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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스트리머가 너무 강함-86화 (86/143)

< 87화-투기장의 신성 >

87화.

"기다리고 있었어. 크로스보우."

올오버에서 제공하는 나만의 공간.

[마이 룸].

크리스피의 마이룸은 단적으로 말해 난잡함 그 자체였다.

옷가지로 시작해서 음식물, 한쪽 구석에는 헐어가는 침대.

바닥에 온갖 것들이 널브러져 있다.

"독특한 취향이군."

···버튼을 하나 누르는 것만으로 쓰레기를 없앨 수 있는 가상 공간.

그렇다는 건 이 광경이 일부러 만들어낸 것이라는 뜻이었다.

"더럽지?"

"깨끗하다곤 못 말하겠는데."

"그렇지? 그래도 이 정도면 깨끗한 편이야. 내 고향에선. 오히려 대단하지."

크리스피.

크로스보우가 짧게 알아본 바에 의하면 재작년, 규모 있는 [1대1 모드] 대회 중 하나, KOA의 우승자.

그 전까진 그 어떤 두각도 드러내지 않던 플레이어로, 돌연 나타나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이 전승 우승을 한 유저라는 듯했다.

공개된 인터넷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로는 고작해야 그의 태생 정도.

그마저도 인도식 영어를 사용하니 아마 인도태생이 아닐까. 그런 추측성 정보가 전부였다.

그도 그럴 게, 그 이후 크리스피는 단 한 번도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가끔 그리워지거든. 이곳에서 살던 시절이."

"어린 시절의 추억이라도 깃들어 있나?"

"추억? 글쎄. 거리에서 쓰레기를 주워 먹고, 천민들이 마구잡이로 싸댄 똥오줌에서 마실 물을 구하던 나날들. 그런 것도 추억이라면 추억이겠지."

크로스보우는 어깨를 으쓱였다. 과거 얘기를 하기 위해 부른 건 아닐 테니까.

그 생각은 상대도 마찬가지인 듯 보였다. 바로 다음, 돌연 본론을 들이밀었던 것이다.

"크로스보우. 너는 '자격의 방'이 뭐라고 생각하지?"

"글쎄. 잘 모르겠는데."

정말이었다.

당최 뭐하러 모여있는지 잘 모르겠다.

테스트 서버? 패치를 미리 체험하기 위해?

물론 메리트가 없다고 할 순 없지만···체험이 빨라질수록 질리는 것 역시 빠르기만 할 뿐이다.

정점에 다다라 대등한 싸움을 원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굳이 대회에 나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럼 질문을 바꾸지. 자격의 방에 멤버를 초대하는 건 누굴까?"

"방장이겠지."

"아니. 아니야"

단호한 부정.

그는 그렇게 말하는 자신이 기꺼운 듯 했다.

"자격의 방에 멤버를 초대하는 건 올오버다."

"···올오버?"

"그래. 멤버 중 하나를 골라 1대1을 시키는 것도 시스템상의 가입 조건이야. 멤버가 내건 게 아니라."

게임사에 직접?

크로스보우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분명 시스템 창에는 알 수 없는 자가 초대한다고 했었다. 그건 방장인 오드맨과 같았는데."

"그건 방장이 아니야. 유저명을 가려주는 칭호일 뿐이지. 뭔가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나?"

"···."

그 말에 크로스보우가 떠올린 것.

[너도 이번 신입 보려고 왔···응?]

처음 자격의 방에 입장했을 때, 더블혼이라는 이름의 유저가 했던 말이었다.

알 수 없는 자가 입장했다는 메시지에, 크로스보우를 누군가와 헷갈린 듯한 반응.

'신입 보려고'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

방장인 오드맨이 자신을 초대했다면, 그러한 단어를 사용할 리 없다.

"···그렇군."

"그래. 제4회 올오버 네이션스 컵에서 한국이 우승하도록 한 주역. 크로스보우. 그리고 당신과 비슷한 인간들을 모아둔 조직, '자격의 방'."

크리스피는 말을 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자격의 방은 테스트 서버 같은 곳이 아니야."

물론 처음에는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사족을 덧붙이곤 다시 입을 연다.

"우린 모종의 일을 대비해 모여있는 1군 같은 거다. 그렇기에 패치 내용을 미리 체험할 수 있고, 서버를 마음대로 옮길 수 있는 권한을 갖지."

모종의 일.

1군.

크로스보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악성 유저한테 제재라도 하는 건가? 아니면 무슨 세상이 멸망하기라도 하나?"

"하하. 둘 다 틀렸어. 크로스보우. 그렇게 간단한 것도, 그렇게까지 거창한 것도 아니야."

크리스피.

그는 씁쓸함을 보여주려는 듯한 미소로 웃었다.

"풀다이브 가상현실이 뭐라고 생각해?"

"게임

."

"물론 올오버는 게임이지. 하지만 또 다른 현실을 제공하는 가상현실. 이게 정말 게임으로만 굴러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야 아니다.

가상 공간이라는 건 단순히 게임산업 만에 사용될 소재가 아니니까.

군사용, 혹은 불법적인 무언가.

생각나는 용도만 해도 여럿 존재한다.

올오버도 이런 인간의 본성을 모를 리 없다.

그렇기에 '랜덤 데이트 모드' 같은 걸 서비스하는 것일 터.

"높으신 양반들이 즐기는 놀이다. 그 누구도 터치하지 못해. 게다가 올오버가 거대 게임이 된 만큼 가상현실을 향한 각국의 여론은 우호적. 피해자를 게임 폐인이라고만 여긴다."

"저런."

"···이 녀석들을 무너뜨리기 위해선, 불법 리그의 밑바닥부터 뒤흔들 수 있는 선수가 필요해. 압도적으로 강하고, 쇼크사 없이 상대의 의식을 끊을 수 있는 무기를 주로 사용하는!!!"

이쯤되면 무슨 말을 할지 알 것 같다.

아마 그 불법 리그에 선수로 출전해달라는 거겠지.

그리고 그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크로스보우. 나는 네 플레이 영상을 봤을 때 마치 구세주를 만난 것만 같았다. 처음엔 어차피 멤버가 될 리 없다고 생각해 아무 말이나 지껄였지만···이젠 아니야. 부디, 부디 도와줄 수 있겠나···?"

인도계 남자, 크리스피.

그 본모습이 어떨지는 알 수 없다. 돈을 잔뜩 투자해 바꾼 외모일 수도 있는 노릇.

"신기하군."

"···? 뭐가 말인가?"

"아니. 신기하잖아."

크로스보우는 새삼 그걸 깨달으며 피식 웃었다.

"이렇게 말발 좋은 사람이 예전에 했던 말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게."

[SYSTEM]현재 녹화 중입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을 담아낸 공간인데도 아주 기본적인 설정, '녹화 금지'와 '방송 금지'를 걸어두지도 않았다는 게.

물론 그가 두 번째 문장을 입에 담는 일은 없었다.

"똑똑한 동업자가 대본이라도 짜준 모양이지? 전에는 네 입으로 부자 양반들이랑 놀아준다고 했잖아."

"···!!"

그저 방바닥에 놓인 뭔가를 들어 올릴 뿐.

"이런 식으로 신입 선수를 수급하는 거군?"

"무, 무슨···."

"불법 투기장은 네가 운영하는 게 아닌가?"

"허, 헛소리. 갑자기 무슨 소릴 하는 거지?"

허를 찔린 듯한 반응.

크로스보우의 눈이 묘한 반달을 그린다.

"내숭 떨지 말고. 뭐 받냐. 나도 꼽사리 좀 끼자."

"···!!!!"

"뭣하면 선수로도 나가줄게. 어차피 떨거지들 상대는 이골이 났으니까."

그는 웃으며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뭐야. 젠장! 이쪽이였냐?"

"그래. 임마. 무슨 말을 장황하게 하나 했더니. 뽀찌 좀 받냐? 아님 니가 운영하는 거야?"

"아. 괜히 긴장했네. 난 또 올오버에서 불법투기장 잡을라고 보낸 놈인 줄 알았네."

"뭐? 내가 왜."

"···하긴 지금까지 방치하다가 이제 와서 그럴 리 없지."

캡슐 밖에서는, 신예지가 실시간으로 녹화되고 있는 영상을 확인하고 있었다.

"근데 거기 진짜 통각차단 해제되냐? 존나 해보고 싶네."

"···정의충인 줄 알았는데 얌전한 척 호박씨 까는 스타일이었구만?"

그 말과 함께 크로스보우는 상대에게 보이지 않는 각도로, 엄지손가락을 바닥으로 내렸다.

녹화 중인 화각에 들어오도록 한 것.

아이튜브각.

아주 날카롭게 섰다.

***

"위험하다고 해도 안 들을 거지?"

신예지의 말.

오랜 기간 크로스보우를 봐왔기에, 그 성격에 대해 알고 있기에 한 말이었다.

"···."

"···오빠."

"어, 어? 왜."

뒤늦게 대답하는 크로스보우.

크리스피가 보내준 파일.

그걸 확인하느라 여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파일을 저장 장치에 담아서, 캡슐에 꽂으면 불법 서버로 초대된다는 모양.

통각 제한 해제에 관한 것은 선수가 되면 따로 뭔가를 더 받는 모양이었다.

"···이번 거 조금 큰 거 알지? 아무리 오빠라도 좀 위험할 수도 있어."

"그런가?"

크로스보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저 사람. 높으신 분들이라고 했잖아."

"근데?"

태평한 대꾸.

평소와 다름없는 투

그에 예지는 조금 당황하다가 대답했다.

"···음. 오빠가 이렇게 태평하니 나야 믿을 수밖에 없지만···괜찮은 거지?"

늘 그렇듯 어깨를 으쓱인 크로스보우.

그는 설명을 위해 입을 열었다.

"저쪽에서 먼저 만나자고 해서 헛소리 늘어놓던 이유가 뭐겠어."

"음. 글쎄?"

"내가 같은 멤버가 되고, 나중에 구린 걸 눈치채서 폭로라도 할까 봐. 그 이유 때문이다. 난 방송인이기까지 하니까. 겸사겸사 내가 올오버에서 나온 뭔가가 아닌지 하는 생각도 있었을 테고."

스마트폰을 든 크로스보우.

"현재 크로스보우는 일개 스트리머 주제에 국민의 많은 지지를 받는 포지션이다. 네이션스 컵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방송을 하며 도와준 스트리머들 역시 존재하고, 프로팀 선수나 스태프들과도 친한 상태."

"···그렇게 타인 얘기하듯이···."

"이런 인간이 폭로하면 그 타격이 대단할 게 분명하다. 높은 분이라도 얄짤 없이 말이야."

"그래서 선수로 만들려고···?"

"그래. 혹시라도 나중에 일이 터지면, 내가 '자원해서 선수로 출전'했다는 카드를 갖고 있으려는 거다. 입막음인 셈이지."

"와."

그는 아주 오래간만에, 먼저 연락을 하기로 결정했다.

"오빠는 다 생각이 있구나···?"

"일단 오늘 영상 편집이나 해둬."

"어쩌려고?"

크로스보우는 빙긋 웃었다.

"리그는 3일 뒤야."

"···오빠?"

"준비 좀 해둬야지."

네이션스 컵에서 돌아온 지 이제 고작 일주일 하고 조금 더.

다시, 출전이다.

***

[크보 3연 휴방 뭐냐]

-숨 참는다 흡!

└"CAN'T BREATHE"

[크보가 신인 이유.txt]

-3일간 뒤졌다가 살아날 예정

└복귀하는 날은 그럼 부활절이냐?

[아ㅋㅋ크가놈 빨리 남은 열쇠 두개 써달라고ㅋㅋ]

-ㅅㅂㅋㅋ똥캐 하나 덜렁 만들어놓고 가면 어떡하라고!!!!!!

돌연 올라온 크로스보우의 휴방 공지.

사람들은 가지각색의 방법으로 아쉬움을 표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아주 은밀한 어떤 채널 채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채널명 : 투기개미들의 반란]

-아 오늘 크보휴방이네

-ㅋㅋ그런 놈 봐서 뭐함ㅋㅋ투기장에 슈퍼루키 하나 뜬다는데 그거나 생각하삼

-네이션스컵 같은 건 다 애들 장난이죠,,,^^투기장이 진정한 사내의 승부,,^^

-다들 총알(돈)은 든든하죠?

-슈퍼루키고 뭐고 이번에는 신입에 절대 안건다ㅅㅂ한두번 당하나

-전 큰거 세장 쓸 예정

그리고 마지막 휴방날 밤.

"···불편하군."

어느 무대의 대기실.

크로스보우는 제 이마에 자리하고 있는 가면을 만지작대며 중얼거렸다.

스패츠나츠 헬멧은 안정감이 있는데, 이건 아무래도 영 불편하다.

"디자인도 구리고."

끔찍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광대 가면.

크로스보우는 가면을 끌어내리며 귓가에 손을 댔다.

─바깥에서, 고막이 터질 듯한 함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네이션스 컵 때처럼 순수한 함성이 아니다.

──죽여버려!!!

─뭐해!! 빌어먹을!! 너한테 올인했다고!!

저주에 가까운 말들.

크로스보우는 눈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들립니까?"

-"···아주 잘."

"믿고 있는다구."

-"···이번 일 끝나면 진짜 싸인해줄 각오. 된 거죠?"

"바를 정 자 써드리겠습니다."

-"···!"

< 87화-투기장의 신성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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