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 스트리머가 너무 강함-65화 (65/143)

< 66화-4강 영국전 >

"과연."

크로스보우는 대기실에서 들었던 말을 수긍했다.

"확실히 그런 말을 들을 만하군."

모드 교차 요청에 향한 선수대기실.

그곳에서 카운터가 울분으로 가득 찬 얼굴로 크로스보우에게 전달한 말.

'제 실력으로는 도저히 닿지 않아요. 형이나 블래드형 볼 때랑 같은 감각···죄송합니다.'

"···오랜 동료가 평가하길 블래드와 동급이라."

대충 살펴본 지난 라운드의 게임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카운터가 1대1 라인에서 압도당하고, 풀어주려고 한 다른 팀원까지 한 번에 망해버리는 전형적인 탑(맵의 공격로 중 하나)의 캐리.

내심 아무리 그래 봤자 블래드라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막상 마주하니 확실히 다르다.

일단, 부담스러울 정도로 이쪽을 쳐다본다.

"···눈싸움 하자는 건가요?"

크로스보우는 크립을 툭툭 치며 물었다.

그러나 대답하지 않는 상대.

그저 이쪽을 빤히 바라보기만 하는 모습.

AOS 대회엔 정말 드물게도 여성 유저였다.

슈미츠. 본명은 분명 라우라라고 했었나. 그런 이름이었다.

"본다고 안 뚫어지는데."

-ㅋㅋㅋ진지한데 드립 좀 치지마

-공식 방송에서도 탑라인전만 보여주고 있다고 아ㅋㅋ

시청자들의 아우성을 본체만체 하며 크로스보우는 상대를 바라봤다.

시선.

이쪽의 심리패턴을 파악하려는 관찰이다.

격투 게임 등에선 흔한 일.

그러나 사실, 그런 것 가지고 크로스보우가 '뭔가 다르다'같은 판단을 내릴 리 없었다.

타앙─!

그는 불시에 총을 격발했다.

AOS모드에 들어오면서 데미지가 적당한 수준으로 너프 당한 총알.

"···오호라."

그러나 그 투사체 속도는 여전했음에도, 순간적으로 고개를 홱 틀어 피하는 상대의 모습.

역시 우연이 아니었군. 일부러 상대가 크립막타를 치는 타이밍을 노렸음에도 피했다.

크로스보우는 진하게 웃었다.

캉-!

"재밌네요."

그는 바이저를 들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상당히 가까운 거리에서 탄환을 피해낸 것치곤 아무런 감흥도 없어 보이는 슈미츠.

당연한 걸 한 듯한 무표정.

"전투의 흥분도 없고···이 정도로는 텐션도 오르지 않는다는 건가."

크로스보우는 웃으며 그녀와 라인전를 시작했다.

그때였다.

-"···어때요?"

"뭐···그냥저냥. 근데 너 쟤한테 졌냐?"

-"···글쎄요. 1대1이면 모르겠지만 팀 적으론 졌죠."

"···그래?"

블래드의 보이스.

크로스보우는 그 목소리에서 경계심을 느꼈다.

혹시나 일부러 진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종식시키는 톤.

아직 말을 튼 지 짧은 기간이었지만 블래드가 경계하는 투를 내비치는 건 처음이었던 것이다.

"그럼 사양 않고···실력 좀 볼까?"

또다른 참가권.

영국의 슈미츠.

그는 그 이름을 기억하며 자세를 정돈했다.

AOS의 마지막 라운드.

승리조건은 슈미츠를 성장시키지 않는 것.

간단히 말해, 그녀의 발목을 붙잡고 놔주지 않는 것.

모드교차까지 쓴 것치곤 별것 아닌 요구사항이었지만···그런만큼 그녀의 실력이 단 몇 라운드만에 인정받았다는 소리.

타앙─!!

그 순간 격발.

그리고 또다시 회피.

"호오."

크로스보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보며 웃었다.

"언제까지 그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을까?"

기대할만한 적수.

오랜만이다.

크로스보우의 눈이 반달로 화했다.

마치 여자애를 괴롭히려는 못된 아이의 눈빛.

솔직히, 자신의 소중한 팬 중 한 명인 카운터를 좌절시킨 게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그의 생각으로는 카운터에게도 충분한 재능이 있었던 만큼, 더욱더.

"딱 대."

이제 탐색전은 끝이다.

***

-좀 위험한데

-저거 카밀맞지?

-ㅇㅇ전설의리그

크로스보우의 방송 시청자들.

흔한 말로 석궁단이라 불리는 이들이 서로 채팅을 나누고 있었다.

스트리머인 크보가 전투 등에 열중하면, 보통 자기네들끼리 드립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노는 시청자들.

그러나 오늘의 채팅은 조금 심각한 어조들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방장···그러니까 크로스보우가 썩 좋지 않은 평가를 받는 캐릭터를 하는 건 으레 있어 왔던 일이지만, 오늘만큼 그 성능 차가 돋보이는 대전은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다른 모드에 비해 성장할 수단이 온 맵에 널려있는 AOS.

-더원그 파밍하면 상점에서 뭐 살 수 있음??

-총이랑 탄밖에 못삼ㅋㅋ초반 뎀지도 약하고

-더 쎄질 방법이 없음

-앗···아아···.

상대의 픽은 성장만 한다면 교전에서 대단한 퍼포먼스를 보일 수 있는 캐릭터다.

그에 반해 크로스보우 쪽은 여느 때처럼 더 원 그라운드.

다른 모드에서도 최하위에 가까운 성능을 자랑하지만, AOS에서는 그야말로 쓰레기라 해도 과하지 않다.

기동성 제로. 성장포텐 제로. 초중 후반 모두 단 몇 번의 피격만으로 사망에 이르는 약한 체력.

그나마 장점이던 초반 데미지 역시 다른 모드들관 다르게 약하다.

물론 시간이 흐르며 너프당한 데미지는 돌아오겠지만, 거기서 더 강해지지는 않는다.

-걍 야스오나 하지

-ㄹㅇㅋㅋ예선에서 보여준 거 반만 해도 될텐데

-크가놈 첨하는 모드 할 땐 맨날 더원그함 아ㅋㅋ

-신을 의심하지 말라···

-아니 *발 하느님 이건 좀 아니잖아요

-미안하다···

제한된 탄환 수.

이쪽의 재장전 타이밍, 혹은 탄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며 그를 주시하는 상대.

"아직 한 발 남았다···."

드르르륵─!!!

-ㅋㅋㅋ한 발이 아니라 여러발인데요??ㅋㅋ

-따발총 남자ㅋㅋㅋ

그러나 크로스보우는 그런 사실을 모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제한된 탄을 모조리 쏟아붓고 있었다.

아이템을 사기 위해서는 크립을 죽여야 하는데도 마치 그딴 것엔 관심도 없다는 듯한 모습.

-"저 녀석 뭐지?"

-"아직도 CS(크립막타)개수가 0갠데? 버근가?"

-"하하! 그 크로스보우도 슈미츠한테는 안된다는 거지."

-"거품이었군!"

그걸 시스템 창으로 확인한 상대팀의 보이스채팅.

슈미츠. 이번 네이션스 컵부터 돌연 두각을 드러낸 영국의 천재 게이머.

한국의 크로스보우도 비슷한 포지션이라 들었지만···사실은 그녀 쪽이 좀 더 우위가 아닌가.

그들 뿐 아니라 경기를 지켜보는 시청자들에게 그런 생각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바깥에선 해설진도 비슷한 말을 하는 상황.

"···."

그러나 막상 공격을 당하고 있는 당사자는 말이 없었다.

드르르륵!!

"큭!!"

공격을 피해내는 데에 급급했던 것.

처음의 무표정이 조금씩 흐트러지는 모습.

"···읏···!"

매번 심리의 사각을 파고드는 탄환.

총구의 방향, 방아쇠를 당기는 손가락까지 모두 보고 있음에도, 당황하게 만드는 타이밍 때문이었다.

카가강──!!

핏-!

"큭!"

어떻게든 다리를 들어 올려 막아내고 있지만, 총알이 스치는 건 피할 수 없다.

"우하하하!! 경험치도 못 먹게 해주마!!"

"···."

···거기에 뭐라는지는 모르겠지만, 상대의 화나는 말투까지.

"저 자식이···."

슈미츠는 까득 이를 앙다물었다.

천재라 불리는 자신이 밀리고 있다는 사실이 못마땅했던 것.

그것도 단지 돌격소총을 조금 잘 쏠 뿐인 남자에게!

'···의식 가속화.'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어차피 가만 내버려두면 결국 우위는 그녀가 가져갈 터지만, 지금 당장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반짝, 눈을 떴다.

마치 다른 세계에 들어온 듯한 착각.

그때, 때마침 상대방의 탄이 바닥났다.

'···탄을 수급하려는 셈!'

그대로 놔둘까 보냐!

허리춤에 와이어가 뻗어 나간다.

상대를 향한 돌진기.

그 순간, 상대도 허리춤에서 검을 꺼내 들었지만···.

'바보. 크로스 레인지(서로의 사거리 내)에서 내가 진 적이 있을 거 같아?'

이건 킬이다.

그녀는 승리를 확신하며 눈을 부릅떴다.

"──죽어!"

그리고 다음 순간이었다.

가까워진 상대의 얼굴.

헬멧에 가려져 하관 정도만이 보이는 그 입꼬리가──

문득, 비릿하게 올라간다.

"안 죽어."

"─!!!"

의식가속화 상태.

분명 자신만의 것이었을 세계를, 침범당한다.

"에이. 느려터졌네."

***

[──크로스보우. 퍼스트 블러드!!!]

[이, 이게 뭔가요!!]

[라인전 솔로킬!!]

과거. 전설의 리그가 PC게임이던 시절.

전설의 리그는 오랜 기간 왕좌에서 내려오지 않던 흥행게임이었다.

현재는 그 게임이 서비스를 종료하고,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그러나 그때 당시 게임을 즐겼던 유저들, 그중에서도 탑 라이너들이었던 사람들은 크로스보우가 하고 있는 짓을 정확히 이해했다.

"저주받을 단식 메타(자신의 성장보단 상대 견제에 중점을 두는 플레이)가 또···."

"단식 메타? 그게 뭐야. 아빠?"

"그런 게 있단다."

이제는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게임을 멀리한 지 오래.

남자는 그때를 떠올리게 하는 경기 중계에 손에 땀을 쥐었다.

"니네 아빠가 망나니라 그래."

"마, 망?! 어, 엄마. 아무리 그래도 아빠한테···."

"네. 다음 혜지."

"뭐? 당신 말 다했어?"

"어, 엄마 이름 혜지 맞잖아?"

평소엔 화기애애한 가정.

딸내미는 단 두 단어 만에 갑자기 험악해진 분위기를 느끼곤 움츠러들었다.

"···당신. 안 되겠다. 샤워하고 와. 우리 딸은 들어가고."

"허, 헙! 미, 미, 미안!"

샤워? 암호 같은 걸까?

딸은 이상한 말을 하는 부모님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

슈미츠 대 크로스보우.

수준 차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정면 승부에서 라인전 솔로킬.

-"나이스!"

-"오이오이. 믿고 있었다고. 줴엔장!"

-"이대로만 가자."

그리고 그 작은 이득을 바탕으로 게임을 굴린 한국팀.

그러나 상대도 무려 4강까지 올라온 이들이란 걸까.

그리 호락호락하진 않았다.

믿었던 슈미츠의 데스에도 빠르게 멘탈을 다 잡은 영국팀은, 상대적으로 기동력이 떨어지는 크로스보우에게 다른 유저를 희생양으로 던져주고 다른 곳에서 슈미츠를 키우는 전략을 차용했다.

"···말도 안돼."

-"괜찮아. 슈미츠. 잠시 컨디션이 나빴던 걸 거야. 일단 성장에 집중해."

물론 처음에는 슈미츠의 거부가 있었지만, 다시 한 번 솔로킬을 당하곤 처참한 표정으로 전략에 수긍했다.

그렇게 찾아온 게임의 중후반.

-"한 끗 삐끗하면 진다."

-"시야 지우고 버프 먹고 밀자."

이젠 한 번의 실수가 게임의 승패를 좌우하는 순간.

차근차근 상대방의 시야를 없앤 한국이 버프 몬스터를 처치한 순간이었다.

[SYSTEM]KR팀이 내셔남작을 처치하였습니다!

그간 크로스보우에게 말린 팀원 한 명을 제물로 바치고, 반대쪽에 있던 버프몹을 차지해낸 영국 팀.

[SYSTEM]UK팀이 장로드래곤을 처치하였습니다!

-"···아. 저걸 친다고?"

-"저쪽 오더 대체 누구야."

양쪽이 처치한 버프몹 특성상, 이제 영국이 전투에는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는 상황.

이에 한국의 결정은 화끈했다.

-"이거 더 길어지면 힘든데? 쟤들 집 가기 전에 게임 끝내자!"

-"오케이. 바로 달려!!"

AOS는 마지막 건축물을 부수면 승리하는 모드.

맞전투는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

상대가 먼저 수성에 도착하느냐. 그 전에 건축물을 모두 파괴하느냐.

···타임어택이다.

시청자들의 손에 땀을 쥐고 하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뛰어나가는 팀원들에 비해 조금 느린 이동 속도를 가진 크로스보우의 캐릭터.

-크붕이ㅠㅠㅠㅠ

-더붕이ㅠㅠ아

-이거 크보가 더원그인거 계산 못한거같은데?

-못 끝낼듯···.

치명적인 계산 미스.

라운드 스코어 2:2 동점 상황.

마지막 라운드.

바깥에선 해설들도 핏대를 올리며 소리치고 있었다.

[귀환하는 영국!! 승부수를 띄운 한국!!]

[너무 늦었습니다!!! 아직 건축물을 세 개나 더 부숴야 해요!!]

[늦습니다!! 늦었습니다! 아군 딜러가 돈을 많이 갖고 있거든요! 아이템을 못 샀어요!!]

[거의 귀환해가는 영국팀!!!]

-"타워. 타워 쳐. 타워!!"

-"이거 되나? 안될 거 같은데?"

-"쳐봐쳐봐쳐봐쳐봐!!"

급박한 상황.

[실패!! 실패한 것 같은데요!!!]

[아···! 한국! 제발···!!]

-"이거 빼야 할 거 같은데?"

-"···안되면 빼자. 빨리 빼!!"

그런 오더들이 오갈 때였다.

크로스보우는 종종거리며 뛰어가다가, 문득 제자리에 멈췄다.

-망했다

-ㅅㅂ

"흠."

생각해보면, AOS모드도 벌써 40분이 넘도록 플레이한 상황.

···이미 맵에는 익숙해졌다.

그는 잠시 뭔가를 가늠하다가 문득 오더를 내렸다.

"─그냥 계속 미세요."

-"네?"

-"크, 크보님···이, 일단 밀어! 그럼!!"

총기 스왑.

돌격 소총에서 저격 소총으로.

그는 긴 총신을 똑바로 세우며, 스코프에 눈을 갖다 댔다.

[급박한 와중에 크보 선수!!! 뭔갈 시도합니다!!!]

[···서, 설마?! 저격으로 귀환을 끊으려는 셈일까요!!!]

[그러나 거리가 너무, 너무나도 멉니다!!! 크로스보우!!!]

"천 미터 조금 넘는 정도···."

틱틱틱.

빠르게 영점을 조절하는 소리.

지켜보는 이들에게서, 설마 같은 소리가 나올 때쯤이었다.

"생각보단 가깝군."

태평한 중얼거림.

그는 호흡을 시작했다.

스읍.

들숨.

후우─.

그리고 날숨.

격발.

타아아아앙───!!!

그 순간, 모두가 숨을 멈췄다.

피유웅-.

퍽!!!

"컥!? 무, 뭔?"

[···크로스보우!!! 정확한 저겨어어억!!!!]

[하, 한 명! 우선 한 명의 귀환을 막았습니다!!]

철컥.

팅-.

볼트 액션.

빈 탄피가 배출되는 소리.

그리고 연속 저격.

크로스보우는 눈을 반개했다.

···격발.

타아아아앙───!!!

그리고 다음 순간.

──와아아아아아─────!!!!!!

[───!!!!]

해설이 모두 묻혀버리는 어마어마한 함성 소리.

레딧발 평가.

저격의 신.

철컹-!

=========

[SSS급 인장]

사격의 신

=========

크로스보우는 실제로 황금빛 인장을 머리 위에 띄우며, 미소지었다.

한국 : 영국 = 3 : 2.

대한민국 승리.

< 66화-4강 영국전 > 끝

ⓒ ReadOu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