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화-재능의 차이 >
오른손엔 정글도로만 보이는 단출한 날붙이가 하나.
그리고 권총이 한 자루.
카운터는 아직도 그 경기를 기억한다.
8강전.
러시아와의 경기.
크로스보우라는 닉네임의 남자가 보여줬던걸.
[한국의 이 선수···그야말로 괴물입니다. 이번 배틀로얄도 오로지 혼자 힘으로 모든 위기와 고난을 이겨냅니다···!]
[그에게 통할 전략이란 게 과연 있을까요···개개인의 피지컬이 세계 정상급이라 불리며, 우승 후보 중 하나던 브라질을 땅바닥에 처박아버립니다.]
영어 해설.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이 봐서, 이젠 대사마저 모두 기억하는 수준이 된 그 영상.
미국이 1대20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유의 대부분을 차지하기도 했던 경기.
러시아가 크로스보우를 잡기 위해 세운 전략은 파격적이었다.
카운터는 영상을 중간 시점으로 다시 돌렸다.
어디쯤이었지.
그래, 여기.
러시아의 게이머가 이렇게 외치는 시점.
-"동양인 자식! 그 자리에 멈춰라!"
-"속박 들어갔습니다! 3초!"
화면이 빙글 돌아가 크로스보우의 시점으로 변한다.
헬멧 아래로 보이는 입가.
선명한 미소.
-"호오."
정말로 즐겁다는 듯한 추임새와 함께, 그는 검을 휘두른다.
상단을 좌에서 우로, 일검.
스킬을 모두 갈라버리는 일격이었다.
그리고, 그 회전력을 버리지 않고 반쯤 몸을 돌리며 격발.
경기 당시엔 그 누구도 간파하지 못했지만, 오른손에 들고 있던 칼은 바닥에 놓아버리며 장전 손잡이를 마구 잡아당기는 순간적인 연발사격이었다.
나중에 슬로우모션으로나 파악할 수 있던 퍼포먼스.
-"크악?! 시, 시야가! 젠장. 잠깐 빠질게!"
-"크윽···뭐?! 나도 시야가!"
-"이런 젠장···!"
가장 강한 데미지를 줄 수 있는 눈.
단 한 발의 빗나감도 없다.
심지어 빗나가는 것처럼 보였던 탄환도, 어딘가에 부딪혀 도비탄이 되어 데미지를 입힌다.
기껏 3초 속박에 성공했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데미지를 입는 러시아.
상황은 7대1.
후방에서 지원사격을 맡아 건물 하나를 차지하고 있던 크로스보우, 그를 죽이기 위해 인원분배를 많이 한 상황.
···그리고 그럼에도, 아무렇지 않게 바닥에 떨어진 정글도를 발로 차올려 손에 쥐는 크로스보우.
-"꽤 하는군. 피하려고 하다니."
마치 흥미로운 것을 본다는 듯한 말투였다.
그는 지체하지 않고, 잠시 시야를 잃은 이들을 도륙 내기 시작했다.
그 테크닉이 말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티잉-.
잔뜩 긴장한 상태의 이들.
칼날을 권총으로 살짝 쳐 쇳소리를 내는 것으로 박자를 빼앗는 크로스보우.
-"···!"
-"···?!"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이었다.
달려들어 상대의 발목을 끊어내 버리는 모습.
동시에 바짝 몸을 붙인다.
타앙-!
-"뭐, 무슨···크아악?!"
초근접 상태.
턱에 총구를 대고 격발하며 적을 방패로 삼는다.
그리고 다시, 발로 걷어차며 방패로 삼은 적의 겨드랑이 사이로 다시 한 번 격발.
타앙-!
-"미친···!"
누적된 데미지를 한 번에 폭발시키며 단번에 두 명을 기절시킨다.
거리가 떨어진 상태에선, 아무리 죽여봤자 다시 살리려고 드는 상대에 맞춘 공략.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전방의 벽까지 달려가 등을 기대 스킬의 범위에서 회피.
마치 닭싸움이라도 하듯 발을 들어 올려 허리춤에 달고 있던 섬광탄을 짓이겨 떨어뜨린다.
톡.
그리곤 그걸, 발로 차올려 입구로 토스해버렸다.
번쩍-!
그때 약속이나 한 것처럼 진입하려던 적.
-"?! 누, 눈이···!"
이 순간, 지켜보던 사람들은 크로스보우가 실수한 걸로만 착각했었다.
크로스보우도 섬광탄의 범위 안에 있었기 때문.
그러나.
-"크아악! 이런 빌어먹을 자식─!!"
1킬.
-"지베르! 젠장···! 크억?! 무슨···?"
2킬.
기절시켰던 적들이 3킬, 4킬째.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그리 큰 문제가 되지 못한다는 듯
-"가만히 좀 있어."
상대의 숨통을 단숨에 끊어버리는 크로스보우.
7명이나 되는 인원을 상대로, 기절한 팀원을 다시 살릴 잠시의 틈새도 주지 않는 플레이.
마치 곡예를 하는듯한 전투.
그러나 그 장면에서 이 경기를 보던 모든 이들은 깨달았다.
매 움직임이 전부, 치밀한 계산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라는 걸.
마침내 5킬.
그리고 남은 두 명은 기절상태.
-"···크흐흐. 미친놈처럼 강하군. 하지만 네 패배다. 크로스보우."
그러나 그의 분전에도 안타깝게도, 러시아의 전략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당시에는 파격 그 자체라 불렸던 전략.
무려 7명의 게이머들은 버림패였다.
아군 7명을 희생양으로 삼아 건물을 통째로 날려버리는 것이 그들의 전략.
조금 먼 거리에서 대폭발 스킬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흐흐, 흐흐흐. 노데스? 네놈의 커리어에 우리 러시아가 커다란 금을 그어주마."
그것도 하나가 아니었다.
게임 판도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광역기가 준비된 것만 4개.
건물을 단번에 일소一掃시키기에 충분하다 못해 넘칠 정도의 화력.
사실상, 절반도 훨씬 넘는 전력을 크로스보우 단 한 명에게 투입한 것이다.
-"무슨 말이라도 해보시지!! 잘난 양반!! 네 패배다!!"
그러나 크로스보우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저 아까 전부터 건물 창문을 통해 바깥을 바라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금속성으로 된 까만 철가면이 침묵을 지킨다.
-"···."
마치 저 멀리를 가늠하는 듯한 모습.
-"···총 4명이군."
-"···그, 그래!! 더 원 그라운드? 총이나 쏴대는 그깟 캐릭터로 막을 수 있을 거 같나!"
-"과연. 너희를 버리고 다 같이 죽이려는 건가."
그에 그의 행동은 간단했다.
상대의 말대로 정말 총을 쏴댄 것이다.
···정확히는, 저격총을 들어 수 키로 밖의 스킬 시전자를 저격하는 것.
그가 선택한 대답이었다.
-"···2,540미터. 오차가 3미터 가량."
틱틱틱틱.
영점을 맞추는 소리.
순간, 지켜보던 모두가 숨을 잊는다.
-"···서, 설마. 저격하겠다는 거냐? 이 거리를? 말도 안 되는 소···! 읍!"
콱.
그는 떠드는 입을 짓밟아버리며 속삭였다.
-"조용히."
그리고 찰나.
타아아아앙──!!!
격발.
철컥.
팅···-
탄피가 튀어나왔다.
정적.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 하! 하하! 그럼 그렇지!! 올오버는 현실과 다름없어!! 풍향도 풍속도 읽지 않은 채로···?"
그러나 그때였다.
[SYSTEM]'KR_Crossbow(더원그라운드)'님의 M24를 사용한 헤드샷으로 'RU_Zix(전설의리그)'님이 기절하였습니다!
-"······뭐?"
그 반응에도 크로스보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타아아앙─!!!
철컥.
타아아아앙───!!!!
찰컥.
묵묵한 연속 저격.
그리고 킬로그.
[SYSTEM]'KR_Crossbow(더원그라운드)'님의 M24를 사용한···.
[SYSTEM]'KR_Crossbow(더원그라운드)'님의 M24를 사용한···.
-"······말도, 안돼."
반응은 마치, 억지로 짜낸 듯한 목소리였다. 어쩔 수 없는 경탄을 티내지 않으려는 듯.
그러나 크로스보우는 혀를 찰 뿐이었다.
-"하난 숨었군."
탄이 도착하는데 오래 걸리는 만큼 숨어버리면 죽일 도리가 없다.
그리고 그 모습을 확인한 적은, 머리를 마구 저었다.
주눅을 떨치려는 행위다.
-"······.하, 하하···그래. 하하하하!! 그래!! 4명!! 이럴까 봐 보험을 4개나 들어놓은 거다!! 크로스보우!! 아무리 네놈이라도 이젠 더이상 무슨 수를 써도···?"
꽈악.
크로스보우는 시끄러운 입을 막으며 기절한 적의 멱살을 잡아올렸다.
-"쉬잇."
-"······!"
그리곤 그 멱살을 그대로 질질 끌고, 건물의 옥상으로 향했다.
-"무, 무슨 짓을!!"
이젠 정말로 막을 수 없는 광역 대폭발 스킬.
기상천외한 파훼법을 보여줬던 크로스보우가 첫 데스를 기록하는 순간.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영상을 보고 있는 카운터 자신도 마찬가지로···
-"으아아아악!?"
슈우우···-
────콰아아아아앙──!!!
-"···크아아악!!! 크로, 크로스보우──!!!!"
···이런 대처를 할 수 있다고는 지금도 생각할 수 없다.
폭탄이 낙하하는 소리.
그리고 대폭발.
──공중 폭발이었다.
크로스보우가 날아오는 폭탄에 기절한 적을 집어던져 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유저에 맞은 폭탄이 그대로 폭발한 것.
···보통이라면, 거대한 폭탄이 주는 위압감 때문에 시도도 못 하는 짓.
스킬 판정을 정확히 알고도 실수할까 하지 않는 테크닉.
그러나 크로스보우는, 아무렇지 않게 러시아의 노림수를 정면에서 돌파해냈다.
"···이게, 천재."
카운터는 다시 한 번 소름이 돋는 걸 느끼며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영상을 멈췄다.
"···그만해야겠지. 역시. 프로고 뭐고."
팀 TK에 슈미츠가 이적 의사를 표했다.
이례적인 일.
거기에 심지어, 카운터와 주력모드, 그리고 포지션이 정확히 겹친다.
그녀와 카운터의 재능 차이는 명확.
이미 지난 네이션스 컵에서 성사된 맞대결에서 형편없이 져버렸기에, 더욱더 그랬다.
···설 자리가 없어진 기분이었다.
"···하아."
당장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연습실에 틀어박힌 슈미츠.
자신감에 가득 찬 모습.
조금 오만한 성격인 듯 보였지만···천재들은 모두 그렇다.
적어도 카운터가 봐온 결과는 그랬다.
"···.크보형 방송이나 볼까."
···오로지, 크로스보우만 예외였다.
그는 눈물이 날 거 같은 기분을 참으며 중얼거렸다.
***
"눕지 않습니다."
"흐이. 흐에에에···."
한심한 소리를 내며 널브러지는 이세린.
"아직 차봉을 이긴 것뿐입니다. 똑바로 서라! 이세린!"
"네, 네에···흐이이이."
"이상한 소리 내지 않습니다."
크로스보우가 열심히 그녀를 독려하고 있었다.
물론, 정말로 열심이냐는 질문에는 조금 대답하기 곤란한 면이 있었지만···적어도 같이 매칭된 두 명의 팀원처럼 신이 나 있진 않았던 것이다.
-"크크. 방송 직관 개꿀잼."
-"뾰, 뿅님 화이팅···뿅뿅단으로서 이럼 안 되는데···재밌네요."
"나쁜 놈들···진짜 나쁜 놈들···."
하도 굴려진 탓일까.
크로스보우 앞에선 영 말을 잘 못하던 이세린의 입이 슬슬 열리고 있었다.
이젠 드립까지 치기 시작하는 모습.
"크, 크보님···진짜 쟤랑 싸워요?"
"싸웁니다."
"쟤 기분 안 좋아 보이는데···."
선봉과 차봉에게서 승리한 세린.
3번째 매치업.
상대는 모 게임에 나오는 인외 몬스터였다.
몬스터의 몸에 유저 얼굴만 딸랑 달려있는 모습이 징그러움 그 자체.
감각이 꼬이는 느낌이 든다는 이유로, 플레이하는 유저가 정말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캐릭터, '별들의전쟁' 출신 캐릭터였다.
"자. 이길 수 있습니다. 제 말만 잘 들으면 됩니다."
"···크보님. 저 캐릭터 스킬 모르잖아요."
"알걸요?···아마."
"···나쁜 놈아!"
빼액 우는 세린의 모습.
채팅창은 오로지 ㅋㅋㅋ로만 도배된 상태였다.
그리고 시작된 매치.
"상대는 원거리 암살자 종류입니다. 세린 님. 우선은 맵을 넓게 쓰는 게 중요합니다. 상대의 첫 스킬 이후 바로 거리를 벌리고 도망···."
"···버, 벌레? 히이이익!"
"···."
생각보다 더 격한 반응을 보이며 도망가는 이세린.
잠깐 침묵을 지키던 크로스보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말도 잘 듣는 모습 참 보기 좋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아ㅋㅋ지가라 캐릭터는 어쩔수없지ㅋㅋ
-ㄹㅇㅋㅋ벌레스킬 개징그러움ㅋㅋ
그리고 크로스보우는 구체적인 훈수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픽은 시계워치의 시간소녀, 과거 우연히 만났던 때와 같은 캐릭터.
"신호 주면 좌측 대각선 파고들며 점멸 사용합니다. 3···2···1. 지금."
"우욱."
그리고 그가 말한 타이밍에 정확히 날아드는 스킬.
"좋습니다. 계속 점멸 하나 아낍니다. 상대가 벌레 소환하면 침착하게 터뜨려서 궁극기 채웁니다."
"으으···네."
-크보 훈수 생각보다 되게 쉽게 하네
-ㄹㅇㅋㅋ자기 전용 테크닉 설명할 땐 자비없는데
-ㅋㅋ거의 예측 수준인데 저게 쉬운거임?
-듣는 사람은 일단 쉬움ㅋㅋ
-똥닝겐들 참가라가 불쌍하지도 않은것데스웅? 테에엥!!
-?너 밴
'우리 아이가 잘해졌어요'.
현재 뿅맛사탕의 방제는 그것이었다.
크로스보우가 방송을 하지 않고 있다 보니, 그의 시청자들까지 다들 몰려든 상태.
채팅창 분위기가 이리저리 뒤섞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는 와중에도, 착실히 경험치를 쌓고 있는 이세린.
"이, 이겼다?"
"잘하셨습니다. 다만 급해졌을 때 스킬을 남발하는 건 자제···."
"이겼어요! 크보님! 상대 플레(골드보다 한 단계 상위계급)였는데!"
기뻐하는 세린의 모습에 크로스보우는 훈수를 멈추곤 어깨를 으쓱였다.
"그 감각 기억하셔야 합니다. 앞으로 수십 번은 더 질 테니까요. 그때 그 감각을 떠올리면서 일어나야 합니다."
"네!"
주먹을 꼬옥 쥐어보는 세린.
"좋습니다. 다음은 부장급입니다. 숨 들이마시고 고개 숙이지 않습니다. 가슴 당기고."
"네에. 근데 부장급이면 계급이···?"
"다이아입니다."
"···넵."
조금 떨면서도 의지에 찬 모습이었다.
열쇠 획득 가능 시간, 오늘 자정까지 6시간 남짓.
현재 계급, 실버 3.
목표, 골드 계급.
< 78화-재능의 차이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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