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화-배틀로얄의 귀재 >
트리키 뷰 닉네임 '이응이여섯개'.
지호민은 중계석에 가만히 앉아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좀 이상하네요."
문득 그렇게 중얼거린 지호민.
그러나 그 말을 듣지 못한걸까. 다른 해설진은 열성적인 해설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초반부터 강하게 압박하는 한국! 지금까지 당한 설움이라도 갚아주겠다는 걸까요? 차근차근 적들을 죽여나갑니다!"
"확실히 정면 승부가 되자 상대를 압박하는 피지컬들입니다. 한국 선수들. 이를 갈았어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제야 유리한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팀의 퍼포먼스에 덩달아 흥분한 게 분명했다.
"...그런데 지호민 해설은 조금 다른 관점으로 보시는 거 같은데요. 심각한 표정입니다!"
물론, 몇 년째 호흡을 맞춰온 그들이 지호민의 기색을 눈치채지 못할 리는 없었다. 프로다운 멘트로 그에게 발언 기회를 주는 모습.
"......지금 이 상황, 일견 유리해보입니다만...자칫하면 엄청나게 곤란해질 수 있습니다."
그는 표정을 딱딱하게 굳힌 채로 말했다.
"아...! 곤란해질 수 있다! 그렇게 표현해주셨습니다! 글쎄요. 사실 저희가 보기에는 착실히 몰아붙이고 있다는 생각만 들 정도로 호흡이 착착 맞거든요!"
"...한국팀이 선택한 전략은 초반 교전에 능한 조합을 통해 빠르게 찍어누르겠다는 의도거든요? 분명 좋은 선택 중 하나입니다. 실제로 개개인의 실력은 압도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대로가면, 아무런 변수 없이 대한민국은 1등에 안착할겁니다. 지호민은 천천히 한 마디씩 끊어말했다.
희망찬 말과는 다르게, 눈은 여전히 전황을 분석해주는 눈앞의 화면에 고정한 채였다.
"맵이 '로스트 헤븐'만 아니었다면 말이죠."
거기까지 말하자 대충이나마 의도를 알아차린 두 명의 중계진.
"그 말씀은, 맵이 너무 넓다...?"
"광활한 맵. 확실히 문제될만합니다만...이런 높은 수준의 경기에선 크게 상관없는 이야기라는 게 분명 대표팀 감독들의 말이었거든요!"
"네. 그렇습니다. 실제로도 탐지, 시야스킬을 적절히 조합해서 잘 활용하고 있는...."
"문제는 그게 아닙니다."
지호민은 두 명의 발언에 고개를 저었다.
"로스트헤븐의 중앙 지역. 그 지하에 스폰되는 '각성구'가 문제인겁니다."
***
[가, 각성구! 그렇지만 각성구를 얻을 수 있는 중앙캠프는 한국팀이 모두 정리한 이후입니다만은...?]
[그건 그렇죠. 통하는 길목에는 크로스보우 선수가 지키고 있으니, 본래라면 큰 걱정은 없었을 터...였지만.]
응원소리가 가득한 바깥.
[문제는 이 선수입니다. 시계워치의 캐릭터로, 두 장소를 바로 오고갈 수 있는 '순간이동장치'를 설치할 수 있는 캐릭터거든요?]
[아. 생각지도 못한 답변입니다. 순간이동기. 분명 한 번 설치하면 모든 팀원이 제한없이 사용할 수 있게 되는 스킬이죠?]
[그래도 그건 너무 위험한 도박수일텐데요!]]
[일본의 입장에선 더 이상 도박수가 아닐겁니다. 벼랑 끝에 선 건 일본도 마찬가지거든요. 도박수라기보단 지푸라기에 가깝습니다!]
[...호민 해설의 말이 끝나는 순간, 일본이 움직입니다.]
올오버 스타디움에선 그런 중계가 오고가고 있었다.
크로스보우는 벽에 기댔던 몸을 바로 세웠다.
아주 작게 들린 발소리.
잘못 들었을 리는 없었다.
소리가 전해주는 대략적인 중량은 지난 라운드 때 봤던 여자 스트리머와 거의 엇비슷하게 일치한다.
"...하아."
크로스보우는 직감적으로 그 사실을 깨달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맵을 불러와서 본대의 위치를 확인한다.
"볼 것도 없었군."
멀다.
지금 바로 알린다고 해도, 제 시간에 도착하는건 절대로 불가능한 거리.
-아...ㅈ댄거 같은데?
-ㄹㅇ크보조진날 돼부럿네;
-처음 해보는 캐릭터로 프로급들과 다대일 하는 스트리머가 있다?
-진짜 있네;
-아ㅋㅋㅋㅋ
-한국 우승후보 맞냐? ㅅㅂ다 답이 없누
-스트리머가 나라의 중심을 지키고 있어요!
크로스보우는 채팅창을 확인하다가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예선의 첫번째 모드라서 그럴까. 아니면 프로와 아마추어를 섞어놓은 탓일까. 우승후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중구난방인 모습의 대표팀.
2번이나 이어진 꼴등. 그리고 또다시 생겨난 전략의 헛점.
전략적 티밍의 부당함에 대해 성토하던 시청자들도, 지금에 와선 조금 굳어있는 모습이었다.
"브리핑은 해야겠죠?"
-ㅋㅋㅋㅋ브리핑(유언)
-삼고빔ㅋㅋ
-졌잘싸각이네
-그냥 '졌' 될듯ㅋㅋ
-? 젖닌 밴
-오늘 크보 사실상 첫 데스 보겠누 아ㅋㅋ
-일본놈들 성진국 아니랄까봐 누구보다 빠르게 포상받네
-답은 매국배팅이었던 것
그는 팀 보이스 채팅을 키곤 말했다.
"본측 크로스보우. 중앙캠프에서 알림. 접근인원 식별."
-"확인. 국적과 캐릭터 보고 요망합니다."
팀 보이스를 통해 통신을 받은 이는 '대망'이라는 프로였다. 오더를 맡고서는 상황을 예측조차 하지 못하고 있나보군. 그는 눈쌀을 조금 찌푸렸다.
그 때, 대충 상황을 좀 더 전달하려던 때였다.
지이잉──.
아까 살짝 들렸던 발소리에 이어 어디선가, 전자기적인 소리가 들려온다.
"일본. 순간이동기 확인하였음."
-"...일본 애들이면 뭐, 지난 라운드에서도 보여주셨으니까...."
"-잠깐만요. 크보님. 순간이동기요? 시계워치?"
잠시 정적.
텀을 두고 기함하는 듯한 소리가 팀 보이스를 통해 들려왔다. 썩어도 준치라고, 크로스보우의 브리핑에 이제서야 대충 어떤 상황인지 짐작이 간 모양이었다.
-"이, 이런...."
-"크보님....!"
우르르르─.
그 순간 귓가를 울리는 무수한 발소리.
정확한 소리 식별이 필요한 순간.
그는 순식간에 판단을 마치곤 말을 마쳤다.
"교전합니다."
-"...!"
[SYSTEM]팀 보이스 채팅을 종료합니다.
그가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당황한 듯한 소리들이었다.
그럴만도 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건 빈집털이다.
그것도 게임의 판도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도 있는 빈집털이.
물론, 일전의 크로스보우는 각성구 이상의 것을 파밍한 캐릭터도 1대1로 이겨냈지만...그건 상대도 연이은 교전으로 소모되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에 불과했다.
-나는 개똥벌레~
-???: 이제 재미 없어 빨리 커버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아ㅋㅋ
-팀원차이ㅋㅋ
그리고, 아군의 커버는 없다.
홀로 몇 명일지 모르는 적을 막아내야하는 상황.
크로스보우는 슬슬 그립감이 익는 검을 들어보였다.
"...이젠 뭐, 이런 상황도 익숙하네요."
-ㅋㅋㅋ크보야 그래도 우리가 있어!
-우린 영원히 함께야...!
-ㄹㅇㅋㅋ이렇게 힘 안되는 동료가 있을까?
-그 찐따같던 시청자들이 맞냐...
-팩트)맞다
그는 태평스럽게 웃으며 전방의 통로를 바라보았다.
검을 들어 어둠 속을 가리킨다.
"총 8인. 전설의 리그가 두 명, 라스트아카가 두 명, 그리고...악마는 울지 않는다가 세 명. 마지막으로 시계워치 한 명."
-어? 데낫크?
-감히 세이크님 앞에서?
-그러고보면 일본산 게임임
-아ㅋㅋ매국노 크보 지리누
-싸지 않습니다
정확한 캐릭터 파악.
그리고 이젠, 이런 정도엔 전혀 놀라지 않는 크로스보우의 시청자들.
-본인 조금 기대되는데 정상이냐?
-못 보여줄 건 없지
-가자
-근데 왜 싸움은 크보가 하는데 님들이 의기양양해함?
-ㅋㅋㅋ아ㅋㅋㅋㅋㅋ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
"대성공. 대성공이야! 타누마루 상!"
"그런 캐릭터로 배틀로얄 오버랭크 어떻게 찍었나했더니...뇌지컬이었구만?"
"...확실히, 다시 생각해도 좋은 전략입니다."
칭찬 일색.
그에 타누마루는 눈을 사납게 뜨며 반응했다.
"아직 성공한 거 아니에요. 집중해주세요."
"아니. 괜찮아요. 걱정마요. 타누님...이미 중앙캠프 교전은 끝난지 오래야. 있어봤자 한 두 명 쯤이겠죠."
"그래도...!"
지난 라운드. 머리통이 통째로 총알에 꿰뚫리던 느낌이 문득 떠오른 그녀.
통증은 없더라도 굉장히 더러운 감각. 쓸데없이 현실적인 올오버는, 이런 회상의 순간에 돋는 소름까지 느껴지도록 해놨다.
"다이고. 너무 뭐라하지마. 이게 다 타누 상 공로라고?"
"알지. 그러니까 안심하시라는 말이야. 여성이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데 그냥 넘어갈 순 없잖아?"
"...."
타누마루는 팔뚝을 마구 비볐다.
일본의 블래드라 불리는 프로게이머, 다이고.
실력적인 면모는 굉장했지만, 마치 순정만화의 주인공이라도 된 것 같은 언행이 영 거북했던 것이다.
일본인들은 몰랐지만, 이미 한국인들 사이에선 일본의 모 남자 피겨스케이팅 선수 같다며 안티가 잔뜩 생겨났을 정도.
-다이고상 말이 맞다
-당장 도게자해라 타누마루wwwww
-wwww중세잽랜드의 황태자께 경배해라
그러나 다이고의 팬층은 생각보다 더 두껍다는 걸 증명하듯, 시청자들의 반응은 썩 좋지 않았다.
"...아까 그 한국선수. 보통 내기가 아니에요."
"괜찮아. 그런 녀석 따위 한번 휘두름입니다. 아아...프로란 게 뭔지 보여주도록 하죠."
"어이어이. 조금 살살해도 좋잖아. 본선도 생각하라고."
"안됩니다. 여성의 머리에 총을 난사하는 놈은 제가 톡톡히 대가를 치루도록 할거에요."
"...이 녀석. 진심이구만."
마치 다짐하듯 말하며 주먹을 불끈 쥐는 모습. 그 오버액션이 보고 있기에 심히 괴롭다.
그래도 프로는 프로.
그들은 주위를 경계하며 천천히 지하로 내려갔다.
어느덧 닿은 지하의 어두운 통로.
햇빛이 닿지 않은 탓에 공기가 차갑다.
폐에 스며드는 철의 냄새. 텁텁하면서도 싸늘한 공기.
"...조심해요."
심상치 않은 기운이 저 멀리서 느껴지는 듯한 착각에 타누마루가 경고했다.
그러나 그를 마치 쿨함을 과시하듯 무시한 다이고.
"어이. 거기! 누군가 있는거지?"
진형을 무시한 돌출이었다.
"있으면 대답하라고!"
그들은 그렇게 말하며 조금 더 전진했다.
"...읏."
"...있다."
10미터쯤 떨어진 거리.
검을 들고 있는 인영이 하나.
"...한 명?"
"어이. 진짜냐고."
일본도를 든 모습.
어딘가 믿는 구석이 있는 듯한 모습 잠시 당황하던 일본팀. 그 때 색적을 담당했던 이가 말했다.
"...혼자, 네요. 투명화도 없고 인기척도 없어요. 아마 한국팀인거 같은데."
그 말에 긴장을 모두 내려놓은 일본인들.
그리고 슬며시 드는 생각은, 한국과의 싸움은 온오프를 불문하고 과열되곤 하는 주제라는 것. 어쩌면 이건 자국민들에게 점수를 딸 기회다.
그 사실을 의식한 그들은 외쳤다.
"뭐냐. 저 녀석? 국가대항전에서 단독행동이라고?"
"...우하하하! 이봐! 혼자냐고!"
"바보 아냐?"
그러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오는 인영.
"...."
지하의 희미한 불빛이, 그 얼굴을 비춘다.
생각보다 미형인 얼굴에 잠시 말을 잃은 이들의 정적을 뚫고, 타누마루가 외쳤다.
"그, 그 사람이에요!"
"엥?"
"지난 라운드! 그! 한국인!"
그 말에 다이고가 앞으로 나섰다.
"...당신이 그 자식이군. 덤벼! 특별히 1대1로 상대해줄테니까!"
"다, 다이고?"
"제가 처단할테니 걱정마세요."
"...?"
뭐라는거야.
그들이 하는 양을 잠자코 지켜보던 크로스보우는 귀를 후비적댔다.
"무슨 연극보러 온 줄 알았네."
-쟤 아빠 한우인가 걔임?
-한우ㅋㅋㅋㅋ하녀겠지ㅋㅋ
-하뉴 미친놈들아
-응 팥고물, 진한개...응 있고
-????
-크보님 비웃는거같은데요?
"...아하."
채팅창의 대답에 사납게 웃어보인 크로스보우.
"이길거라고 생각하나보네?"
-ㄹㅇㅋㅋ
-딱 대!!!!
"하하. 재밌네요."
그렇게 웃자 달려드는 다이고.
그 모습에 그는 검을 빙글, 돌렸다.
"근데 이거 어쩌나. 나도 질 거 같진 않은데."
절로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않았다.
< 55화-배틀로얄의 귀재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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