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 스트리머가 너무 강함-68화 (68/143)

< 69화-그 마지막 >

생각한다.

···맨 처음에는 걱정이 앞섰다.

오랜 기간 몸을 담았던 게임에서 벗어나, 새로운 게임을 시도하는 것.

실력 방송을 표방하다가 다시 초보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 부닥치자 생각나는 것은 더 과거의 일이었다.

어린 시절의 추억.

처음 게임이란 것에 접했던 때.

게임을 가르쳐주겠다고 우쭐대던 친구. 그 표정이 당황으로 물드는 것을 보며 어린 마음에 어깨를 으쓱댔던 걸 기억한다.

마치 운명처럼 게임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몇 개의 게임을 거쳤을 땐, 이렇게 생각했다.

'내게 어쩌면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게 아닐까'.

보통이라면 '유아적 만능감'이란 이름으로 치부되고 말 착각.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마 그 착각이 바로잡히는 일은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격투, 탄막, 액션, 혹은 피지컬적인 요소가 필요한 그 어떤 게임에서든,

"···."

크로스보우의 적수는 존재치 않았던 것이다.

피지컬이 모든 걸 좌우하는 격투대전 게임. 고인물들밖에는 남지 않은 생존게임.

그런 게임의 최고에 군림하는 이들과 몇 번이나 붙어봤지만, 결과는 항상 그의 승리.

···그 때쯤 게임이 재미가 없어져 버렸다.

'부족하다.'

그리고 생각이 닿은 것은 현실의 운동 종목이었다.

타고난 피지컬이 꽤 많은 걸 좌우하는 판.

그리고 게임과는 아마 많은 것이 다를 만한 업계.

그렇게 은퇴한 유명 격투기 선수가 운영하는 도장에 등록을 마쳤다.

그의 속셈은 대부분이 흥미, 그리고 매너리즘을 극복하려는 생각.

그런데 한 달 후.

그를 기다리는 것은 또 다른 실망감이었다.

'어떻게···! 말도 안 돼···!!!'

대충 근육이 붙어갈 때쯤, 스펙이 맞춰지자 현역 프로와의 스파링을 간단히 이겨버리고 만 것이다.

'···지겨워.'

선수를 하는 게 어떻겠냐는 애원 섞인 권유를 뿌리치고 나왔다.

이제 남은 건 군대나 가자는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입대.

군생활 동안 게임 같은 건 전혀 모른다는 듯이 행동하고는 전역한 그는, 우연한 계기로 다시 게임에 흥미를 붙였다.

'···졌어? 내가?'

생애 처음으로, 호적수를 만났기 때문이었다.

'···괴물이네.'

'누가 할 말을···.'

세상과 단절되어 있던 동안에 흥행을 시작한 게임.

'더 원 그라운드'를 접한 이후였다.

그 상대는 지금의 크로스보우와 같은 개인 방송인.

그리고 마치, 지금의 크로스보우를 떠올리게 하는 엄청난 피지컬로 그 이름을 알리던 인간이었다.

···그리고나선 수많은 방송 합방이 있었다.

즐거운 나날.

게임이 이렇게 즐거운 거였다니.

상대의 플레이에 배울 게 존재할 수 있다니.

크로스보우 입장에선 신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더 원 그라운드에 핵이 있다고?'

'···응. 그리고 아마···.'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했던가.

얼마 지나지 않아, 일생일대의 호적수라 생각했던 이의 치부가 드러났다.

'···방송용 핵 논란?'

크로스보우가 실력이라고 굳게 믿던 퍼포먼스.

그 모두가 사실은 핵 프로그램을 통한 것이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그럴 리가.'

'걔랑 비등비등한 실력인 너도 핵 아니냐고 그러던데.'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그렇기에 크로스보우는, 당연하다는 듯이 핵 해명 방송을 켰다.

내가 가능하면 다른 사람도 가능하지 않겠느냐.

간접적으로나마 자신의 적수이자 친구를 도와주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뤄진 해명 방송.

작동 프로그램을 모두 공개한 상황에서 치른 매치.

크로스보우는, 지금까지와 똑같은 수준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상대는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해명방송이 날카로운 칼이 되어 친구의 방송을 사정없이 헤집어 놓았다.

···어느새, 연락이 모두 두절되었다.

그 당시 존재하던 방송의 채팅 매니저.

이런저런 거짓 사정을 전달해주는 그의 존재 때문에, 크로스보우는 공개된 방송에서 자신의 친우를 옹호하기에 이르렀다.

···핵이 아닐 거다. 그런 말들로 이뤄진 옹호였다.

하지만 당시, 더원그는 지금과는 다른 히트게임.

그런 만큼 핵쟁이들을 향한 유저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던 시기.

자신은 핵이 아님을 해명했지만, 대중에게 그런 건  고려 대상이 아니었던 걸까.

덩달아 안 좋은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합방으로 성장한 방송도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언젠가부터, 채팅매니저 역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

방송은 작아졌지만 크로스보우는 꿋꿋이 게임을 이어나갔다.

우울증을 앓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상관없다.

단지 방송이 끝난 뒤 정적을 견디지 못해 드라이기를 켜놓고 자는 정도.

이 때쯤 편집자가 되어준 신예지의 케어 덕에 크게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었다.

'···진짜 핵일까. 분명, 그 정도는 할 수 있는 수준···일텐데.'

실날같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기계적으로 게임을 반복하던 크로스보우.

···깨달으니, 핵쟁이들만 보여주던 수준의 플레이를 맨몸으로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맵 내 유저의 위치파악, 반응할 수 없는 수준의 일순 저격, 상대의 머리에서 움직이지 않는 조준선.

믿을 수 없는 재능이 마침내 게임 속까지 그 감각을 뻗어 뿌리내린 것이다.

그러나 그의 반대급부로─더 원 그라운드는 핵쟁이들만 남은 게임으로 전락해버린 상태였다.

······어느덧 망겜이 된 게임.

그럼에도 크로스보우가 올오버에 입문한 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의 일.

그도 그럴게, 그의 실력이 핵쟁이도 아무렇지 않게 잡아내는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남들에겐 쓰레기 게임이라 불리는 그 게임이어야만 크로스보우는, 자신의 수준과 맞는 매치업을 할 수 있었던 것.

"흐."

그는 웃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처음에는 걱정이 앞섰다.

오랜 기간 몸담았던 게임을 벗어나 새로운 게임, 핵은 존재할 수 없는 풀다이브형 가상현실.

초보건 뭐건 간에 그곳에, 더원그의 핵쟁이들보다 더 잘하는 이를 찾을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없었다.

비록 방송인으로서 갖는 마음의 소리, 시청자들의 환호가 주는 고양감 따위가 지금까지 그를 이끌어왔지만, 게임 자체가 재미없어져서는 의미가 없다.

···당연한 승리 따윈 승리가 아니다.

그래서 방송을 그만둘 생각을 했던 것.

똥이라는 소리까지 듣는 캐릭터를 고집하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 강한 캐릭터를 하면 언제고 다시 흥미를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방어기제겠지.

분명 초보일 터인 상태에서, 미친듯한 빠르기로 능숙해져 갈게 분명한 과정.

그 과정 중에 언제고 또다시 친구, 혹은 대적자를 잃을지 모른다는 일종의 트라우마. 그 트리거.

그럼 차라리 다른 게임 캐릭터와 관련해선 초보로 있는 게 낫지 않은가. 그런 기저 심리였다.

그렇기에 대회 기간임에도 숙소를 이탈해,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춘 채은아와의 1대1에 열중했다.

자신도 깨닫지 못한 상태로 지금까지, 스스로를 '더 원 그라운드'의 랭킹 1위라는 틀 안에 가둬놓고 있었던 것이다.

극도로 현실적인 게임 속에서, 검의 묘미를 깨닫고도 더원그를 픽하는 등의 행위로 말이다.

모든 건 자신도 깨닫지 못한 고의였다.

"하하하···."

그러나 크로스보우는 지금 이 순간.

"하하하하하!!!"

그런 모든 관념을, 일시에 부정했다.

카아아앙───!!!

검이 부딪히는 쇳소리.

"크으으으···! 로키!!"

"알고 있어!"

콰아아앙─!!!

옆을 스치는 스킬.

조금만 실수했으면 맞을 뻔했다.

상대가, 그에게 밀리지 않는다.

비록 5대1이지만 단지 압도당하는 것이 아닌, 반격도 제대로 하고 있다.

게다가 매번 공격이 크로스보우로서도 놀라게 하는 날카로운 구석까지 존재했다.

이상하게도 그 사실이 머리를 맑게 하고 있었다.

"뭔가 개운하네요."

"개운하긴 개뿔···! 어케 피했누! 시불련아!"

"오. 미국 사람이 그런 밈도 알아요?"

"하도 한국 쪽 공략 뒤지다 보니 알겠더라구요! 이 괴물 자식아!"

그래. 이게 게임이지. 크로스보우는 씨익 웃으며 생각했다.

리프트를 필두로 한 세 명은 아주 긴 경력을 가진 프로게이머들.

로키는 무려 그 블래드를 솔로킬 하며 떠오른 스타 게이머.

그레이드는···뭐, 아무튼 그랬다.

여전히 어두운 터널 속.

그는 가슴 속 깊은 곳부터 치밀어오르는 즐거움에 말했다.

"진심으로 갑니다."

"오케이. 지건 딱 대세요. 크로스보우."

"···진짜 별걸 다 아네."

-ㅋㅋㅋㅋㅋ

-맆형 트수설ㅋㅋ

-아까 이건 안된다던 뉴비쉑들 다 어디갔누

-ㄹㅇㅋㅋ걔들 다 입벌리고 화면에 대가리 박은듯

-맨날 안된대~

-외않됀데?

-아직 이긴것도 아닌데 설레발 그만 쳐 미친놈들아!!!

-내 매국배팅 토토를 지켜줘! 크보!!!

-ㅋㅋ토토로 인생조지겠네

-? 우리 토토로한테 왜그래요

-????

***

[···그야말로 대격전, 입니다.]

[양 팀의 선수에게 박수를 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멋진 매치를 보여준 크로스보우와 리프트, 로키 등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정말이지, 멋졌습니다.]

이응이여섯개는 멍하니 해설을 이어나갔다.

자신이 어떤 말을 지껄이고 있는지도 잘 모른 채였다.

아마 해설 경력이 조금만 더 부족했다면, 횡설수설하고 있지 않았을까.

결승까지 올라오며 지금까지 단 한 번의 큰 피격도 허용하지 않았던 크로스보우의 놀라운 기록.

그러나 오늘, 결승전에서 그 기록이 깨졌다.

[···오늘 밤 커뮤니티가 어떨지 기대되는데요.]

[그렇습니다. 정말···이게 바로 최강자들의 싸움이거든요.]

[제가 예측해볼까요? 여러분이 보신 방금 그 장면, 무조건 커뮤니티 상단에 자리할 겁니다.]

결국 어떻게든 적을 대부분 격살해낸 크로스보우.

남은 건 마지막 한 명, 로키뿐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경기 구역이, 닫혔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크로스보우가 먼저 경기 구역 밖에서 사망, 그리고 로키가 죽었죠?]

[터널 내 싸움은 북미의 판정승···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애매하지만···그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결국, 터널 바깥에서 발만 동동 구르던 다른 선수들이 살아남아서, 한국이 승리로 됐지만요!]

마지막 단 한 번의 휘두름을 남겨두고, 크로스보우가 경기구역 바깥에서 사망한 것이었다.

그리고 만신창이이던 로키 역시 마찬가지로 사망.

승자는 밖에서 손톱만 씹던 한국 선수들이었다.

[이렇게 배틀로얄은 3대1로! 한국이 승리를 가져갑니다!]

[괜찮은 시작입니다! 크로스보우! 그의 엄청난 파괴력을 알 수 있던 매치업!]

[이 선수에게 러브콜이 엄청날 거 같은데요. 향후가 더욱더 기대되는 선수입니다!]

···피곤해 죽겠군.

크로스보우는 캡슐에서 기어나왔다.

머리가 멍하다. 공기가 우웅-하고 가슴을 떨게 만들고 있었다.

"···고생하셨습니다. 크보님.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정말, 대단해요. 오늘부터 진정한 팬입니다."

"방송 꼭 챙겨봐야겠다···."

"끝까지 버스만 타네···죄송해요."

한국 프로들의 말.

"근데 별로 안 기뻐 보이시네요? 이겼는데."

크로스보우는 응? 하는 소릴 냈다.

그러자 그 모습에 관중석을 턱짓하는 동료.

"보세요. 전부 크보님한테 보내는 환호성이에요."

뭐지.

문득 고개를 들어 관중석을 바라본다.

"───!!!"

"─, ──!!!"

"크로스보우───!!! 사랑해!!!"

모두 일어나 알 수 없는 소리를 지르고 있는 관중석의 모습.

반대편의 북미 쪽 관중들도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또 졌네요. 언젠간 이길 겁니다."

그리고 어느새 다가와 악수를 건네는 상대 팀의 선수들.

"마지막에 같이 죽었으니까 비긴 거지? 하하. 나보다 더한 사람은 처음 봤어. 친추 좀 걸어줘. 배우고 싶다."

"···프로될 생각 있으면 연락해. R1은 언제나 널 환영할 테니."

"···참가권 놈. 쳇. 언젠간 발 쭉 뻗지 못하게 해줄 거다."

크로스보우는 얼떨떨하게 그들과 악수를 하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뭐라는거야. 천천히 좀 말하지."

현실에선 영어호환이 안 되는데 말이다.

< 69화-그 마지막 > 끝

ⓒ ReadOu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