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화-대격변 >
결론부터 말하자면, 유저들에게 부여된 알 수 없는 열쇠는 아직 사용할 수 없었다.
일주일 후 돌아오는 월요일.
올오버에서 공지한, 열쇠를 사용할 수 있는 날.
골드 계급에 도달하지 못한 이들, 혹은 평소 계급전에 큰 중점을 두지 않았던 이들을 위한 조치였다.
"...연차 얼마나 남았지?"
"제발. 중댐. 제발...저 나가서 올오버 해야합니다!!"
"이번 주말에 데이트? 미쳤어?...아니지. 자기양. AOS 좀 잘하지? 올오버 듀오하자."
"바텀아...제발 죽지만 마. 제발...안돼!!! *새끼들아!!!"
그리고 그건, 아직 골드 계급에 도달하지 못한 이들에게 있어 그때까지 계급을 올려놓으라는 통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패치 내용이 공개되고 다음날.
올오버는 그야말로 난리통이나 다름없었다.
골드 계급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은 일상까지 반납한 채로 계급전에 열중했고, 골드 계급의 끝자락에 걸려있는 이들은 마치 특권이라도 가진 거처럼 행동했던 것이다.
흔한 말로 고의 트롤.
지금까지 있어왔던 게임처럼 단순히 계급을 부여받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무려 자신이 직접 꾸밀 수 있는 캐릭터의 '생성권'이 걸려있는 한 번 한 번의 매치.
예전 PC시절에도 거의 없다시피한 보상따위에도 절박했던 유저들은 얼마든지 존재했던 걸 생각해보면, 이번 올오버 유저들이 얼마나 불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수준.
"제발...제발요. 서폿님. 저 승격전이에요. 이거 이기면 열쇠 받는단 말이에요. 제발...."
"우하하하하!! 너 같은 놈은 올라갈 자격이 없어!"
[SYSTEM]의심되는 플레이와 언행이 감지되었습니다.
[SYSTEM]추가 1회 적발 시 알 수 없는 열쇠가 몰수됩니다.
[SYSTEM]사유 : 고의 트롤
"헉?"
물론 이런 현상은 올오버측도 인지하고 있었다는 듯 발빠른 대처를 보여주었다,.
게다가, 한 번 걸려서 몰수당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 최소한 남은 게임이라도 열심히 할 수 있도록 하는 현명한 조치.
어뷰징 역시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1인당 1계정룰을 준수하고 있는 올오버였기 때문에, 자신의 소중한 열쇠를 버려가면서 어뷰징을 시도하려는 이는 없었기 때문.
오히려 그것보단, '알 수 없는 열쇠'의 사용 권한을 돈을 주고 사들이는 이들의 존재가 이슈가 되었다.
"열쇠 하나에 10만원? 뭐야. 개꿀이네."
"아싸. 꽁돈."
계정당 1개를 지급하는 알 수 없는 열쇠.
고작 그 정도에 넘기기에는 저렴하지 않냐는 의견도 많았지만, 미성년자들에게 있어서는 큰 돈.
열쇠를 사고 파는 구매사이트가, 단 하루만에 슬금슬금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걸 뒤로 하고, 커뮤니티나 기사 등을 확인하는 걸로 시간을 보내던 크로스보우.
"...세상을 바꾸는 게임...이라."
그는 그런 문구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신예지에게 귀국 기념할 겸 오랜만에 맛있는 걸 사준댔더니, 그를 끌고 온동네 음식점.
가게 내부에 놓인 티비, 뉴스의 헤드라인이었다.
-"올오버입니다. 어제 점심, 올오버의 본사에서 파격적인 공지 사항을 올려 수많은 게이머들의 이슈가...."
가상현실게임이 어느새 이런 뉴스에도 계속해서 등장하는 수준이 되었구나. 크로스보우는 내심 신기하게 생각했다. 자신만 알던 뭔가가 갑자기 이슈가 된 기분.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방송을 켜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어제 시도해본 결과 아직 열쇠는 사용할 수 없다.
게다가 트리키 뷰의 다른 방송을 확인한 결과...이상하게도 시청자들이 평소의 절반 정도 밖에 되지 않는 모습.
시청자들 모두 제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계급전을 돌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진짜 뭐가 바뀌긴 바뀐 거 같네."
그의 앞에서 순두부찌개에 밥을 말던 예지. 그녀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보다가 그렇게 말했다.
"그런가?"
그러나 크로스보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주변을 둘러보는 모습.
"평소랑 똑같은 거 같은데."
"오빠. 오늘 일요일이야."
"...오."
그는 다시 주변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있는 가게는 버스 정류장과 마주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면 버스에 타는 승객이 평소보다 조금 적은 편이다.
체감되는 수준까진 아니지만...일요일인 걸 감안하면 확실히 조금 줄어든 모습.
연령대를 가리지 않는 올오버의 위력이었다.
"그러고보면 그렇네."
"뭐, 어차피 이번 일주일만 그렇고 금방 또 미어터지겠지만."
"다음 주 월요일까진가."
"응. 그래서 생각 좀 해봤어?"
신예지의 질문. 캐릭터를 어떻게 만들거냐는 질문이다.
크로스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어떤 느낌으로 할 지 생각해둔 건 몇 개 있어."
"오빠하면 또 저격이 빠질 수 없는데."
"저...격...?"
"어? 앗. 아, 아니! 저격! 실제로 총 쏘는거!"
그는 피식 웃고는 말을 이었다.
"우선은 사용하는 에너지를 설정하게 돼 있을거야. 마나를 베이스로 만드는 캐릭터, 혹은 기력 베이스...뭐 이런 게 대표적일테고, 피로도 개념이나 전설의 리그에 나오는 분노, 투지, 야성...뭐 이런 개념도 가능한 거 같더라고."
"와. 작정했네. 올오버."
유어 캐릭터즈 올 오버.
이젠 정말 '당신의 캐릭터들'이다.
"거기에서 각각 부여된 포인트를 소모해서 '스킬'을 만드는건지?"
"뭐, 그 전에 무기도 선택해야겠지만...일단 그런 셈이지."
"재밌겠다. 유저한테 캐릭터 디자인을 맡긴다니."
고개를 끄덕이는 신예지.
크로스보우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그녀의 반찬을 뺏으며 물었다.
잠시 젓가락 싸움이 오고 갔다.
"근데 생각해보니까 넌 왜 안하냐."
"뭐, 뭐...? 가끔 몰래 하고 있는데...."
"아니. 올오버."
발동을 걸려는 걸 잘라버리며 묻자, 그녀는 이쪽을 흘겨보다가 생각에 잠겼다.
"...그냥. 뭔가 흘러가다보니 한 번도 안해봤어."
"캡슐이라도 선물해줄까?"
"음...아니. 있어도 잘 안할 거 같아. 난 보는 게 더 재밌던데."
가상현실을 아예 안해본 사람이라니.
60을 넘기는 중년들도 올오버를 하는 요즘 시대에는 굉장히 드문 인간상이다.
그러나 크로스보우는 어깨를 으쓱이고 말았다.
그녀가 가상현실을 썩 탐탁치 않아하는 게 하루이틀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쩔거야? 앞으로 일주일 동안."
"방송은 계속 해야지. 근데 조금 축소시켜서 할까."
"흐음. 딱 이 시기에 광고라도 찍으면 좋을텐데."
그것도 그렇다.
크로스보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숟가락을 내려놨다.
"아이스크림이나 먹으러 가자."
입 안이 텁텁한 참이다.
***
아무도 없던 가게를 마지막으로 귀가한 크로스보우.
그는 하릴없이 커뮤니티를 바라보고 있었다.
[진짜 눈물난다....]
-골드!!! 빼애애애액!! 올려보내줘!!
└ㅋㅋ골드? 어림도 없지
└계단 밑 벽장이 네 집이야!!
[진짜 나이먹고 이게 무슨 짓이냐]
-장범존 형은 올라갔을까...?
└그 형은 이미 플레야~넌 실버고~
└개새끼야
└ㅋㅋㅋ실딱이 부들부들잼~앙~
"흠."
커뮤니티는 온통 골드에 가고 싶어하는 유저들과, 그를 놀리는 고계급의 유저들의 모습이 한창이었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악플을 달고 돌아다니는 유저가 한 명.
보아하건데 아마 골드 하위 계급쯤 되는 모양.
크로스보우는 화면을 보며 턱을 쓰다듬다가, 돌연 벌떡 몸을 일으켜 세웠다.
트리키 뷰 타 방송들의 방제를 확인한다.
[골드 켠왕 on]
[알수없는열쇠가먼데 씹덕아]
[골드 못가면 사람이 아닙니다]
"역시."
스트리머들 역시, 다들 골드 계급을 달기 위해 고분분투 하는 모습들.
일주일 안에 골드를 가는 것.
이게 하나의 컨텐츠가 되어 거대한 흐름을 이루려는 조짐이 보였다.
"강의 방송 좀 해봐야겠네."
물론 크로스보우를 움직인 건 그런 계산들은 아니었다.
단지 많은 사람이 골드를 달아서 자신이 예측할 수 없는 기발한 캐릭터를 만들어주길 원하는 것.
예전에도 세이크라는 이름으로 공략을 자주 올리곤 했으니 이상할 것도 없다.
"...그 쉬운 걸 왜 못하지."
그리고 아주 약간은, 그런 생각도 있었다.
[스트리머 '크로스보우'님의 방송이 시작 되었습니다!]
***
-크하
-크하
-오늘 휴방이람서?
-1등
-휴방날에도 일을 하는 스트리머가 있다? 뿌슝빠슝
"안녕하세요. 사랑하는 시청자 여러분."
['크보쨩핥짝'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오팬무?? 쉬는날 크보쟝의 팬티는 무어ㅓ?
언제나와 같은 후원.
크로스보우는 어깨를 으쓱이곤 아무렇게나 대답하곤 말았다.
"오늘 휴방인데도 불구하고 방송을 킨 이유는...."
-사람 안차는거봐라ㅋㅋㅋ
-석궁단 놈들 아는 척 졸라 하더니 브실이었네
-ㄹㅇ..ㅋㅋ...ㅠㅠ
-님은 가서 게임 안하고 뭐함
-아이언이라서 포기했어요...
"바로 아이언님. 아이언님 같은 분들을 위해서입니다."
-저용?
-아ㅋㅋ아이언이라고 부르지마!!!
-ㅋㅋㅋ두 번 죽이는거봐
-크보한테 불렸다고? 평생 술안주거리ㄷㄷ
"오늘 할 건 바로 '계급 올리는 팁'을 여러분께 전달하기 위해섭니다."
크로스보우는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다르게 떨떠름한 반응의 채팅창.
-고계급 팁을 받고 티어가 올랐음 브실에 없죠 이미ㅋㅋ
-ㄹㅇㅋㅋ천재는 평범한 사람을 이해못하는 법이랫움
-??? : 이걸 왜 못하지? 똑똑. 뇌세포님 계세요?
그럴만한 상황이었다.
올오버에 입문하고 단 한 달.
엄청난 속도로 배틀로얄과 균방전에서 최고계급을 찍어 본인의 재능을 증명한 이.
거기서 멈추지 않고 네이션스 컵까지 나가, 이제는 올오버 최고의 게이머로 손꼽히는 이.
'신은 미국에 로키라는 천재를 내려주시고 한국에는 직접 내려오셨다.'
이런 말이 외국 커뮤니티에서 우스개소리로 돌만큼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준 게이머.
모두 크로스보우를 표현한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렇게들 생각하시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크로스보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씨익 웃는 모습.
어느새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헬멧을 주워 쓴 상태였다.
"오늘 알려드릴 건 오로지 정말 '계급을 올리는 방법'입니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을 추가했다.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요."
-???
-??
두 말 할 거 없다.
"자. 못 믿는 분들이 많아보이니 바로 보여드리겠습니다."
크로스보우는 시스템을 이리저리 조작해서, [1대1 모드]에 진입했다.
[SYSTEM]환영합니다! 똥의호흡님!
그리고 단체전과 개인전 중 선택하는 건 바로 개인전.
"가장 빨리 계급을 올리는데에는 1대1 계급전이 최고입니다. 이건 많은 분들이 아시리라 믿습니다."
휙휙 빠르게 지나가는 메시지들.
[SYSTEM]곧 게임이 시작됩니다!
게임은 금방 매칭되었다.
현재 크로스보우의 1대1 계급은 골드보다 두 단계 더 높은 다이아.
당연히 매칭 상대도 다이아였다.
"...어?! 크보?!"
이쪽을 알아보는 상대의 말을 차단해버리는 크로스보우.
그는 설명을 이어나갔다.
"지금부터 기술 두 개만 써서 이기는 거 보여드리겠습니다."
-에이
-잡상인 금지요
-약팔이on
-ㅋㅋㅋㅋㄹㅇㅋㅋ실딱이들한테 알려줘도 골플 절대 못와요~
믿지 못하는듯한 채팅창의 반응.
그러나 크로스보우는 씨익 웃을 뿐이었다.
"야. 너두 골드 갈 수 있어."
어딘가 비릿한 웃음이었다.
***
올오버.
수많은 게임 중 어느 1대1 모드
개인전.
"악! 아악!! 아오. 열 받아!! 물러서지 마!! 맞서 싸워!! 크로스보우!!! 아이고난!"
누군가의 공허한 외침이 맵에 메아리치고 있었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시청자들에게 설명하는데에 바빴던 것이다.
"자. 상대가 지금 다이아인데도 아무것도 못하죠? 이렇게 장판을 깔아버리면 결국 틱뎀이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피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니까요."
"야이 나쁜 자식아!"
"그리고 냅다 슬로우 걸고 도망치세요. 붙게 놔둘 필욘 없습니다. 최대한 도망가다가 틈 보이면 이렇게."
딱!
"악! 내 머리!"
"뚝배기를 한 대씩 때려줍니다."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ㅅㅂㅋㅋㅋㅋ
-선생님 이건 얍시잖아요ㅋㅋㅋ
-강남1타강사 크로스보우ㅋㅋㅋ
-개웃기네ㅋㅋ
-진짜 개얍실하네
정말로 그랬다.
크로스보우가 보여주는 건 그야말로 야비함의 극치를 달리는 방법.
격투게임에선, 흔한 말로 '얍시'라고도 불리는 행위였던 것이다.
"이익...안 쫓아갑니다. 그냥."
"그러다보면 상대가 쫓아오지 않는 쪽이 되기도 합니다. 그럴 땐...."
이상한 모션으로 도발하는 크로스보우.
그러자 상대편의 반응이 썩 볼만했다.
"으아아악! 개빡쳐!!"
-ㅋㅋㅋ광대on
-오늘 텐션 무냐고ㅋㅋㅋ
-팡머ㅋㅋㅋ
-크커ㅋㅋㅋ
"자. 이러다보면 결국 이깁니다. 왜냐면 제한시간이 있거든요."
[SYSTEM]Time Up!
[SYSTEM]백 팀, 크로스보우 승리!
천재가 하는 게임 강의래봤자 다 똑같지 않냐.
항상 그렇듯 말도 안되는 테크닉을 설명해놓고는 참 쉽죠를 외치지 않겠는가.
그런 고정관념을 정면에서 부수는 공략.
-이게...세이크인가...
-외국에서 극찬받던 그 크보가 맞냐?
-"누""누""누""누"
-ㅋㅋㅋ개웃기네ㅋㅋ
지금은 그저 웃음과 약간의 감탄으로 일관하고 있는 시청자들.
그러나 그들의 웃음은, 게임이 몇 판인가 더 진행됐을 때 조금 굳고 말았다.
-...잠깐만
-원거리 상대로도 하는 방법이 있다고?
-본인 마스터인데 살짝 당황했다
"만약 안 통하는 상대하고 매칭됐다? 그럼 바로 재대결하지 말고 도망가세요."
거기에 추가해서 더욱 더 야비한 방법을 알려주는 크로스보우.
그는 매치에서 빠져나오며 빙긋, 웃었다.
"편집자님. 이 영상부터 편집해서 바로 올려주세요."
"...으아아악! 크로스보우!!"
"오늘부터 크보 1호 안티팬한다...으드드득...."
몇 판인가 강의를 찍는동안 희생된 유저들의 비명소리가 조금 있었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는 크로스보우.
-ㅋㅋ에이 그래도 솔직히 이거 알려지면 바로 파훼법 나올듯
-ㄹㅇㅋㅋ
"글쎄요?"
그 웃음이 마지막.
그리고, 반응은 생각보다 빨랐다.
[크로스보우가 계급전에 독을 풀었다!!!]
-살려줘! *발!!!
그 글을 처음으로, 엄청난 반향이 일기 시작했다.
< 76화-대격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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