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화-투기장의 신성 >
도시. 어두운 골목길.
“하아-···하아···큭!”
남자가 달리고 있었다.
“젠장. 젠장···!”
쐐애애액─!
기묘한 소리.
“흐아아악!!”
그는 손을 머리에 얹으며 웅크렸다.
스쳐지나가는 일렁이는 형체.
그게 참격의 형태를 지닌 무언가라는 걸 깨닫는 순간.
철컹─!!!
정면의 난간이 두 동강 난다.
텅-.
그리고 바닥에 쳐박히는 소리.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남자는 이를 악물었다.
“···빌어먹을, 빌어먹으을!!!”
도망쳐야 해.
저건 괴물이다.
꾸욱.
어떻게든 일어나 달린다.
구불구불한 골목길. 도시의 어두운 일면.
과거, 유흥가였던 장소.
“허억, 허억, 허어억···! 뭐야.”
한참을 달려 들어온 공간에서, 도망치던 남자는 멈춰 서서 아연하게 중얼거렸다.
“막다른 길···? 이런 씨발. 씨이···!”
벗어날 수 없다.
담이 너무 높아.
그는 위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마나도 체력도 이미 바닥이다. 스킬 발동에 시간이 걸릴 거야.
“씨발. 누구, 누구 없어? 지금 몇 분째 싸우고 있는데, 지켜보지만 말고 도와···!”
그때였다.
스윽─.
돌연 남자의 목덜미에 느껴지는 인기척.
속삭이는 목소리가 하나.
“─나쁜 말은 안 됩니다.”
툭.
차가운 금속이, 목에 닿는다.
“───!!!!!!”
“아이튜브 노딱 먹으면 책임지실 거예요?”
쫓던 자, 크로스보우는 웃으며 말했다.
“얌전히 계시지. 왜 도망을 치고 그러실까.”
그 모습이 그야말로 빌런 그 자체.
“···.”
천천히 눈을 뒤로 향하자, 보이는 것은 붉은 기운을 두르고 있는 크로스보우의 모습.
검은 헬멧 아래로 보이는 미소.
남자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크, 로스보우.”
“곧 경기 구역이 닫힙니다. 뭔가 하실 거면 빨리 하시죠.”
“······쉽게 죽어 주진 않아!! 폭파─익스플로젼!!!”
우웅─.
콰아아아앙──!!!
“허억. 허억···.”
최후의 최후까지 아껴둔 스킬. 정통으로 들어갔다.
순간 공간을 뒤덮은 연기. 보이지 않는 상대의 모습.
“···해치웠나?”
남자는 작게 중얼거리다가 문득, 깨달았다.
킬로그가 떠오르지 않는다.
과몰입한 나머지 이게 게임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불길함이 남자의 눈동자에 떠오를 때.
“─즉시 발동 가능한 폭발형 스킬. 끝까지 안 보여 준 건 대단합니다만.”
연기를 헤치며 인영이 나타난다.
작은 단검을 늘어뜨린 채 걸어오는 모습.
“공기가 순간 뜨거워지며 밀려나오는 바람. 폭발 전에 들리는 전형적인 마나 울림음. 이 두 가지는 어떻게든 가렸어야죠.”
그럴꺼면 차라리 발음을 에크스프로젼 따위로 하는 편이 더 아이튜브 각이었을텐데.
크로스보우는 대충 중얼거리며 남자를 향해 걸었다.
“이, 이런 미친···그 짧은 순간을 캐치했다고···? 아니, 그보다 어떻게 노데미지···!”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단검을 든다.
해방 스킬로 알아차린 운용법.
전신을 도는 오러가 빨간색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상대가 나잖아.”
“···이런 씨···!”
서걱.
[SYSTEM]당신의 공격으로 인해 ‘파이어워쳐’가 사망하였습니다!(5킬)
***
-해치웠나때문에 살아남ㅅㄱ
-ㄹㅇㅋㅋ장례식밈 받아치기
-붉은색은 3배 빠른거임 엌ㅋ
“이거 너무 강캐 같은데?”
크로스보우는 전리품을 수거하며 중얼거렸다.
[필요 킬 수에 다다라 스킬이 업그레이드 됩니다.]
[탄환의 등급 : 하급->중급]
5킬을 달성하는 순간 떠오른 문구.
요령만 깨우치면 기반 에너지를 죄다 다룰 수 있는 것도 엄청난 메리트인데, 스킬까지 업그레이드해 준 것.
그것도 매번 변수를 창출해 낼 수 있는 스킬이다.
“이제 해방 스킬 없이도 울렁증은 거의 사라졌고···각종 페널티야 잘 조절하면서 사용하면 되니까···괜찮네요.”
물론 그 의견은 크로스보우 자신에게만 해당할 뿐, 보통 사람은 움직이기조차 쉽지 않은 수준이었지만···
-바로 해보러감ㅅㄱ
-ㄹㅇㅋㅋ다뒤졌다 나도 크보랑 매칭될거야!!!
-뭔 소개팅어플이냐?
-우효 이때만을 기다렷다고
아무튼 겉보기로는 효용성을 인증해 보인 크로스보우.
그는 그의 발언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도 모른 채 중얼거렸다.
“일단 재밌습니다. 지금 계급전 꿀잼이네요.”
-상대 스킬 보는 맛도 쏠쏠
-이기어검쨩ㅠㅠ무기 NTR당해버렸자너
-픽시브on
이제 게임은 후반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대충 느낌 알았으니 좀 빠르게 가보겠습니다.”
그렇게 선언한 후 달리기 시작한 크로스보우.
···움찔대는 시체가 그 뒷모습을 배웅해 준다.
***
맵의 중앙.
부숴진 고층 건물 안.
“님들. 이대로는 안돼요.”
유저명 ‘홍 쭈’.
오늘도 운명처럼 크로스보우와 매칭된 유저.
크로스보우와 함께 네이션스 컵에 출전하기도 했던 유저인 그는 허공에 대고 말하고 있었다.
“아니. 존버만 하고 있지 말고! 크보님한테 그냥 다 쓸린다니까요? 거기 숨어 있는 ‘봉찬이구른다’님. 님도 네이션스 컵 같이 나가 봐서 알잖아요?”
정확히는, 허공이 아니라 여기저기서 존버하고 있는 유저들을 상대로 한 말.
“···그냥 운명을 받아들이시죠.”
“리얼. 크크. 그럼 티밍이라도 할까여? 하이드 보자고?”
“우린 왜 햄보칼 수가 업써?”
여기저기서 한 마디씩 던지는 유저들.
누가 고계급 아니랄까 봐 모습은 절대 드러내지 않은 채 말하는 모습.
홍 쭈는 답답한 듯 가슴을 치며 외쳤다.
“크보님이 저격을 극도로 싫어하긴 해도 저희 같은 일반 유저가 전략적 티밍하는 건 별 생각 없어 하신다고요. 예?”
그러나 유저들은 일관된 반응을 보일 뿐이었다.
“시러잉~. 난 무서웡~.”
“나도 그럼. 그레이드전 때도 같이 매칭된 적 있는데 티밍하고 개털렸어요.”
“님. 혹시 입안에 수류탄 당했던 그 사람임? 크크크.”
“···흑역사 들추지 마세요. 님은 샷건 띱 당한 거 아이튜브에서 다 봤거든요.”
“···헙.”
[배틀로얄]의 고계급들은 다들 고이다 못해 썩은 유저들뿐.
그렇기에 친분이 어느 정도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이들.
암묵적인 평화협정 속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뚜벅.
돌연, 발걸음 소리가 부서진 건물을 울린다.
“···왔다.”
뚜벅.
“···크보임?”
“···나 여기 있소 하고 정면에서 걸어올 수 있는 게 크보밖에 더 있겠어요?”
“아···씨입···갑자기 긴장되네. 아까 그 제안 좀 다시 말해 봐요.”
“손 개떨린다. 후우.”
뚜벅, 뚜벅─.
“빠, 빨리요. 다 죽겠다!!”
“하아···별건 아니고, 사실 입구 쪽에 제가 트랩 설치해 놨거든요? 크보가 밟으면 스킬 다 쏟아붓죠.”
“오. 거기 제 트랩도 있는데.”
─뚜벅.
“···근데 왜 발동 안 시켰···아니, 그건 됐고 그럼 트랩 걸리면 일제 사격 하는···.”
그때였다.
─.
돌연 멈춘 발걸음 소리.
“와.”
웅웅 울리는 목소리.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는 이의 목소리였다.
“···크로스보우.”
누군가 말한 그 이름.
더 원 그라운드 때와는 다르다.
이 자리에 있는 건 모두 마스터 계급 이상의 실력자들.
그렇기에 더욱더 명확하게 느끼는 것.
“···위압감···뭐야.”
“벌써 숨이 턱 막히네.”
그러나 바짝 긴장해 있는 그들과는 다르게, 크로스보우는 느긋하게 외쳤다.
“─심봤다!!!”
“?!”
“뭣···!?”
쪼그려 앉았다가 일어나며 양손을 번쩍 드는 모습.
그 손에는 기묘한 모양의 덫이 몇 개 들려 있었다.
“저, 저거···!”
“왜, 왜 안 터져?”
유저들이 미리 설치해둔 트랩.
휘유.
그걸 집어들곤 휘파람을 부는 크로스보우.
마치 덫이 공이라도 되는 것 마냥, 몇 번인가 저글링을 한다.
그 순간, 사색이 된 홍 쭈는 입을 벌렸다.
“───도망쳐!!!!!”
씨익.
“캐치볼 딱 대. 쿠쿠루삥뽕.”
팔을 빙글빙글 돌리며 웃는 크로스보우.
우우우웅──!!
충격에 반응해 달아오르는 덫을 집어던진다.
다음 순간.
일순, 어두운 건물의 내부가 화악 밝아졌다.
───콰아아아앙!!!
-ㅋㅋㅋㅋ
-산삼(폭탄)
-중국산 산삼이냐? 왜 터지냐
-ㅋㅋㅋ크보 오늘 텐션 무야
-광대모드onㅋㅋㅋ
***
고계급 유저들이 모인 패치 후 개시전.
게임의 후반부에 이뤄진 고층 건물에서의 전투.
크로스보우는 당연하게도, 모두를 잡아죽였다.
다만 마지막 남은 이와 동반자살을 한 점이 주목할 만한 점이라면 점일까.
상대가 아이튜버라는 것을 알고 일부러 보여 준 퍼포먼스성 플레이였다.
“우효옷!! 크보쨩. 다이스키!”
“하하. 재밌었네요.”
“20대1의 전설 크로스보우···한국의 고계급들이 막았다···! 썸네일각 날카롭다.”
그 말대로, 해당 판에 매칭된 대부분의 이들에게 아이튜브각을 선물해 주며 끝을 맺었던 것.
[오늘자 크보 인성 수준.jpg]
-출구없는 우리 크보ㅠㅠㅠ
└네이션스컵때 크보 실물 영접한거 나야나^^
└ㅜㅜㅜ미치겠다 크보야 나 진짜 돌아버려 완전 지금 풍차야
└크보 웃을때마다 나도 웃는데 이거 운명 맞지···? 전생에 무슨 관계였을까···
어째선지 돌연 여초 쪽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구며 이슈가 된 그날.
“오빠. 메시지 왔던데.”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예지가 말해왔다.
메시지? 이 시간에?
스마트폰을 들어 내용을 확인하자, 적혀 있는 건 들어본 적 있는 이름.
[알 수 없는 발신자]
<크리스피다. 당신과 만나고 싶다>
<마이룸 초대 코드를 동봉한다>
<4b6715d1>
“호오.”
크리스피라면 일전 초대받았던 ‘자격의 방’ 멤버의 이름.
마이룸에서 만나자는 건 1대1로 보자는 의미나 다름없었다.
“한 판 뜨자는건가?”
“?!”
그러고보면 그때도 이상한 말을 했었지.
그런 생각에 나지막히 중얼거리자, 옆에서 묘한 반응이 터져나왔다.
“···.”
“···?”
입을 막은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예지.
“그, 음···그게, 보려고 한 건 아닌데···메시지를 봐 버려서.”
“아. 봐도 상관없어.”
“사, 상관 없···?! 오, 오빠. 나, 나 그런 취미는 없는데···.”
“뭐?”
얼굴이 빨갛다.
왠진 모르겠지만 눈가에 눈물까지 고여 있는 모습.
“개노답 고잔줄 알았더니···.”
“뭐?”
“마이룸 초대···하긴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지···거보. 응.”
“···이게 미쳤나?”
거기까지 들었을 때 신예지의 오해를 알아차린 크로스보우.
아마 메시지를 보낸 사람이 여자라고 오해한 듯한 모습.
“말해 두는데 여자 아니다···. 그래. 마침 잘 됐네. 너한테는 안 그래도 말하려고 했는데.”
“···응. 난 마음의 준비가 됐어.”
“닥쳐.”
그는 한숨을 내쉬곤 설명을 시작했다.
그리고 설명이 끝났을 때.
“하하. 그런 일이 있었구나.”
“야. 우냐?”
“응? 나 방금 여기 도착했는데 무슨 소리야.”
“야! 얘 운다!”
“이잇···!”
다시 평소대로 돌아온 신예지.
그녀는 훌쩍임을 숨기며 턱을 굈다.
“진짜 세계관 최강자들의 모임이네.”
“가슴이 웅장해지냐?”
“아니. 뭔가 수상쩍지 않아?”
신예지는 의심스럽다며 말을 이었다.
“솔직히 올오버 대회 같은 건 여기저기 넘치잖아. 그중 몇 개 참가만 해도 상금이나 네임밸류가 어마어마할 텐데. 굳이 그런 조직을 만든다는 게 좀···.”
“흐음.”
“올오버가 예전처럼 PC게임 수준도 아니고, 그 실력을 썩히는 건 아깝잖아.”
듣고보니 맞는 말이었다.
단지 게임으로써 존재하는 올오버.
굳이 정상권 유저들이 힘을 숨기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하는 의문은 당연히 따라오는 것.
“뭔가, 대회에 출전하지 않아도 될 만큼 달콤한 뭔가가 있어야 그런 조직이 성립할 텐데···국제 대회를 제칠 만한 거라곤 불법적인 거···앗.”
잠시 뭔가를 떠올리던 예지는 문득 탄성을 냈다.
“그러고 보니까 본 적 있어.”
“뭘?”
“잠깐만. 보여 줄게. 예전에 오빠 이름 좀 알리려고 커뮤니티에서 글 쓸 때 봤던 건데, 이상해서 캡쳐해뒀거든.”
그녀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들어 이리저리 조작했다.
“아. 이거다.”
캡처된 사진은, 국내 최대의 익명 커뮤니티 어느 게시판.
그곳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투기장 새로 들어온 애 뭔가 약하네]
-한번에 뒤져버리누ㅋㅋ천만원 태웠네ㅅㅂ
└입닫아
그리고 사진을 옆으로 넘기는 예지.
[삭제된 게시글입니다.]
“캡처하고 댓글 달려는 잠깐 사이에 삭제됐는데···이것도 이상해서 캡처해 놨어.”
“···.”
이건 묘하군.
크로스보우는 눈을 가늘게 뜨며 생각했다.
< 86화-투기장의 신성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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