스트리머들.
-정보)지금 쳐맞고 있는 놈은 최초 발견된 히든보스다
-아ㅋㅋㅋ왜 개멋있다가 결국 개그하냐고ㅋㅋㅋ
-아 잠깐 뼈맞았어 아!
-ㅋㅋㅋ힉힉호무리들 트라우마on
-힉힉호무리는 또 뭐냐
"하, 하지마라!! 이 버러지들!"
버둥거리는 보스몹의 모습.
그러나 고랭크 클리어를 눈 앞에 둔 게이머들.
눈이 돌아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아직 말한다!"
"납작해져라!"
***
이거 또 나왔네.
크로스보우는 시스템 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SYSTEM]종합 랭크판정 : SS
[SYSTEM]축하합니다! 최초로 균열방어전 [인류진보기관] 맵의 숨겨진 장막을 들추었습니다!
[SYSTEM]'알 수 없는 열쇠'를 얻었습니다.
알 수 없는 열쇠.
아마 나중에 패치가 될 아이템이겠지. 그는 대수롭지 않게 창을 꺼버렸다. 아까도 이리저리 살펴봤지만, 그냥 단순히 열쇠모양의 아이템에 불과했었기 때문.
어차피 이 자리에 그의 개인화면은 공개되어있지 않다. 방송에 나가는 것은 스트리머 뿅맛사탕, 그리고 짬먹을타임 두 사람의 시스템창 뿐.
-SS네?
-SS여?
-당연히 SSS일줄 알았는데ㅋㅋ
-히든 루트 뭐냐고; 이거 온라인 게임 아니었누?
-이 생각을 왜 못했지? 존내 징그럽게 생겨서 주먹부터 나간건가
-저 오늘 이 분 처음 봤는데 개쩌네요ㄷㄷ;
-정보)오늘은 힘뺀 것
-??? 힘좀 빼봐 뭐 이런거냐?
-[삭제된 채팅입니다.]
그리고 공유받은 채팅창으로 보아하건데, 다른 세 사람의 시스템창엔 알 수 없는 열쇠니 하는 메세지가 없는 모양.
'...흐음.'
그렇다는 건 올오버의 AI가 직접 판단해서 보상을 차등지급 하는거란 뜻인가? 그는 곰곰히 생각하다 그냥 넘어갔다.
모를 일이다. 단지 기여도 제일 높은 사람에게만 주는 걸지도. 산정 기준을 알 수 없으니 괜한 생각일 뿐.
"...형님. 혹시 그마 되셨나요?"
"아."
크로스보우는 하린의 질문에 대충 치워놨던 시스템 창을 다시 불러왔다.
[SYSTEM]크로스보우님의 계급은 '그랜드 마스터'입니다.
[SYSTEM]당신의 이름이 랭킹 보드에 새겨집니다.
"네. 됐네요."
지옥 난이도는 몇 번인가 클리어된 기록이 있던 탓일까, 일전의 불가해 난이도 승격임무 때보다 훨씬 더 얌전한 시스템 창.
그는 어깨를 으쓱이고 말았다.
-와ㄹㅇㅋㅋ맵 꼴랑 세 개 깨고 그마를 달어?
-진짜 꼬투리잡힐 일 하나 없네 이제
-이 정도면 그냥 군대도 면제해줘라
-??? : 저 전역했는데 왜 면제로 나와요?
-ㅋㅋㅋ아ㅋㅋ
-이 남자...네이션스 컵에선 어떨까?
"와...그마. [참가권] 있는데도 결국 지원 자격 맞추신거네요."
최소 두 개의 모드에서 그랜드 마스터 계급 이상일 것.
그녀는 네이션스 컵의 지원 자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오히려 조금 늦은 감이 있죠."
"네이션스 컵. 기대되네요."
-사탕님 왜 크보 앞에선 착해져요?
-우리한텐 욕만 하면서ㅠㅠ
-똥스트리머인것데챠앗
"야. 안 닥쳐?"
고개를 저으며 메뉴를 조작하는 이하린. 여전히 악질이 많아보이는 채팅창이다.
"그나저나 언니들은 왜 이렇게 반응이 없어요?"
"으, 응? 그야 이 정도는 뭐...."
큰 신장이 무색하게 쭈뼛대는 세린의 모습에 그녀는 음흉하게 웃었다.
"언니. 뭐야? 지금 크로스보우님 앞이라고...."
"어. 얘기 중에 미안한데 크보님."
그 때 문득 허공에 떠오른 무언갈 바라보며 인상을 찡그리고 있던 짬탐이 말을 끊었다.
"실례지만 저 지금 메세지 폭탄 받고 있거든요? 이게 무슨 일이지."
"네?"
"음. 보여드릴게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메신저창을 공유했다.
그러자, 그가 보고 있는 순간에도 계속해서 쌓이는 메세지.
[발신자 팀 TK 사무국]
〈안녕하세요. 짬먹을타임님. 일전에도 한 번 연락드렸던 올오버 프로구단 TK입니다...〉
[발신자 팀 SP최재용]
〈...다름이 아니라 혹시 스트리머 크로스보우님과....〉
[발신자 Team RNZ]
〈...혹시 함께 방송을 하고 계신 크로스보우님께 부디 연락을....〉
[발신자 DLX사무국]
〈...실례가 아니라면 혹시 크로스보우님과 함께....〉
.
.
.
모두 그를 찾고 있었다.
이게 다 뭐지.
크로스보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모든 메세지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가 있는 건 알겠는데, 다들 용건보다는 그저 그와 연락이 닿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와 뭐임??
-프로 입단제의???
-머냐ㄷㄷ 저 콧대높은 팀들이?
-국내 팀들한테서는 죄다 연락온거같은데?
-와; 뭔 블래드 영입할때나보던 메세지 폭탄이누ㅋㅋ
-ㄹㅇㅋㅋ프로팀들이 봐도 프로급이란건가
"어...계속 오는데요? 와. 영어로도 오네."
"...아마 제가 방송을 안하고 있어서 그런건가보네요."
게임 중 방해하기엔 조금 그렇고, 균방전이 끝나니까 우르르 메세지를 보낸건가.
그는 혹시 하는 마음에 까톡을 열었다. 그리고 혹시는 역시였다.
[지호민(이응이여섯개)]
-크로스보우님. 혹시 이 메세지를 보신다면 답장주실 수 있을까요.
뭐길래 이렇게 애타게 찾지. 그는 입맛을 다셨다. 조금 아쉽지만 이 정도로 급한 걸 확인하고도 방송을 계속할 수는 없는 일.
"아무래도 저는 이만 나가봐야겠네요."
"앗. 네. 오늘 버스 감사합니다."
"형님. 연락해도 되죠?"
"...들어가세요."
그는 대충 손을 흔들곤 중얼거렸다.
"풀다이브 해제."
[SYSTEM]원래 있던 현실로 돌아갑니다...3...2...1.
[SYSTEM]또다른 현실 올 오버는 언제나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 44화-최고의 게이머 > 끝
ⓒ ReadOu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