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배틀로얄의 귀재 >
***
"...발도 빠르군."
이탈에 실패했다.
[아...! 이건 좋지 않습니다!]
[포위된 형국이에요! 크로스보우! 브리핑 과정에 뭔가 문제가 생긴 걸까요!]
[그런 와중에 이 선수! 확실히 눈에 띕니다!]
"...."
좋지 않다.
위치가 발각된 덕에 빠르게 꼬리를 자르려 달라붙은 중국과 일본.
소음기를 쓰긴 썼지만, 이렇게 좁은 곳에서는 그럼에도 위치식별이 그리 어렵지 않은 탓이었다.
[본대와 합류하려고 해도 가는 길이 가로막혀 있습니다!]
[이건...! 희생을 감수하고 본대가 구하러 가느냐, 크로스보우 선수를 버리느냐! 둘 중 하나거든요!]
소란스러운 바깥의 해설.
그러나 게임 내부는 그저 고요할 뿐이다.
크로스보우는 헬맷의 바이저를 올렸다.
-"빠져나오실 수 있겠습니까?"
오더의 목소리에 그는 전장을 살폈다.
초반부터 교전에 유리한 캐릭터를 다수 픽한 중국.
그들이 3인 1조를 이뤄 그의 위치를 특정하고 있었다.
투명화 상태에서 무방비하게 당했다곤 해도, 그들도 상당히 높은 계급에 랭크된 실력자.
피탄된 순간, 총알이 어디서 날아왔는지 정도는 눈치챘을 터다.
"...불가능합니다."
기동성 문제다.
더 원 그라운드. 이 게임 출신 캐릭터의 저평가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유.
-"...지금 구하러 가겠습니다."
-"...."
오더를 맡은 일루션의 한마디.
의심했던 팀원은 일언반구 하지 않고 있는 모습.
거기에 대고 크로스보우가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다."
고개를 저어보인다.
-"...ㅇ,예?"
"구하러 오다가 몰살당할겁니다. 1라운드 때처럼."
그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이동속도를 빠르게 해주는 아이템인 주사기를 팔뚝에 꽂았다.
"...."
"개인으로 움직이다가 합류하겠습니다. 그게 낫겠군요."
-"...죄송합니다. 저희가 어떻게든 해볼테니...."
그 말에 크로스보우는 피식 웃었다.
"글쎄요. 일루션님이랑 울드님이 사과할 건 아닌데."
"...."
3초를 넘는 침묵.
사과할 생각이 없군. 그는 어깨를 으쓱이고 말았다.
[SYSTEM]팀 보이스 채팅을 종료합니다.
-고립ㄷㄷ
-크보야...이거 괜찮은거 맞지?
-다굴에는 장사 없는 법인데 아ㅋㅋ
"이제 좀 살겠군요. 괜찮습니다."
오히려, 그는 마치 해방이라도 된 듯한 모습이었다.
저 아래로 그를 찾고 있는 중국 플레이어들의 모습.
크로스보우는 언제나처럼, 한 자루의 권총과 검을 손에 들었다.
-건카타?
-형님 이건 좀 아닌거 같습니다
-???: 미안하다 이거 보여주려고 어그로 끌었다...
"저기다!!"
"혼자인거 같은데?"
"잡아죽여!!"
2층의 난간. 그곳에 서있는 크로스보우를 발견한 플레이어들.
그는 인원수를 셌다.
'10명...기절한 2명은...살린 기색이군.'
매 라운드 각 나라마다 총 30명이 참전하는 배틀로얄 경기.
그런데 이곳에 그를 잡기 위해 온 플레이어만 총 9명. 정찰조까지 합쳐 12명.
무려 3분의 1이 넘는 전력분배.
크로스보우 한 명을 끊어내기 위해서라기엔 과하다.
"...공짜킬이란거지."
그러나 크로스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만도 한 판단이라고 생각하는 것.
관찰한 결과 상대편 12명 모두, 초반 교전에 유리한 캐릭터들로만 이뤄져있다.
교전을 벌이는데 있어 망설임이 없다는 소리.
게다가 일본은 끼어들지 않기로 되어있을 터.
그들의 입장에서 크로스보우는 적군이라기보단, 걸어다니는 보너스에 가깝다.
우우웅─.
"떨어뜨려!"
그 때 준비되는 스킬들.
모여드는 빛 때문일까. 반파된 공항의 전경이 위태롭게 반짝인다.
-아...이건 갔네
-ㅋㅋ아ㅋㅋ공식전 안 치뤄본 아마추어한테 기대하지 말랬지?
-ㅠㅠ토속신앙이었누...
그리고 그 위협을 빙의해있는 시청자들도 알아챈걸까.
모두 죽음을 확정짓는 듯한 채팅들 뿐.
"이 집 재밌네."
그러나 크로스보우는 피식 웃었다.
시야만 조금 더 있으면 좋겠는데.
문득 그런 생각을 하다가 깨닫는다.
어차피 얼굴은 알려질대로 알려졌다.
카앙─!
그리고 더원그 캐릭터의 피통으론, 한번 피격되는 순간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
그는 스패츠나츠 헬멧을 벗어던졌다.
훨씬 낫군.
크로스보우는 시원한 시야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이거야 원...."
중국인밖에 없는 주위.
별 이상한 기술들을 써대는 상대.
"본업으로 돌아간 기분이군."
"죽여!!"
"한궈 빵즈! 씨앙쓰마!!"
쌍욕을 해대는 것까지.
고증도 완벽하다.
크로스보우는 웃으며 난간에서 미끄러지듯 떨어져내렸다.
목표는 적들이 모여있는 1층.
'스킬의 전조가 일곱. 범위 계열이 둘, 사출형이 셋, 근접이 다시 둘.'
떨어지는 순간.
그의 눈동자가 마치 사진을 찍듯 모든 광경을 뇌리에 담는다.
지금, 필요없는 정보는 시야에서 모두 제외한다.
'...성공이군.'
이젠 만천하에 드러난 그의 눈이, 반달모양으로 휘었다.
어느새 세상이 온통 회색빛이다.
***
"...와."
터엉!
강원도 양양.
전방에 위치한 모 부대. 그곳에 위치한 탄약고 경계주둔지.
이병 이주원은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막사에서 무심코 방탄을 떨어뜨렸다.
안좋은 소리를 한 번 들을만한 행위.
그러나 막사에 누워 티비를 보고 있던 선임들은 아무도 그에게 주의주지 않았다.
"...."
"...."
그저 정적.
집중 상태에 빠져든 생활관.
덜컹─!
그 때였다.
"야. 이주원!!! 너 이 새끼 내가 총 시건하고 총기함 닫아놓으라고...응?"
"...허, 허업! 이병 이주원! 죄송합니다!"
"...뭐야?...야. 비켜."
"예, 옙!"
그 때 막사로 들어온 선임이 한 명.
그는 제 후임을 혼내려다가 문득 시야에 들어오는 광경에 말을 잊었다.
"...뭐지? 아까 그냥 포위돼서 죽은거 아녔냐?"
"...저희도 모르겠슴다."
"와...."
"저게 가능해?"
생활관의 인원 대부분이 이십대 초반. 가상현실 게임에 익숙한 세대들로만 이뤄져있다.
그러나 그런 그들에게도, 티비에 나오고 있는 광경은 이해하기 힘든 장면이었다.
보잘 것 없는 권총 한 자루.
그리고 아무런 효과도 없는...단촐한 정글도를 든 남자가 한 명.
그런데 화면 속에 송출되고 있는 남자는, 필시 엄청날 스펙 차이에도 아무렇지 않게 상대의 검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마, 막아냈습니다! 크로스보우 선수!]
[대단합니다! 흘려내고, 손잡이로 검을 쳐내는 크로스보우...! 유려한 검격의 교환! 중국 선수 12명을 상대로 정말 한치의 물러섬도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 당하기만 했던 한국의 진가를 단!!! 한 명의 선수가!! 보여줍니다!!!]
만면에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였다.
***
-한국인이 웃을땐 ㅈ된 상황이랬는데 이게 그거냐?
-ㅋㅋㅋㅋㅋㅋ
-ㅈ된 상황(중국)
-생태계 파괴 중ㄷㄷ;
"이, 이게 뭔...?"
중국의 스트리머는 미동도 하지 않는 자신의 날붙이를 보며 눈을 부릅떴다.
그가 픽한 캐릭터는 [악마는 울지 않는다]의 비질. 한자루의 일본도를 유려하게 다루는 캐릭터.
한낱 정글도 따위에 검이 막힐 캐릭터가 아니다.
"이런 미친...! 빵즈 녀석이...."
그러나, 막힌다.
몇 번이고 칼을 휘둘러도 마찬가지.
어깨, 발끝, 그리고 마나의 흐름.
크로스보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카아아앙──!!!
쳐내고 끌어들인다.
"데낫크 캐릭터론 어림도 없지."
"으아아악!!!"
"네 동료를 죽인 나의 펀치를 받아라!"
-세이크좌 ㄷㄷ;
-???: 번개...잘랐다고...
-ㅋㅋㅋ크카시ㅋㅋㅋ
-크..카시?
-[삭제된 메세지입니다.]
-싸움 수준 뭐냐...진짜 세계관 최강자들의 싸움이다...
-상대편은 아님
검로를 미리 예측해 틀어막고 뒤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고개를 젓히는 걸로 피해낸다.
타앙!
"크아악!!"
머리를 노려 격발하는 것까지 잊지 않는다.
[SYSTEM]당신의 Deagle로 인한 헤드샷으로....가 기절하였습니다.
스킬이 발동되기 전 울리는 희미한 소리. 느껴지는 전조.
'왼쪽에서 총탄사격. 그 후에 후방에서 침묵필드. 온다.'
기력, 마나, 혹은 분노 등등까지.
각각의 캐릭터가 사용하는 기운이 뭔지까지, 손에 잡힐 듯 그려진다.
거기까지 느꼈을 때, 다시 한 번 분석해 스킬의 종류를 특정하는 것.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러던 때였다
킬로그를 확인한 상대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크로스보우? 그렇군. 네 놈이 크로스보우구나!"
"....?"
"한국인들이 너를 그렇게 좋아한다지? 근데 이거 어쩌나! 지금이야 선방하고 있다지만 결국 여기서 처참하게 죽을텐데!"
"...."
"포위해! 살리는 건 나중이다! 우선은 이 녀석을 처리한다!"
-아...
-인원수로 찍어누르려는거 같은데;
-졸렬 그 자체ㄷ
크로스보우는 머리를 긁적였다.
"뭐라는거야."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곤 정글도를 잠시 허리에 매달았다.
그리곤 소총을 꺼낸다.
"놈이 소총 꺼냈다! 보호막을 펼쳐!"
그러자 그를 둘러싸고, 여러 종류의 기술들이 펼쳐지는 모습들.
"...오호."
...대비를 해왔군. 아니면 우연히 맞아떨어진건가?
크로스보우는 그 모습에 다시 소총을 허리에 거치하곤, 다른 손으로 권총을 들었다.
그리고, 가차없는 격발.
타앙─!!
그런데 총구가 영 이상한 방향을 향하고 있다.
"하! 어디다 대고 쏘는거지?"
"...!"
타앙!
"그딴 짓으로 블러핑을 섞어봤자...?"
"...크아악!!"
[SYSTEM]당신의 Deagle을 사용한 헤드샷으로 CN_Ana(시계워치)가 기절하였습니다.
탕! 탕! 타앙!
"자, 잠깐. 못 쏘게 해...! 커헉...!"
[SYSTEM]당신의 Deagle을 사용한 헤드샷으로 CN_Ana(시계워치)가 사망하였습니다.(1킬)
확정 킬.
"...뭐야."
"대, 대장. 힐러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대팀의 모습에 크로스보우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렇게 매끄럽고 단단한 바닥 위에서 싸우는데...총기류를 다루는 캐릭터를 상대할 땐 신경이라도 썼어야지.
"뭐냐고─!!!!"
그 외침에, 크로스보우는 다시 한 번 빙긋 웃었다.
"바닥 밑에 공간있어요."
도탄 사격.
일부러 총알이 관통할 수 없는 지면이나 벽에 발사해 튕겨나오도록 하는 테크닉.
중국팀 후방에 자리하던 힐러가, 도비탄에 맞아죽은 순간이었다.
"걱정마세요. 힐러님은 자유가 될겁니다."
"이, 이, 이게...!"
"아. 양말선물이라도 해줬어야했나?"
그렇게 말한 그는 바닥에 대고 총을 마구 쏴갈기기 시작했다.
탕!
피잉─!
"윽! 젠장! 막아! 어떻게든 막으라고!"
"각도가...컥! 예상이 안됩니다! 그냥 맞더라도 잡아야해요!"
"그럼 잡아!!!"
그렇게 혼란이 발생하고 전열이 무너진 순간.
푸시익──!!
크로스보우는 냅다 연막탄과 섬광탄을 던져버리곤, 자리를 이탈했다.
달려나가는 길에 벗어던졌던 스패츠나츠 헬멧을 주워 쓰는 것까지 깔끔하게 성공.
그는 바이저를 내리며 중얼거렸다.
"...이거 재밌네."
서로 사이좋게 라운드를 나눠먹던 중국과 일본.
거기에 성가신 변수를 뿌린 상황이다.
-지금 해설자들 크보 이름 연호 중
-???: 한 번 막아봐!
-하...오늘 방송 ㄹㅇ알차누
-지금 올오버 관심없는 울누나도 나와서 입벌리고 보는중ㅋㅋ
-근데 아직 이긴거 아니다
"그건 맞죠."
크로스보우는 채팅창을 살피다가 대답했다.
아직 이긴 건 아니다.
옳은 말이었다.
어떻게든 이번 판을 이긴다고 하더라도, 이미 앞선 두 번의 꼴등이 뼈아픈 상황.
심지어 다음판에는 프로선수나 일반인까지 합류할 터이니 이런 상황이 자주 연출되진 않을 터.
그렇다면 이번엔.
"다 된 밥에 더 큰 똥을 뿌려주마."
시스템 창을 불러들였다.
[SYSTEM]기절시킨 적의 수 : 4명
[SYSTEM]처치한 적의 수 : 1명.
[SYSTEM]조건이 만족되었습니다.
[SYSTEM]궁극기 사용가능 : 절대 어둠, 한시적 해방.
"진짜 궁극기 이름...."
-ㅋㅋㅋ아 절대영도 추영도ㅋㅋ
-작명한 트수쉑 나와!
-ㅎㅎ...ㅋㅋ...ㅈㅅ!
[캐릭터 강화권.]
그걸 이용해 강화시킨 능력.
지금, 사용할 타이밍이었다.
크로스보우는 팀 보이스를 켜곤 말했다.
"소등하겠습니다."
[SYSTEM]궁극기가 사용됩니다.
궁극기.
조건을 충족시켰을 때, 실내 한정 한시적으로 모든 조명을 차단할 수 있는 능력.
-좋은 밤 되십쇼!
그 채팅과 함께
팟.
팟.
팟팟팟팟팟!
'반파된 인천공항'의 모든 조명이, 사라져간다.
본인 앞도 안보이게 되는 쓰레기 능력이란 소릴 듣는 더 원 그라운드 캐릭터의 궁극기가, 국제무대에 선보여지는 순간이었다.
< 52화-배틀로얄의 귀재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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