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그 마지막 >
[···생각보단 가깝군.]
비웃음을 머금은 입꼬리와 낮게 중얼거리는 목소리.
급박한 상황.
마치 홀로 다른 세상에 있기라도 한듯, 천천히 조준경을 바라보는 모습.
그리고.
타아아앙─!!
격발.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정확히 명중.
[크으으으···크로스보우!!]
분노에 찬 상대의 외침.
움찔.
송다혜는 영상 속의 크로스보우를 그저 바라보고 있다가 그 소리에 몸을 떨었다.
“하아···.”
아직도 전율이 아직 채 가시지 않는다.
“······모르겠어.”
그녀는 머리를 짚으며 중얼거렸다.
아무리 관찰해도 알 수 있었던 것이라곤 크보라는 인물의 매력뿐.
매 장면, 어째서 당연히 ‘이기리라 판단하는’ 건지에 대한 걸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심지어 크로스보우의 조언에 맞춰 ‘1인칭 보기’ 속에 들어갔다 왔는데도 마찬가지.
“모르겠다구···.”
당장 AOS 모드, 유럽의 천재라고까지 불리는 슈미츠와의 1대1에서도 그렇다.
상대는 근접전에 특화되어 있는 스펙을 가진 캐릭터. 그런데도 달려드는 슈미츠를 당연하다는 듯 역으로 잡아 버린다.
대체 어떻게?
단지 플레이하는 캐릭터의 데미지가 상당히 강한 축에 속하기 때문에? 급소를 찔러서?
그렇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다. 상대는 분명, 통상적으론 죽음에 이를 수 없는 상황에 죽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야. 한 번 실수하면 엄청난 손해인 상황인데, 어째서 그렇게 당연하다는 듯이 리스크를 감수할 수 있는 거냐구.”
올오버가 출시될 때부터 수많은 경기들을 봐왔던 송다혜로서도, 이런 플레이는 처음이었다.
변수를 통제하는 것이 아닌 모든 변수를 그때그때 자기 입맛에 맞게 사용하는 플레이방식.
실패할 거란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는 과감함.
···대체, 무엇이 그에게 확신을 주는 걸까?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한번 영상을 돌려보았다.
여전히 알 수 없다. 게다가.
“···아무리 봐도 너무 일방적이야.”
참고 자료로 쓰기엔 영 도움이 되질 않는다.
전투에서 어떤 식으로 심리가 흐르는지에 대한 과정이 없는 탓이다.
상대의 노림수 타이밍을 절묘하게 끊어 내고 거기서 끝.
“···차라리 블래드랑 한 판 붙어 주면 좋을 텐데.”
송다혜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그럴 리 없다는 결론에 고개를 내저었다.
아직 밤은 길다.
최소한의 실마리를 잡기 전에는 잠들 수 없다.
그녀는 눈을 부릅떴다.
***
그리고 같은 시각. 누군가가 송다혜와 똑같은 장면을 계속해서 돌려보고 있었다.
한국과의 경기가 모두 끝난 영국팀.
그 숙소.
“······.”
선수명 ‘슈미츠’.
그녀는 손톱을 잘근잘근 씹어대고 있었다
결국 4강전은 영국의 패배로 돌아갔다.
심지어 자신을 끝장낸 상대─한국의 크로스보우는 균방전엔 참전하지도 않은 채였다.
기세를 탄 한국이 그야말로 모든 모드에서 끝장내 버렸던 것.
그 탓에 영국 숙소의 분위기는 침울하게 가라앉아 있었지만, 그녀에게 있어선 아무래도 좋은 일일 뿐이었다.
“···나 말고도 있었다니.”
의식가속화 상태.
그녀가 임의로 붙인 명칭.
자신을 빼고 모든 게 느려진 듯 느껴지는 세계.
그 세상 속을 침범당했다.
[느려터졌네.]
게다가 이 말.
음성을 인식할 수 있는 번역기를 사용한 끝에 나중에야 알았지만, 이건 느리다는 의미의 단어였다.
빠득.
슈미츠는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인정하기 싫지만···확실히 대단해.”
백스킬. 크로스보우의 트레이드 마크. 이거 하나만으로도 그가 엄청난 수준임을 증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자신과 같은 기술까지 사용할 수 있다니.
“···아니. 아니야. 재능 쪽은 내가 위. 당장은 내가 진 게 당연한거지.”
저 정도 실력이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슈미츠는 손을 꽈악 움켜쥐면서도 중얼거렸다.
그도 그럴 게 자신이 올오버에 입문한 것은 이제 고작해야 1년 정도. 최소 3년 이상은 플레이했을 걸로 보이는 그 남자가 아직까진 더 강한 게 당연한 일이지 않는가.
어차피 재능의 차이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그를 넘어서 버리고 말겠지만···어쩌겠는가. 재능이란 그런 것이다.
히죽.
슈미츠가 그렇게 합리화를 마쳤을 때 쯤이었다.
“──!!”
“──!!!”
돌연 방 밖에서 들려오는 고함. 선수 간의 말다툼이 소음이 되어 숙소를 울리고 있었다.
니가 잘했니 내가 잘했니 따위의 이야기다.
예전 같았으면 일어날 리 없을 다툼.
그러나 이번 네이션스 컵에는 일반 유저와 스트리머까지 참전한 탓일까. 패배 직후부터 시작된 감정의 앙금이 결국 폭발한 것.
“진짜 시끄러워 죽겠네. 게임할 줄도 모르는 것들이.”
그러나 슈미츠에겐 그저 상관없는 소음일 뿐이었다. 실력 없는 자들이 목소리만 크다는 생각에 오히려 눈살을 찌푸렸다.
오늘 패배에는 그녀의 지분이 어느 정도 존재함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
“아무튼···한국의 크로스보우라고 했지.”
천재는 비범한 자를 알아보는 법.
그녀는 씨익 웃고는 결심했다.
다음 시즌에는 한국에서 프로로 생활해야겠어.
자국 내 수많은 프로팀들의 제의를 칼같이 거부했던 슈미츠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결심이었다.
“한국···한국이라. 이번 네이션스 컵 끝나면 갈 목적지가 정해졌네.”
어디로 가지. 이왕이면 가장 강한 팀이 좋겠다.
“···TK?”
그녀는 올오버 리그의 외국인용병 관련 조항을 검색하며 중얼거렸다.
“무조건 주전 자리를 차지해야겠어. 어디보자···TK의 탑 라이너···카운터? 아하.”
TK 카운터. 그 녀석이구나. 크로스보우랑 스왑된 선수. 그녀는 그냥저냥 괜찮은 수준이었던 그 실력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그런 바보 정도는 가뿐하지.”
그 정도 수준이라면 얼마든지 선발 자리를 밀어낼 자신감이 있다.
즐거운 프로생활이 될지도 모르겠다. 슈미츠는 싱글벙글 웃어댔다.
그리고 그 때, 이제는 뭔가 깨지는 듯한 소리가 나기 시작한 복도.
“──!!!!”
“─!!!”
아유. 머저리들. 시끄러 죽겠네.
그녀는 베개로 귀를 콱 틀어막았다.
****
“역시 조빱이 비장한 게 제일 재밌다니까.”
관중석.
그 중에서도 선수들의 직관용으로 따로 마련되어 있는 곳.
크로스보우는 콜라를 쪼옵쪼옵 빨다가 중얼거렸다.
정적의 한 중간.
북미와 중국의 4강전을 관람하다가 문득 내뱉은 말이었다.
“푸웁!”
“아악! 콜라를 뱉으면 어떡해요!”
“푸하핫! 아니, 끅끅끅끅···.”
영국과의 4강전에서 압승을 거둔 한국 대표팀.
결승을 앞두고 북미와 중국의 4강전을 지켜보러 온 스트리머들.
그들이 지켜보고 있는 모드는 중국 대 북미의 [점령전]이었다.
“아니. 크보님 입에서 안 나올 거 같은 말이 나와 가지고. 죄송합니다.”
“근데 왜 모드교차 써서 중제검을 넣지?”
“그러니까요. 리얼 비장하기만 하고 끝이네.”
“저거 완전 그건데? 그 왜 옛날 영화에서 칼 휘둘러대는 현지인한테 총 빵하는 모험영화.”
“인디아날 존슨?”
“···미치셨습니까?”
“아. 크크. 또 뱉을 뻔했네.”
한번 물꼬가 트이자 자연스레 농을 주고 받는 스트리머들. 중국 쪽은 이미 예선전에서 화려하게 이기고 올라온 덕일까, 크게 경계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건 크로스보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중국 쪽에서 밀고 있는 스타 게이머, ‘중화제일검’.
그 실체가 그저 칼만 조금 다룰 줄 아는 유저라는 걸 이미 한 차례 경험한 뒤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때였다.
“···오?”
“저거 뭐야. 크보님. 저거 백스킬 아닙니까?”
버터 오징어나 질겅질겅 씹던 그에게 문득 들려온 말.
“응?”
크로스보우는 입을 멈췄다.
“···오.”
맞다. 비록 방패였지만, 그 어떤 것도 사용하지 않고 확실히 스킬을 쳐내고 있는 모습.
“오호라.”
게다가 거기에 추가해서, 단지 개인의 테크닉이었던 기술을 팀적 전술에 적용시켜 응용하고 있다.
스킬 쳐내기의 성공률이 거의 100퍼센트에 육박한다는 의미다.
“···이제야 좀 네이션스 컵 같네.”
그러고보면 그동안은 너무 약했지.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세를 고쳐앉았다.
“와. 저걸 카피해 가네.”
“누구야? 북미에 로키?”
“난 저거 몇 십 번 해도 안 되던데···재능충이네. 저거.”
“야. 몇 십 번 가지고 되겠어? 크보님도 연습 엄청 하셨을껄?”
수근대는 소리.
그러나 크로스보우는 그 어떤 말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유심히, 로키라는 인간의 플레이를 바라보고 있을 뿐.
***
북미와 중국의 4강전.
그 결과는 결국 북미의 승리로 끝을 맺었다. 꽤 비등한 접전이었지만 결국, R1의 리프트 등으로 대표되는 프로게이머과 북미의 로키를 막지 못한 게 패착이 되고 만 것이었다.
결승을 앞둔 날.
온 도시는 흥분의 도가니 속에 빠져 있었다.
개최장소인 뉴욕을 홈으로 두는 팀, 북미가 결승 진출에 성공한 까닭이었다.
그리고 그건 한국에서도 마찬가지.
당일이 되자, 마치 과거의 월드컵 때처럼 온 동네의 닭이 죄다 팔리는 등의 현상이 벌어졌다.
이제는 정말 명실상부 올오버의 파급력을 증명하는 듯한 일.
“···길고 길었다.”
“그러게요.”
매일매일 스타게이머가 탄생하고 다음 날 다시 지던 나날들. 온갖 일들이 있었던 네이션스 컵, 드디어 그 마지막 수순.
그리고 경기를 앞둔 30분 전.
주최측에서 주관해 행한 사전 인터뷰가 공개되었다.
[솔직히 뭐···저희가 질 거 같진 않아요.]
[누구나 다 계획이 있기 마련이죠. 크보랑 블래드를 만나기 전까진.]
[로키는 세계최고의 게이머 입니다. 아마 곧 알게 되실 거예요.]
[로···뭐요? 어디 로씬데요.]
잠깐이라도 화제에 올랐던 이들이 등장해 서로 간의 도발을 하는 모습이 경기장의 거대 스크린에 띄워진다.
“우우──!!”
“와아아아아──!!!”
좌석 상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경기장의 관중들.
제 나라의 게이머가 나올 때마다 환호, 그 반대는 야유를 보내며 분위기를 띄운다.
그리고 마지막.
블래드가 던지는 한 마디.
[···재밌네요.]
그에 환호가 울려퍼졌다.
“···와아아아아아──!!! 블래드!!”
“···우우─. 퇴물은 가라!”
그리고 그렇게 사전 인터뷰 영상이, 까만색으로 페이드 아웃된다.
“뭐야. 끝인가?”
“그러게.”
관중들이 뭔가 빠진 듯한 기분에 고개를 갸웃거릴 때.
바로 그 때였다.
우우웅──!!
돌연 새카만 색의 화면에서 문득 들려오는 거대한 비행기 소리.
“···뭐야.”
“헐?”
어느새, 스크린에 비치는 것은 노을진 어느 도시.
부숴진 도시의 모습.
[터벅. 터벅···.]
거기에 남자가 한 명.
까만 헬멧을 쓴 채 총을 어깨에 대충 갖다댄 모습으로 폐허를 걷는 모습이었다.
“···.”
“···.”
때마침 그 순간, 멀리서 그를 촬영하던 화면이 쭈욱- 드래그되어 남자에게 초점을 잡는다.
그때 그것을 인지하기라도 한 듯 화각을 향해 돌아본 남자.
[···.]
천천히 헬맷을 벗는 모습.
“““···!!!!”””
그리곤 화면을 향해 웃어보인다.
···그 순간, 거대한 환호성이 스타디움을 뒤덮었다.
이번 네이션스 컵에서 이목을 집중시킨 플레이어.
크로스보우의 모습이었다.
< 67화-그 마지막 > 끝
ⓒ Read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