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 스트리머가 너무 강함-70화 (70/143)

< 71화-그 마지막 >

과거 합방 당시 크로스보우가 클리어한 맵.

균열방어전 [인류진보기관].

[광안대교], [사당역]에 이어 크로스보우가 스트리머들과 함께 세 번째로 클리어해냈던 맵이다.

앞선 두 맵과는 달리, 최고 랭크가 아닌 그 아래 단계, SS급으로 끝마친 유일한 맵.

그런만큼 '크로스보우식 공략'이라 불리며 따라 하기가 불가능에 가깝다고 여겨지던 이전 공략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낮은 공략이었다.

공략 키 포인트는 단순한 발상의 전환.

그 내용은, 누구든 당연히 적이라고 생각할 외형의 몬스터를 지나쳐 또 다른 히든 보스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서울의 모 백화점을 모토로 한 맵.

─그 지하에 존재하는 비선공 괴물, 그리고 마치 누군가 관리라도 하는 듯한 내부공간들.

시스템 메시지,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단서들.

배후가 존재한다는 걸 나타내는 전형적인 상황이지 않은가?

크로스보우 입장에선 그런 생각으로 시도한 공략이었다.

"근데 SS급이라···."

그랗다면 아마, 그럼에도 부족한 점이 있었던 거겠지. 생각해보면 그때도 어느 정도는 찜찜한 기분이 남아있었다.

크로스보우는 시스템 창을 불러왔다.

[SYSTEM]임무 : 제거

[SYSTEM]인류진보기관은 끔찍한 반인륜적 실험을 서슴지 않는 조직입니다. 이들은 마법으로 거대백화점의 지하에 터를 잡고 인체실험을 거듭했습니다. 이곳의 지하에서 마침내 태어날 끔찍한 괴물을 제거하십시오.

[SYSTEM]제거한 괴물체 :0/1

"흐음."

-"크보님···여기까진 왔는데···어떡하죠?"

그 때, 팀원의 부름에 고개를 든 크로스보우.

지금까진 이전과 같은 상황이다.

"─감히, 내 걸작품을···! "

차폐벽에 구멍을 뚫어 본래 있던 괴물을 도망치게끔 하자, 어딜 어떻게 봐도 진짜 보스처럼 보이는 적이 튀어나오는 수순.

이대로 상대를 죽이기만 해도, SS급 클리어는 보장받는다.

-"마스터. 죽일까요."

-"배제할까요?"

-"···아니. 님들. 이상한 드립 좀 그만···."

그러나 크로스보우는 곰곰이 생각을 계속했다.

'태어날···이라.'

앞으로 있을 일을 표현하는 말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아마 눈앞의 적도 이 맵의 최종보스는 아니란 건가?

"여기서 죽어라. 어리석은 운명들···응?···네놈···?"

뭔가 말하고 있는 듯 보이는 보스몹.

그러나 크로스보우의 귀에는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 시도해볼 법한 방법은 이것저것 생각이 나지만, 그 어느 방법에도 확신할 순 없었던 것이다.

···역시 모르겠군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크로스보우는 고개를 끄덕이곤 달려나갔다.

-"···크···보님?"

그리곤 놈의 머리를 냅다 후려쳤다.

깡─!!

"그 기운. 뭐···커헉?!"

"저기요."

"크윽···이, 이 버러···커윽?!"

아직 대화할 자세가 안됐군.

다시 한 번 칼등.

까앙─!!

"크악?! 이, 이 자식이!!!"

-"어, 어···?"

크로스보우는 팀 보이스를 무시하곤 씨익 웃었다.

황급히 방어 주문을 펼치는 상대.

그러나 어림없다.

"길 좀 물읍시다."

"무슨 개 같은···컥!!"

이전에도 봤던 패턴의 마나 배열.

그는 전달되어 오는 그 흐름을 끊듯, 다시 한 번 검을 휘둘렀다.

까아앙─!!

그리곤 빙그레 웃는 모습.

"길 좀 묻자니까요."

"여, 영창 파훼?!···대체 뭐하는···!"

까아아앙─!!

"커헉!"

***

[길 좀 묻자니까요.]

"그런 생각으로···하셨다는 말씀이군요."

이응이여섯개.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물었다.

"네. 주변에 질문할 사람이 없기도 했으니까요."

"하하. 정말 유쾌한 발상입니다! 물어볼 사람이 없으니 게임 속 NPC에게 묻겠다! 정말 세계 최고의 반열에 든 선수다운, 재치있는 생각입니다!"

이번에도 게임을 승리로 이끈 주역, MVP로 선정된 크로스보우.

승자 인터뷰가 한창이었다.

관중석은 여전히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고, 선수들은 아직까지도 우승컵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만지고 있었다.

눈물 짓는 모습들.

균방전 최종 라운드 SSS랭크 클리어.

승자는 한국이었다.

그렇게 결국, 미국은 또 한 번 크로스보우라는 걸림돌에 넘어져, 한국에 우승컵을 넘겨주고 말았다.

마지막의 마지막, 균방전에서 무자비하게 보스를 두들겨 패던 와중 다시 한 번 숨겨졌던 클리어 방식이 드러났던 것이다.

한참을 얻어맞던 녀석이 이를 악물고 수를 쓰자, 그야말로 끔찍하다는 묘사가 어울리는 괴물이 돌연 바닥을 부수고 등장했던 것.

시스템 창에서 말하는 진정한 괴물체였다.

물론, 크로스보우의 앞에선 그 모든 게 헛된 발버둥에 불과했지만.

"아마 정석 공략은 원래 있던 비선공 괴물이랑 힘을 합하는 걸 겁니다. 마지막 보스가 나타나자마자 계속해서 다시 이쪽으로 넘어오려고 했거든요."

그리고 그가 던지는 공략의 단서.

일개 스트리머였던 전과는 달리, 이젠 전 세계를 향해 그 수준을 증명한 크로스보우의 말.

해설진은 물론 균방전을 아는 시청자들까지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 그렇군요! 그런 스토리의 구조였다니···정말 놀랍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한국의 우승을 이끈 주역. 블래드보다도 더 주목받은 선수거든요."

그리고 들어오는 질문.

"스킬 쳐내기, 무형검, 스킬 중 경직 풀기···더원그의 새로운 지평 열고, 개인의 실력만으로 전략전술을 뛰어넘는 사나이!···크로스보우로 시작해서 크로스보우로 끝난 네이션스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크보 선수!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된다는

얘기가 많은데···이에 대해서 한 말씀 가능하실까요."

프로팀에 입단할 거냐.

아마 이런 뜻이겠지.

그러나 크로스보우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프로는 안 할 겁니다."

"···그···말씀은?"

"앞으로도 계속 스트리머로 남을 겁니다."

"아···."

보는 사람들의 탄식을 자아내는 답변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올오버의 대회는 네이션스 컵뿐만이 아니다.

당연한 말이다. 게임의 규모가 유례없을 만큼 커다랗기 때문. 아마추어 대회 역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을 정도.

네이션스컵처럼 여러 개의 모드로 겨루는 것이 아닌, 단일 모드만으로 순위를 매기는 대회나 혹은 상대적으로 비인기 모드까지 대회까지 엄청나게 많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 올오버 프로판에, 초대형 월드클래스급 신인인 크로스보우가 합류하길 내심 기대하던 팬들이 대다수였던 것.

─잠시 침묵.

멀리, 관중석에서 들려오는 끊이지 않는 흥분의 소리가 중계 마이크에 들어갔을 때야 비로소 정신을 차린 해설진.

"···아쉽습니다. 블래드와 크로스보우 선수의 맞대결을 기대하는 팬들에게는 안타까운 소식이 아닐 수 없겠는데요."

"이미 커뮤니티에는 크보 선수와 블래드 선수가 싸울 경우를 두고 갑론을박을 펼치고 있거든요! 하하."

"결정을 내리시게 된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그 질문에 크로스보우는 빙그레 웃었다.

"아직 보여 드리지 못한 게 많지 않습니까."

"···예?"

"스킬 쳐내기 같은 잡기술 말고···좀 더 이런저런 게 가능할 거 같거든요."

잡기술? 그게?

지켜보던 이들의 머릿속에 의문 부호가 떠올랐지만, 크로스보우는 모른 채 말을 이었다.

"제 방송 오시면 새로운 기술을 발견해내는 과정이나···뭐, 이런저런 재밌는 거 많이 하려고 하니까요. 얼마든지 보러오시면 환영하겠습니다."

플랫폼 트리키 뷰에 크로스보우라고 검색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말을 끝맺는 크로스보우.

혼란을 틈타, 현재 중계를 보고 있을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홍보한 것이었다.

"···!"

잠시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가만히 있던 해설진.

그들은 이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픽 웃었다.

인간 같지 않은 퍼포먼스만을 보여주던 크로스보우가 돌연 친근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하하! 그렇답니다! 트리키 뷰의 크로스보우!!"

"네이션스 컵의 영웅, 크로스보우 선수!! 시청자 여러분. 많이 사랑해주시면 다음 네이션스 컵에도 기대해볼 만 하거든요!"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이제 남은 건 뒤풀이뿐. 시청자들로서는 알 수 없는 과정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제4회 네이션스 컵!! 한국이, 우승! 우승컵을 손에 거머쥐며···끝을 맺습니다."

모두의 기대를 모았던 네이션스 컵이···마침내 막을 내린다.

"수많은 스타 선수들의 활약으로, 올해에는 작년의 설움을 떨쳐내며 마침내 우승을 차지합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는 곧 다시 폐회식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

뒷풀이는 생각보다 더 소란스러웠다.

선수들 다 같이 모여 술을 마시는 것뿐만 아니라, 아직 귀국하지 않은 4강전을 치렀던 나라의 선수들이나 미국의 선수이나 스트리머 몇몇이 찾아오며, 좋은 자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크로스보우!!! 야아아!!"

그리고 술자리.

어딜 가나 꼭 먼저 취해 주정을 부리는 사람이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이 자시이익···너무 잘해···좀 져주지···."

크로스보우는 내심 누구세요? 따위의 말을 하고 싶은 걸 참으며 말을 받고 있었다.

"참가권! 승부다!! 우리의 결판나지 않은 승부를 술로써 마무리 짓자!!"

"···뭐라는 거야."

"이 코쟁이들 왜 이래? 크보님은 우리꺼거든요?"

"···그것도 아닙니다만."

술은 예로부터 친목을 다지는 데에는 따라올 게 없는 좋은 수단 중 하나.

희비가 갈린 선수들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분위기.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누군가는 통역을 담당하고, 누군가가 거짓말탐지기 장난감 따위를 가져오며 분위기가 신 나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나는 사실 크보님이 좋다!"

"···No!"

삐-.

거짓.

"크으읍···!"

"와. 이걸 참네···독한 놈···."

"파하핫! 츤데레 같은 놈이구먼! 크보님도 와보세요! 나는 솔직히 슈미츠나 로키보고 듣보잡이라 생각했다!!"

"···아닙니다. 듣보잡이라뇨."

삐이이이-!!

"···보세요. 진실 떴네요."

"···와···표정 하나 안 변하는 거 봐."

"무서워···."

그렇게 몇 시간 후.

다 같이 모여서 술판을 벌인 숙소 세미나실을 빠져나온 크로스보우.

"···아이고. 허리야."

한 명 한 명 다 들쳐 메다 방에 버릴 수도 없고···호텔 직원에게 부탁해 각각 이불이나 덮어주고, 초롱초롱한 눈의 직원들에게 싸인까지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문득 고개를 드니, 호텔 로비에 누군가 서성이고 있었다.

"···아!"

"은아 씨?"

'크보쨩핥짝'이었다.

왜 여깄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릴 때, 그녀가 쭈뼛거리며 다가온다.

어딘가 달뜬 표정이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에요?"

"···싸인 받으러 왔어요."

크로스보우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묻자 두 주먹을 꼭 움켜쥐는 채은아.

"그 때 못 받은 싸인이요."

"응···?"

언제를 얘기하는 건지 모르겠군.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렴 어떠랴.

"펜이 없네요."

"매일 밤 1대1로 불러서는···게임만 시키고···이젠 못 참···."

"아. 맞다. 그러고 보니까 줄 거 있는데."

크로스보우는 주머니를 뒤적였다.

"이거."

"···어?"

이제는 꽤 시간이 지난 네이션스 컵 예선전 때.

우연히 게임장에서 그녀를 마주쳤을 때 19연승을 달리고 있던 채은아.

크로스보우가 내민 것은, 그때 그 오락실의 20연승 달성 상품이었다.

"크, 크보님?···어, 언제? "

"갖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요."

홀린 듯 두 손을 내미는 그녀에게 크로스보우는 선물을 건넸다.

아주 작은 스패츠나츠 헬멧 모형이다.

"···지금까지 방해해놓고."

"은아 씬 줄 몰랐죠."

"펜타킬 하는 거보다 뺏는 게 더 재밌다면서요?"

"그건 맞죠."

"···씨이."

항상 풀어진 표정만을 보이던 평소와는 달리 지금은 어쩐지 처음 보는 태도다.

"···고맙습니다. 크보님."

"별것도 아닌데요. 경기 기간동안 놀러 와서까지 매니저 노릇한 보답입니다."

"···잘 간직할게요."

미소.

항상 보이던 변태 같은 웃음과는 조금 다른 미소였다.

크로스보우 역시 마주 웃어보였다.

"밖에 쌀쌀하던데,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네."

그리고 그 모습에 다시 한 번 피식 웃은 그는 천천히,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어두운 밤.

밤공기가 폐에 들어가는 기분이 묘한 감상을 가져다준다.

"···역시 싸인해주세요."

"펜이 없다니까요."

"···거짓말."

그렇게 한 달하고도 조금 더.

네이션스 컵.

종료.

< 71화-그 마지막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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