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배틀로얄의 귀재 >
어둠 속.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손도, 분명했던 공간의 구조도──
그 무엇도, 보이질 않는다.
오로지 엉덩이에 닿는 바닥만이, 자신이 쓰러졌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거대한 공항에 감도는 것은 아주 약한 화약냄새. 그리고 텁텁하게 입안에서 감도는 연막 뿐.
타앙─!!!
"꺄아아악!!"
일본의 인기 스트리머. 타누마루.
그녀는 눈을 질끈 감으며 참지 못하고 전방위 실드를 펼쳤다.
-"타누마!! 궁극기 스킬은 아끼라고 했잖아!"
"지금 쓰지 않으면 다 죽어요!"
-"젠장. 진정해라! 보이스는 끊기지 않았어! 단지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피융!!!
총탄이 귓볼을 스친다.
아주 작은 불빛도 사라진 공간.
너무나도 현실적인 이곳에서, 그 감각은 마치 그녀를 놀래키듯 갑작스레 다가왔다.
"꺄아악!! 그, 그럼 어떡하라고요! 이대로 가면 죽어요!!"
-"...빌어먹을. 우선 바닥에 엎드려있어!"
"흐으...! 색적, 색적만 좀 어떻게...!"
-"그러니까 그게 안된다고!!"
-아이츠wwwww꽤나 오모시로이다wwww
-덕분에 타누 꼬라지 진짜 우스운wwww
-어이! 뭐좀 해보라고!
-여자아이 하나 보호 못하는거냐고wwww일본인의 '근성'을 보여줘라wwww
-스트리머팀은 다메다www감독들은 프로랑 일반인들로만 섞어서 다음 라운드를 준비해라www
-배틀로얄 꼴등 확정인 칸고쿠 따위에게 굴욕www
그녀가 픽한 건 작은 포탑을 설치하는 캐릭터.
준비된 상황에서 맞닥뜨렸을 땐 가히 최강으로 꼽히는 챔피언이다.
제 아무리 체력이 높은 캐릭터라 한들 좁은 길목에서라면 순식간에 녹여버릴 수 있는 포탑.
그러나 이 순간은 그 믿음직한 포탑이, 오히려 공포심만 자극하는 요소로 전락하고 말았다.
피융─!
펑!
[SYSTEM]'KR_Crossbow(더 원 그라운드)'에 의해 포탑이 부숴졌습니다!
대체 어디서 나오는건지 알 수 없는 총탄 때문이었다.
"꺄아아악!! 색적! 색적하라고!! 당신들의 역할이잖아!"
-"아아...이상하군...노크턴의 '피해망상'은 이미 끝날 시간인데."
"이, 이...이 멍청아! 한국에 녹턴은 없었어요!! 그리고 녹턴이 궁극기를 배울 시점이 아니잖아! 이 올알못 놈들!"
-"어이어이...심정은 알겠지만...이거 전국민 송출이라고? 험한 말은...."
그 한심한 발언에 타누마루는 이를 갈았다. 어뷰징이나 해서 업혀갈 생각이나 할 줄 알지, 도무지 도움되는 인간이 하나도 없다.
계급도 낮은 놈들이 대기실에서부터 여자라고 무시해댈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타누마루는 내가 지켜줄게 같은 말이나 지껄이고 있고.
-"타누마. 일단 진정하고 심호흡을...."
"...심호흡? 웃기지도 않는 소리 하지마시죠."
그녀는 뱉듯 말하곤 귓볼을 잡아당겼다. 팀 보이스 채팅을 off로 만드는 모션이다.
그리고 찾아온 정적.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진정해. 타누마루. 진정하자."
-보쿠코 타누마루www
-남자놈들 쓸모가 없네www
-형님 나라를 본받아라 넷우익 스트리머들www
혼자서라도 어떻게든 이 위기를 넘겨야 해.
최소한 이런 식으로 당해선 안된다. 오랜 방송 경력으로, 타누마루는 그걸 직감하고 있었다.
"적은 아마 두 명. 사격 담당이 한 명, 정보 파악이 한 명일거야."
그녀는 전황을 살폈다.
시야 정보는 전혀 없지만, 적어도 소리는 들린다. 마나가 움직이는 것도 차단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최소한 '침묵'계열은 아니다. 시야봉쇄라고 보는 편이 옳겠지.
그녀를 제외한 서포터 스타일 플레이어들은 모두 본대에서 지켜지고 있는 상태. 몇 번인가 기절했지만, 팀원 바로 근처에 있으면 어둡다고 해도 못 살릴 건 없을 터다.
반면 그녀는 고립된 상태다.
좁은 길목에 포탑을 설치하러 왔다가, 날아온 총탄에 호위를 잃은 것이다.
타누마루는 손을 뻗었다. 무기질적이고 평평한 무언가가 만져진다.
궁극기 방벽이다.
"...스킬은 정상 작동하고 있어. 최소한 10초는 더 위험할 리 없...?"
그 때였다.
마치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더듬던 그녀는, 문득 손을 멈췄다.
"...뭐야. 이거?"
차가운 금속 재질의 뭔가가 만져졌다.
"보통 공항에 이런 게 있나...?"
툭 튀어나온 원형의 무언가.
그녀가 멍하니 그걸 만지작대던 와중.
"아아...."
돌연, 낮은 목소리가 어디선가 울려퍼졌다.
"이것은, '돌격소총' 이라는 것이다"
"...!"
새카만 헬맷을 쓰고 있는 남자.
크로스보우는 어둠 속에서 걸어나왔다.
"벌집을 만들 때 쓰는 멋진 무기지."
"히이...!!!!"
"쉬잇."
그는 비명을 지르려던 타누마루의 멱살을 잡아올려 입을 막았다.
'하, 한 명이었어...?!'
그녀가 그런 생각을 하며 브리핑을 위해 어떻게든 다시 귓볼을 잡아당기려 할 때.
"입 열면 죽는다."
"...!"
그녀의 이마 바로 앞까지 얼굴을 들이민 크로스보우.
그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사실 안 열어도 죽일거지만."
"읍! 으으으읍!!!"
발버둥치는 스트리머 타누마루의 동공에, 스패츠나츠 헬멧이 가득 차오른다.
드르르륵─!!
***
[SYSTEM]'KR_Crossbow(더 원 그라운드)'님의 M416을 사용한 헤드샷으로 'JP_Tanumaru(시계워치)'님이 사망하였습니다!
킬 스코어의 변동이, 또다시 일어났다.
[한국 : 중국 : 일본 = 30 : 29 : 27]
[생존 인원 수 : 86명]
동시에 반파된 인천공항을 반으로 나누던 거대한 궁극기가 사라져간다.
-"대체 뭘 하고 다니는거지...?"
-"나이스~ 와."
-"미쳤다. 진짜로."
그 킬로그에, 한국 스트리머 팀은 멍하니 말했다.
이런 좁은 전장에서 홀로 4킬.
크로스보우는 그야말로 미쳐날뛰고 있었다.
-"...이 스킬 정확히 효과가 뭐에요? 이거 발동한 상태면 스펙 올라가나? 어떻게 저렇게 하지?"
아군의 시야까지 차단해버리는 시야봉쇄 효과에 의문을 느낀 누군가가 그렇게 묻자 오더를 맡고 있던 울드가 설명에 나섰다.
"스펙 안 올라가요. 범위는 실내 한정, 본인 시야도 차단당하는데다가 게임 내내 단 한 번 사용가능, 발동 중에 킬 수 올릴 때마다 1분씩 유효시간 증가. 그냥 똥쓰레기 스킬이에요. 이거."
-"...아하. 그럼 그냥 녹턴꺼 하위호환...잠깐만요. 그 설명대로라면 무조건 1분에 1킬은 해야 유지할 수 있는거...?"
-"맞음. 크크. 걍 트롤용 스킬임. 이걸로 한동안 맵 반짝여서 짜증났었는데."
다른 스트리머의 확언. 그에 잠시 말을 멈춘 스트리머 커물쥐.
───콰아아아앙!
드드드....
그 때 폭발적으로 터져나오는 굉음. 건물이 미세하게 진동한다.
-"...트롤용 스킬요?"
그는 한쪽 구석에 떠오르는 시스템 메세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저건 뭐야."
[SYSTEM]'KR_Crossbow(더 원 그라운드)'님의 수류탄으로 'JP_Tachi(블레이레드)'님이 기절하였습니다!
[SYSTEM]'KR_Crossbow(더 원 그라운드)'님의 수류탄으로 'JP_Oorobo(이노센트기어)'님이 기절하였습니다!
킬로그를 메우는 태극기.
그리고 떠오르는 한 명의 이름.
그야말로 압도적인 퍼포먼스다.
-"...."
-"...미친거 아니냐고."
-"버, 버스 달달~합니다...."
"...빨리 합류하러가죠. 파밍은 다들 잘되셨으니까."
기가 질린 스트리머들의 반응에 오더를 내리는 일루션의 모습.
"이제 이 게임. 이미 저희가 이긴거나 다름없습니다."
이미 흐름은 기울어졌다.
모두 크로스보우의 덕이었다.
"...."
마치, 현역 시절 마주했던 블래드를 보는 것 같은 느낌.
그는 마음 한 구석에서 크로스보우의 평가를 세 단계는 더 끌어올리며 단언했다.
"이거 못 주워먹으면 욕 쳐먹어도 싸요."
***
파앗-.
조명이 들어왔다.
중국과 일본에게 있어서는 끔찍했던 시간이 지났다.
정신을 차리니 생존 인원 수는 30 : 15 : 14.
사망은 커녕 단 한 번의 기절도 없는 한국팀. 그에 반해 전력을 합쳐도 한국팀의 인원에 미치지 못하는 두 나라.
"젠장!!! 빵즈 녀석 하나 때문에...!"
"...후우. 어쩔꺼야. 이대로라면...."
"이, 일단은 모여!"
"중앙 모여!"
경기 구역이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공식 경기이니만큼 최소한 대놓고 힘을 합치는 등의 노골적인 어뷰징은 불가능하다.
이제부턴 어쩔 수 없는 3파전이다.
"납작해져라!!"
"카프킥!!!"
"보통펀치! 진심펀치!"
그리고, 그렇게 벌어진 힘싸움은 한국의 압승.
크로스보우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실력차이를 확실히 입증하며 라운드가 종료되었다.
승자는 대한민국이었다.
[대한민국! 두 번의 실책 끝에 스트리머 팀이 해냅니다!]
[그렇습니다! 드디어 1승을 한 번 챙겨가는 한국팀! 그리고 그 중심에 선 건 크로스보우! 바로 이 선수입니다!]
[전략과 전술. 그 모든 걸 단신으로 정면에서 박살낸 남자! 어둠 속에서 보여준 말도 안되는 피지컬 컨트롤!]
[이번 라운드 명장면. 함께 보시죠!]
아무리 대흥행게임이라고 해도, 잔잔한 힐링모드나 일상과 관련된 모드 따위를 즐기는 기성 세대에겐 알려지지 않았던 이름.
세간에 크로스보우라는 이름을 조금 더 각인시키는 순간이었다.
[대단합니다. 다시 봐도 대단합니다!]
[정확한 도탄 계산! 저는 이 장면 전까지 저런 게 가능한지도 몰랐거든요!]
[아-놀랍습니다. 분명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 상대 포탑의 위치를 당연하다는 듯 특정합니다!]
[모든 게 위치를 발각당하지 않기 위해 계산된 플레이거든요! 분석해보자면 이 장면....]
─반짝.
크로스보우는 캡슐 속에서 눈을 떴다.
푸쉬익─.
캡슐을 열고 나오자, 그를 반기는 것은 아까보단 확연히 커진 함성소리였다.
"───!! ──!!!"
"──!!! ───!!!!"
관중석을 바라보자 멀리서도 익숙한 얼굴이 셋.
모두 일어선 채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그들뿐만이 아니다.
꽤 많은 사람이 몸을 흔들며 뭔가를 외치고 있었다.
뭐지.
집중 상태에 들었던 탓에 그 소리가 아득하다.
뭐라는거야.
"──!!!"
잘 들리질 않는다. 크로스보우는 귀에 손을 갖다댔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그저 소음으로만 느껴지던 그 소리가 문득, 명확히 다가온다.
깨달으니 일순 쏟아지는 환호성.
"─────와아아아아!!!"
"...!"
"크로스보우! 크로스보우!! 잘했다!!!"
"꺄아아악! 크보님!!"
"다음판도 이대로만 가자!!! 화이팅!!!"
...묘한 감각이다.
분명 풀다이브는 해제했을 터인데, 문득 찾아온 활력감이 피로를 태운다.
수많은 시선.
거기에 있는 건 오로지 경탄과 환호 뿐.
그 뜨거운 감각에, 그는 태평스럽게 웃으며 엄지를 척 들어보였다.
"──와아아아아아!!!!"
"크로스보우!!!"
"미쳤다! 멋있다!!!"
한중일 예선전.
배틀로얄 모드의 탈락을 결정짓는 매치포인트.
크로스보우의 참전으로, 가볍게 승리.
***
"휴우...."
"...진짜 이겼다고?"
"제 말이 맞지 않습니까?"
"대단하네요...."
네이션스 컵 국가대표 팀 감독대기실.
6명의 감독들은 인게임 영상을 받아보며 감탄했다.
모드가 여럿이니만큼 감독도 여럿인 특이한 구조.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어서 다음 라운드 팀을 어떻게 분배할지 결정해야합니다."
그 중 TK의 감독 송정훈은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차피 배틀로얄은 졌으니 다음 모드를 준비해야 한다는 다른 감독들의 의견에 홀로 힘껏 맞서 싸운 결과, 다행히 한국팀이 승리했던 것.
"...저 사람. 아직 아마추어죠?"
"프로 생각은 없답니다."
"지금은 다를 수도 있죠. 저 정도 환호를 받고도 저런 태평한 미소라니. 실력도 그렇고 딱 프로에 걸맞는...."
"...이유리 감독.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어서 다음 라운드...."
감독실의 유일한 여성감독.
국내 2위팀, 더블G의 이유리 감독은 멈추지 않고 중얼댔다.
"저 사람만 영입하면 TK를 이길지도...."
"뭐, 뭐요? 어림도 없지. 지금 무슨...!"
"실제로 저번 스크림 땐 저희가 이겼는데, 이제 슬슬 왕좌에서 좀 내려와주시면 좋겠네요."
"하! 글쎄요. 블래드가 있는 한 어림도...."
"우리 얼론 선수도 안 밀리거든요?"
티격태격대기 시작하는 두 사람.
그 모습을 보다 못한 다른 감독이 상황을 정리했다.
"자자. 사랑싸움은 다른데 가서 하시고...일단 그림을 좀 그려보죠."
"사, 사랑? 미친 소리 하지마세요!"
"사랑은 뭔. 사박궤다. 이 여자야!"
"...어휴."
그러던 때였다.
"...다음 라운드에 저 친구는 좀 쉬게 해줘야겠지? 안그래?"
문득, 영상을 유심히 바라보던 남은 한 명의 감독이 그렇게 말했다.
"예? 무슨 소립니까. 분위기 탔는데."
"그건 좀...."
"그랬다가 지기라도 하면 저희가 여론 뚜드려 맞을텐데요?"
"일단 다음판은 블래드 투입시켜서 틀어막고 생각해보자고."
"...모드 교차할 수 있는 기회는 단 3번뿐입니다. 그걸 여기서 쓰자고요?"
"그게 낫지 않겠나? 확실한 게 낫지."
그 말에 고심에 빠지는 감독들.
확실히, 여기서 1승을 더 하고 가는게 더 좋은 방법인 건 맞다.
그러나 그게, 단 3장뿐인 변경 카드-주력 모드를 무시하고 선수를 투입시킬 수 있는 카드를 사용할 정도로 메리트가 있는가?
그 때 곰곰히 생각하던 송정훈 감독이 발언했다.
"...그럼 이렇게 하죠. 블래드도 넣고 크로스보우도 넣는 걸로. 할거면 확실하게."
"오. 그게 좋겠네요. 저는 찬성."
"...송 씨 답지 않게 좋은 제안이네요."
"찬성입니다."
"저도 찬성이요."
오히려 파격적인 제안.
그리고 줄줄이 따라나오는 동의.
"아, 아니...내 말은 그게 아니라...다른 선수를...."
"결정이네요."
"네."
그 모습에 처음 제안했던 감독은 손사레를 쳤지만, 이미 결정된 여론을 뒤집기엔 역부족이었다.
< 53화-배틀로얄의 귀재 > 끝
ⓒ ReadOu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