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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스트리머가 너무 강함-71화 (71/143)

< 72화-제 점심이죠 >

"···."

크로스보우는 멍하니 눈을 떴다.

오랜만에 보는 익숙한 천장이었다.

귀국 후.

크게 바뀐 것은 없었다.

귀국 당일 크로스보우를 포함한 대표팀을 보기 위해 공항에 몰려든 사람들.

티비에서나 보던 상황에 어색함을 느낀 것도 잠시, 대단한 것 없이 스르륵 지나간 시간이었다.

사람들과는 정말 얼굴이나 확인하는 수준의 스쳐 지나감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짧은 인터뷰들이 있었지만···어차피 이미 한국은 우승을 맞이해 전국적으로 신 난 상태라고 해야 할까.

기사 한두 줄 더 추가된다고 해서 바뀔 건 없었다.

그렇게, 잊고 있던 일상으로 완전히 복귀했다.

"흐음···."

전역했을 때가 떠오르는 감각.

그는 바깥에서 스며들어오는 햇살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네이션스 컵.

정말 그런 곳에 갔다 온 게 맞는 걸까?

귀국한 지 만 하루.

벌써부터 그런 심정이 들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기상. 익숙한 침대, 익숙한 방.

대회 기간 플레이했던 최신형 캡슐이 아닌, 자신의 방에 놓인 오랜 구형 캡슐을 보고 있으니 더욱 그랬다.

"···바꿀까. 캡슐."

그러고 보면 대회용 캡슐에서 묘한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른 적이 있었지.

그는 그런 생각을 하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슬슬 시간이다.

그리고, 몸을 일으켰을 때였다.

"─오빠! 문 좀 열어줄래!"

문득 현관문 밖에서 그런 외침이 들렸다.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다.

***

사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은 크로스보우 개인의 생각에 불과했다.

제 4회 네이션스 컵.

이번엔 이전과는 달리, 수많은 시도로 이뤄진 대회.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던 만큼, 많은 것들이 남았다.

커뮤니티에선 이미 공식 사이트나 각 스트리머들의 방송을 통한 많은 이야기가 공개되고 있는 상황.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이야기의 지분을 차지한 건 바로 크로스보우였다.

네이션스 컵 전체를 통틀어도 가장 돋보이는 활약을 보여준 남자.

이제는 커뮤니티의 성향을 가리지 않고 확고한 팬층과 인지도를 쌓은 스트리머.

그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리고 그런 만큼, 그를 찾는 사람들도 훨씬 더 늘어난 상황.

"오늘도 광고랑 컨텍 메일이···으으.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대기업들도 많은데 어떡할까."

"잘 걸러봐."

"근데 막심? 여기 약간 야한 남성잡지 아니야? 와. 11월호 모델 제안."

정말 별의별 기업에서 제의를 줬군. 크로스보우는 어깨를 으쓱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하고 말았다.

그렇게 한창 새로운 메일을 확인하던 신예지.

그녀는 스크롤을 내리다 말고 인상을 찌푸렸다.

"성인용품 마켓에서 모델제안? 이게 무슨···헐."

"너 뭐 보냐."

"모형을 본···?"

"야. 이상한 건 그냥 넘기랬지."

"···와···압?"

크로스보우는 그녀가 보던 걸 뺏어버리고 주먹밥을 입에 물려버렸다.

귀국 후 아침은 보쌈. 미국에 있을 때는 쌈이라고는 입에 대보지도 못했기에 선택한 메뉴였다.

"그헤허···오빠. 어떤 스탠스로 갈 거야? 광고나 인터뷰나···뭐 출연제의 같은 거."

빠르게 입을 우물대더니 꿀꺽 삼켜버린 신예지. 크로스보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기본적으로는 많이 안 나가는 쪽으로. 그리고 광고는···글쎄. 별로 받을 필욘 없을 거 같네."

"음. 알겠어. 그럼 한 번 보수적으로 추려볼게."

센스가 있으니 잘하겠지.

대회 기간 동안 편집자가 더 필요하면 언제든 새로 뽑으라고 했음에도, 결국 혼자 그 많은 양의 영상을 모두 편집해낸 신예지였다.

그런 와중에 하라고 한 적도 없는 청소까지 깨끗하게 해놓은 걸 보면···정말 쉬지도 않고 일했던 모양.

"···그래도 사람을 좀 더 뽑아야겠지."

크로스보우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응? 왜?"

"언제까지 너 혼자 하게 놔둘 순 없으니까···어디 보자."

"호, 혼자 하게 안 놔두···?! 오빠가 도와주게···?"

"그치. 아무래도 사람을 더 구하긴···잠깐. 뭐?"

크로스보우는 잠깐 경직됐다가 피식 웃었다.

오랜만에 듣는 그녀의 입담이 마치 집에 왔다는 걸 알려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근데 앞으로는 진짜 혼자선 감당하기 힘들 거야."

"으···응?"

"합방이 좀 있을 거 같거든."

네이션스 컵에서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부대낀 스트리머들.

싫어도 친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니만큼, 크로스보우에게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장 오늘만 해도 합방이 예정된 상황.

"그렇겠네."

사정을 들은 신예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젠 정말 규모가 커진 만큼, 그리고 폭발적인 유명세를 얻은 만큼 노를 저을 타이밍이다.

묵혀놨던 영상을 쏟아내야 하니 편집자가 필요한 것은 확실했다.

"그럼 음···알겠어. 참, 광고 제의 쪽은 은아랑 같이 해서 할게?"

"은아? 채은아 씨?"

"응."

그러고보면 예전에 벌써 친해졌었지. 크로스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편한 대로 해."

"오키!"

의견 교환을 마친 크로스보우는 샤워실로 향했다.

곧 방송 시작 시각이다.

***

"···계약 파기?"

"네."

영국의 슈미츠.

그녀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그런 조건이었잖아요. 나가고 싶으면 언제든 나갈 수 있게 하는 거."

"그건···그렇지만. 네가 없으면 우리 팀은···."

"그건 제 알 바 아니죠."

"···라우라."

그녀는 눈을 좁혔다. 본명을 불린 게 썩 불쾌했던 탓이다.

"전 게이머로서 제의를 받아들였던 거지, 선수들 가르치는 코치가 아니에요. 감독. 기본도 안된 녀석들에게 제 재능을 나눠주는 건 싫어요."

"···다시 은둔 생활로 돌아가려는 셈이냐?"

"No."

"···알고 있겠지. 협회 규정상 파기 후 본래 계약했던 기간동안은 활동을···."

슈미츠는 그 질문에 씨익 웃었다. 승부욕으로 가득한 웃음이었다.

"상관없어요. 국내가 아니라 한국으로 갈 거니까."

"설마, 블래드 때문에?"

"아뇨. 감독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네요."

항상 그랬죠.

크로스보우.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주먹을 꽉 쥐었다.

"···알겠다. 그게 네 의견이라면."

"감사 인사는 안 할 거에요."

"그래···그러거라."

"몸 건강히 지내세요. 감···아빠."

이번에는.

그런 생각을 하며 슈미츠는, 짧은 기간 동안이나마 몸을 담았던 숙소를 나섰다.

작별 인사는 없었다.

영국 이스포츠판의 가장 커다란 인재가 국내 리그를 떠나가는 순간이었다.

***

['아니ㅋㅋ'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어케하누 ^^ㅣ발ㅋㅋ

-ㄹㅇㅋㅋ정좌하고 듣고 있었는데ㅋㅋ

-꿀팁인 줄 알았더니 자랑이었누···

-재능기부on

-이걸 알려주네 했는데 아무도 못하는거엿자너~

드디어 시작된 크로스보우의 방송.

대회가 끝나고 드디어 풀린 후원 기능에, 우승 축하 명목의 후원이 한참 지나고, 조금 가라앉은 시점이었다.

시청자들이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크로스보우가 대회에서 보여준 '스킬 쳐내기' 등의 잡기술 요령을 알려주고 있던 와중.

보통 유저로서는 도저히 따라 하지 못할 방법을 언급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음···다시 한 번 설명해 드릴까요?"

합방.

그는 친해진 스트리머들과 함께 [생존 모드]에 들어와 있었다.

생존을 위협하는 여러 요소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템포가 느린 모드.

스트리머 커물쥐, 단서라 등과 함께하는 합방.

새로운 컨텐츠로 방송도 할 겸 밀린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합의 하에 진행된 모드였다.

-아니ㅋㅋ다시 듣는다고 뭐가 달라질거같진않음ㅋㅋ

-??? : 말이 되는 소리를 해!!

-ㅋㅋㅋ난 알아듣지도 못하겠음 아ㅋㅋ

"크보님. 크크. 저도 모르겠던데 시청자들은 오죽하겠어요."

"으음. 그런가요?"

-???커물쥐형 우리 계급 친구잖아

-ㄹㅇㅋㅋ잘하는척하지마!!!

-삥뽕빵

그리 어려운 기술은 아닐 텐데. 설명이 조금 부족했던 탓일까.

"쉽게 말하자면 순간적으로 스킬의 방향성을 정확히 읽어내는 게 핵심입니다."

크로스보우는 그렇게 말하며 나뭇가지를 주웠다.

별 특징 없는 나뭇가지에 불과하지만, [생존 모드] 초반에선 필수적인 재료 중 하나.

그는 그걸 검처럼 잡아 보이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방향성을 읽어내는 데에 성공했다면, 남은 건 정확한 각도로 정확한 수준의 힘을 준 채 스킬의 핵이 되는 부분에 검을 갖다 대는 거. 요령은 그게 전부입니다."

-그니까 핵이 되는 부분이 무냐고 아ㅋㅋ

-선생님 스킬 날아오는 속도가 있는데···

-참 쉽죠?

-핵정은 크보ㅋㅋ

-핵기잇

-ㅋㅋㅅㅂㅋㅋ

['크보쨩핥짝'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크 선생님···하나도 모르겠어요···나쁜 아이에게 벌을 주세요···

"···육안으로도 자세히 보면 보입니다. 그 형태는 스킬마다 다릅니다만 연습만 하시면 충분히 따라 할 수 있을 거에요."

후원을 못 본 체하며 말을 마친 크로스보우. 쥐고 있던 나뭇가지를 다시 등으로 되돌리는 모습이었다.

네이션스 컵 이후 가장 뜨거운 감자인 크로스보우. 그런 그가, 아무렇지 않게 본인 기술의 요령을 공유하는 상황.

방송을 모니터링 중이던 각 선수단의 코치들이 놀라 바빠지는 순간이었다.

"따로 채널에 시연 영상 올려놓을 테니까 한 번 해보세요."

-넹

-근데 이런 꿀팁을 걍 공개해버린다고?ㄷㄷ

-ㄹㅇ···솔직히 고계급이면 따라할 수 있을텐데

시청자들의 의문에도 크로스보우는 어깨를 으쓱이고 말았다. 게임 수준이 높아지는 건 그로서도 환영하는 바였기 때문.

그때였다.

"크보님. 식량 좀 파밍하셨어요? 저 허기가 낮아서···."

함께 재료를 모으던 커물쥐가 배를 움켜쥐고 다가와 말했다.

타 모드와는 다르게 기본 캐릭터 외엔 픽할 수 없는 모드. 그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튼튼한 맨몸뿐.

맨손으로 시작해 모든 걸 자급자족해야 하는 것이다.

"아까 애벌레 좀 파밍해놓긴 했는데, 드실래요?"

"으, 으악!"

그들의 시작 장소는 정글 속. 이런 식량이야 널리고 널렸다.

-ㅋㅋㅋ단백질on

-크어보릴스ㅋㅋㅋ

-ㅈㄴ크네ㅋㅋ

크로스보우는 친절하게 벌레를 동료의 손에 올려주었다.

별다른 스킬을 사용하는 건 불가능한 모드 속이지만, 현실처럼 허기와 기운 정도의 개념은 존재한다.

먹어야만 활동이 가능한 것.

"흐에아!"

"아, 아까운 거."

이상한 소리를 내며 기겁하는 모습에 배려의 필요성을 느낀 크로스보우.

그는 아까 파밍해뒀던 나뭇가지를 스윽 꺼내 꼬치를 만들었다.

"드세요. 먹을만한데."

"···흐에!"

잘 먹네.

-ㅋㅋㅋㅋ

-ㅋㅋㅋ아ㅋㅋㅋ

-야! 맛있냐?ㅋㅋㅋ

-많 이 먹 어

크로스보우는 흐뭇하게 웃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생존에 있어 기본적인 것은 쉘터, 마실 물, 그리고 불.

우선은 쉘터로 삼기에 적합한 곳까지 도착해야 한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 대회 때 겪었던 이야기들을 풀어놓으며 이동을 계속했다.

"아. 그 때 노리고 한 픽이 아니셨구나. 4강 때 귀환 끊는 저격."

"AOS가 주력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냥 투입된 거였습니다."

-ㄷㄷㄷ

-아ㅋㅋ감독들 인맥올오버 하네ㅋㅋ

-??? : 제 인맥으로 간신히 모셔올 수 있었습니다

-ㄹㅇㅋㅋ크보 원툴 전략인데 다 깨부순거였누ㅋㅋ

무난히 쉘터 자리를 찾을만한 순탄한 이동.

그러나 항상 모든 것엔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하기 마련인 걸까.

반짝.

문득, 팀원의 신호가 시야에 깜빡였다.

붉은색으로 가쁘게 점멸하는 점.

"···뭐야. 크보님? 방금 봤어요?"

"네."

모드 특성상, 팀 보이스가 불가능한 [생존 모드]에서 유일하게 가능한 신호.

─팀원의 구조 요청이다.

"가깝네요. 구하러 가죠."

"으유···뭔 초반부터···몬스터라도 만났나?"

구조 신호를 보낸 이는 함께 출전했던 여성 게이머.

식량이라도 부족한건가?

그는 턱을 쓰다듬다가 주머니 두둑하게 움직이는 식량을 챙겼다.

여차하면 나눠줄 생각,

"크, 크보님? 왜 그렇게 웃으시는지···."

"네? 뭐가요?"

"아, 아닙니다."

싱거운 사람이군.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 72화-제 점심이죠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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