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화 투기장의 신성 (9) >
지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하강이라기보단 차라리 추락에 가까운 속도.
시커면 벽면이 반대편에 비치는 걸 보며 크로스보우는 채팅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위압감 지리네···
-지금이라도 짜고치는 몰카라고 해줬음 좋겟다ㅠㅠ
-내가 다 두근대자너
-1인칭 보기 권한 언제받냐고 아ㅋㅋ
“···.”
채은아와 떨어지자마자 텐션이 훅 낮아지고 말았다.
가슴 깊은 곳에서 시작된 불쾌감이 스멀스멀 뇌리로 흘러들고 있었다.
유리창에 옅게 비치는 건 자신의 건조한 표정.
“거의 다 왔네요.”
-마지막 페이즈인가
-뭐가 뭔진 모르겠는데 그래도 크보 믿는다
-광속해결인거임;
그때였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엘리베이터가 정지한 것은.
“또 뭐야.”
하강하던 관성만이 남아 발뒤꿈치를 짓누른다. 조명이 모두 꺼져 새까만 어둠만이 남았다.
-정전??
-가상공간에도 정전이 있누?
-아ㅋㅋ이벤트냐고
덜컹─.
[문이 열립니다.]
중간에 정지한 곳.
돌연, 엘리베이터의 문이 개방되었다.
“···.”
누군가, 있다.
날카롭게 깨어난 감각에도 희미하게 잡히는 기척.
“대단하네.”
그리고 들려온 것은 명백한 한국어였다.
시스템의 통역보조를 통한 것이 아닌, 정말 한국인이 말하는 한국어다.
“크로스보우···라고 했지. 역시 너구나.”
-ㅇ?
-뭐임
-먼데 아는척임ㅡㅡ
-보스전이냐?
“어렸을 때랑은 얼굴이 완전히 달라져서 못 알아봤어.”
잠시 후, 엘리베이터 내부에서 켜지는 붉은 램프.
마치 정말로 정전되었을 때를 대비한 듯한 희미한 불빛이었다.
“오랜만이야. 친구.”
어슴푸레하게, 서로의 얼굴이 드러난다.
크로스보우는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놀랐어? 하긴. 설마 여기서 나를 만날 줄은 몰랐겠지.”
“···.”
“나도 마찬가지야. 친구. 여기서 설마 동창을 만날 줄은 몰랐는데. 그 대단했던 녀석이 인방이나 하고 있을 줄은 더욱더 몰랐고 말이야.”
“···?”
“대체 어떤 일이 있었길래 그런 거나 하고 있는거야? 너. 물론 니가 거기서도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는 건 나도 들었지만···.”
“······누구?”
주절주절 이야기를 시작하는 남자.
그러나 크로스보우는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당최 기억에 없는 인간이 돌연 튀어나와서는, 자신과 안다는 듯한 말투로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뭐? 지금 뭐라고 했지?”
“아니. 그니까.”
내가 기억을 못하는건가.
크로스보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을 이었다.
“누구냐고. 너.”
-아ㅋㅋㅋ주둥이 봉쇄ㅋㅋㅋ
-크보 일찐설ㅋㅋㅋ
-주뒹이로는ㅋㅋ나도 미국대통령이랑 아는 사이다ㅋㅋ
-ㅋㅋ인정이지ㅋㅋ
“···하하. 뭐, 뭐?”
당황한 모양이었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모습.
크로스보우는 어깨를 으쓱였다. 한시가 바쁜데 갑자기 뭔가 싶었던 것이다.
눈앞의 상대의 정체는 그리 중요하진 않다. 지금 당장 크로스보우가 향해야 할 곳은 현장.
그는 닫기 버튼을 마구 눌렀다.
-한국인국룰
-ㄹㅇㅋㅋ
그러나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문은 닫히지 않는다.
“···갈 수 없어. 보내 줄까 봐?”
“오호라. 그쪽이 한 건가?”
“그래. 이왕 날 기억하지 못하니 정말 일개 스트리머를 대하듯 대해 줄게. 크로스보우.”
안경을 올려쓰는 모습.
그러나 그에 대한 크로스보우의 대응은 간단했다.
“닫아.”
돌연 시야에서 사라졌다가, 상대의 앞에 나타나는 것이었다.
꽈아아악.
“커으윽···? 어, 언제?”
시야가 회색빛으로 점멸하고 있다.
“날 내려 보내라.”
크로스보우에게 있어, 기반 에너지를 통한 스펙업은 이제 당연한 것이나 다름없는 수준.
그를 이용해 이동기를 즉석에서 사용한 것.
“컥. 케엑. 어, 어림없어. 크로스보우···여기선, 나, 를 이길 수···케헥!!”
손을 들어 허공을 짚는 놈의 모습.
그러자 돌연 눈앞에 메시지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흐름이 정지합니다.]
[모든 스탯이 90% 감소합니다.]
[움직일 수 없습니다.]
스르륵, 손아귀에서 힘이 풀린다.
-뭐야
-저쉐키가 운영자다
-디버프??
-안돼!!!
“···커윽. 하아···욱. 손아귀 힘이 무슨···너. 정말 어쩌다 이렇게 된거야. 아니, 애초에 네가 맞긴 한 거냐?”
조이던 목을 매만지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돌아가는 안경남.
크로스보우는 알림창에 쏟아지듯 떠오르는 다량의 메시지를 힐끗 보곤 말했다.
“···네가 여기 운영자구나? 크리스피가 운영자인 줄 알았다만.”
“하하. 그 멍청한 인도인 새끼가? 크로스보우. 그런 놈이 어떻게 이런 곳을 운영해.”
손을 양 옆으로 확 펼쳐보이는 모습.
과시할 때 저 동작은 반드시 해야 하는 무언가일까? 크로스보우는 그 음습한 행태에 불쾌감을 느꼈다.
“봐. 이렇게 거대한 공간. 가장 숭고한 유희를 즐기는 곳! 나는 이곳을 데우스 팔라티움이라고 불러. 신들의 궁전이란 뜻이지! 이런 곳을 그런 놈이 홀로 설계하고 운영한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
시끄럽군.
크로스보우는 움직이지 않는 자신의 양손을 바라보았다.
시스템적인 제한.
낮게 뜬 눈이, 그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인식한다.
번쩍, 번쩍.
회색빛 시야가 마구 점멸했다.
···흐름의 정체.
가상공간에서 시스템적인 제한이란 건 PC 시절의 것과는 다르다.
어떠한 법칙이 세워지고, 그에 합당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
기본적으로 유저들을 방치하는 올오버에선 그렇지 않을지 몰랐지만, 적어도 이곳 투기장에서 느낀 바는 그랬다.
현실감을 부여해 주는 만큼 어느 정도의 제약은 걸려 있는 셈.
“벗어나 보려고? 크로스보우. 하하. 나는 이곳에서 신, 그 자체야. 서버 주인은 내가 아니지만···모든 권한을 갖고 있는 것은 확실하지.”
안경남은 얼굴을 들이밀었다.
크로스보우에게, 바짝.
그리고, 그런 행태를 보며 격분하는 것은 크로스보우가 아닌 시청자들이었다.
-저씹새가
-쟤가 범인임?
-개ㅆㄷ같이도 생겼네
-크보한테 지금 뭐하는거임?
-방송 송출되는건 모르나보네? 신 ㅇㅈㄹ하는데
“···.”
“···기억나? 같이 학교 다닐 때 말이야. 넌 항상 사사건건 내 방해만 해댔지. 나는 네게 뒤쳐지기만 했어. 주인공은 항상 너였지.”
히죽.
“그런데 이걸 어쩌나? 이젠 상황이 반대가 됐네?”
“···.”
“···기분이 어때?”
“딱히.”
“하하하하!!! 쿨한 척 하지 마라! 아무것도 못하는 주제에!! 크로스보우!! 여기서 그때의 울분을 갚는구나!”
광소하는 남자.
그러나 그 모든 행동에도 아랑곳 않고, 크로스보우는 인상을 찡그릴 뿐이었다.
“입냄새.”
“···뭐?”
“그 지독한 입냄새 맡으니까 알겠다. 너. 별 걸 다 구현해 놨네. 이거 진짜 가상현실 맞냐?”
뭐하는 놈인가 했더니, 어린 시절 처음 크로스보우가 게임을 시작했던 때.
그때의 상대방이었다.
항상 불만에 차 있던 놈.
크로스보우는 그 끔찍한 냄새에 불현듯 살아나는 기억에 한층 더 기분 나쁜 표정을 해 보였다.
“아주 그대로 자랐군.”
“···뭐?”
-ㄹㅇ동창이었나보네
-ㅅㅂ; 존나 소름돋네
-입냄새로 구별하누ㅋㅋ
-범죄자 새끼 단죄해주리라 믿습니다
-기계장치의 신 크보한테 깝쳐?
“···그래. 그게 마음에 안 들었어.”
눈깔이 뒤집어지다시피하는 안경남.
숨을 마구 들이쉬었다가 내쉰다.
“그 태평스러운 태도. 그게 마음에 안 들었다고. 크로스보우, 아니. 백···!”
“너 내가 반장한테 고백하기 전에 복화술부터 배우랬지. 입냄새 난다고.”
-ㅋㅋㅋㅋㅋ
-인성onㅋㅋㅋ
-크보쉑ㅋㅋㅋ
“···죽여 버리겠어. 크로스보우. 죽여 버린다.”
잡담은 여기까지.
크로스보우는 어깨를 으쓱였다.
시스템이 강제하는 요소를 파악하기 위한 시간벌이.
목적은 달성했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이었다.
···파각!
뭔가, 부숴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파직.
파직파직파직!!!
“···뭐, 뭐야!”
허공에 스파크 같은 것이 마구 나타난다. 모든 흐름이 불안정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라!”
[움직일 수 없습니다.]
[움직일 ? ? ㅇ?]
“···이, 이게 뭐야.”
“뭐긴.”
크로스보우는 오른손을 마치, 늪에서 빼내듯 끌어올렸다.
채팅창에는 아무말도 올라오지 않는 상황.
[현재 시청자 수 : 107,892명]
십만에 다다른 인원이 시청 중임에도, 순간 정적이 흐르는 모습.
그럴 만도 했다.
그 광경이 그야말로 경이,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파직. 파지지지지직!!!
뒤흔들린다.
‘법칙’이 깨져나가려 한다.
“니가 좆된다는 거지.”
크로스보우는 싱긋, 웃었다.
또 다른, 여초에서 돌아다닐 짤방이 탄생하는 순간.
그것과 동시였다.
───쩌적.
째애애앵──!!!!!
[??? ? ????.]
[Error!! 알 수 없는 이유에 의해 조치가 해제됩니다.]
그를 속박하던 게, 산산조각나 흩어진다.
“내가 하면 사적구제가 되니 별다른 건 못해 주겠다만.”
눈이 커진 채 덜덜 떠는 안경남자의 모습.
이번엔, 크로스보우가 얼굴을 들이밀며 속삭였다.
“옛 친구를 위해 이 정도는 해 줄 만도 하지.”
파직-.
크로스보우는 그 얼굴을 콱, 틀어쥐었다.
손에서 검보라빛의 뭔가가 스멀스멀, 새어나온다.
강제 풀다이브 해제.
“끅──?!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축하해. 자고 일어나면 넌 일약 스타다.”
“웁, 아아아아악!!!”
···털썩.
쓰러지는 상대.
장황한 말과는 다르게 허무한 퇴장.
“···.”
아무렴 어떠랴.
크로스보우는 그걸 저 멀리 던져 버렸다.
“시간에는 맞춘 거 같군.”
모든 관문을 돌파하는 순간이었다.
-···와
-···쌋다
시청자들의 눈에, 그 등이 오연히 비친다.
***
마지막.
[국내 스트리머에게 꼬리를 잡힌 불법투기장. 그 실체란?]
[인간의 도를 넘은 장소. 각종 인권단체가 성토해···.]
[사법기관에 맞기지 않은 방송인 크로스보우의 결단. 경찰, 용감한 시민상으로 보답할 거라 발표해···.]
그 뒤는 어떻게 마무리 되었는지, 크로스보우로선 조금 아득했다.
단지 한바탕 난리가 났다고 여길만한 발표가 연일 계속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도착한 현장. 크로스보우의 송출캠에 비친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끔찍하고, 인륜을 저버린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육용 인간을 필두로, 온갖 강력범죄란 범죄는 모두 다 모아둔 듯한 현장.
한국에서 시작된 이 사건은 아주 빠르게 전세계로 퍼졌고, 국제경찰까지 나서며 그 규모를 더했다.
아마, 이번 사건으로 인한 쇼크는 꽤 오래갈듯 보였다.
[올오버 본사, 레드홀.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고 발표해···.]
[모든 캡슐에 보안업데이트를 개발. 이젠 모든 사유서버를 회수한다고 밝혀···.]
[크로스보우의 폭로, 그곳에 등장한 ‘자격의 방’이란?]
“이번 걸로 또 이상한 법을 만들지나 않았으면 좋겠는데.”
“맞다. 오빠. 은아는 어떻게 됐게?”
“뭐···당연히 이겼겠지.”
“와. 신뢰 뭐야? 질투 나네. 맞아.”
그리고, 그 모든 것과 함께 크로스보우에게 또다시 온갖 관심이 집중되고 있었다.
주목할 만한 커뮤니티 게시글이 조금.
[???: 아ㅋㅋ크보님이 직접 수사하시던가요ㅋㅋ]
-제발요···
[기계장치의 신 크로스보우.gif]
-[시스템을 무력화시키는 장면]
-ㄹㅇ미친놈이냐? 이거 올오버에서도 되는거 아니지?
└크보피셜 저기서만 된다고 했음
└ㄹㅇ; 클라스가 우주를 돌파해버리네
인터넷 상에선 조금이나마 존재하던 안티팬이, 더 이상 그 어디서도 보이지지 않았다.
지금 크로스보우를 까기라도 하면 ‘투기장’에 가담한 놈이라고 여겨지는 분위기 탓이었다.
그리고 대충 하루, 이틀쯤 뒤.
팬들의 각종 선물들이 크로스보우에게 도착했다.
물론 그가 주소를 공지한 것은 아니었기에, 아이러니하게도 모두 TK의 숙소로 배달되었다.
[TK송정훈감독]
<선물 좀 가져가주세요···무슨 산을 이루는 중>
<사진>
“···바빠 죽을 거같군.”
“이제 개인 매니저도 고용해야겠는데? 역시 그냥 MCN이···.”
그뿐만이 아니었다.
[올오버에서 크로스보우님께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메일함이 터지기 일보직전인 와중에, 올오버에서 온 메일.
“···킵.”
올오버도 조금 수상한 건 매한가지.
크로스보우는 메일에 중요표시를 해두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알 수 없는 발신자]
<크리스피 건에 대해 사과하겠네. 그리고 얘기를 조금 할 수 있을까. 미안하네.>
“얼씨구.”
또 지랄이군.
크로스보우는 스마트폰을 발로 쭈욱 밀어 버리며 침대에 누웠다.
나중에 생각할 셈이었다.
아직, 사건의 피로가 남아 있다. 그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여기저기 참고인으로 불려 가고, 또 증언을 반복해야 하는 일정이 남아 있다.
우웅.
[은아]
<님>
<님>
<싸인해준다며>
바닥의 스마트폰이 조금 시끄러웠지만, 요 근래에는 계속 있는 일이다.
그는 베개 밑에 머리를 넣은 채 잠에 빠졌다.
< 96화 투기장의 신성 (9)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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