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화-재능의 차이 >
[연습 모드]
전설의 리그-반사 신경.
수없이 많이 쏘아지는 스킬들에 피격되지 않는 것이 주 과제인 모드.
보통, S랭크는 커녕 A랭크를 받는 것도 어렵다고 불리는 장르인 만큼, 그 연습 모드는 가혹하기 그지 없었다.
시간차 공격, 단 한 번의 실수에도 피할 공간이 모두 사라져 버리는 스킬들.
유저들에 의해 평가받기를 피팅기계 수 십개를 앞에 두고 있는 게 차라리 낫다고까지 불리는 수준.
“···자, 잘하네.”
많은 이들을 좌절케 한 연습 모드.
그러나 수많은 스킬들 중, 크로스보우에게 닿는 스킬은 단 하나도 없다.
히트박스 포르노라고 불리는 영상을 보는 듯한 절묘한 회피.
아니, 그보다도 더 했다.
까앙-!
크로스보우가 마치, 타자라도 된 것마냥 스킬을 다시 되돌리고 있는 탓이었다.
-“와, 와···와!”
-“와!”
-“와 진짜 쌀 거 같다.”
약간 선 넘는 발언을 아무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정도로 집중하고 있는 관전자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단지 스킬을 처내는 것뿐이라면 그저 감탄성의 정도가 강해지고 말겠지만···.
까아앙─!!
“···저게 뭐야.”
크로스보우는 날아오는 스킬을 역이용해 쳐내서 다른 스킬들을 절묘하게 요격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저히 불가능할 거처럼 보이는 상황에 매번 처하는 듯 보여도 정말 한 끗 차이로 회피에 성공하는 모습.
[SYSTEM]피격 판정 ‘0’
[SYSTEM]난이도가 상향 조정됩니다.
아까부터 몇 번이나 떠올랐던 시스템 메시지.
그러나 아무리 난이도가 높아진다고 한들 차이는 없다.
그저 모든 게 조금 더 빨라졌을 뿐.
[SYSTEM]피격 판정 ‘0’
[SYSTEM]최고 난이도!
‘광역 스킬까지 날아오는군.’
범위를 벗어나기 위해 달려야 한다.
순식간에 내린 판단.
-앗
-안돼
그러나 반대쪽에도 이미 다른 광역기가 날아오고 있는 상황.
“······.”
그는 빠르게 눈을 돌리다가 깨달았다.
안전할 수 있는 포인트는 단 한 군데.
그리고 그 위치에는, 이미 수많은 스킬들이 폭풍우처럼 쏟아지고 있는 모습.
위기.
그러나 크로스보우는 눈을 가늘게 뜰 뿐, 아랑곳하지 않았다.
스읍···-
모든 건 느려진 지 오래.
단지 조금 손이 많이 가는 일을 해야 한다는 인식만이 존재할 뿐이다.
─후우.
날숨의 순간.
카앙!
그는 빠르게 바이저를 올려 시야를 확보했다.
···그리고, 다음.
콰아앙─!!!
콰과과광!
빠지직..!
폭발계, 전격계, 사출계···종류를 가리지 않은 공격들.
그리고 그 스킬들의 폭격 탓에 사납게 일렁이는 이펙트.
폭발하고 남은 잔존 에너지들이 마구 요동쳐 환한 불빛을 만들어 낸다.
-“저, 저저저?”
-“···연습모드 빅뱅···이걸 직관하는 날이 올 줄은.”
-“형님!!”
그렇게 3초.
2초.
1초.
그때였다.
···쩌적.
문득, 뭔가 갈라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멈췄다
-성공?
-실패인가?
쩌적.
쩌저저저적!
────챙강!!!
마침내 유리조각처럼 부숴져 나가는 수많은 스킬 이펙트들.
-···와
-설마
그리고 오싹 소름이 돋은 채 관전하던 시청자들.
그 순간, 그들의 기대에 응답하듯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른다.
빰빠밤!
[SYSTEM]축하합니다!
[SYSTEM]최고 난이도 클리어!
클리어를 알리는 소리였던 것이다.
스으-.
“······.”
이펙트들이 모두 사라진 자리에 나타난 크로스보우.
띠리리리-.
[SYSTEM]피격 판정 계산 중···.
[SYSTEM]결과 : 없음
과거, 불가해 난이도 승격임무 때는 너덜너덜해졌던 방어구.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에게는 단 하나의 생채기도 존재하지 않았다.
-“···.”
-“···.”
-“···.”
침묵.
그 속에서, 크로스보우는 천천히, 다시 바이저를 닫았다.
···카앙.
[SYSTEM]랭크 판정 : SSS
[SYSTEM]업적 인장 해금 : 기계신 헬퍼(전설의리그)
채팅창이 폭발할듯 올라간다.
-미쳤냐고!!!!!!!!!!!!!!!!
-와씨발!!!!
-미쳤다···존나섹시하네
-···섯다
-울 크보옵진짜ㅠㅠㅠ
다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SYSTEM]’똥의호흡’의 연습 모드 기록- SSS랭크.
[SYSTEM]’Schmidtz’의 승리 시나리오 : 없음
[SYSTEM]자동으로 ‘똥의호흡’이 거리 싸움에서 승리합니다!
“거리 설정. 초근접.”
크로스보우는 전혀 흥분하지 않은 채, 뱉듯이 중얼거렸다.
여전히 싸늘히 떠져 있는 눈.
[SYSTEM]상호간의 거리가 재설정됩니다.
[SYSTEM]재설정된 상호간의 거리: 지근거리
[SYSTEM]곧 게임이 시작됩니다!
“···.”
꿀꺽.
그 모습에, 슈미츠는 조용히 침을 삼키며 땀으로 가득한 손을 털었다.
***
‘회색 세상’에 진입하는 것.
전투에 있어, 이기적이라고 할 만한 효과를 가져다주는 테크닉.
그러나 알려지지 않은 기술.
크로스보우는 처음 이 기술을 사용했던 순간부터 생각해왔다.
분명, 자신만이 사용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리라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느끼기에, 회색 세상으로 진입하는 건 재능- 혹은 전투 센스로 불리는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재능이라기보단 적합률.
차라리 싱크로율이라고 표현하면 좋을 만한 감각.
이걸 굳이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가상현실에 과하게 몰입하는 것으로 발동된다.
아마 ‘이런 게 가능하지 않을까?’하는 강한 생각이, 역으로 데이터로 이뤄진 가상 공간에 흘러들어가 그런 현상을 일으키는 게 아닐까. 그래서 예선의 최종 균방전 당시 그런 오류 메시지가 떴던 것일 터다.
결론 내리자면 그랬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다시, 크로스보우는 생각한다.
‘나 말고도 가능한 누군가가 있으리란 건 당연하다. 그렇다면, 그 누군가는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가.’
생각할 수 있는 건 세 가지.
회색 세상에 진입할 수 있고, 전투 센스 역시 출중한 플레이어.
진입 가능하나 전투 센스는 별로인 이.
진입은 불가능하지만 전투 센스가 훌륭한 플레이어.
“흐음······.”
그리고, 당시 곰곰이 생각하던 크로스보우는 깨달았던 것이다.
세 가지 중 가장 약한 건, 어쩌면 센스는 별로면서 회색 세상에는 어줍짢게 진입 가능한 이 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도 그럴게 그가 지금까지 이 테크닉을 사용한 바.
“돼지 목에 진주 꼴이 되는 경우도 있겠는데.”
절대 장점만 존재하는 테크닉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
슈미츠는 흐르는 식은땀에 한쪽 눈을 감았다 떴다.
심리 유도.
마치 조종당하는 것 같은 전투 흐름.
기껏 숨겨온 노림수를 내뻗어도, 예상했다는 듯 돌아오는 절묘한 반격.
마치 속내 깊은 곳까지 낱낱히 파헤쳐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네이션스 컵에서, 크로스보우를 상대했던 선수들의 증언이었다.
캉-!
‘···분명 그랬잖아···! 근데 왜···!’
그러나 슈미츠는 예상과 다른 시나리오에 식은땀을 흘렸다. 맨 처음, 모욕하는 듯한 말에 인상을 찡그린 것도 잠시뿐이었다.
카아앙─!!
검과 배트가 부딪힌다기엔 지나치게 큰 소리.
검날로 이뤄져 있는 그녀의 다리.
발차기를 흘려낸 크로스보우가 배트로 그 다리를 내리쳐 땅에 박아 버린 것이다.
“···윽!”
슈미츠는 지잉- 전달되는 진동에 침음성을 흘렸다.
‘···꼭 사람이 바뀌기라도 한 것처럼···’
호쾌하다 못해 위압적인 플레이. 아까의 거리싸움부터 시종일관 압도되는 슈미츠.
그때완 뭔가가 다르다.
풍기는 분위기부터, 전투 방식.
“크윽···!”
심지어, 스패츠나츠 헬멧의 아래로 보이는 입가까지.
···대회에서마저 장난스럽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죽엇!!”
그녀는 이를 악물고는 빠르게 하이킥을 시도했다.
슈미츠의 트레이드 마크 중 하나, 타점이 높음에도 대단한 빠르기의 킥.
수많은 탑 티어 프로게이머들을 쓰러뜨려 온 공격이다.
무려 킹 슬레이어 킥이라고 까지 불렸던─!!
“······.”
그러나 크로스보우의 대응은 마치 물 흐르는 것과 같았다.
순간적으로 오히려 안쪽으로 파고들어, 지지대로 삼는 발의 종아리 쪽을 꽉 짓밟는다.
“윽?!”
힘껏 실린 무게에 관절이 뒤틀리는 기분.
처음 겪는 대처에 본능적으로 발을 뒤로 빼려 할 때였다.
콱!!
“···!?”
그녀의 빼던 발을 낚아챈 크로스보우.
손이 베이는 것에도 아랑곳 않고 그는, 손목을 확 비틀었다.
우드드득.
“아아악!”
발이 돌아가선 안 되는 방향으로 돌아가는 느낌.
통증은 거의 전달되지 않음에도 비명을 지르도록 하는 감각이 뇌를 강타한다.
“···이익!”
손을 놓게 해야 돼.
그녀는 오싹한 느낌 속에서 직감하고 스킬을 발동시켰다.
다리 전체에 에너지가 흐르도록 해 공격을 강화하는 스킬.
맨손으론 잡고 있을 수 없다.
치직···-
“···마나로군.”
“이거 놔!”
그리고, 마침내 해방된 슈미츠.
“···치잇.”
이대로는 박자를 뺏기기만 할 뿐이다. 근접전으론 안 돼.
저쪽의 기량을 이길 수 없다.
그녀는 결단을 내렸다.
어쩔 수 없어. 그녀는 전방 범위를 쓸어버리는 스킬을 사용하며 동시에, 와이어를 뒤로 발사했다.
스킬을 소모해 뒤로 빠지려는 셈.
그러나.
칵!
카가가각!!
“─어딜 가려고.”
“──!!!”
깨달으니 크로스보우가 바짝 달라붙어 있었다.
···그 짧은 고민의 순간동안 타이밍을 읽어내 발사되던 와이어를 배트로 쳐낸 것이었다.
이젠 정말 초근접 상태.
그제야 보이는 서늘한 눈동자.
“······!!!”
까무라치듯 놀라는 슈미츠.
“···연습 모드도 그렇고···화, 확실히 4시즌 최강자라는 거지?”
그러나 다음 순간, 어떻게든 당황을 수습하곤 이를 악문다.
이미 그의 배트는 목 앞까지 다가와 있는 상황.
“진심으로 해주겠어.”
그녀는 아껴뒀던 기술을 사용하기로 마음 먹었다.
지금 아니면 안 돼.
“─의식 가속화.”
그녀 스스로 그렇게 부르고 있는 기술을, 부지불식간에 발동한다.
···세계가 느려진다.
──부우웅.
눈에 띄게 느려진 크로스보우의 공격.
‘됐어···! 이거라면···.’
피할 수 있다.
얼마든지 반격이 가능해.
그렇게 내심 쾌재를 부를 때였다.
“······정말 발전한 게 하나도 없군.”
문득, 그런 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그렇게 한 치도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지?”
어쩐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한 말투.
헬멧의 틈 너머로 보이는 경멸의 시선.
“···뭐?”
그때였다.
돌연, 한없이 느리게만 보였던 공격이─
──부웅!!!
가속한다.
마치 시간대가 무너져 내리는 듯한 착각.
시간이 느리게끔 보이는 의식 가속화.
기술의 시전자는, 제 세상 속의 공격이 더 빨라지리라는 생각 따윈 머리속에서 잊고 만다.
그렇다면, 그걸 역이용한다.
일부러 본래보다 공격을 더 느리게 뻗은 후, 돌연 가속시키는 걸로 상대의 인식을 뒤엉키게 만드는 것.
크로스보우는 비릿하게 웃었다.
“정확히 얼마나 느려지는지도 모르니까 이런 페이크에 당하는거다.”
“─무, 슨···!?”
그리고.
까아아아앙───!!!
“꺄아악!!”
호쾌한 머리 내리치기.
그 순간, 그 장면을 관전하던 이들은 모두 까앙 하는 소리가 들린 듯한 환청을 공유했다.
-???ㅋㅋㅋ
-(대충 국자로 대가리 내리치는 짤)
-러닝데드 네건이냐ㅋㅋ
문자 그대로, 그 일격에 슈미츠가 바닥에 약간 ‘박혔기’ 때문이었다.
마치 망치질이라도 당한 것처럼.
“······이, 이이이!!!”
그렁그렁.
수치심을 느끼는 듯한 눈가.
그러나 봐주지 않는다.
마치 곡괭이질이라도 하는 듯이 다시 배트를 들어 올린 크로스보우.
“앞으로 저격은 꿈도 못 꾸도록 영영 박혀 있게 해 주마.”
기세 좋게 내리친다.
까아아아앙───!!!
“꺄아아아아악!!”
-ㅋㅋㅋㅋㅋ
-??? : 야! 좀 빼줘라!
-10점···10점이오
-엄미츠ㅋㅋㅋ
-편-안
···어느새 밤이 되어 가는 홍대의 하늘은, 보라색이었다.
──까아아아앙──!!!
“───!!!!”
······그렇게 한참.
“···휴. 다 됐다···응?”
바이저를 올려 땀을 닦은 크로스보우.
문득 시야에 시스템 메시지가 들어온다.
[SYSTEM]청 팀 대장 ‘Schmidtz’가 게임을 나갔습니다!
[SYSTEM]백 팀 대장 ‘똥의호흡’ 승리!
[SYSTEM]승리하셨습니다!!
“속이 다 시원하네.”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
···아군 팀원들이 대기실 구석에 옹기종기 붙어 왠지 몸을 떨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말 뿐이었다.
< 80화-재능의 차이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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