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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스트리머가 너무 강함-91화 (91/143)

92화 투기장의 신성 (5)

***

이젠 조금 아득하게 느껴지는, 올오버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날.

크로스보우는 아직도 그날을 선명히 기억한다.

불가해 난이도 승격전.

하꼬 방송인으로 추락하여, 집착이나 다름없던 방송을 이어 오던 크로스보우.

방송을 그만둘 수 없었던 이유를 다시 한번 깨달았던 그 순간.

-미쳤냐고!!!!!!!!!!!!!!!

-크로스보우!!! *발 와 ^^ㅣ발롬아!!

-존나 멋잇어ㅅㅂ

분명 텍스트에 불과할 시청자들의 환호가 마치, 크로스보우로 하여금 무대 위에 서 있는 듯한 감각을 느끼도록 했던 그날.

처음으로 온 세상이 회색으로 보였던 날.

크로스보우는 그 당시를 선명하게 떠올리며, 골똘히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게 일종의 어빌리티였던 걸까.’

어빌리티.

투기장에 넘어오면서 들은 가상현실 테크닉.

과거 PC게임 시절의 진화캔슬, 평타캔슬···혹은 스탭 등. 택티컬한 뭔가를 가리키는 단어.

‘···뭔가 다른데.’

그러나 크로스보우는 내심, 자신이 겪는 현상과 어빌리티는 관련이 없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집중한다고 해서 세상이 회색으로 변하고, 느리게 보인다니. 우스갯소리로나 할 법한 이야기다.

심지어 명확한 인식을 동반하는 느림이었다.

‘그런 스킬을 갖고 있는 캐릭터들이 있긴 했지만···그거랑은 또 달라.’

분명 그건, 직접 제어하는 느낌이다.

‘일종의 이스터에근가.’

생각해 보면 그 영국인 여자도 의식 가속화 따위를 사용하는 말을 했다.

그 실력이 너무나도 구려서, 전혀 의식되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이번에 실험해 보면 되겠군. 저 어빌리티라는 거랑 비교해서.’

상대를 바라보았다.

맨손에 권총 한 자루. 양손을 내린 채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모습이, 정말로 여기에 납치되어 온 인간에게 총을 쥐여 준 듯한 차림새.

크로스보우는 당연하다는 듯이 회색 세상으로 빠져들며 검을 세웠다.

방심은 하지 않으려는 셈이었다.

물론, 오랜 방송으로 인해 입이 자동으로 멘트를 치고 있었지만 말이다.

“이 몸 등장.”

그 말에 눈을 크게 뜨는 여자. 이쪽을 완전히 혐오하는 눈빛.

“···.”

오해를 풀려면 설명이 필요하겠군.

시청자들이 봤다면 분명 포상이니 어쩌구 했을 법한 시선이다.

다만, 크로스보우의 생각과 다르게 여자가 눈을 크게 뜬 이유는 달랐다.

적어도 이번엔 그랬다.

그도 그럴 게 그녀로선 크로스보우와 제대로 마주하는 게 처음이지 않던가.

지금껏 크로스보우와 마주했던 이들이 모두 느꼈던 감각. 여자는 그걸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위압감, 혹은 압도적인 뭔가의 시선.

사람을 숨 막히게 하는 뭔가가, 투기장을 꽉 메운다.

“···윽!”

타앙─!

그리고 격발.

“방해하지 마!!”

이런 걸로는 멈출 수 없다는 건 그전 경기를 봤으면 잘 알 텐데.

크로스보우는 아무렇지 않게 탄환을 쳐내며 중얼거렸다.

그냥 이쪽에게도 확신이 필요할 뿐이다.

눈앞의 여자가 투기장 하부 리그에서 슈퍼루키라고 불리기까지의 일. 거기에 대한 설명.

그리고 나중에, 혹여나 이곳을 무너뜨리기로 결정했을 때, 이쪽의 편이 되어 줄 수 있는지에 대한 검증 같은 거다.

혹시 모른다. 고작 눈빛 따위로 사람의 속사정을 파악하기엔 어려운 일이니까.

“얘기 좀 나눴으면 하는데.”

“···당신 같은 인간이랑 할 얘기는 없어.”

“이걸 어쩌죠? 난 있는데.”

호흡을 정돈하는 상대.

크로스보우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지금까지는 그가 여태 상대해 왔던 이와 똑같은 반응이었기 때문이었다.

“···쓰레기 같은 인간.”

그러나 다음 순간이었다.

[오우!! 나오는 건가!!!!]

[오랜만에 등장한 투기장의 슈퍼루키!! 그녀의 ‘마탄’이!!!]

돌연 소란스러워지는 중계.

그 사이로 웅─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호오.”

저건 또 뭐야.

크로스보우는 나직이 감탄성을 냈다.

“마탄이라?”

그녀가 들고 있던 총에 뭔가 기운이 응집되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느껴지는 기운은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종류의 것.

[본섭에서조차 마이너하다고만 평가받는 기반에너지! ‘영력’ 사용자!! 그 마탄은 과연 브래드맨을 꿰뚫을 것인가!]

[조심해야 합니다! 브래드맨! 저 종이봉투에 뚫린 구멍이 네 개가 될 수 있거든요!]

“아저씨. 지금까지 재밌었지? 그런 봉지나 뒤집어쓰고 사람 죽이니까.”

이를 악문 듯한 소리.

진지한 얼굴. 누군가 봤다면 고작 게임에 왜 이렇게 열을 올리냐고 평가했을 법한 표정.

그러나 공격을 준비하는 그녀도, 크로스보우도 그런 생각 따윈 추호도 하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조금 아쉬운 거라곤 시청자들이 없는 환경일까.

“아저씨 꼴도 재밌게 될 테니까 기대해. 대신 조금 많이 아플 거야.”

기대되는군. 크로스보우는 내심 생각했다.

더 원 그라운드의 썩은 물.

총기류를 사용하는 캐릭터는 그 누구에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 그로서, 지금껏 총기로 다다를 수 있는 한계점은 결국 도탄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처음 만들었던 캐릭터 역시, 총탄에 에너지를 담는 형식이었던 것이다.

“한 번 쏴 보세요.”

그런데 올오버보다 더 실전과도 같은 곳. 투기장.

그곳에서 무려 ‘마탄’이라고 불리는 기술이면 훨씬 더 대단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에서 건넨 말.

그러나 받아들이는 상대 입장에선, 그게 마치 협박처럼 들렸던 모양이다.

“···못 쏠 줄 알고?”

우우우웅──.

마치 휴대폰이 진동하는 듯한 소리. 상대가 들고 있는 무기에서 울리는 진동이었다.

종이 봉투 속.

크로스보우의 눈이 순간 가늘어진다.

[아-. 이게 무슨 일인가요! 브래드맨! 악당 변신을 기다려 주는 주인공인가요!]

[이걸 풀차징을 기다려 주다니! 그야말로 멍청!]

“다신 투기장에 발도 들여 놓지 못하게 해 주겠어!!!”

타아아앙!!!

격발의 순간.

크로스보우는 총탄의 궤적을 확인하며 허탈하게 웃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콰아아아앙──!!!!!

엄청난 소리가 투기장을 꽉 채운다.

[아앗!! 맞았습니다!! 브래드맨! 회피실패!!]

검을 들어 올린 크로스보우가 바닥에 깊은 자국을 남기며 벽에 처박혔던 것이다.

“···후우.”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정적.

여자의 양손은 어깨부터 총까지 마치, 총과 회로가 연결된 듯한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첫 탄환을 쏘아내는 걸로 전투 상태에 돌입하는 것.

그 탄환에 차징한 에너지 정도에 따라 그 팔을 관통하는 통로가 넓어져서, 대단한 완력을 얻게 되는 기술이었다.

“···바보같이 흥분했네.”

그녀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밑으로 늘어뜨린 그 팔이 은색으로 빛난다.

그 모습이 그야말로 투기장의 신성.

네이션스 컵 전에는 비밀리에 매일매일 회자되던 선수.

투기장의 특성상 상부 리그 선수는 모두 갖는 별명.

그러나 유례없이, 하부 리그에서부터 별명을 가진 이. 그 이름 ‘은빛 사수’.

[역시! 은빛 사수다 이거죠!!! 최고 출력으로 전투 상태에 돌입한 슈퍼 루키!!]

[혜성같이 나타난 브래드맨을 단 일격에···?]

중계진이 거기까지 말했을 때였다.

콰아아아아아앙────!!!!!

다시 한번 굉음이 투기장을 지배한다.

“깜짝 놀랐네.”

그는 튕겨 나가 바닥을 뒹굴고 있는 상대를 보며 말했다. 멀쩡한 안색으로 오른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는 모습.

[···브래드맨?]

[저, 저건 대체?]

“크···.”

반면 여자는 비틀비틀 일어서며 침음성을 흘렸다. 씁쓸해하던 표정은 어딜 갔는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충격량이 어마어마했던 것이다.

“무슨···일이.”

멀쩡하다고? 그녀는 내심 경악하며 생각했다. 방금 공격. 분명 최대출력으로 꽂았는데도 크로스보우 쪽 타격이 전혀 없는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마탄이라길래 탄환이 유도탄으로라도 변하는 줄 알았는데. 실망이네요.”

크로스보우는 중얼거렸다.

피격의 순간 그가 허탈하게 웃었던 이유였다.

한껏 기대했는데 포장을 까고 보니 그냥 총을 사용한 일종의 스펙 강화에 불과하지 않은가.

“···당신. 누구야.”

“글쎄요. 빵셔틀?”

그는 자신이 쓰고 있는 봉투를 가리키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나 그 멘트가 다른 뭔가를 전달한 모양.

“빵셔틀···? 통역으로 이런 뉘앙스가 전달될 린 없어. 한국인이지? 왜 나타난 거야. 투기장이랑 연관된 사람이야?”

“아뇨.”

“···거짓말하지 마.”

그녀는 힘겹게 일어났다.

물론 아프지 않게 힘 조절을 해서 밀어내듯 타격했지만, 충격량 자체는 여전할 터.

크로스보우는 그 모습에 잠시 정적을 지켰다. 어느덧 회색 세상에 색이 입혀졌다.

“난···질 수 없어. 지면 안 돼.”

여자의 모습이 필사적이라 표현할 만했기 때문이었다.

마치 목숨이라도 건 사람 같았다.

타아아앙!!!

─피융.

“지면 안 된다고. 아저씨. 방해하지 마!!”

···사람 제대로 찾은 모양이군.

크로스보우는 피식 웃었다. 사정 청취를 해 봐야겠다는 생각과 함께였다.

“···흐음.”

다만, 경기 후 같이 있는 모습을 미심쩍게 여겨선 안 된다. 강제로 풀다이브를 해제시키는 것도 안 된다.

그렇다면 어쩔까.

그는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죽어!!!”

어느새 달려든 상대.

그 손목에서 돌연 짧은 검이 튀어나오는 걸 확인하며, 몸을 튼 크로스보우.

무릎을 올려 공격을 가한다.

퍼억!

“커헉?!”

그렇게 아프지는 않게 때렸는데, 순간 숨이 모자랐던 모양. 허리가 확 꺾여 온다.

틈을 노려 손목을 잡아채자 무력하게 제압당하는 그녀.

“이, 이거 놔!!”

“어림도 없지. 가만히 있어요.”

그리곤, 초근접 상태.

크로스보우는 그녀의 귀에 뭔가를 속삭였다.

“···!!!”

“시간이 지체되면 좋지 않겠네요.”

경기 후 같이 있는 모습이 수상하게 보일지 모른다.

그 잠시 이동하는 순간이 가장 그랬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슈는 이슈로 덮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크로스보우는 거기서 떠올렸다.

사소한 것에 신경을 쓰지 못하도록 만들어 주면 될 일이라고.

자신의 방식대로 말이다.

[뭐, 뭘 하려는 걸까요! 희롱하는 걸까요!]

[아녀자를 희롱하는 브래드맨! 투기장 하부리그에 어울리는 모습!!]

우웅─.

마나, 오러, 마기.

현재 그가 선택한 세 개의 기반 에너지 중, 지금껏 가장 많이 다뤄 봤던 것.

오러.

그는 그걸, 방금 관찰한 방법대로 정련했다.

응집시킨다. 그리고 통로를 만들어서···그걸 막는 불순물들을 한순간에 태워 버린다.

그러자, 지금까지 눈에 보이지 않던 무형의 에너지가 단번에, 시뻘겋게 달아오른 붉은색으로 변했다.

[저, 저건···?]

가장 먼저 해설자 중 한 명이 경악성을 내뱉는다.

그리고, 그 말에 고개를 들어 크로스보우를 확인한 여자.

그녀는 마치 있어선 봐선 안 될 걸 본 사람처럼 멍하니 입을 벌리고 말았다.

“지금, 무슨?”

한껏 발버둥 치던 것도 멈춘 채였다.

은빛 사수의 어빌리티라 불리는 테크닉. ‘마탄’.

고작 한 번 본 그 기술을, 크로스보우가 그대로 따라 하고 있던 것이었다.

“···말도 안 돼.”

“돼.”

그것도, 다른 에너지로 따라 한 기술이었다.

크로스보우는 벌겋게 달아오른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온몸에서 열이 뿜어져 나오는 기분. 인지 속도가 대폭 늘어난 듯했다. 신체 스펙 역시 마찬가지다. 온몸 힘줄의 유연성마저 늘어난 느낌.

“이런 거군.”

그는 목을 좌우로 꺾곤 피식 웃었다. 열기가 후욱, 공간을 달군다.

“어떻게?”

기가 질린 듯한 말. 그러나 크로스보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뭔가 부족한데. 오러로 해서 그런가? 응집시킨 다음에 쏘아내는 건 내부에서 요동쳐서 그런 거 같고···.”

그 말에 여자는 그저 동공을 확장시킬 뿐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어 말이 나오지 않는 지경이었다.

“그래도 한 번 해 볼까.”

그는 검을 들어 투기장의 구석을 가리켰다.

우우우웅───.

덜덜덜 떨리는 검.

그리고 다음 순간이었다.

퍼어어어어엉!!!

구조물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음. 컨트롤만 할 수 있다면 안 쏘아내는 편이 더 좋겠는데요. 아시겠죠?”

그 말을 들은 순간,

이길 수 없다.

스멀스멀 들던 그 생각을, 인정하고 말았다.

“···기권.”

< 92화 투기장의 신성 (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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