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 스트리머가 너무 강함-92화 (92/143)

< 93화 투기장의 신성 (6) >

[어빌리티를, 따라했다고요···?]

[단 한 순간이었습니다. 저건 대체···?]

관중석은 물론, 해설자들까지 웅성대고 있었다.

저기 저 아래에서 태평하게 서 있는 남자가 한 일이, 상식선을 붕괴시키는 종류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방장님. 진짜···.”

이젠 질린다는 듯한 얼굴로 채은아가 중얼거렸다.

저 남자는 예전부터 저랬다. 매번 게임을 할때면 아무렇지 않게 숨겨진 뭔가를 찾아내고, 이상한 기술을 만들어 낸다.

“역시···그냥 보는 걸로 만족하길 잘했다.”

괜히 따라잡을려고 안간힘을 쓰면 쓸수록, 그 격차에 대해 뼈저리게 실감하고 만다.

그녀는 스스로 게임을 접었던 이유를 다시 한번 느끼며, 고개를 끄덕일 따름이었다.

“그때도 저랬지. 우각이니 라이딩샷이니 슬라이딩이니···연속 장전까지···.”

그녀는 오래 전, 더 원 그라운드가 아직 메이저 게임일 당시를 떠올렸다.

스트리머면서 온갖 잡기술들을 만들어내어서, 프로 리그에까지 영향을 끼치던 그 당시 크로스보우를.

당시 게임의 운영자까지 그의 방송을 매번 모니터링하며 다음 패치내용에 반영할 의견을 수집했을 정도니, 그 위용을 알 만했다.

“···내가 필요한 거 맞아?”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잠시, 주변 소리에 집중했다.

“···저게 말이 되냐···?”

“한 번 보고 어빌리티를 바로 따라한다고? 차라리 올오버에서 스킬 따라하는 거면 몰라도, 저걸? 저걸 한다고?”

경악에 딱딱히 굳어 버린 관중들.

크로스보우가 한 행동이 대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설명해 주는 듯한 표정들.

은아는 다시 경기장으로 고개를 돌렸다.

붉은색으로 일렁이는 크로스보우의 모습.

‘원본을 넘어선 거 같은데.’

그런 생각에 팔짱을 낄 때.

[기권!!! 기권이 나왔다아앗!!]

[아···그럴 수밖에 없는 기권이었습니다. 이건 인정될 거 같은데요···!]

중계의 선언이 떨어지고, 경기가 끝을 맺는다.

별로 어렵지 않은 승리.

결승전을 표현하자면 그랬다.

***

“···생각보다 더 위험한 놈인데.”

안경을 낀 남자가 중얼거렸다. 동업자인 크리스피를 통해 투기장에 진입한 이를 보며 한 말이었다.

그의 눈에 비치고 있는 것은 방금 있었던 경기의 리플레이.

“올오버에서 나온 놈인가? 그렇다기엔···.”

너무 가감없이 드러내는걸.

그는 크로스보우를 유심히 관찰하며 생각했다. 당최 그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크리스피에게 물어도 직접 보라는 식으로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 순간, 다시금 리플레이에서 들려오는 굉음.

그리고 투기장의 한 구석이 박살나는 모습.

“···역시 직접 봐야겠네.”

그에 남자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안경을 세웠다.

“···설마, 너는 아니겠지?”

혹시 모를 생각에 머리를 털었다.

***

“난리도 저런 난리가 없네요.”

거리를 지나온 크로스보우의 말. 항상 풀어진 얼굴을 하던 채은아가 드물게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는 순간이었다.

“누구 때문인데요?”

“설마 저 때문은 아니겠고···은아 씨 때문인가요?”

아무렇게나 대답한 크로스보우.

그들이 자리한 곳은 투기장에 마련되어 있는 구석의 호텔.

그리고 호텔임에도, 이번에는 전혀 긴장하지 않은 채은아.

단둘이 아니었던 것이다.

“···당신들은?”

선 채로 그들을 경계하고 있는 여성.

결승전에서 싸운 상대였다. 크로스보우가 마치 뭐라도 있는 것처럼 꾀어내어 데려온 상황인 것.

다만 호텔의 같은 방에 데려온 것이 그녀의 경계심을 자극해 버리고 말았지만···아무래도 좋았다.

어차피 용건에 대해 말하다 보면, 이런 분위기 따윈 금방 사라지고 말 테니까.

“···!”

“설명은···음. 이러는 편이 빠르겠군요.”

그런 말을 하며 제 얼굴을 가리고 있던 빵 봉투를 벗어 보이는 크로스보우.

그러자 당연한 반응이 되돌아왔다.

“···크로스보우?···국대 크로스보우?”

“국대이었던 것, 입니다.”

“저, 정말로?”

도저히 못 믿겠다는 듯한 표정이 잠시, 이내 크로스보우임을 확인한 그녀는 제자리에서 콩콩 뛰어댔다.

“와. 좋겠다-. 크순이도 만나고. 입이 귀에 걸리겠어요.”

“이분은 가슴에 싸인해달라고 하지 않지 않습니까.”

“···무,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그걸 보고 있는 은아의 눈이 조금 가늘게 뜨였지만, 대충 던진 반론에 무너져내리고 마는 그녀.

“가슴에 싸인···? 저분은 누구···?”

“모르는 사람인데 갑자기 따라왔어요.”

“네, 네?”

만담이 오고가는 것은 잠시뿐이었다.

“슬슬 시간이 없어요. 크보 님. 그건 아시죠?”

“그럴 시간이 되긴 했네요.”

여러모로 시간이 모자랐던 것이다.

빠르게 하부리그에 참전하기 위해 로그아웃 시켰던 선수가 정신을 차리고도 남았을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죠. 빠르게 하려면 방법을 전부 쓸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랬다.

당장 오늘 열리는 하부 리그에 참가하기 위해 크로스보우가 생각해뒀던 방법은 총 세 가지.

스캐빈저 그라운드에서 바로 하부 리그로 승격할 수 있는 자격을 얻어두고, 본래 출전할 예정이었던 선수를 강제로 로그아웃시킴으로써 첫 번째 대리출전 후보가 되는 것.

이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면, 본래 선수가 가진 참가권을 빼앗아 ‘선수 본인이 세운 대타’라며 대리 출전하는 것.

마지막으론 상황이 투기장을 운영하는 이인 크리스피의 귀에 들어가, 그가 직접 크로스보우를 대리로 지명하는 것.

지금까지 벌인 일이 전부,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변수를 상정하고 행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하부 리그에 참전하려는 이유는 별 게 아니었다.

“···상부 리그에 올라서 기능 제한이 풀리는 걸 노리시는 건가요?”

정답이었다.

최소한 녹화든 녹음이든, 뭔가를 할 수 있어야 자료로 써먹을 수 있을테니까.

“그렇군요···두 분의 목적은, 그럼···.”

흔들리는 동공.

크로스보우는 어깨를 으쓱였다.

계속 말해 보란 의미였다.

“투기장에 대한 걸, 폭로하시려는···?”

“···.”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는 크로스보우와 채은아.

“글쎄요. 힘들 거 같은데.”

그리고 크로스보우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모두의 예상을 빗겨나가는 것이었다.

“···네?”

“응?”

잘못 들었다는 듯이 반문한 그들.

그러나 크로스보우는 그 대답을 철회하지 않았다.

“사실, 저 정도를 폭로해 봤자 큰 의미는 없을겁니다.”

“···그럼?”

“겉으로는···얼마든지 사설대회라 우길 수 있으니까요. 아무리 뭔가 더 있다고 한들, 잠깐 인터넷 상에서만 조금 불타오르고, 아무 일도 없이 끝날 거 같네요.”

“···.”

“문제는 통각제한 해제 쪽인데, 이건 그냥 사실 치고 박고 싸우는 걸 좋아하는 족속이더라···이런 프레임이라도 씌워지면 끝이거든요.”

예전에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크로스보우가 한창 더원그를 플레이할 당시, 핵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게 아니냐는 여론에 휘둘러 봤던 적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일이 제대로 흘러가려면 당신의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이럴 때는, 아주 강력한 뭔가를 갖고 있어야 한다. 크로스보우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한참을 침묵하던 여자는, 결국 망설음 끝에 입을 열었다.

“···저 정도가 전부가 아니에요.”

“···그 말은?”

“여기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알고 계시나요?”

그렇게 말하는 여자의 동공은, 초점을 잃은 채 흔들리고 있었다.

***

시간이 꽤나 흐르고,

“···.생각보다 더 처참하네요.”

채은아가 참담한 듯 중얼거렸다.

모든 걸 말하고 까무룩 기절하듯 잠들어버린 여자.

그녀를 뒤로 한 채, 방을 나서는 와중이었다.

“이런저런 사정은 많이 들어봤는데, 저렇게 끔찍한 건 처음 들어보네요···어떻게 살아온 건지.”

“···.”

은아의 말에도 크로스보우는 아무 대답도 없었다.

계속 침묵을 지키고 있는 모습. 오랜 방송으로 인한 버릇 탓에, 최소한의 말을 계속하던 평소와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크보 님?”

그에 의아함을 느낀 은아가 그를 돌아봤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것조차 하지 않는다.

그저 싸늘한 무표정을 하고 있는 모습.

“···.”

채은아는 그 얼굴을 보며,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래도 꽤 오래 그를 봐 온 시청자인 그녀로서도, 생전 처음보는 표정이었던 것이다.

이 자리에 만약 신예지가 있었더라면, 오래 전 봤던 그 얼굴이라 알아차렸을 터였지만···이곳에는 그들 둘뿐.

그녀는 오싹한 뭔가가 전신을 달리는 느낌을 맛보며, 조용히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마침 딱이네요.”

“···뭐, 뭐가요?”

그때, 돌연 정적을 뚫고 중얼거린 크로스보우.

[알 수 없는 발신자]

<지금 상부리그장 쪽으로 와줄 수 있나? 상부 리그 신입을 환영하는 연례행사다. 네가 로열로더를 달성한 것도 축하할 겸 말이야.>

그는 지금 막 도착한 메시지를 보며 중얼거렸다.

“검증 시간이란 거지?”

생각보단 시기가 빠르지만···이럴 수도 있겠다는 예상은 얼마든지 했었다.

“···.”

다만 지금은 조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얼마든지>

그렇게 답장했다.

***

“갑자기 또 왜 불러모은 검까.”

“아 씨-발. 지금 기분 존나 좋았는데 왜 불렀어요.”

“상부 리그 경기 오늘자 다 끝났잖아. 벌써 뒷풀이여?”

마치 고급술집의 내부처럼 보이는 곳.

넓은 방에 모여 있는 유저들이 제각각 불만을 터뜨리고 있었다.

갑작스런 두 투기장 운영자의 호출 탓이었다.

크리스피가, 상부리그의 고정 선수들을 대부분 불러모았던 것이다.

“입 좀 다물어라. 버러지들아.”

그리고 그들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홍일점, 붉은 검신.

“아. 거. 같은 처지에 그러지 좀 맙시다.”

“좆밥이 뭐라는거야? 뒤지고 싶냐?”

소란스러운 목소리를 뚫고, 마침내 등장한 크리스피는 손뼉을 쳐댔다.

“자자. 주목. 오늘 하부 리그가 너무 빨리 끝나서 결승전까지 마감이 됐다.”

“주목은 씨발 당직사관이냐?”

“리얼크크.”

“니들 자격구 다 뺏기 전에 조용히 해라. 근데 그 결승전에게 이긴 놈이 말인데···이번이 첫 출전이다.”

거기까지 들은 유저들은 아우성을 쳐댔다. 그게 뭐 어쨌냐는 반응.

“뭐, 로열로더야 니들 중에도 많으니까 그러려니 한다마는···문제는 이놈이 단 1의 데미지도 허용하지 않고 우승을 했다는 점이야.”

“···? 뭐? 뭔 크로스보우라도 된답니까?”

“걔가 여길 왜 와. 크크. 사이버 마약이 아니라 현물 마약 존나 빨겠다. 걔 정도면.”

“그놈도 여기서 총 한 방 맞으면 질질 짤 텐데. 뭐.”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브래드맨’의 정체에 근접한 이들.

크리스피는 본인만 그 정체를 알고 있다는 상황에 짜릿함을 느끼면서도,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 헛기침을 했다.

“그래서···나 말고 다른 운영자님이 사상검증 좀 시켜달란다. 괜히 어디 가서 떠벌리기라도 하면 골치 아프니까.”

그 말에 환호성을 지르는 이들이 몇몇.

“요컨대 신입죽이기란 말 아입니까?”

“크크. 이게 얼마 만이야. 재밌겠다.”

크리스피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걸 하면 멀쩡한 놈도 폭로하겠다. 새끼들아. 저 뭐냐,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대충 분위기나 맞춰라. 알겠지?”

“그럼 우린 뭐 병풍입니까?”

“신입 얼굴이나 보자구. 크크. 경기장에서 만나자마자 어루만져 주려면 좀 그렇잖아?”

그렇게 얘기를 하던 때였다.

방 안의 인터폰을 통해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브래드맨이란 종이봉투 쓴 남자가 크리스피님 초대라면서 입장시켜달랍니다. 어떻게 할까요.”

“들여보내. 손님이다.”

-“알겠습니다.”

기다리던 이가 도착했다.

< 93화 투기장의 신성 (6)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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