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화-배틀로얄의 귀재 (여기부터 유료입니다) >
“지금 당장 인원을 빼서 막으러 가야 합니다. 지금부터 바로 뛰면 충분히···.”
“···너무 멀어요. 곧 있으면 경기구역 닫힐 겁니다.”
“그래도 가야 돼요. 각성구 뺏기는 순간 거의 무조건···.”
“가는 길에 교전을 벌이지 않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어요.”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그리고 가선 안 된다.
일반 선수들과 프로게이머들의 주장이 대립하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전략의 헛점에 오더가 무너진 모습.
“이건 크로스보우 님이 벌어다 준 4라운드입니다. 탈락을 방지해 준 가장 큰 공로자를 저런 식으로 취급하는 것도 맘에 안 들었는데···!”
“···그런 4라운드이기에 더욱 더 가면 안됩니다. 승리가 중요하지, 과몰입하지 마십시오.”
감정 싸움이 격해지고 있었다.
분위기를 파악한 스트리머 선수들이 소리 송출을 막아 놨기에 다행이었다.
“···과몰입이요?”
“이봐요. 각성구니 뭐니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데, 프로 수준의 팀적인 게임은 일반계급전하곤 달···.”
“···허구한 날 스크림만 돌려서 ‘각성구’ 먹은 성장형 캐릭터 한 번도 본 적이 없나 본데···저거···!”
주장을 펼치는 쪽은 ‘홍 쭈’라는 이름의 일반선수.
그리고 그와 대립하는 이는 ‘대망’이란 이름의 프로선수였다.
“아니. 블래드가 있는데 뭐가 걱정입니까. 예?”
“오더라는 사람이 지금···.”
슬슬 고성이 오가려 할 때였다.
“자자. 그만들 싸우세요. 자. 저희 앞으로 같이할 시간 긴 거 아시잖아요.”
“아니. 일루션님···하.”
일루션이 나서 두 명의 논쟁을 적당히 중재했다.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한 모션을 취하는 두 사람.
“······.”
블래드는 그 일련의 과정을 팔짱을 낀 채로 바라만 보고 있었다.
“형. 형이 뭐라고 해 주는 게 어때.”
그 때 똑같이 불편한 얼굴로 그쪽을 바라보고 있던 TK의 카운터가 속삭여 왔다.
“내가?”
“응. 이러다 우리끼리 싸우겠다. 형이 한마디 해 줘.”
블래드는 잠시 고민했다.
“···내가 왜?”
“어? 어···미안. 괜한 말이었나?”
순수한 의문에 사과가 돌아왔다.
그는 이번엔 머리를 갸웃댔다.
“그게 아니라···내가 왜?”
“그야 크로스보우님이랑 형은 만나도 봤으니까···구하러 가자는 쪽 입장도 공감할 수···.”
무슨 소리지.
“구하러 가다니. 누굴? 크보형을?”
“···아무래도 그렇겠지?”
아하. 그렇게도 생각할 수가 있구나. 블래드는 픽 웃었다.
“미안. 위험하지도 않은 사람한테 구하러 간다고 해서 못 알아들었네.”
“···뭐?···형. 지금 뭐라고?”
“아. 얼른 끝내고 가서 잠이나 자고 싶다.”
놀라 되물었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얼버무리는 듯한 말이었다.
“···헐.”
곰곰히 생각하던 카운터는 뒤늦게 눈을 크게 떴다.
표현 방식은 조금 다르지만, 누군가를 향한 믿음.
도저히 블래드의 언행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던 탓이다.
***
-??? : 제가요? 이걸요?
-아ㅋㅋ 왜요? 까지 나와야되는데
-정보)야스오 픽해달라는 요청에 크가놈이 실제로 한 말
-아ㅋㅋ검 처음 잡아봤는데 8대1?ㅋㅋ개풀 뜯어먹는 소리하네
-팩트)실제로 개는 풀을 뜯어먹는다
-;;;그래서 그런거였누
“······.”
검을 휘둘러 본 건 처음이다.
마체테나 정글도따위를 휘둘러 본 일은 있었지만, 그건 몽둥이처럼 다룬 것에 더 가까웠다.
허이크와의 대결에서 다뤘던 대검은 그저 콤보를 그대로 재현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처음이다.
검로를 직접 생각하며 다루는 것은.
크로스보우의 눈이 반달을 그렸다.
카앙-!
“···윽?!”
막았군. 그의 기대보다 훨씬 더, 상대가 잘 받아치고 있었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저항감이 나쁘지 않다. 그는 스스로에게 알 수 없는 희열감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차르르륵!
상대는 양손에 사슬을 감고 있는 마법전사형 캐릭터. 리치는 저쪽이 훨씬 길다.
“···젠장.”
그러나 문제는 없다.
그는 간결한 동작으로 모든 공격을 쳐냈다.
극한으로 절제된 검격. 아주 조금의 낭비도 없는 움직임이었다.
마치 직선적인 총탄의 궤도를 떠올리게 하는 듯한 검로.
카앙!!
“큭!!”
상대가 침음성을 냈다. 뭔가를 노렸던 건가? 크로스보우는 상대가 그 유명한 프로게이머, 다이고라는 사실도 모른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죽어!!”
“···.”
팔을 부들거리며 어떻게든 연격을 시도하는 다이고.
그러나 일률적이다. 비슷한 방식의 공격을 여러번 한다고 해서, 뭔가 큰 효과를 얻으리라 기대하는 것은 좋지 않은 버릇이다.
카가가강!!
“뭐···!”
그는 마치 본능처럼 그 공격을 모두 흘려냈다. 그리곤 목을 향해 참격.
“···다이고 님!”
“다이고!”
적의 외침과 함께 마나의 유동. 실드형 서포팅 스킬.
크로스보우는 순식간에 스킬 파악을 마치곤 미리 검을 눕혔다.
“미, 미친···!”
그러자 카각거리며 생겨난 실드 위를 달리는 칼등.
그야말로 완벽한 예측.
검을 돌려 참격의 방향을 바꾸려는 셈이었다.
“이, 이익!”
그러나 상대도 마냥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분명 반응도 못하고 있었지만, 팀의 서포팅 스킬이 한 박자 검격을 늦춰 주자 어떻게든 공격을 막아 내는 모습.
“흐음.”
그는 순간 검이 튕겨나오는 감각에 눈을 좁혔다.
썩 유쾌하진 않군. 밀려오는 불쾌감에 스킬을 사용해 거리를 좁히곤 양손으로 검격을 때려박는다.
카아앙──!!
“커헉!!”
내려쳐지는 공격을 막느라 굽혀진 적에서 무릎킥을 선사. 힘이 풀리는 녀석을 발로 걷어내고 찌르려는 순간.
지잉-.
조그만 구체가 날아왔다. 타누마루의 포탑.
“···타이밍 좋고, 위치 좋군.”
훌륭한 견제다.
무시하면 상대에게 유의미한 피해를 입힐 순 있겠지만···체력이 깍이는 것은 감수해야 하는 상황.
남은 적은 총 7명.
공격을 감행하는 건 회복 수단이 없는 이쪽이 손해다.
펑!!
[SYSTEM]’JP_Tanumaru(시계워치)’님의 포탑을 파괴하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포탑을 베어 버리자 다이고는 그 틈을 타 거리를 벌렸다.
“···젠장.”
잠시 소강상태.
“···뭐냐고.”
다이고의 표정이 흔들리고 있었다.
크로스보우는 그 모습에 씨익 웃었다.
“이거 생각보다 재밌네요.”
-때리는게 재밌는 크모씨(27세, 거근)
-아ㅋㅋㅋㅋ
-저게 삭제가 안되네
-매니저!!! 뭐해!!!
-[하트 모양 이모티콘]
-하트 쳐보내고 있누 아ㅋㅋ
상황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명백한 열세.
8대1. 압도적인 인원 수의 차이. 파밍마저 하질 못해, 캐릭터의 스펙 역시 부족하다.
그러나 그들이 대치하고 있는 그림은 마치
“···.”
“···.”
8명이나 되는 인원이 고작 한 명에게 압도된 듯한 모습이었다.
“꽤 하잖아.”
“···꽤 하는 수준이 아니야. 저거.”
“저 녀석. 영상으로 볼 때랑은 현장감이 너무 다르다고···.”
약체라 평가받는 일본이지만, 그럼에도 나름 프로수준에는 발을 걸치고 있는 선수들.
다이고와 크로스보우가 펼친 잠깐의 공방에서, 상대의 수준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어렴풋이 눈치챈 것이었다.
보는 사람을 심취하게 만들 정도의 경지에 오른 듯한 검술. 인간의 수준을 뛰어넘은 것처럼 보이는 반사신경과 감지력.
어두운 실내환경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절제미를 뿜는 일격일격이, 데미지와는 상관없이 상대를 압도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합세해야 해요.”
타누마루는 숨이 차오른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분명, 지난 라운드에선 총기를 쓴 건 블러핑이었을 거예요. 아마 저 캐릭터가 저 한국 스트리머의 주력 픽이겠죠.”
“···그렇겠지. 현실에서도 수년은 검을 잡아온 사람일 터.”
“네.”
그녀는 나지막하게 분석에 동의를 표하는 다른 팀원.
만약 크로스보우가 말을 알아들었다면 ‘띠용?’ 같은 소리나 냈을 거 같은, 완벽히 틀린 추측이었다.
“다 같이 싸워야 해요.”
일견 당연한 주장.
그러나 다이고는 동의하지 않았다.
“···끼어들지 마시죠.”
“다이고님. 지금 그럴 상황이···!”
“이건 남자의 싸움입니다.”
“···네?”
뱉듯 말한 그는 몸을 바로 세웠다.
“녀석은 내가 쓰러뜨립니다.”
보란듯 가슴을 쭉 펴고 하는 대사.
“···다이고님의 주력은 사일러스 캐릭터 하나가 아니잖아요. 여기선 한발 물러서서···.”
“반박은 용납하지 않습니다.”
마치 소년만화의 한 장면.
일본의 스타 플레이어는 이를 악물며 선언했다.
“대신, 5분 안에 끝내겠습니다.”
***
-아ㅋㅋ본인 일본어 알아듣는데 다이고 말하는 거 듣기 너무 괴롭다
-???
-진짜 뭔 만화주인공처럼 얘기하네 하···
-유루세나이! ㅇㅈㄹ
-트수쿤···어째서 여자아이처럼 얘기하는거야?(웃음)
-5분안에 끝내주겠다는데요?
-근데 니네 다 뭐냐? 왜 알아들음???
-아ㅋㅋ; 다들 ㄹㅇㅋㅋ만 쳐!!
“···뭐지?”
잠시 채팅창을 확인한 크로스보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른 채팅들은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지만, 납득 가지 않는 이름이 하나 있었기 때문.
“다이고? 저 사람이 다이고예요?”
-···?
-????
-??
-?????
“?”
그러자 그 질문에 물음표만으로 일관하는 시청자들.
“아니. 그러니까 진짜 다이고예요?”
재차 물었음에도 계속해서 올라오는 물음표.
···장난이었나?
크로스보우는 갈고리가 가득한 채팅창을 보며, 문득 자신의 인장 목록을 불러들였다.
인게임에서 자신의 머리 위에 띄울 수 있는 ‘인장’.
그중에서도, 거대한 노란색의 물음표 모양 인장이 있었다는 걸 떠올린 것.
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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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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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몰라서 물어보는겁니다. 여러분.”
-아ㅋㅋ인장질까지ㅋㅋㅋ
-어쩐지 크가놈이 이상한 대사도 안치고 싸우더라 아ㅋㅋ
-ㅋㅋㅋㅋㅋ다이고쉑 엑스트라행 딱 대^^ㅣ발ㅋㅋ
-다이고놈 R1그레이드에 이어 2대 ‘저 사람’행
-크보가 이럴때마다 난 너무 좋아~ㅋㅋ루삥뽕빵뽕ㅋㅋㅋㅋ
“···음.”
격한 웃음들.
그러나 크로스보우 입장에선 조금 억울한 상황이었다. 무려 ‘일본판 블래드’라는 소리를 듣는 유저면 훨씬 더 강할거라 생각했기 때문.
그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상대를 바라봤다.
그런데 상대방은 그 시선에 모욕감을 느꼈던걸까.
“이, 이 자식이!!”
이까지 갈며 저돌적인 돌진을 해 오는 모습이다.
“···지금 다이고가 5분 만에 끝내겠다는 소리 하니까 물음표핑 찍은 거지?”
“···그런 거 같은데요.”
“일본어 알아듣나 봐.”
그리고 알아들을 순 없지만, 그 순간 뭔가의 의사를 주고받는 적들.
가세하겠단 의미인가?
크로스보우는 그들까지 염두에 두며 전투를 속행했다.
“···제대로 하시죠.”
검을 휘둘러 본 지도 조금 시간이 흘렀다.
사실, 방금 전부터 뭔가 알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저도 조금 알 거 같으니까.”
“···승부다!”
지금까지는 한 순간의 빈틈을 파고드는 식의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마치 총을 쏘는 듯한 감각.
잘못된 방식이다.
크로스보우는 적들이 감탄했던 검격들을 모조리 부정하며 생각했다.
검은 총이랑 달라. 사진을 찍는 것보단 동영상이다.
모든 상황이 연속적.
그렇다면, 헛점을 파고드는 것보단 심리를 유도한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호흡했다.
스읍.
들숨의 순간, 풍경의 색이 빠진다.
이제는 어려울 거 없는 전환이었다.
“죽──어!!”
천천히 들려오는 다이고의 외침.
그리고 한 발,
두 발,
뒤이어서 세 발 네 발까지 춤추듯 디디자 주변 환경은 물 흐르듯 바뀌고 있었다.
···여기서부턴 크로스레인지 영역이다.
그리고 날숨.
후.
“······어?”
멈추지 않는다.
스읍.
후.
그렇게 마침내 열 걸음도 채 되지 않는 발걸음을 멈춘 순간.
“다이···! 커헉?!”
“크악!!”
“꺄···윽?”
[SYSTEM]당신의 공격으로 ‘JP_DAIGO(전설의리그)’님이 기절하였습니다!
[SYSTEM]당신의 공격으로 ‘JP_Tanmumaru(시계워치)’님이 기절하였습니다!
[SYSTEM]당신의 공격으로 ···님이 기절하였습니다!
.
.
.
[SYSTEM]당신의 공격으로 ‘JP_Banzai(악마는 울지 않는다)’님이 기절하였습니다!
정적.
“···.”
크로스보우는 검을 털었다.
“미···친···.”
“커헉. 크웁. 보고···! 각성구 획득 실···!”
푹!!
“크악!!”
[SYSTEM]당신의 공격으로 ···님이 사망하였습니다!
8인.
올킬.
-”무슨 일이야. 이봐! 다이고! 타누마루!”
일본팀의 공허한 팀보이스가 크로스보우에겐 전혀 들리지 않은 채로, 조용히 울렸다.
“···꿀잼.”
크로스보우는 검신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 56화-배틀로얄의 귀재 (여기부터 유료입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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