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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스트리머가 너무 강함-84화 (84/143)

< 85화-똥캐 '크로스보우' >

***

2미터를 훌쩍 넘기는 키.

새카만 무광택의 금속성 갑옷.

손에는 검은색 철퇴를 들고 있는 그 모습은 뭇 남성들이 갖고 있는 뭔가를 자극하기에 충분한 모습이었다.

"···크로스보우?"

자신을 공격한 이를 알아보는 풀 플레이트 아머의 남성.

웅웅- 갑옷의 내부에서 울리는 굵은 목소리.

-존나멋있어

-남자의 로망이다

시청자들의 반응이 일관되게 터져 나왔다.

복장이라면 이쪽 역시 비슷하다.

다만 까만 금속성이라고는 헬멧뿐인 크로스보우.

그 모습이 마치 성체와 유체 같은 느낌.

서로 마주 보는 모습이 기괴하기 짝이 없다.

"갑옷이 마음에 드네요."

"흐허허. 젊은이가 보는 눈이 있군."

지체하지 않았다.

근처 포인트에 착륙한 건 상대뿐만이 아니야. 이대로 전투를 계속하면 다른 적에게 기습당할 확률이 높아진다.

초반 싸움은 짧게 끝내는 것이 배틀로얄의 기본상식.

크로스보우는 한 탄창을 쏟아냈다.

드르르륵─!

정확히 머리를 노린 연발사격.

"-음!"

그러나 단 한 발도 유효타가 존재치 않는다.

단지 팔을 들어가리는 것으로 모두 빗겨나가는 모습.

크로스보우는 그걸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총알이 통하지 않는다.

패치 전에는 아무리 갑옷을 입은 캐릭터라고 한들, 조금이라도 데미지가 들어가게 되어 있었지만···이제는 그런 보정따윈 없다고 봐도 무방한 듯 보였다.

-뭐야

-불꽃도 안튀기는데? 갑옷 자체에 뭐가 있나?

시청자들의 말대로였다.

보통 금속재질의 뭔가에 총알을 쏘아내면, 불똥이 튀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런 반응도 없이 이리저리 흩어져버리는 총알.

크로스보우는 눈을 가늘게 떴다.

"···아마, 마찰계수를 조작하는 쪽 스킬이군요."

속삭이는 말.

단 두 번의 모습만으로 상대 능력의 정체를 파악해내는 모습.

그 소리가 벽을 타고 상대에게도 전해진 걸까. 거한의 갑옷은 껄껄대며 웃었다.

"크허허! 역시 크로스보우! 한눈에 알아볼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참. 개인적으로 팬이다!"

"그렇군요. 어떻게, 싸인이라도 해드릴까요?"

"아쉽군. 이렇게 미끌거리는 몸이라 싸인을 받을 수가 없다!"

쿵-쿵-쿵-.

그 말과 함께 돌격해오는 적.

큰 체구와 갑옷이 주는 무게감은 건물이 떨릴 정도.

크로스보우는 빠르게 뒤로 물러나며 생각했다.

이런 상대에게 돌격소총은 그리 좋지 못하다.

이쪽도 특수탄으로 대응해야 한다.

"주 무기 변경, 리볼버로."

주무기 자체가 총기류로 설정되어 있다면, 분명 리볼버 종류 역시 존재할 터.

그러자 당연하다는 듯 손에 나타나는 권총.

크로스보우는 빠르게 탄환을 밀어 넣었다.

[하급 마기의 탄]

[적중 시 작은 폭발을 일으킵니다.]

철컥.

회피기동 중에 조준.

"총탄으론 이 몸을 어떻게 할 수 없다! 중세 갑옷의 멋짐을 모르는 네가 불쌍해!"

그리고 격발.

크로스보우는 잠시 숨을 참으며 눈을 부릅떴다.

타앙─!!

분명 수월했을 일련의 동작이 조금 흐리다.

콰아앙─!!!

그리고 폭발.

상반신 전체를 뒤덮는 크기였다.

그러나, 꽤 강렬했던 폭발에도 잠시 숨을 내뿜으며 고개를 털고 마는 흑의 기사.

다시 폭발의 잔여물을 대충 걷어내고 다시 달려온다.

"크으윽. 후후. 그 정도론 뚫을 수 없다!"

"···."

"내 캐릭터는 최강이야! 그뿐만이 아니다. 마찰계수를 한없이 0에 가깝도록 만드는 이 스킬. 갑옷에 한정되지도 않지! 그리스!"

그 순간.

"···!"

눈앞이 아찔해지는 감각.

-그리스ㅋㅋㅋ아재티 나는 캐릭이넹

-ㄹㅇㅋㅋ

-크보님?

-ㅇ? 크보 왜저럼?

구경에 여념 없던 시청자들.

가장 먼저 그의 이상을 알아차린 건 채팅 매니저를 필두로 한 애청자들이었다.

"···."

크로스보우는 눈을 억지로 감았다가 뜨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상대가 발동한 스킬.

그 에너지가 내뿜는 빛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뇌리에 박히듯 다가왔던 것이다.

거기에 반응하는 자신 내부의 에너지들.

그 감각이 마치, 억눌러놨던 혈류가 뒤집히기라도 하는 느낌이었다.

···구역질이 난다.

어딘가의 패스트푸드점에서 자신을 보고 있던 이가, 그럼 그렇지 따위의 말을 하는 것도 모른 채 그는 숨을 몰아쉬었다.

그때.

쿠웅─!!

"허허! 뭐야! 패치에 적응이 안되나 보군? 크로스보우!"

"···!"

"첫 데스는 이 아저씨가 받아가마!!!"

어느새 앞까지 돌진해온 상대.

그 돌진에 당연하다는 듯, 유려한 회피기동을 수행하는 크로스보우.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상대가 접근하자 시야를 모두 뒤덮듯 번쩍이는 상대 에너지 이펙트.

끔찍한 푸른빛.

"허억···허억-···."

그 순간, 회피 기동 도중 쓰러진 크로스보우는 깨달았다.

지금껏 봐오던 번쩍거림의 정체를.

"──···마나?"

"오호. 정답이다!"

깨닫자 휘둘러지고 있는 거대한 철퇴.

"이미 늦었지만 말이야!!"

부우웅─!

횡공격.

목표는 자신의 머리.

-헐

-?

-뭐야

방송 상의 화각에 보이는 것은 거대한 갑옷의 등뿐.

무자비한 일격이 크로스보우의 머리로 휘둘러지는 모습.

마치, 잠시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찰나.

-크보야!

-뭐가 어떻게 되는거?

믿을 수 없을 만큼 긴 시간이 지난 것 같은 착각이 잠시.

쿠웅─.

돌연, 거대한 갑옷이 무릎을 꿇었다.

"커···헉···."

거한의 신음성.

서 있는 것은 크로스보우 뿐.

상대 투구의 틈을 노려서, 보조무기인 단검을 꽂아 넣은 것이었다.

"···후우."

그리고 단검을 옆으로 그어 마무리한다.

"크···과···연···크로스보우···대단하···군."

"위험했습니다."

그렇게 말한 크로스보우는 조용하게, 아까 작성한 스킬에 부여받은 이름을 중얼거렸다.

"해방解放."

화륵.

몸을 감싸고 있던 불쾌감이 불타 없어진다.

막혀있던 감각이, 맵을 타고 퍼져 나간다.

그 해방감에 잠시 목을 꺾어본 크로스보우.

"···아하. 알았다."

그는 마침내 깨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와

-암살검 무냐고!!!!

-크로스보우!!크로스보우!!크로스보우!!크로스보우!!

-와 진짜 전투연출

-미쳤다ㄹㅇ루

-이 맛에 크보방송 본다

스킬의 구조가 낱낱이 파헤쳐지듯 다가온 탓에 느꼈던 구역감.

그에 반응하는 캐릭터.

그리고 그 모든 페널티를 없애는 해방 스킬.

어떤 메커니즘인지 지금 이 순간, 정확히 기억했다.

"꿀잼이네. 이거."

***

띠링-.

[오드맨에게 전화를 겁니다.]

뚜루루루-. 뚜루루루-.

-"뭐냐. 크리스피."

"···방장. 지금 그 신입 녀석 방송 봤어?"

-"잘 들리지 않는군. 전파 상태가 좋지 않다."

"아니. 내가 메시지도 남겼잖아. 그렇게 태평하게 있을 때가 아니라고. 방장."

-"크리스피. 할 말이 있다면 나중에 하도록. 내가 그렇게 여유 있는 사람은 아니라네."

"아니. 이런 젠장. 방장! 저 놈 이상하다고. 단 몇 분 만에 만능형 설정에 적응하는 게 말이나 되냐고! 올오버 쪽과 분명 연관 있는···!"

-"차후 보도록 하지."

"방장! 방···!"

뚜─. 뚜─···.

[통화가 종료되었습니다.]

"···빌어먹을!"

***

크로스보우의 방송을 구경하는 걸로 열쇠가 없는 씁쓸함을 달래던 저계급 시청자들.

"뭔데 저러지?"

"저게 저렇게 어려워?"

그들은 그 천하의 크로스보우가 다루길 어려워하는 캐릭터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도 그럴 게, 무려 크로스보우다.

무려 네이션스 컵에서 출전하는 경기마다 인간을 초월한 피지컬을 보여주며 매판을 캐리 해낸 유저.

결승까지 단 한 번의 데스도 없이,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던 선수지 않던가.

20대1의 상황에서도 즐겁게 웃을지언정 인상 찌푸리는 일이 거의 없던 사람.

그런 그가 표정을 일그러뜨린다? 단지 캐릭터를 다루는 것만으로?

"오우쉣. 바로 해본다."

"크보쉑. 어려우면 얼마나 어렵다고···에잉. 쯧쯧."

[크가놈 퇴물된거냐?]

-왜저럼?

└????누구보고 퇴물이라고? Your gold

└ㅋㅋㄹㅇ악성크까놈 신을 왜 걱정해ㅋㅋ니 인생이나 사셈

[아니ㅋㅋ 가상현실에 울렁증이 어딧어ㅋㅋ구시대 증강현실도 아니고]

-사람들이 자기캐릭터 많이 써주면 뭐 받는거 있나? 노이즈 마케팅 지리누ㅋㅋ

└ㄹㅇㅋㅋ바로 해보러 간다

이 상황에 도전의식을 느낀 이들.

그들은 당장 방송 시청을 멈추고 캡슐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이 캐릭터 '크로스보우'를 픽하고 게임에 진입한 순간.

"뭐야. 괜찮···허억?!"

"에이. 그냥 그러네···아까 뭐였지. 해방?···끄, 아악!?"

[SYSTEM]페널티-시한부 인생에 의해 사망하셨습니다.

[SYSTEM]경고!! 사용자의 상태가 비정상적입니다! 당장 풀다이브를 해제하십시오!

눈앞이 점멸하는 착각.

마치, 과하게 밝은 네온사인이 가득한 방에서 약물에 취한 느낌.

혹은 통증은 없지만, 전신이 터져나가는 듯한 감각.

온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한 느낌에 온갖 냄새나 환청을 듣는 증상까지.

"으아아악! 로그아웃! 풀다이브 해제! 씨바아알!!"

"···우우욱."

그 페널티를 잠깐 경험한 유저들.

각각 황급히 화장실로 달려가거나, 멍하니 캡슐에 누워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공통점이라면 눈물이 찔끔 나 있는 점일까.

"···."

"···이게 뭐야."

그렇게 한 시간가량.

그들은 커뮤니티에 접속해 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캐릭터 크로스보우 해본 크갤놈들 있냐? 썰 푼다]

-진짜 하지마라 뒤질 뻔했다 시발 이딴 걸 겪으면서 멀쩡히 말하고 있는 크보가 놀랍다

└과장 좀 자제좀ㅋㅋ;

└해보고 오던지 근데 하기전에 청심환이라도 하나 먹어라

[ㅠㅠㅠㅠ진짜 크보님 캐릭터해봤는데 너무 무서워요ㅠㅠㅠ]

-막 환청이랑 빛 번쩍이고···너무 무서웠어요ㅠㅠㅠ

└말투 ㄹㅇ극혐이네ㅋㅋ누가 그따구로 말하래

└ㅅㅂ크가놈 캐릭터존나 무섭네ㅋㅋ하다가 캡슐에 오줌발싸하고 나이 서른에 마누라한테 등짝쳐맞을뻔했누ㅋㅋ됐냐?

└ㅋㅋㅋ

오히려 사람들의 궁금증을 유발해 피해자들을 더 만든 글들.

그렇게 천천히 피해자를 양산하던 글에, 어느 때부턴가 추천이 마구 박히기 시작했다.

└해봤는데 좋던데?ㅎㅎ

└옛날 생각나는 느낌~

└옛날(화생방)

나만 당할 수 없지 라는 마인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게시판 상단에 올라온 글.

그리고 그런 글은 대부분이 당연하게도, 핑거북이나 인스타등에 퍼지는 수순을 거친다.

"오잉? 크로스보우?"

"자기야. 이거 봐. 재밌겠다."

"이게 뭔데?"

커뮤니티나 개인방송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이들도 캐릭터 '크로스보우'를 시도해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원본 글.

[관리자에 의해 삭제된 글입니다.]

[관리자 코멘트 : 너무 많은 피해자가 속출하여 부득이하게 게시글을 삭제하게 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과거 크로스보우가 플레이하던 더 원 그라운드 캐릭터.

똥이라 불리던 그 캐릭터를 넘어, 그가 만든 새로운 캐릭터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상 초유의 쓰레기라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으···절대 안해."

"우욱. 생각만 해도 멀미할 거 같다."

그리고, 사실상 크로스보우 전용 캐릭터로 거듭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

다시 시간을 되돌려 크로스보우의 방송.

스킬-해방解放.

1분간 모든 페널티에서 벗어나도록 해주는, 크로스보우가 생각하기엔 궁극기에 가까운 스킬.

"···초반 정리에 서둘러야겠네요."

크로스보우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스킬을 발동하고 벌써 10초쯤 흐른 것이다.

게임당 한 번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스킬의 특성상, 일 초가 아까운 상황.

그는 잠시 콩콩 뛰다가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오호라."

어떤 식으로 에너지를 운용하느냐에 따라 점프력마저도 달라진다.

연구해볼 게 산더미군.

크로스보우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다가 돌연 단검을 세웠다.

깨어난 그의 감각에, 뭔가 잡혔기 때문이었다.

쐐애애애액──!!

카아앙─!!

"···이건 또 뭐야. 검?"

카가가강!

검격의 연속.

당연하게 겸력에서 압도하는 모습.

그러나 크로스보우는 어이없다는 듯 하하 웃었다.

"진짜 세 보이는 능력은 다 만들어서 갖고 왔네."

-ㅋㅋㅋㅋ

-상승 무공이다!!

-오우쉣···저게 그 드론(가상현실)이냐?

-드론(무협)임ㅋㅋ

-이기어검 무냐고!!!

그랬다.

흔히 무협지에서 말하길 이기어검.

검이 혼자 날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압수."

크로스보우는 그 검에 이어져 있는 실을 느끼며 말했다.

스윽 다가가 확 잡아채는 모습.

"내놔 임마."

바르르르.

검이 손안에서 마구 요동쳤지만, 해방 스킬로 안정된 오러를 듬뿍 넣어주자 이내 얌전해지고 말았다.

-'내놔임마'

-야놔코마ㅋㅋㅋ

-일진 크로스보우ㄷㄷㄷ

-저계급 물건 뺏는 크가 인성ㅋㅋ

-무기는 여친처럼 하라고 했는데···큼

-[삭제된 채팅입니다.]

[SYSTEE]곧 경기 구역이 줄어듭니다!

1분이 가기 전에 싸움을 끝맺어야 한다.

그는 공짜로 얻은 검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날뛰기 시작했다.

< 85화-똥캐 '크로스보우'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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