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최고의 게이머 >
***
"스크림...그리고 강화권이요?"
-"네. "
크로스보우는 뺨을 붙여오는 신예지를 밀어내며 통화했다.
"스크림은 대충 뭔지 알겠습니다. 근데 강화권은 무슨 소리인지를 모르겠군요."
-"음. 그게 아무래도...일단 연결해드릴까요?"
조금 곤란한 듯한 목소리다. 힐끗 신예지를 보자 그녀도 인상을 쓴 채 이상하다는 눈빛.
"어디랑 말인가요?"
-"그 블래드 선수가 속해있는 TK팀의 감독입니다. 저랑 약간 친분이 있다보니 손이 발이 되도록 빌더군요."
블래드?
크로스보우는 약간 의외로운 심정이 되었다. 커뮤니티 상에서 언제나 유일한 한국 최고의 선수로 일컬어지는 이. 그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있지만, 그런 사람마저도 실력만은 인정한다는 선수의 이름이 불쑥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글쎄요...아까 보기로는 다른 팀에서도 메세지가 엄청 오던데...."
-"...그건 제가 대신해서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는 손을 내저었다. 이응이 사과할 일은 아니었으니까.
"아뇨. 괜찮습니다."
-"...국내 올오버 해설진으로써 이런 말씀을 드리긴 조금 그렇지만...썩 좋지 않은 얘기가 나오는 팀들이 조금 있습니다."
이응은 그렇게 말하곤 잠시 침묵 지키다가 입을 뗐다.
-"그렇지만 TK는 제가 보증할 수 있습니다. 한 번쯤 만나보시는 것도 나쁘진 않을거라 생각됩니다."
오 하고 감탄하는 입모양을 해보이는 신예지. 크로스보우는 아무 생각없이 손가락을 그 입모양 안에 집어넣으려다가 깨물렸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한 번 만나보도록 하죠."
-"네. 그럼 다른 쪽에는 제가 말해놔도 괜찮을까요?"
다른 팀들의 애타는 러브콜을 막아주겠단 소리.
"그래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네. 그럼 연락 드리겠습니다."
"네."
그렇게 끊어진 통화.
신예지는 과장된 감탄성을 내뱉었다.
"오빠. 이젠 막 프로팀들 다 딱 대기시켜놓고 막 그래? 와. 아주 혁명적이구만기래!"
"...흐음. 글쎄."
크로스보우는 통화가 끊어진 스마트폰을 쳐다보다가 툭, 말했다.
"그러고보면 블래드랑 만나게 되려나?"
***
"저희가 바라는 건 다른 게 아닙니다."
TK의 감독. 송정훈은 그렇게 말했다.
그들이 있는 곳은 일전 크로스보우가 채은아와 만나 매니저계약을 진행했던 장소.
인근의 카페였다.
"아이튜브에 올리실 영상을 내려주십사 하는 것도 아니고...강화권 사용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송정훈은 굳게 말하며 크로스보우를 바라보았다. 어딘가 낯익은 인상이었다.
"그 말은 꼭 다른 팀은 다르다는 거처럼 들리는군요."
"...제 입으로 이런 말씀을 드리기엔 조심스럽습니다만,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 조금 있습니다."
그는 공공연연한 비밀을 얘기하는 것처럼 말했다.
"남의 성과를 빼앗는게 당연한 인간들. 아마 그 인간들은 크로스보우님께서 얻으신 캐릭터 강화권이 마치 자기네들 거라도 되는거마냥 여기겠죠. 모두를 위해 쓰는게 맞지 않냐. 이런 식으로요."
크로스보우는 어깨를 으쓱이고 말았다. 긍정의 표시였다. 그럴거라고 예상한 부분이 없잖아 있었기 때문. 마침 네이션스컵도 앞두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그렇군요."
"저희는 그냥 그 강화권을 얻은 방법. 그것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사고 싶습니다. 다른 바라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과연. 그럴만하다.
팀에 블래드라는 걸출한 프로게이머가 있는만큼, 방법만 알면 얼마든지 새로 얻을 수 있으리라 확신하는거겠지.
"아. 물론 크로스보우님이 선수로 저희 팀에 입단하시는 건 바라 마지않습니다만."
"제안은 감사하지만 그건 거절해야겠군요."
그는 빙긋 웃었다.
"다만 정보 정도야 얼마든지 드릴 수 있습니다. 별 것도 아니니까요."
진심이었다.
그의 입장에선 정말 별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블래드라고 해도, 방법을 안다고 해서 쉽게 얻을 수 있으리란 보장 역시 없다.
"그, 그렇군요!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저희 팀 쪽에서 정보를 샀다는 말을 업계에 전달하겠습니다. 그럼 더 이상 메세지로 짜증나게 구는 팀은 없을겁니다."
"괜찮네요. 받아들이겠습니다."
아까 이응도 같은 말을 하긴했지만 확실해서 나쁠 건 없겠지. 크로스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보답으로 준비해온 금액입니다."
거기에, 송정훈 감독은 서류를 스윽 내밀었다.
1억.
단지 캐릭터 강화권을 얻는 방법 정도에 사용한다기엔 큰 금액이다.
크로스보우는 자기도 모르게 송 감독 쪽에 있는 계약서를 뺏어올 뻔한 걸 참았다.
"크흠. 그 정도로 큰 가치가 있는 정보는 아닐텐데요. 제가 개인방송을 하다보면 결국 어느정도 알려질 정보기도 하고."
"올오버판이 생각보다 크거든요. 그리고...알려지더라도 상관없습니다. 그럴거라 생각하고 부른 금액이니까요."
뭐지. 도네이션인가?
그는 잠자코 경청했다.
그러자 오히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송 감독.
"...딱히 자랑하는 건 아닙니다만 제가 프로팀 감독직만 3년째입니다."
그는 말하면서 계약서를 내밀었다.
독소조항이라도 있을까 꼼꼼히 살펴봤지만, 깨끗했다.
"감독을 하면서 가장 잘한 건 블래드를 영입한 거였죠. 아마추어 시절 때부터 봐왔으니까요. 그런만큼 제 안목에 자신이 있습니다."
"으음."
거기까지 들었을 때, 크로스보우는 대충 그가 하려는 말을 알아챘다. 면전에서 듣기엔 낯부끄러운 말이다.
"그런 제가 크로스보우님의 방송을 처음 봤을 때 느꼈습니다. 정말 이건...."
그런데 그 때였다.
"어? 아저씨. 여기서 뭐하세요?"
누군가 다가와 송정훈 감독의 등을 짜악 때렸다.
"...!"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는 송 감독.
"소, 송다혜? 니가 왜 여기...."
"아. 미안. 미팅 중이야? 죄송합니...어? 크, 크보님? "
매번 옥상에서 보던 여자다.
***
"설마 두 분이 남매실 줄은 몰랐네요."
올오버 분석컨텐츠를 주로 다루는 거대 아이튜버와 국내 1위 프로팀의 감독이라. 크로스보우는 두 남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올오버 분석 쪽에 여성은 눈앞의 그녀를 빼곤 전무. 어떻게 그렇게 잘 알고 있나 싶었더니 오빠가 TK의 감독이어서 가능한 일이었던 모양이다.
"하, 하하...."
"저도 의외군요. 이런 정신 나간 녀석이랑 아는 사이셨다뇨."
"누가 누구보고?"
사이 좋은 남매다.
그걸 말하자 질색해대는 두 사람. 전혀 그러지 않을 거 같이 생겨서는 마치 어린애들처럼 싸우기 시작했다.
"근데 생각해보니까 어이없네? 내가 크로스보우님 분석 영상 올렸을 땐 그런 아마추어 분석할 시간 있으면...읍, 읍!!"
"하하. 아닙니다. 크로스보우님. 여동생이 조금 허언증이 있어서요."
"크보님. 속지 마세요. 이 사람 TK 감독 주제에 맨날 저한테 영입이나 분석...읍!"
"아닙니다. 하하하...아악! 야, 야!"
과연. 그런거였군.
크로스보우는 혈육의 손가락을 꽈악 문 송다혜를 보며 픽 웃었다. 보는 눈은 오빠가 아닌 송다혜 쪽에 있었나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송 감독의 능력을 의심할 순 없다. 아무리 블래드 쯤 되는 선수가 있다고 하더라도, 팀을 매번 국내 최고로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중요하신 분 앞에서 지금 너...못난 꼴을 보여 죄송합니다. 크로스보우님."
"저도 죄송합니다. 저, 그런데 혹시 이 양반이랑 계신 이유가...강화권 때문인가요?"
"그렇습니다."
그는 순순히 대답했다. 어차피 그녀는 한 명의 시청자다. 곧 알게 될 일을 숨길 필욘 없겠지하는 생각이었다.
"저도 그거 때문에 연락드릴까 고민했는데...."
"니가 무슨? 헛소리 말고 좀 가라. 다 큰 녀석이 미팅 중에 방해하지 말고."
송다혜는 그 말에도 아랑곳 않고 말했다.
"원래 제가 TK연습실로 안내해드릴려고 했거든요."
"너 지금 누구 맘대로...아. 물론 크로스보우님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입니다만."
"연습실이요?"
"네. 크보님. 캡슐 구형 모델 아닌가요?"
어떻게 알았지. 크로스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전기 사용량 보면 대충 알 수 있거든요. 기왕 방송에서 강화권 쓰실거면 신형 캡슐로 하는게 나을거에요. 전달되는 감각 수준이 다를테니까."
"...지금까지 구형 캡슐이셨다고?"
감각 수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는 왠지 말을 잃은 송 감독을 힐끗 보곤 대답했다.
"네. 구형 캡슐로 플레이하긴 했는데...감각 수준은 처음 듣는군요."
"...그럴 거 같다고는 생각했는데. 역시나였네요."
허탈한 미소를 짓는 송다혜.
그녀는 제 오빠를 힐끗 바라보았다.
"내가 말했지? 어쩌면 블래드보다...."
"...며, 몇 세대, 몇 세대 캡슐이죠? 크로스보우님."
그러나 충격적인 사실을 마주한 것 같은 표정의 송정훈 감독. 다른 말은 전혀 들리지 않는듯 보였다.
크로스보우는 그 질문에 처음 캡슐을 구매하던 때를 떠올렸다.
"아예 처음 나오자마자 샀으니까...세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1세대...캡슐로...그렇게 하셨다고요...?"
이 양반들이 왜 이래.
크로스보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TK 연습실가서 한 번 플레이해보심이 어떨까요? 거기 최신형 4세대 캡슐 많이 남을텐데."
"...1세대...? 윽."
멍하니 이쪽을 바라보기만 하던 송정훈. 그는 여동생의 팔꿈치에 퍼뜩 정신을 차리곤 마구 고개를 끄덕였다.
"네. 부디. 거리도 별로 멀지 않습니다. 저희 팀의 숙련된 기사가 편안한 운전을 책임질겁니다. 부디, 부디 와주시면...!"
다 큰 남자가 고개를 숙이고 부탁하는 건 썩 좋은 광경이 아니다.
크로스보우는 카페의 시선이 집중되는 걸 느끼며 한숨을 쉬었다.
1억쯤 준다니까 거부할 수가 없군.
"알겠습니다. 한 번 가보죠."
***
TK팀의 연습실로 향하는 차량.
그 안에서 송다혜는 전문적인 지식을 뽐내며 최신형 캡슐과 구형 캡슐의 차이점을 열변했다.
"대충 캡슐의 정밀도 차이가 심하다는 얘기군요."
"...맞는데 그렇게 요약이 되네요?"
잘 모르겠군. 크로스보우는 내심 생각했다.
구형이니 신형이니하지만 얼마나 차이가 있겠냐 싶었던 것이다. 이미 집에 있는 캡슐로도 필요한 감각은 모두 느낄 수 있다. 더원그같은 증강현실을 플레이할 때 느꼈던 어지럼증도 없었다.
게이머로서 좋은 장비가 있을수록 좋다는 건 부정하지 않지만, 캡슐이 감각에 영향을 준다는 건 동의하지 못했던 것이다.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도착한 연습실.
서울 내에 있는 곳 치고는 상당한 크기의 공간이다.
"지금 선수들이 스크림 중이라서요. 인사시켜드리고 싶은데...그럴 수 없어서 안타깝습니다."
송정훈 감독은 그렇게 말하고는 빠르게 핵심 스태프를 몇 명인가 소개했다.
그리곤 급하게 선수들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모습.
삑.
[출입자 : 송정훈 감독]
우웅─.
프로게이머들의 연습실치곤 조금 과한 보안이 아닐까싶은 문을 지나자, 눈에 보이는 것은 상당히 넓은 실내공간.
여러 대의 캡슐이 쭈욱 늘어서 있는 광경. 정면의 벽에 거대한 스크린이 있고, 각 캡슐의 윗부분에도 꽤 큰 TV가 달려있는 모습이었다.
"저 쪽 큰 스크린이 경기 전체를 보여주는 화면이고...각 캡슐에 붙어있는 화면은 선수 개인 화면입니다."
"잠깐 구경해도 될까요?"
"얼마든지요."
크로스보우는 허락을 구하고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송다혜가 슬쩍 다가와 옆자리에 앉았지만 그의 관심사는 그쪽이 아니었다.
'누가 블래드지?'
마침 연습경기를 치루고 있는 TK팀의 프로선수들.
그는 그 중에서도 가장 강하다 평가되는 블래드를 찾고 있었던 것.
'...저기군.'
스크린에 펼쳐지는 양상으로 봤을때, 그들이 스크림 중인 모드는 [AOS].
블래드의 주 종목이다.
"어때요? 이젠 누구도 부정 못하는 초신성 크로스보우가 보는 한국 최고의 프로게이머는?"
"아직은 잘 모르겠군요."
크로스보우는 눈을 가늘게 뜨며 경기를 보기 시작했다.
어느새 어디선가 과자와 음료를 가져운 송정훈 감독도 반짝이는 눈으로 옆에 착석했지만, 그가 눈치채는 일은 없었다.
극도의 집중 상태.
"...카운터 잘해졌네?"
"어. 요즘 물 올랐지."
"...."
각각 다른 쪽으로 올오버에서 유명세를 갖고 있는 세 명.
그들은 나란히 앉아 한참동안 조용히 경기를 바라보았다.
"...어?"
그리고 마침내 그 침묵을 깬 건, 크로스보우가 낸 의아함의 소리였다.
"왜 그러십니까?"
"방금 한타 되게 잘했다...무슨 일 있나요?"
"...아니, 아닙니다."
그는 고개를 젓고는 얼버무렸다.
그러자 싱거운 소리라 생각했는지 다시 화면으로 고개를 향하는 두 사람.
'...저렇게 하면 안되는데. 실수한건가?'
연습경기라 전력을 숨기는건가? 크로스보우는 내심 고개를 갸웃거렸다.
< 45화-최고의 게이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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