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화-재능의 차이 >
그렇게 계속해서 이어진 훈수 방송.
진행이 생각보다 훨씬 빨랐다.
세린의 습득 속도가 꽤 괜찮은 덕이었다.
"2초 후 상대 우상단으로 집탄. 탄 소모 15발까지. 후 점멸 두 번 사용합니다. 상대 뒤로. 2···1."
"이잇···!"
드르르륵-!
번쩍-. 번쩍-.
그에 맞춰 크로스보우의 훈수 내용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다.
-훈수 수준 ㄹㅇ실화냐?
-뭔 2초 후 벌어질 일을 예측하네;
-세린이 잘하는 건 둘째치고 훈수가 미쳤누;
현재 계급은 실버1.
4시간 동안 패배와 승리를 반복하며 기어 올라온 계급이었다.
그렇게 종료까지 이제 고작 2시간뿐.
슬슬 다급함이 올라올 만한 시간대가 되었다.
"하아···흐으···이겼다···."
"고생했습니다. 다만 쓰러지지 않습니다."
"네에···."
"지금 퍼지면 다신 못 일어납니다."
"네···!"
-분위기 인간극장행ㄷㄷ
-아아, 이것이 '청춘'인가···
-눈물나누ㅋㅋ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이미 크로스보우가 게스트로 참여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15시간째 방송 중이던 이세린.
현 시점에는 이미 19시간을 넘은 상태였던 것이다.
"하아···하아···킁."
"···콧물 먹지 않습니다."
"···!!! 아, 안 먹었어요!"
"무슨 맛이에요?"
"좀 짭···안먹었다니까요!!"
-ㅋㅋㅋ여···캠···콧..물···짭짤..메..모···
-후리가케냐?
슬슬 한계에 다다르고 있는 게 명확한 상황.
그러나 포기하겠다는 소리는 추호도 꺼내지 않는 이세린.
그에 크로스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잘하셨습니다."
"···네."
그래도 이대로 가면 제시간 내에 올라가겠군.
내심 그렇게 확신했던 것이다.
"다음으로 가죠."
그러나 모든 일이 예상대로만 흘러가진 않는다는 걸까.
그들의 행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건과 맞닥뜨렸다.
종료 직전.
남은 시간 1시간.
실버 1 100포인트.
골드로 향하는 승격전.
그곳에서 마침내 처음으로, 부장급을 쓰러뜨린 이세린.
"허억···흐으으···이겼다···."
한 명만 더 이기면 정말로 올킬.
지더라도 이 정도 분전이면 정말 대단하다고 칭찬해 주려던 때.
돌연, 후원 하나가 도착했다.
['저기요크보님'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저 방금 죽은 청팀 선봉인데···저희 팀 대장 크보님 저격인거 같아여; 계속 크로스보우 거림···
"···저격?"
크로스보우의 표정을 일순 굳게 만드는 후원이었다.
***
"블래드 형. 블래드 형! 큰일 났어!"
"뭐야···누구···아. 카운터. 너구나."
블래드는 나른하게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늘어졌다.
"그래. 큰일이야 항상 나지."
"아니. 그럴 때가 아니라니까?"
호들갑을 떠는 말에 인상을 찌푸린 블래드.
"뭔데."
"···슈미츠가, 슈미츠가···!"
"죽기라도 했어?"
"어? 음···그건 아닌데."
"아쉽겠네."
조금 차가운 대꾸.
본래도 살가운 것과는 거리가 먼 스타일이었지만, 네이션스 컵 이후론 근본적인 뭔가가 바뀐 듯한 말투의 블래드.
그러나 카운터는 아랑곳 않고 말을 이었다.
"근데 곧 죽을 거 같아."
"···왜."
어이 없는 듯한 반문에 카운터는 제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아까부터 계속 캡슐에 들어가서 뭐하나 했는데···."
"크로스보우 형? 뭐 어쩌란 거지?"
"화면 닉네임을 봐봐."
그제야 고개를 들어 화면을 바라보는 블래드.
"...이건?"
그 순간, 나른하던 그의 눈동자에 활력이 돌았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있었던 것이다.
[백 팀 선봉]
[뿅세린]
vs
[청 팀 대장]
[Schmidtz]
***
"···슈미츠?"
크로스보우가 참여하고 나서, 흥미로운 흐름을 보여주던 뿅맛사탕의 방송.
간간히 훈수나 던지며 구경하던 채팅창은 한바탕 난리가 났다.
-찐임?
-짭아님?
-걍 어그로 아님?
-계급이 오버로든데요?
-이례적 계약해지 했다던데 한국온건가ㄷㄷㄷ
잠시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빠진 크로스보우.
그리고 그는, 채팅창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게 4강 영국전 당시 상대의 이름이라는 걸 기억해냈다.
"···계약 해지요?"
그쪽으로는 영 관심이 가질 않았던 탓에 몰랐던 사실.
그렇다면 기가 막힌 우연이군.
크로스보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결론지었다.
단순히 한국 계급전이 돌아가는 양상을 파악하려고 게임을 돌린 거라 생각했기 때문.
설마 상대의 목적이 다른 무언가에 있을 거라곤 추호도 생각지 않는 모습이었다.
"···크보님. 저···."
"어쩔 수 없군요. 지더라도···."
그런데 그때였다.
채팅창에서 묘한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뭐지? 저사람 지난 전적들 다 탈주(게임 나감)인데?
-ㄹㅇ??
-ㅇㅇ검색했는데 싹 다 탈주로 뜸
-오버로드 계급이 탈주를? 띠용
"···오호라."
거기까지 들었을 때 드는 확신.
과거 수많은 저격에 당했던 경험으로 미뤄보건대, 이런 경우는 대부분─
-전적만 보면 무슨 저격러네
-저격맞는거 같은데?
['크보님얘좀봐요'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탈주하기 시작한 시간이 정확히 크보가 방송에 합류한 시간이랑 일치; 이거 뭐임?
저격이다. 확실해.
그리고 이럴 때면 항상 느끼는, 가슴 밑바닥을 쿡 쑤시는 감각.
그 감각에 말미암아 그는 확신했다.
"···웃기지도 않는 상황이네. 이거."
-에이 저격들 크보가 다 뭉개놨는데 설마 오겠어 하긴
-ㄹㅇㅋㅋ걍 한국 서버 맛보러 온듯
시청자들의 부정.
그러나 다음 순간이었다.
[SYSTEM]곧 전투가 시작됩니다!!
[SYSTEM]맵 : 파괴된 예술가들의 거리
당연하다는 듯 맵에 나타난 슈미츠.
홍대 거리에서, 금발의 외국인이 소리를 지른다.
아주 당당한 태도.
"──크로스보우!!"
당장의 상대편인 세린의 얼굴은 보지도 않은 채였다
"─드디어 성공! 겨우 매칭됐네. 크로스보우!!"
"···."
"결투야! 이번엔 내가 이긴다!! 그때완 다를 거니까!"
그리고, 그 모습에 삽시간에 굳어지는 채팅창의 분위기.
-; 저격;
-아···
-그가 온다···
-ㅠㅠㅠ
"내 연락을 감히 씹어? 당장 맵 위로 끌어 올려주마! 크로스보우! "
어느새 크로스보우의 표정이 싸늘히 굳어있었다.
-"...혀, 형님?"
-"쉬이잇!! 사탕님. 조용히 해요."
-"...위압감 수준이 무슨...."
자극받은 감각이 순식간에 맵 전체에 퍼져나간다.
맵의 구석구석이 손에 잡힐듯 감각에 걸린다.
"덤벼! 잔챙이!"
그 와중에도 헛소리를 해대고 있는 슈미츠.
크로스보우는 중얼거렸다.
"···웃기지도 않는군. 정말로."
그리고 그 말과는 다르게,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는 모습.
자신을 저격한 것뿐만 아니라, 지인의 방송까지 방해하는 행위.
심지어 모든 게이머의 꿈이나 다름없는 '캐릭터 생성권'을 앞둔 시점에서의 방해였다.
"세상이 자기 꺼라고 생각하나 보네요. 저거."
프로라면 적어도 프로다운 직업의식이 있어야 할 거 아닌가. 최소한 사람들이 다 보는 환경에서라도 비매너짓은 하지 않는 게 맞지 않겠는가.
"맵 위로 끌어올리고 싶다라."
크로스보우는 저 조그만 천방지축 꼬맹이한테 그 직업의식을 때려 박아 주기로 결심하곤 말했다.
"하늘나라로 올려보내 드리죠."
채팅창이고 뭐고, 더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
-ㅠㅠ무서워
-저러고 있으니까 진짜 인상개무섭네
-히익 함부로 말하다가 님도 주거욧!
더 이상의 훈수는 없었다.
"···크, 크보님···?"
아무런 오더도 들리지 않는 모습에, 고개를 끼긱 돌리는 세린의 모습.
"···히잇!"
그러나 그녀는 크로스보우의 표정을 확인한 순간, 황급히 다시 고개를 돌렸다.
괴물.
그런 생각이 절로 들만 한 분위기를 줄기줄기 뿜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 어쩔 수 없어···이렇게 된 이상···!'
혼자 해본다.
그녀는 쌍권총을 굳게 잡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슈미츠는 국제 대회에서도 재능으로 주목받았던 선수.
상대가 가능할 리 없었다.
"뻔해."
"···윽!"
점멸 위치를 예측 당하고 단번에 패배.
잇따라 출전하는 차봉, 그리고 중견인 이하린 모두 마찬가지였다.
다이아계급인 부장급 플레이어가 잠시 선방을 하는 듯 보였지만···.
"크악! 이런 젠장···."
"다음."
몇 합 만에 패턴을 파악 당했는지 패배.
이제, 기다리던 크로스보우의 차례다.
"···크로스보우."
그제야 긴장하는 기색의 슈미츠.
그리고 소식을 듣고 몰려온 걸까. 시청자 수 5만 언저리를 유지하던 게 어느새 8만에 도달한 상황.
열쇠 종료날인 걸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숫자.
-하이드가 간다···!
-세계 최강 찍더니 간지가 풀풀ㄷㄷ;
-위압감지리누
-사탕이 복수를 하는 것데챠앗!
기대에 가득 찬 채팅창.
그러나 그 기대는, 맵에 크로스보우가 전송된 순간 모두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
-엥??
-뭐야? 실수?
여느때와 같은 더 원 그라운드 픽.
그러나 평소와는 다른 장비.
-총이 없는뎁쇼?
-??뭐임?
-권총도 안차고 옴ㄷㄷ
아니, 정확히는 장비가 '없다'고 해야 할까.
-있기는 있는데···.
-빠따맨 무냐고
-스포)이대로 슈미츠한테 역스윕 당함
더원그가 1대1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픽이라는 소릴 듣는 건 둘째 치고, 장비마저 아예 차고 오지 않았던 것이다.
단 하나, 근접무기인 '야구 배트'를 제외하면 말이다.
즉, 야구 방망이만을 손에 들고 나타난 크로스보우.
"···뭐야. 그건."
그에 반해 슈미츠 쪽의 픽은 전설의리그 - 카밀.
4강전 때와 같은 캐릭터, 굴욕을 갚아주겠다는 의지가 돋보이는 픽이었다.
크로스보우는 픽 웃었다. 잠시 텀을 두고 대답한다.
"···너, 실수한 거 같은데···"
"아아. 이것은···'약'이란 거다."
"···뭐?"
"뭐는 무슨. 역사적으로 이게 약이었거든."
야구방망이를 들어 보인다.
"당신 같은 인간한테는요."
"···!"
그 말과 함께, 실소가 비릿한 웃음으로 화했다.
-소름ㄷㄷㄷ
-미친 설마
-하이드님...
사라졌던 채팅창의 기대가 다시금 들끓어 오른다.
[SYSTEM]각 플레이어의 시작 위치를 임의로 설정합니다.
[SYSTEM]설정된 상호 간의 거리 : 중거리
[SYSTEM]설정된 시작 위치에 동의하시겠습니까?
"동의하지 않는다."
그리고, 방송 사상 최초로, 임의 설정된 거리에 동의하지 않는 모습.
[SYSTEM]지금부터 거리 싸움을 시작합니다.
[SYSTEM]거리 싸움의 룰은 다음과 같습니다.
[SYSTEM]각 연습모드에서 받은 최고 기록에 서로 종목을 바꿔 도전합니다.
[SYSTEM]랭크를 종합 계산하여 더 높은 기록을 받은 플레이어 측에 거리 선정권이 주어집니다.
[SYSTEM]···'Schmidtz', '똥의호흡'의 연습모드 최고기록을 불러옵니다.
"···거리 싸움이라. 흥. 내가 질 거 같아? 어리석네."
로딩 중, 코웃음을 치는 그녀의 모습.
그러나 크로스보우는 묵묵히 시스템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이어 화면에 떠오른 결과창.
[SYSTEM]'Schmidtz' 전설의리그 - 반사신경 SS랭크
[SYSTEM]'크로스보우' 더 원 그라운드 - 사격술 SSS랭크
"······? 트리플 에스?"
당황하는 슈미츠.
그에, 웃음이 진해진다.
[SYSTEM]백 팀 대장, '크로스보우' 선공
쿠우웅─!
묘한 울림음과 함께,
-꿀잼각떳따!!!!
-절 대 이 겨 줘
무대가, 뒤바뀐다.
[SYSTEM]전설의리그 연습모드가 활성화됩니다.
[SYSTEM]스킬을 피하십시오!
"멍청하긴."
"···!"
그는 중얼거렸다.
몇 명이 보고 있던 간에 상관없다. 어차피 지금 이 순간, 절대적으로 잘못하고 있는 이는 슈미츠다. 오히려 그녀를 데리고 있는 팀이 고개 숙여 사과해와야 할 상황.
그리고 아마, 그녀가 저렇게 천방지축 행동할 수 있는 건 한번도 데여보지 못했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유일하게 그녀를 이긴 자신을 찾아온 것일 터.
크로스보우는 그 기저심리를 정확히 꿰뚫어보며 말했다.
"그 되다 만 의식 가속으로 카운터도 이기니 눈에 보이는 게 없나 본데, 실력 자체는 당신 쪽이 한참 아래입니다."
"···지금 뭐라고···."
그 순간, 저 멀리 하늘에서부터 스킬이 쏟아져 내린다.
회피.
쳐내기.
이걸로는 부족해.
'···그렇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테크닉을 발전시킨다.
쳐내는 게 아니야.
다시 되돌린다.
어렵지 않아. 단지 방향성의 문제다.
가능하다. 시도하지 않았던 것 뿐이야.
그는 숨을 들이켰다.
스읍...-
"그러니까 지금부터 잘 보고 마음에 새겨두면 좋을 겁니다."
순식간에 진입한 회색 세상.
그 속에서 크로스보우가 말했다.
어느새, 10만 명이 넘는 숫자가 그 매치업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알량한 재능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
입꼬리를 좀 더 끌어올린다.
< 79화-재능의 차이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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