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 스트리머가 너무 강함-80화 (80/143)

< 81화-알 수 없는 자 >

“복수할 거야···복수할 거야. 크로스보우. 흐끅. 크으으···.”

그날 밤, 베갯잇을 다 적시며 좀처럼 잠에 들지 못한 라우라 슈미츠.

“매치에 따라간 게 그렇게 잘못이야?”

그녀는 생애 처음 겪는 치욕에 부들부들 떨어대며 다짐했다.

언젠가는 반드시 꺾어 주겠다고.

한국 리그를 제패하고 나서도 그렇게 나를 무시할 수 있는지 두고 보라고.

그런 생각뿐이었다.

TK의 감독이 그녀를 꾸짖고 한숨을 내쉬었던 건 그녀의 머릿속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되다 만 의식 가속.”

다만 크로스보우에게 들었던 말을 털어내려 애쓸 뿐.

“알량한 재능이라고? 내가···?”

꽈아악.

그녀는 이불을 끌어올려 쎄게 께물었다.

***

같은 시각.

“···실력 자체는, 내가 위···.”

카운터는 멍하니 중얼거리고 있었다.

크로스보우의 오늘 방송.

그 다시 보기를 계속해서 돌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되다 만 의식 가속으로 카운터도 이기니 눈에 보이는 게 없나 본데, 실력 자체는 당신 쪽이 한참 아래입니다.]

여기. 이 대사.

몇 번이고 돌려들었던 그 말에, 카운터는 눈물이 차오르는 걸 느꼈다.

과장되지 않은, 단지 팩트를 말하는 듯한 말투.

자신이 있을 자리를 뺏겼다고만 느끼던 카운터를 구원해 주는 듯한 한 마디.

“···크보 형.”

생각해보면, 네이션스 컵 때도 마찬가지였다.

무려 결승전에서 크로스보우 홀로 그의 가치를 알아봐 주던 것이다.

점령전의 조커카드로 사용될 선수를 자신으로 추천해 줬던 것.

물론 그 전략을 사용해 볼 새도 없이 패배해 흐지부지되고 말았지만···.

“···크흑.”

현재 시즌 4의 최강자로 취급받고 있는 그는, 언제고 항상 카운터에게 재능이 있다는 식의 태도를 보여 주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다.

서로 저격 캐릭터로 조우한 상황.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각을 피했다고 칭찬했던 크로스보우.

이제는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과거.

카운터는 잠시 그 기억을 더듬다가, 이를 악물었다.

“이렇게 있을 순 없어.”

결승.

탑급 선수들 상대로 20대1이라는 어마어마한 퍼포먼스를 보여 준 크로스보우.

그런 남자가 인정한 게 바로 자신인 거다.

“의식 가속? 이거부터 알아봐야겠어.”

카운터는 마음을 새로 다잡으며 중얼거렸다.

아마 4강에서 자신이 패배한 이유.

뭔가 알 수 없는 기술들이 튀어나오는 올오버.

그간, 단지 익숙치 않다는 이유만으로 외면했던 것들.

어렸을 때부터 프로게임단에 입단해, 단지 스크림만으로 게임해 왔던 탓에 벌어진 사단이다.

“게임을 현실처럼 생각하고···그 후에야 게임처럼 생각하라고 했지.”

뭔소리지, 라고만 생각했던 말.

이젠 조금 알 거 같은 기분이 든다.

카운터는 맑은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이렇게 있진 않겠어.”

**

‘열쇠 세기말’, ‘열쇠적 거리두기’.

일주일간의 사회 현상이 종료되었다.

그날 00시, 마치 방금 막 술집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갓 20살들이라도 가득한 마냥 활기를 띠기 시작한 거리.

“축하 드립니다.”

“···죽···여···주세···요···”

이세린도 더이상의 이변 없이 골드 계급에 도달했다.

눈이 뒤집어진 크로스보우의 덕을 잠시 보나 싶었지만, 이내 이어진 연패로 첫 승격전에 실패.

결국 아슬아슬하게 승단에 성공한 이세린.

피곤해 죽으려고 하는 그녀를 뒤로 하고 그들은 방송을 마쳤다.

-오늘뱅송 알찼다

-크바 뿅바 사바

그리고 바깥.

캡슐 속에서 눈을 뜬 크로스보우.

“······.”

화려한 이펙트가 터지고, 땅이 박살나며 온갖 에너지가 요동치던 올오버.

가속할 때 몸을 스치는 상쾌한 바람, 공격을 내뻗을 때 전해져 오는 강렬한 감각.

“···불도 안 켜뒀었군.”

그에 반해 현실에는 어둠이 가라앉아 있다.

작은 소리조차 없이, 그저 정적.

괴리감이 아주 약간 존재했다.

마치 아주 어린 시절.

‘방방’이라고 불리던 놀이기구를 한참 타다가 땅에 내려왔을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크로스보우는 캡슐에서 나와 문 근처의 형광등 버튼으로 손을 뻗었다.

그때였다.

──인기척.

“···?”

그는 자연스럽게 몸을 멈췄다.

인기척이 느껴지는 것은 현관 바깥이다. 문에 바짝 붙어 있어 서 있는 듯한 느낌.

···이 시간대에 그를 찾아올 만한 이라고는 존재치 않는다.

유일하다고 할 수 있는 방문자인 예지 역시 늦은 시간에는 거의 찾아오지 않는 편.

게다가 그녀는 현관 비밀번호를 알고 있음에도 출입할 때에는 항상 초인종을 누른다.

그렇다면 그녀일 린 없다.

“···누구지.”

크로스보우는 적당히 경계하며 바깥을 내다볼 수 있는 방범 렌즈에 눈을 갖다댔다.

띵-동-.

그리고 그 순간 울리는 초인종 소리.

바깥에 보인 건 어디선가 본 적 있는 듯한, 모자를 쓰고 있는 여자.

“누구세요.”

-“올오버에서 나왔습니다.”

올오버?

그 말을 듣자, 크로스보우는 그 여자가 이전에 봤던 택배원이라는 걸 깨달았다.

팔에 완력 보조를 위한 기계장치를 달고 있는 모습.

삐리릭-.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본사에서 보낸 물품입니다. 크로스보우 님.”

“···네. 근데 이런 시간에?”

“가끔 연장근무 할 때가 있습니다. 싸인 좀 부탁드릴게요.”

일 힘들게 하시는군.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싸인을 마쳤다.

“올오버를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수고하세요.”

본사에서 보낸 물품?

크로스보우는 받은 상자를 방 안으로 밀어넣으며 생각했다.

“···받을 게 있었나?”

시기상 네이션스 컵 우승과 관련된 무언가일 가능성이 크다.

그는 그렇게 결론 내리며 가위를 가져와 바닥에 주저앉았다.

비슷한 영상은 이미 찍은 바 있으니, 이번엔 그냥 열어 버리려는 셈이었던 것.

“···응?”

그런데 나온 것은 예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작은 저장 장치.

상자 안에 들은 물건의 정체.

그리고 편지가 하나.

그곳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4시즌 최강자로 거듭나신 걸 축하드립니다···오버로드 계급인 크로스보우님 전용 인장과 추가 인장이 제작 완료되었습니다···라.”

그러고보면 오버로드 계급은 각자 개개인 인장을 갖고 있다고 했었지.

그럼 이 저장 장치가 인장인가.

과거 USB보단 뭔가 더 미래적인 디자인.

“···내일 할까.”

잠시 고민해 봤지만, 내일은 캐릭터 작성 방송이 예정되어 있다.

“그냥 해 보고 자야겠군.”

그는 그걸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확인해 보기로 마음 먹었다.

그래도 전용 인장이라 하니 조금 기대가 되었던 탓.

캡슐 내부로 다시 들어간다.

“···풀다이브, 가 아니라.”

캡슐은 역시 신형이 편하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

그는 왼쪽에 자리한 저장 장치 삽입구를 찾아 방금 받은 걸 끼워넣고는, 풀다이브 버튼을 눌렀다.

[가상 현실 ‘올오버’ 모듈 활성화 중···]

의식이 천천히, 꺼진다.

***

[SYSTEM]환영합니다. 크로스보우님.

[SYSTEM]새로운 컨텐츠가 다운로드 중입니다.

[SYSTEM]전용 인장을 얻었습니다!

[SYSTEM]인장 : 사격의 신 크로스보우

[SYSTEM]새로운 인장을 얻었습니다!

[SYSTEM]인장 : 시즌 4의 전설

“오호라.”

이런 식이군. 확실히 명품 디자이너가 직접 제작한다고 하니···잘은 모르지만 비싸 보이는 느낌.

그가 이리저리 그걸 띄워 보고 있을 때였다.

돌연 쿠궁-하는 효과음과 함께 떠오르는 메시지.

[SYSTEM]크로스보우 특전!

“응?”

[SYSTEM]’자격의 방’에 입장할 수 있는 권한을 얻었습니다.

[SYSTEM]’알 수 없는 자’가 당신을 초대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뭐야. 이건 또.”

돌연 눈앞에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

크로스보우는 어이 없는 심정이 되어 그 문구를 쳐다보았다.

“···자격의 방?”

게다가 알 수 없는 자가 초대했다는 건 또 영문을 모르겠는 소리다.

분명 올오버는 친구를 맺은 유저끼리만 초대메시지 전송이 가능할 터.

그리고 크로스보우는, 그런 이름을 가진 유저와 친구를 맺은 적이 없다.

“버근가.”

그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대충 어깨를 으쓱이곤 말았다.

아마 히든 컨텐츠 같은 건가 싶었던 것.

하기사 보통 게임이 아니다. 과거 세계적인 전염병이 돌 때는, 온 나라에 가상공간을 제공하기까지 했던 게임.

이런 뭔가가 있다고 해서 이상할 일은 아니다.

“흐음.”

다만 문제는 초대메시지를 보낸 건 시스템이 아닌 ‘유저’.

본사에서 보낸 보상과 뭔가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하나쯤은 대비를 해두고 가는 게 좋겠지.

“알 수 없는 자라.”

그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자신에게도 비슷한 걸 갖고 있다는 데에 생각이 닿았다.

분명, 불가해 난이도를 클리어했을 때 받았던 칭호.

[SYSTEM]칭호를 변경합니다.

[SYSTEM]■■···Error!

[SYSTEM]’알 수 없는 자’ 등장

[UNKNOWN]크로스보우

“오호라.”

비슷한 게 아니라 아주 똑같군.

그렇다는 건, 초대를 보낸 상대방도 이 칭호를 갖고 있는 거겠지.

“···불가해 난이도 클리어 보상을 상대도 갖고 있다···.”

그러고보면 자신보다 빨리 클리어한 사람이 존재한다고는 들었던 기억이 있다.

“···수락한다.”

그는 어쩐지 조금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말했다.

[SYSTEM]수락하셨습니다.

그리고 수 초쯤.

···──쿠우웅!!

빈 공간에서 돌연, 검은색 문이 나타난다.

박력 있는 등장.

“···호오.”

크로스보우는 낮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흥미롭다.

그것도 매우.

***

[SYSTEM]’알 수 없는 자’가 방에 입장합니다!

“어. 왔냐. 하이.”

방에 입장하자 보인 것은 드넓은 원탁에 널부러져 있는 누군가였다.

“너도 이번 신입 보려고 왔···응?”

이상한 코스튬을 하고 있는 유저.

크로스보우는 멀뚱히 서서 그 누군가를 바라보았다.

잠시 텀이 있고, 상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누구세요?”

“···?”

이쪽이 할 말이다.

잠시 눈알을 굴리던 상대.

그는 턱에 손을 얹고 잠시 생각하다가, 돌연 손뼉을 짝 쳤다.

“설마! 신입!!?”

“···신입?”

신입이라면 신입인가?

크로스보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끄덕였다.

“그 제스쳐는···맞다는 거지? 아니라는 건가?”

“초대받아서 왔습니다만.”

“아하하! 그럼 맞네! 반가워!!”

손을 흔드는 모습.

크로스보우는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냥 가만히 있기로 결정했다.

가만히 있으면 반이라도 간다.

“···과묵한 사람이네. 재미 없게.”

“누구신지?”

“후후···나? 나는···.”

그러자 마치 그 질문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한 표정을 짓는 상대편.

“···당신같은 사람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던 자! 아크위저드의 이름을 대는···!”

평범한 씹덕이었군. 들어줘서 좋을 게 없다.

“크로스보웁니다.”

“앗···아아. 네···나는···2회 네이션스 컵 우승자격으로 방에 참여하고 있는 ‘더블혼’이라고 해.”

2회 네이션스 컵.

우승자격으로 방에 참여.

크로스보우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도 그럴 게, 2회 우승자인데 그가 출전했던 제 4회 네이션스 컵에선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얼굴이었던 탓이다.

“···여기는?”

우선은 그 의문을 넘긴 크로스보우.

서로 소개를 마쳤다면 질문이다. 그는 텅텅 빈 원탁을 바라보며 물었다.

“여긴···올오버에서 가장 강한 사람들만 모아두는 곳이라고 할까···아. 꼭 그렇진 않은데, 자격을 가져야만 입장할 수 있는 곳···상류층···? 클로즈베타?”

두서없이 나열되는 단어들.

“···과연, 그렇군요.”

순간, 그 설명에 크로스보우는 긴 방송으로 지쳤던 정신이 말끔하게 깨어나는 걸 느꼈다.

“···응. 그렇지.”

자신도 모르게 진한 미소를 짓는 크로스보우.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에 상대는 주춤 물러날 때.

바로 그때였다.

[SYSTEM]’크리스피’가 입장합니다.

[SYSTEM]’무시무사시’가 입장합니다.

.

.

.

[SYSTEM]’알 수 없는 자’가 입장합니다.

다른 유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 81화-알 수 없는 자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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