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 스트리머가 너무 강함-60화 (60/143)

< 61화-본선 진출 >

“이상한 날이었군.”

크로스보우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침대에 몸을 던졌다. 묘하게 얽힌 인연 세 명과 가벼운 자리를 갖고 숙소로 돌아온 참이었다.

채은아.

그러니까 트리키 뷰 닉네임 ‘크보쨩핥짝’.

누군가 했더니 그녀는 바로 예전 더 원 그라운드의 고랭커. 핵쟁이들이 판치기 전엔 무려 2등까지 치고 올라왔던 유저였다.

당시에 상당히 준수한 실력으로 몇 번이나 화제가 되었던 이.

“두 사람이 같은 인물이라.”

생각해보면, 참 한결같은 사람이다.

우선 닉네임이 그랬다.

‘CB따먹고싶다’

더 원 그라운드 시절.

분명 처음엔 평범한 영어닉네임이었던 그녀는 언젠가부터 갑자기 그런 닉네임으로 활동했던 것이다.

누가봐도 그녀보다 바로 한 단계 위, 랭킹 1위인 Crossbow를 노리고 만든 닉네임.

‘크따먹’이란 이름으로 상당한 유명해져, 한때는 밈으로까지 쓰이곤 했었다.

물론 그 당사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불건전한유저명’으로 운영진에 의해 닉네임이 강제변경되고 말았지만···아무튼.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녀가 그러기 시작한 게 계속 만년 2위란 소리를 들었을 때부터였던가.

“···그러고 보면 진 적이 한 번도 없는 거 같은데.”

이 정도면 팬심이 아니라 사실 집착이 아닐까?

크로스보우는 생각하다가 잠시 몸을 떨었다. 그녀가 왜 자신의 방송을 보기 시작했는지 조금은 알 거 같은 기분이 되었기 때문.

“···.”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그 생각을 치워 버렸다.

제 정체를 숨긴 건 조금 마음에 걸리는 일이었지만···딱히 물어본 적도 없다. 굳이 숨기려고 한 건 아닐 터.

게다가, 악질변태지만 매니저로서는 훌륭하다.

논란거리를 만들지도 않고 오히려 채팅창이 더러워질 것 같으면 나타나 컨셉질로 분위기를 환기시키곤 한다.

이 정도면 설령 이상한 팬이라고 해도 감수할 가치가 있다. 그는 가끔 게임에 어울려 주기로 한 일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아까 그건 뭐였을까.

시작한 생각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다트 게임.

시간이 느려지는 듯한 환상.

다만 올오버에서처럼 시야가 회색빛으로 변하거나 유의미한 수준까지의 변화는 아니었다.

그저, 체감 시간이 느려졌을 뿐.

“···무리해서 그런가.”

무슨 원린지는 모르겠지만 발동하면 평소보다 더 피곤해지는 기술.

그걸 예선 3경기 동안 내리 써댔으니, 그럴 만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결국, 실전에서 직접 더 써 보는 게 답이군.”

크로스보우는 천장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가 부릅 뜨길 반복했다.

역시 안 된다.

그 세계로 진입하질 않는다.

하긴, 될 리가 없지. 올오버가 아무리 게임과 같다고 해도 결국엔 게임.

현실과는 다르다.

그렇다면 역시 아까 느꼈던 착각은 착각일 뿐, 그냥 일종의 게임 테크닉인거다.

“흐음.”

게임 테크닉이라.

어쩌면 블래드가 이런 현상에 대해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크로스보우는 그에게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잠을 청했다.

그렇게 그날도, 아무런 문제 없이 숙면에 빠졌다.

***

상황은 크로스보우가 어느 정도 예상했던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 : 아빠! 저 빨간 거 지지야?]

-지지 않는 팀이야

└ㅋㅋㅋㅋ

└??ㅋㅋㅋㅋ사란쨘

[???: 크보 반이라도 해봐라]

[다이고의 머리를 만지는 일본팀 감독 짤방]

-으이구 씨발아

└ㅋㅋㅋㅋㅋㅋㅋ

└다이고 이새낀 경기내내 뒤지기만 하던데ㅋㅋㅋ아ㅋㅋ

└ㅋㅋㅋ전세계 저혈압환자들 다 다이고 앞으로 보내야함ㄹㅇㅋㅋ혈압올라서 싹 나을듯

[마 왕 강 림.gif]

-이제 됐어···다 죽여주마···.

└ㅋㅋㅋ이때까지만 해도 야제 콨어 ㅇㅈㄹ하면서 아무도 안믿었는데

└다시 보니까 포스 지리네 ㄹㅇ···

└진짜 그 스타킹이나 쓰던 크보가 맞냐···?

└엄

[짱제검 패드립]

[스타킹 크로스보우 짤방]

-니다

└ㅋㅋㅋㅋㅋㅋ

└아ㅋㅋㅇㄱㄹㅇ이자너

예선 첫 번째 모드가 끝나고, 인터넷을 달구는 드립.

그러나 대표팀의 분위기는 기쁨에 가득찬 넷상과는 조금 달랐다.

현재 커뮤니티를 달구는 우스갯소리는 크로스보우 갤러리를 필두로 그간 자주 있어 왔지만, 그건 모두 크로스보우 개인방송에서 있었던 업적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다.

네이션스 컵.

프로선수들이 주가 되는 경기들.

무려 국가대항전. 선수 한 명 한 명의 네임밸류가 상당한 대전.

그런데 이 정도로 큰 무대에서, 커뮤니티가 오로지 크로스보우와 관련된 드립이 화제가 된다는 건, 다른 선수들이 얼마나 업혀 갔는지를 얘기해 주는 증거나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그런 여론에 중국과 일본까지 기름을 부어 버린 상황.

[중국이랑 일본 사전인터뷰 봤냐?]

-ㅋㅋㅋ존나빡치는데 맞말이라 뭐라 못하겠누

└ㄹㅇ이번에 란두인이나 대망이나 왜 글케 못하는거냐? 약이라도 잘못 쳐먹었나

└로이더! 로이더! 로이더!

[갓직히 일본이 맞는 말 했지]

-다이고 개못하는건 인정인데 한국도 크보랑 블래드빼면 ㄹㅇ 별볼일없음

└이번엔 4강도 글렀다

└ㅠㅠ크보님이 어떻게든 해주실거야

└??? : 조장하실분?

[현역프로보다 은퇴한 일루션울드가 더 잘하는게 말이 되냐?]

-찬밤이형보다 못하는 건 문제있음

└”Legend never Die”

└울드는 블래드랑도 호흡 여러번 맞췄는데 당연하지

└아니 그래서 말 되냐고ㅋㅋㅋ

“···후우.”

“정신 차리자.”

“집에 헤엄쳐서 가고 싶은 사람? 없지?”

그래서일까.

2일차.

선수들은 물론 감독들까지 얻어맞은 듯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욕 먹을수록 이를 악무는 한국인 종특이 발휘된 걸까.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2번째 모드, [AOS].

[전라인 압살! 전형적인 강팀과 약팀의 매치업을 보여 줍니다!]

[블래드! 그리고 중국에서 돌아온 더 리퍼! 날카로운 두 명의 칼이 중국을 갈가리 찢어 놓습니다!]

[단 한 번의 실수도 없는 완벽한 경기 운영입니다. 이건 감탄스럽습니다! 빡빡한 라인전을 토대로 한국이 마침내, 승리를 가져갑니다!!]

AOS 모드라면 한국과 더불어 세계적인 강자에 속하는 중국전.

결과는 한국의 압승이었다.

[일본팀···아···눈물 없이는 보기 힘든 장면입니다.]

[다이고···다이고!! 뭐 좀 해 봐!!! 이런 소리 나올 만한 장면이에요!!]

[일본판 블래드는 결국 원조에겐 통하지 않는다는 거거든요···! 블래드. 무자비합니다. 옆 섬나라의 후배에게 참교육이 뭔지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일본전 역시 당연하다는 듯 승리.

[배틀로얄] 모드에 이어 2번째 모드 1등을 가져오는 한국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막간.

과자를 먹으며 박수나 짝짝 쳐대던 크로스보우는 송다혜의 손에 이끌려 경기분석을 도왔다.

“이건 당연한 겁니다.”

“···이게요?”

“네. 딱 봐도 이길 싸움이잖습니까.”

“3대1인데요···?”

이 사람은 다 좋은데 개개인의 실력차에 대한 감이 없다.

크로스보우는 그런 생각을 하며 툭 한마디를 던졌다.

“아무래도 직접 플레이를 여러 번 해 보시는 편이 좋겠네요.”

“···그게, 저도 많이 시도해 봤지만······.”

“흐음.”

그는 팔짱을 낀 채 고민했다.

“다음 제가 출전할 때 빙의라도 한번 해 보시죠.”

“···빙의라면 1인칭 보기죠?”

“네. 그 편이 빠를 거 같네요. 대신 조언해드린 대가로 ‘옆집뇨끼네’로 출연합방 한 번. 콜?”

“···코, 콜!”

그리고 그 다음은 [유저체스] 모드였다.

[유저체스].

각각의 선수들이 카드가 되어, 감독들이 펼치는 게임이다.

대회 전용 모드. 그런만큼, 거의 모든 선수들이 참전하는 모드였다.

그리고 ‘체스’라는 이름이 붙은 만큼, 어느 정도 유사한 면이 존재하는 종류의 게임.

“한국진영 블래드 떴다! 퀸(5원)급!”

“···젠장.”

엄청나게 많은 참여 인원.

그런만큼 감독들은 검증된 선수인 블래드를 주력카드로 사용하는 전술을 택했고, 보기 좋게 먹혀들었다.

조금 우여곡절이 존재했지만, 중국전, 일본전 모두 같은 전술로 승리.

그 시점에서, 6개 중 3개의 모드에서 1위를 차지한 한국.

사실상 본선 진출은 이미 확정지은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이 되었다.

[힘을 숨긴 한붕이.jpg]

-중뽕들 개쳐발랐쥬? AOS 진다 어쩐다한 중뽕놈들 아닥행 아ㅋㅋㅋ

└맞말추

[ㅡㅡ그래도 아직 방심하면 안된다]

-AOS도 든-든한 블래드 미드로 이긴거고 유저체스도 갓직히 블래드 뽑아서 이긴거 아니냐고 아ㅋㅋ

└결국 블래드 원툴 원맨팀이죠?

└이거맏따

└김치먹이고 홍보하기 설레발치기 블래드뽑기 쓰리툴 한국대표팀ㅋㅋ

└[일정 수 이상 신고로 인해 제재된 댓글입니다.]

아직까지 여론은 반반이었다.

2일차, 3일차에 내리 호쾌한 승리를 달성했지만, 아직까지는 역시 블래드를 중심으로 전술을 펼쳐나갔기 때문이었다.

“···의심하지 못하게 해 주죠.”

“아직이다. 아직이야─!”

“솔직히 다들 자신 있잖아요. 님들. 전승으로 예선돌파 가죠.”

“아. 크크. 조금 진심이 돼 버릴지도···랄까?”

“우욱. 그런 쓰레기 같은 말 좀 안 했으면 좋겠어!”

그러나, 한국의 진가는 오히려 블래드의 출전이 없는 모드에서 드러났다.

모드 [점령전]의 중국전.

전혀 예상치도 못한 지형에서, 자신의 몸에 폭탄을 터뜨려 올라가는 플레이로 싸움 대승.

그리고 일본전.

‘저격형 힐러’의 새로운 신드롬을 퍼뜨리며 게임을 캐리해낸 선수, ‘류제청’의 등장과 함께 한국 압승.

[1대1] 모드.

대장포지션으로 나선 ‘두릅’선수가 올킬을 선보이며 중국전 종료.

그리고 일본전은 선봉, ‘기웅’에 의해 올킬로 마무리.

그때쯤이 되자, 여론은 완전히 반전되었다.

[진짜 미쳤다···한타수준]

-이번에는 우승 쌉가능이냐?

└ㄹㅇ쌉가능

└또 버릇 못 고치고 설레발부터 치는거봐 아ㅋㅋ

└ㄹㅇㅋㅋㅋㅋ

[탑솔의 나라 한국···.]

-매 판 플레이마다 “누”를 외치는 레전드 선수들ㅋㅋㅋ

└이게 ㄹㅇ레전드지

└두릅 선수 하는거봤냐? 진짜 내가 다 숨이 턱 막힘

└진짜 각 선수당 최대 2모드 출전 규정만 아니었으면 배틀로얄도 한국압승이었을텐데 아ㅋㅋ

[뭐? 크···크···보···?]

[당황하는 선수 짤방]

-제 입 큰 거 보시라구요~

└ㅋㅋㅋ트수 특기 고속진공바큠ㅋㅋ

└??? : 빨아야겠지?

└근데 진짜 크보는 뭐함?

└지금 잘껄요?

└아ㅋㅋ

총 모드 6개.

그 중 5개 모드에서 1등.

조 1위를 확정시킨 한국.

그나마 남은 건 [균열방어전] 모드 뿐이었다.

"···흐아암."

크로스보우는 떡진 머리를 긁으며 하품했다.

네이션스 컵 6일차.

"드디어 출전인가."

배틀로얄과 균방전.

두 모드가 주력모드인 크로스보우.

그는 다시 한 번 하품을 하다가 머리를 짚었다.

거의 매일 밤, 채은아와 더원그 1대1을 해댄 탓에 조금 어지러웠다.

"더원그만 하면 이렇다니까."

그러고보면 올오버 연습은 거의 안했네.

처음엔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이젠 감독들도 그를 잘 찾지 않았다.

프로팀 소속이 되지 않겠냐며 은근히 러브콜을 보내던 첫 날과는 정반대로 뒤바뀐 자세. 승리를 위해 밤낮없이 의견을 나눈다고 하니, 그럴만도 했다.

"어. 크보님! 아침 먹으러 가요?"

"오우쉣. 같이 가요."

"좋죠."

아침을 먹기 위해 1층으로 향하던 와중.

이제는 완전히 친해진 스트리머들의 인사에 그는 픽 웃었다.

6일차쯤 되자, 이젠 그냥 잠옷바람으로 이동하고 있는 모습들이 퍽 웃겼던 탓이다.

"커물쥐님. 짱구 잠옷 뭐에요."

"이거 커순이가 선물로 준 거에요."

"아. 크크. 여청자 선물 인증보소."

-아ㅋㅋㅋㅋ짱물쥐ㅋㅋ

-ㅋㅋ훈이가 커서 된 게 커물쥐

-[삭제된 채팅입니다.]

오늘은 크로스보우도 일찍부터 방송을 켜놓은 상태였다.

그간 방송에 소홀했던 면도 있었고, 출전날이기도 했으니 이제부턴 다시 달릴 차례.

띵-

그리고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밖.

"엥?"

"저거 뭐야."

누군가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방송 장비를 든 걸로 보아 아마 기자들.

그리고 호텔 직원들이 그들의 출입을 막으려는 듯 보였다.

"크로스보우! 크로스보우 상! ───!!"

그 때였다.

그를 알아본걸까.

기자 중 한 명이 그의 이름을 불러대는 모습.

"...?"

뭐라는거지.

혹시나 싶어 채팅창을 바라본다.

-일본이 탈락한다면 당신이 첫 패배를 줬기 때문인데 어떻게 생각하냐는데요?

-다이고가 부진한 건 크보 탓이라는 일본 내 여론이 있다는데?

-ㅋㅋㅋ다 알아듣는거 무냐고ㅋㅋ

무슨 말인가 했더니 헛소리였군.

크로스보우는 그 말에 잠시 고민하다가, 유일하게 아는 일본어로 대답했다.

인기 게임 '짐승의 숲'에 나오는 말.

채팅창이 마구 올라간다.

-아ㅋㅋㅋㅋㅋ

-"나 피보겠다우"ㅋㅋㅋㅋㅋ

-상대가 동물 수준이란거임?

-씹ㅋㅋㅋ크가놈 인성ㅋㅋㅋ울겠다ㅋㅋ

-모여봐요 짐승의 숲ㅋㅋㅋ

"풉!"

"푸핫···큭큭큭···."

그리고 옆에서 가만히 듣던 스트리머들의 웃음에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기자의 멍한 얼굴.

왜 저러지. 어린이용 게임에 나온 말이니 자극적인 단어도 아닐텐데.

그가 생각한 건 정말 딱 거기까지였다.

아무런 대꾸도 없는 기자의 모습에 머쓱해진 크로스보우.

그는 어깨를 으쓱하곤 자리를 떠났다.

"보보벳띠-."

그런 소리를 흥얼거리며.

< 61화-본선 진출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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