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화-알 수 없는 자 >
어느 새 가득 찬 원탁.
나타난 유저들은 각각 한 자리씩 차지하고 앉았다.
7명.
이쪽을 힐끔힐끔 곁눈질하는 시선이 따갑다.
“······.”
크로스보우는 말없이 그들을 둘러보았다.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아닌 척 하고는 있지만, 흥미로워하는 얼굴들.
그리고 그중, 분명 원탁에 앉아 있음에도 가장 높아 보이는 이가 한 명.
가장 마지막에 입장한 유저.
‘알 수 없는 자’.
─거구의 사내가 입을 열었다.
“새로운 이가 합류 시험을 치를 예정이라네.”
밑도 끝도 없는 선언.
아무런 사전동작 없이, 주목을 끌어들이는 목소리.
그러나 그 내용은 크로스보우로 하여금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 만한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게, 합류한다고 한 적 따윈 없다.
“다들 새로운 동료가 될지도 모르는 이에게 인사는 나누었나.”
“······.”
“1년 만이라 어색한가보군그래.”
정적.
“그쪽은 누구신지?”
크로스보우는 천천히 끊어 물었다.
“““···.”””
그러자 주욱 둘러앉은 인간들의 적대감이 조금 올라가는 기색.
그러나 침묵뿐.
답을 얻지 못한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사람을 우두커니 세워 놨으면 뭐라도 말해 줬으면 좋겠다.
“누구신지?”
방금과 같은 질문. 두 번째다.
“···실례했군. 칭호를 교체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그러나 사내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아마 중년 정도일까.
크로스보우는 그 남자의 나이대를 가늠하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양인들의 연령대는 구별하기가 힘들다.
다만 거구라는 점, 수염을 기르고 있다는 것 정도가 눈에 띄는 특징.
“본인은 1회 피지컬 대항전 우승자이자 1회 네이션스 컵 우승 자격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이름···닉네임은 ‘오드맨’이라고 한다.”
1회 우승국은 미국이었던가?
당시에는 관심이 없었던 탓에 알 수 없다.
게다가 피지컬 대항전 쪽은 처음 듣는 소리. ‘알 수 없는 자’에 대한 건 말하지도 않는 모습.
그러나 크로스보우는 당장의 의문을 뒤로 했다.
“···크로스보우입니다. 무슨 자격인진 모르겠지만 갑자기 초대를 받았군요.”
서로 자기 소개를 마치자 탄성을 자아내는 몇몇.
“···아하. 그 스트리머? 요즘 시끄러운 그 사람이구나.”
“한국이 결국 우승했다더니. 우승 자격이었군.”
“블래든지 하는 그 꼬맹이가 초대되는 거 아니었어?”
“─···.”
그를 알아보는 목소리들이었다.
“···크로스보우?”
맨 처음 만났던 더블혼은 그 인식들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
그러나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너무 무반응이지 않냐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다들 앉아 제각각의 자세로 이쪽을 바라보는 모습.
반면 그의 앞에는 덩그러니 철제 의자가 놓여 있을 뿐.
저들이 앉아 있는 원탁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자리였다.
···어딜 어떻게 봐도 앉아서 질문에 대답해야 할 거 같은 자리다.
이게 뭔 기업 면접도 아니고.
크로스보우는 내심 생각하다가 툭 내뱉었다.
“여기가 뭐하는 곳인지부터 알고 싶군요.”
“하하. 무사시. 너 처음 왔을 때랑 비슷하게 말하는데?”
“조용히 해라.”
“에이. 그래도 저쪽은 예의라도 있는데?”
“그건 그렇다!”
봇물 터지듯 튀어나오는 감상들.
그러나 상석의 남자, 오드맨이 손을 들어보이는 걸로 그들은 침묵에 빠져들었다.
“그건 지금부터 설명하도록 하지. 크로스보우.”
‘···묘하군.’
크로스보우는 그 모습을 보며 내심 생각했다.
마치 다른 사람들이 저 남자를 따르는 듯 보이는 양상.
···이 모든 게, 그냥 가상현실 게임이라는 걸 떠올려 보면 조금 유난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
“좋습니다.”
감상은 나중이다. 저 인간들이 모두 컨셉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면 아마 저러는 이유가 있을 터.
오드맨은 크로스보우를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새로 들어올 친구는 생각이 깊군. 좋네. 설명하자면 길지만···매년 있는 일이니.”
그는 말을 시작했다.
조금 갈라지는 저음이었다.
“빠르게 이곳의 존재의의부터 말하고, 과정을 설명하도록 하지. 말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네.”
“······.”
“전세계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난 게이머들을 모아서 테스트하는 것. 그게 원래 이 공간의 목적인 것이다.”
“테스트 서버?”
“그렇게 표현해도 좋겠지.”
실력이 뛰어난 게이머들의 모임과 테스트 서버라.
“······.”
크로스보우는 침묵을 지켰다.
계속하라는 제스처.
“또한 올오버 실운영진과 접촉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집단이라 보면 된다네. 애초에, 이 공간의 멤버는 그들에 의해 결정되니까.”
“···과연.”
인장을 확인하는 타이밍에 맞춰 초대 메시지가 도착하는 건 힘들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그 저장장치에 초대 코드 같은 게 들어 있던 모양.
“그런데 가끔의 테스트나 임무를 제외하곤 전혀 터치가 없어. 오히려 얼굴 보기도 힘들지. 그래서 문제가 종종 발생하지만···.”
오드맨이 그렇게 설명을 이어나갈 때였다.
“맞아. 그래서 그냥 우리끼리 굴리기로 한 거지! 적당히 부자 양반들이랑도 놀아 주고! 컨텐츠 없는 망겜 주제에 여기는 재밌다니까?”
“···크리스피.”
“뭐. 어때? 어차피 쟤도 한 팀 될 거 같은데. 참. 신입은 한동안 내 꺼다?”
“···아직 시험도 치르지 않았다.”
“음. 그건 그렇네.”
돌연 끼어드는 남자가 한 명.
대화를 방해받은 크로스보우는 그에게 아주 잠시, 무표정한 시선을 두었다가 거뒀다.
그러자 씨익 미소지어 보였다가 움찔하는 남자의 모습.
“······!”
“···테스트 서버라. 그럼 내일 있을 열쇠 패치도 이미 체험한 모양이군요.”
“그런 셈이다. 새로 들어올 친구는 눈썰미가 좋군.”
글쎄.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더블혼. 맨 처음 방에 입장했을때 인사를 나눈 이.
처음에는 그 코스튬을 보며 아마 비주류 캐릭터의 일종일 거라 생각했었지만···열쇠를 이용해 제작한 캐릭터였던 모양.
사실, 여기까지 듣고 나면 당연한 추론이다.
“또 뭔가 있습니까?”
크로스보우는 재차 물었다. 더한 뭔가가 없을 거라 단정 지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소속되면 권한이 좀 생기지. 각 서버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권한, 그리고 이미 플레이되고 있는 게임에 난입할 수 있는 권한. 후자는 거의 사용하지 않네만.”
거기까지 들었을 때 든 생각은 하나.
일개 게이머에게 부여해 주는 권한치곤 과하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마구 사용하면 안되는 권한들일세. 당장 말할 수 있는 건 이 정도겠군.”
앞선 두 가지에 한하자면, 딱히 탐나는 권한들은 아니다.
차라리 컨텐츠를 먼저 체험할 수 있단 쪽이 메리트 있게 느껴지는 편.
“자. 더 말해주기 전에 대충이나마 대답을 들려줬으면 좋겠네만.”
“······.”
“시험에 응할지, 불응할지.”
그러자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
[SYSTEM]’자격의 방’에 정식으로 합류하시겠습니까?
···크로스보우는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두운 공간.
커다란 원탁에 앉아 있는 멤버들.
나무원탁 따위가 아닌, 금속 재질.
그리고 그 위를 옅게 내달리는 전자기적 선들.
자리에 앉아 이쪽을 바라보는 멤버들은 아마도 공식 대회의 우승자들, 혹은 그에 준하는 이들.
누군가는 흥미로운 얼굴로, 누군가는 관심도 없다는 눈으로···또 누군가는 알 수 없는 적대감이 느껴지는 시선들.
역시, 당장 수락하기엔 의문점이 너무나 많다.
그렇기에 크로스보우가 선택할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는 입을 열었다.
“글쎄요. 그리 매력적이진···.”
“아. 이걸 빼먹었군. 입단을 하려면 시험을 치러야 하네. 기존 멤버들 중 한 명과 싸워 이기는 게 조건이지.”
“그래! 신입! 싸워 보자!”
“노파심에서 추가하자면···입단한 후에도 멤버끼리 서로 결투를 신청할 수 있다. 다들 재능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게이머들.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이랑 하는 건 재미없지 않았나.”
“···매력적···이긴 한데.”
우승자, 혹은 그에 준하는 게이머와 싸우는 것?
방송 중이었다면 ‘이건 못 참지ㅋㅋ’ 같은 채팅이 잔뜩 올라왔을 거란 생각이 문득 든다···.
“아. 그리고 크로스보우. 자네에겐 개인적으로 팬일세. 함께 하지 않더라도 친구 추가 정돈 받아 주겠나?”
“어, 엇! 마, 맞아!!! 당신이 세이크였지?! 나도 팬이야! 어렸을 때 맨날 봤는데.”
“내 나이 마흔 먹고 남자한테 이래 보긴 처음이라. 하하.”
“···!”
크로스보우는 움찔 정신을 차렸다. 마지막 말 덕이었다.
하마터면 넘어갈 뻔했던 것이다.
***
시간이 흘러 새벽.
결국 보류라는 대답으로 ‘자격의 방’을 나온 크로스보우.
그는 생각했다.
네이션스 컵이니, 피지컬 대항전이니.
그런 무대에서 각각 우승자들.
그 정도 되는 게이머들이 자기들끼리 친목을 다지는 이유.
그들도 대적할 이가 없다는 점에 싫증을 느낀 탓인걸까.
아니면 현실의 멘사처럼, 단지 소속되어 있는 것뿐일까.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처음에 더블혼이라는 이에게서 들었던 상류층, 그리고 크리스피의 입에서 나온 부자랑 놀아 준다니 하는 것.
아마 뭔가 더 있을 터였다.
[SYSTEM]’오드맨’님과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SYSTEM]’더블혼’님과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단순한 게임은 아니라는거지?”
그는 미소 지었다.
네이션스 컵 이후, 사실상 최강이 아니냐는 소리와 함께 우려하던 지루함을 조금이지만 느끼던 크로스보우.
그러나 그보다 더 강할지도 모르는 이들이 실존한다는 걸 깨닫자, 흥미가 다시 솟아나고 있었다.
“재밌네.”
이래야 게임이지.
이 정도로 전세계적인 게임인데, 고작 그게 전부였다면 실망할 뻔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아까 봤던 이들과의 전투를 이미지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우선은 수면이다.
풀다이브를 종료했다.
[SYSTEM]원래 있던 현실로 돌아갑니다···3···2···1.
[SYSTEM]또다른 현실 올오버는 언제나 크로스보우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드디어 오늘이다!!!”
“오늘같은 날엔 휴교해야 되는 거 아니야? 진짜.”
“리얼. 크크.”
이튿날이 밝았다.
수많은 방송인들이 기다리고 있던 날.
커뮤니티에 잠깐, 어제 있었던 [슈미츠vs크로스보우]의 매치에 관련된 얘기가 나왔지만 금새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유저메이드 신규 캐릭터들의 대거 등장하는 날.
아무리 크로스보우라는 이름값이 있다고 한들, 그 이슈를 이기긴 힘들었던 것이다.
지잉-.
“오, 오빠. 진동안마기 숨겨 놨어?”
“송정훈 감독이 사과 문자 보냈네.”
“송정훈 감독? TK?”
그날 아침도 똑같았다.
밤새 작업을 마친 신예지가 방에 놀러오고 식사를 함께 한다.
“아···어제 그 슈미츠?”
“오후에 공식 페이지에 사과문도 업로드 하겠다는데.”
“으음···그럴 필요까지 있나?”
확실히 그랬다.
크로스보우 역시 받은 만큼 돌려줬기 때문.
“그래서 올리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근데 정작 슈미츠 본인 사과 문자는 없군.”
“그 사람도 참···사실 욕 먹는 걸 좋아하는 변태가 아닐까?”
“글쎄 .세상 사람들이 다 너 같진 않단다.”
“뭐, 뭐래. 난 아니거든?”
그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방송을 시작했다.
[스트리머 ‘크로스보우’님의 방송이 시작되었습니다!]
-크하
-석하
“오늘도 안녕하세요. 사랑하는 시청자 여러분.”
그는 씨익 미소지었다.
“똥믈리에 크로스보우입니다.”
혼자 캐릭터만 다섯 개 만들 수 있는 사람의 난입이었다.
< 82화-알 수 없는 자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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