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 스트리머가 너무 강함-53화 (53/143)

< 54화-배틀로얄의 귀재 >

"...빌어먹을 자식들."

크로스보우의 벤치행을 주장했던 감독은 씩씩 거친 숨을 쉬며 말했다.

"한낱 아마추어 따위가 조금 잘했다고 프로단계랑 똑같은 줄 알아? 감독이란 것들이."

요즘 것들은 도무지 예의가 없다.

그런 생각만이 그의 뇌리에 자리하고 있었다.

"지기라도 해봐. 아주 톡톡히 각오하라고."

그는 휴대폰을 꺼내들며 중얼거렸다.

***

크로스보우가 한국에 1승을 안겨준 [배틀 로얄] 모드.

아직 경기는 급박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가 모두 1등을 한번씩 한 상황.

그러나 그 중에서도 2번이나 꼴등을 해버린 건 아직까진 한국이 유일했다.

즉, 아직도 패배를 코 앞에 둔 매치포인트인 건 여전한 사실이란 뜻.

"...그렇다곤 해도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는데."

크로스보우는 '국가대표들'이라는 이름의 까톡 톡방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곳에는 4라운드에 출전할 선수 목록이 적혀있었다.

감독들의 상의 하에 결정된 서른 명의 선수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그의 이름 역시 포함 되어있는 모습.

그런데 그 뿐만이 아니었다.

예상치 못했던 선수의 이름이 하나 올라와 있었다.

[TK송정훈감독]

〈모드 교차권으로 남은 4, 5라운드 동안 TK의 블래드 선수가 참전할 예정입니다.〉

"...이 시점에 블래드라?"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솔직한 심정으로 이게 맞는건가 싶었던 탓이다.

당장 내일이 블래드의 주력 모드인 [AOS 모드]의 개시일이 아니었나?

선수 피로도는 어쩌려고 하는거지?

물론 블래드가 업계 탑 수준의 프로게이머기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컨디션에 영향을 받기는 할 터.

심지어 서로 이런저런 사정으로 얽혀있는 3국간의 대결. 그마저도 단 한 번의 패배도 용납받지 못하는 상황.

부담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매치업인데, 거기에 단 세 장뿐인 교차권을 써서 투입시킨다?

이건, 가서 이겨라 라는 말 밖엔 되지 않는다.

"...의존하고 있구만."

크로스보우는 그 결정에서 깨달았다. 블래드가 심하게 영웅 취급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일각에선 장난 반으로 마치 신처럼 떠받들어진다고 해서, 감독들까지 그래선 안되는 법일텐데.

"...."

그도 몇 번인가 봐왔던 상황이다.

능력 있는 사람에게 대우를 하지 못할 망정, 일을 더 준다고 하더니 딱 그 꼴이지 않는가.

그리고 이런 취급을 받는 인간은 대부분, 결국 극심한 스트레스로 무너지기 마련이다.

지금까진 그럭저럭 잘 버티는거 같지만....

"이러다 사고 한 번 터지겠네."

크로스보우는 내심 그렇게 유추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쉴 틈이 별로 없었다.

4라운드가 코앞이다.

***

"언니. 언니."

"...."

"언니!!!"

이세린은 자신의 몸을 잡고 흔드는 손길에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네이션스 컵의 예선전이 펼쳐지고 있는 경기장. 시선을 올리자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동생, 이하린의 모습이 보인다.

"어? 응. 왜?"

"...그러다 화면에 들어가겠어. 맥주 마실거지?"

"맥주? 웬 맥주?"

바보같이 되묻자, 하린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맥주가 맥주지 뭐야. 저기 맥주보이 돌아다닌다고 아까도 말했잖아."

"응? 아...응. 마시지. 뭐."

"...그렇게 크보님이 좋아?"

"뭐, 뭐라는거야. 전혀 아닌데?"

"경기 끝나고 계속 크로스보우님 나오는 장면만 돌려보고 있잖아. 방금 판 멋있었던 건 인정하는데, 언제까지 넋을 빼놓고...."

"...아니라니까?"

세린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부정했다. 그러자 그런 언니의 모습에 짜게 식은 눈을 해보이는 이하린.

"그런거치곤 언니. 어제 잠꼬대도 크보님 부르던데...."

"뭐, 뭐...? 정말?"

"아니. 구라야."

"...야!"

우씨 같은 소리를 하며 주먹을 들어보이는 언니의 모습에, 그녀는 후다닥 도망가며 생각했다.

솔직하지 못한 언니라고.

"저기요. 맥주 두 잔만 주세요."

"맥-주 뚜 잔! 오케이!"

"...혹시 소맥도 팔아요?"

"쏘...먝? 오우. 쏘주! 맥주! 파라요!"

...판다고?

그러고보면 올오버는 한국에서 출발한 게임이었지. 그녀는 그 사실을 떠올리며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한 잔은 쏘맥으로 주세요."

"오케이!"

솔직하게 만들어주는 마법의 음료.

"히히. 오사케리...아니, 오사케세린이야. 언니."

그녀는 음흉하게 웃었다.

***

"설마 형이랑 벌써 같이 하게 될거라곤 생각지 못했는데."

블래드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지금 막 프로게이머 선수단이 머무는 숙소에서 연습실로 도착한 그는 조금 피곤한 기색이었다.

"그러게."

"저야 좋지만요."

"피곤해 죽을 거 같은 얼굴인데?"

"아...현지팬들한테 시달려서요...싸인만 몇 번 했는지 모르겠어요."

그들이 서 있는 곳은 연습실로 쓰이는 건물의 복도에 놓여진 자판기.

크로스보우는 에너지 드링크를 뽑아 그에게 내밀었다.

"고생이네. 자."

"오...제가 이거 좋아하는지 어떻게 아시고...."

그렇게 온통 굴러다니는 걸 보고도 모를 순 없다.

그러나 크로스보우는 그냥 웃고 말았다.

일전의 만남 이후로 어색하게나마 말을 튼 두 사람.

먼저 말을 놓으라고 한 건 블래드 쪽이었다. 이렇게 가끔 마주칠 때도, 묘하게 친근감을 표시해온다.

그러고보면 번호를 달라고 한 것도 저쪽이 먼저였던가? 크로스보우는 문득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시고는 무슨. 그냥 말 편하게 하라니까."

"하하. 노력해볼게요."

약간이나마 말을 섞어본 블래드는 '신이 내린 천재' 따위로 추앙받는 세간의 평가와는 전혀 달랐다.

그냥 괜찮은 인간이라는 느낌을 줄 뿐이었다.

프라이드가 강해도 괜찮을 법한 위치인데도 불구하고, 전혀 그렇지 않은 게 신기한 성격.

치익-.

"그러고보면 같이 하는 건 처음인가?"

"그쵸. 그동안 스크림은 프로는 프로끼리 스트리머는 스트리머끼리만 했으니까요."

역시 그렇군.

크로스보우는 음료를 들이켰다.

"...기대되네요. 정말."

그러자 그런 그를 바라보며 눈을 빛내는 블래드. 조금 부담스러운 시선이다.

"아 참. 프로들이 아마 조금 텃세 부릴 수도 있어요."

"뭐. 그렇겠지."

"자존심은 다들 엄청 쎄서...네?"

되묻는 블래드에게 어깨를 으쓱이고는 말했다.

"니가 신기한거야. 무시하는게 보통이지."

"...아닌데. 눈이 달려있으면 알아볼텐데..."

그 말에 크로스보우는, 이번엔 그냥 픽 웃고 말았다.

아까 잠시 인사를 나눴던 프로들이 모두 시큰둥한 반응이었던 걸 기억했던 것이다.

***

[대한민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의 배틀로얄 모드! 현재 4라운드를 앞두고 있습니다!]

[네. 스트리머팀의 활약으로 탈락을 막아낸 한국팀. 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되는데요!]

[말씀드리는 순간 맵이 선정됩니다! 대한민국의 제주도! '로스트헤븐'입니다! 아. 이번엔 가장 넓은 맵이 걸렸어요! ]

[그렇습니다. 심기일전한 프로선수들과 일반인 선수들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는데요!]

해설진의 중계가 경기장을 울렸다.

그리고 올오버의 내부. 맵의 어딘가.

"몇 번이나 말씀드렸죠. 이거 역으로 당하기 딱 좋은 조합인데."

"어차피 어떤 조합이든 허점이 없을 순 없어요. 그리고 이미 스크림에서 여러번 검증된...."

"...아. 검증. 검증이요. 그렇구나."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탈락을 앞둔 상태.

부담감이 큰 자리다.

그 탓인지 선수단 사이에서 앙금이 생겨나는게 조금씩 보이고 있었다.

"생각보다 더 답이 없구만."

[SYSTEM]곧 게임이 시작됩니다...30...29...28....

블래드가 있으니까 위기 상황으로 인식하지 못하는거다.

감독뿐만이 아니다. 선수들에게마저, 어떻게든 해주겠지 하는 마인드가 기저에 깔려있다.

"...조장하실 분? 이런거지?"

"...푸핫."

그런 감상을 담아 중얼거리자, 멀리서도 용케 알아들은 블래드가 헛웃음을 지었다.

"예선전에서 예방주사 좀 맞읍시다."

[SYSTEM]게임이 시작됩니다!

[SYSTEM]맵 : 로스트헤븐

수송 비행기의 안.

크로스보우는 방송모듈을 찾았다.

[SYSTEM]트리키 뷰 방송 모듈을 실행합니다.

[SYSTEM]'1인칭 보기'기능이 활성화됩니다!

[스트리머 '크로스보우'님의 방송이 시작되었습니다!]

-크하

-크하

-??

-뭐야 방 잘못들어왔나?

-칼 든 과학 무야!!

"사랑하는 아이튜브, 그리고 트리키 뷰 시청자 여러분."

그는 빙긋 웃었다.

"크로스보우입니다."

이쪽 화각이 잡히겠지? 그는 뒤로 떨어져내리며 말을 이었다.

"오늘 해볼 건 병ㅅ...아니."

손을 들어보인다.

그곳에 들린 건 푸른색의 일본도.

그리고 몸통을 훤히 드러내는 복장.

"총 없는 찐따입니다."

-아ㅋㅋㅋㅋㅋ

-이게 그 ㅂ신 TV인가 그거냐?

-국가대항전에서 처음 해보는 캐릭터를 픽한 인간이 있다?

-뿌슝빠슝

-석궁단 놈들 이젠 의심도 안하넼ㅋㅋㅋ

이번 라운드.

그가 픽한 캐릭터는 무려 일본도를 손에 들고 있었다.

게임, 전설의 리그에선 패배의 아이콘으로 악명 높은 바로 그 캐릭터.

팀의 요청에 의한 픽이다.

요청이 무엇이었는가하면, 맵의 중앙지점에서 얻을 수 있는 '각성구'로 향하는 길목을 지키고만 있어달라는 요청이었다.

가상현실에서 이런 칼을 다뤄보는 건 조금 생소한데. 크로스보우는 떨어져내리며 무기를 빙글빙글 돌렸다.

-대나무 헬리콥터~~

-ㅋㅋㅋ아ㅋㅋ

-이 남자...근접캐릭터는 어떨까?

-중화제일검이랑 한판 보여주는거지?

***

장난끼 가득했던 시청자들의 반응은, 얼마 지나지 않아 지루함으로 바뀌었다.

"흐아암...."

게임이 시작하고 근 20분.

크로스보우는 여기저기서 싸움의 소리가 나건 말건 그저 홀로 통로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넌 못 지나간다!(20분째)

-아ㅋㅋ심심한데 츠바메가에시나 연습하자

-그게 뭔데 씹덕아!

-ㄹㅇㅋㅋ빙의했는데 뭔 경계서는거 같네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크보 방송 언제부터 힐링물 됐누;

쿠웅─!

퍼어엉!

킬로그가 아주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다.

이미 한국에서 1승을 한 번 양보한 중국과 일본. 더이상 어뷰징을 포기한 것인지 서로 싸우는 듯한 기록도 다수.

"확실히...한국의 블래드, 일본의 다이고, 중국의 그 뭐시기네요."

-중화제일검 그 뭐시기행

-아ㅋㅋ짱제검보단 크보지

-ㄹㅇㅋㅋ하느님이 '보우'하사

-오 지렸다;

-얘! 아무데나 싸면 안된댔지?!

-뿌직

그렇게 시청자들과 담소나 나누고 있는 크로스보우.

그런데 그는, 킬로그를 바라보다가 문득 말했다.

"...잠깐. 뭔가 이상한데요?"

-ㅇ??

-크난on

-음모on

떠오르는 킬로그에 표시되는 것은 선수 각각 픽한 캐릭터들과 게임의 목록.

어느 정도 비등해보이는 상황. 그러나 죽어나가고 있는 목록에, 적팀 프로게이머는 없다.

크로스보우는 그 사실에서 문득 싸늘함을 느꼈다.

"...그러고보면 아까 비행기에서 그 분 계셨죠?"

-누구용?

-???: 누구세용~?

"그 여자분이요. 타누...뭐였는데."

-당신이 벌집피자로 만들어버린 사람이라면 타누마루입니다

-니가 죽인거야! 기억해!

-??? : 잘했어

-아ㅋㅋㅋ

그의 뇌리에 떠오른 것은 신예지가 정리해줬던 목록.

각 나라별 선수의 주캐릭터.

거기에는 분명, 이렇게 쓰여있었다.

[일본-타누마루]

[시계워치의 시메하트 원챔프 장인. 오버로드 계급.]

원챔프.

다른 캐릭터는 전혀 다루지 못한다는 소리.

"...순간이동기."

크로스보우는 그 캐릭터의 스킬을 떠올리며, 번쩍 고개를 들었다.

─또각.

어디선가 발소리가 들려왔다.

< 54화-배틀로얄의 귀재 > 끝

ⓒ Read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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