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화 가상현실의 청백전 (1) >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바뀌어 있었다.
크로스보우는 멍하니 그 말을 체감하며 중얼거렸다.
"···저게 뭐야."
아침 댓바람부터 방에 쳐들어온 신예지가 내민 스마트폰.
그 화면에 꽤 큰 규모의 시위가 중계되고 있었던 것이다.
"···진짜냐."
시위뿐만이 아니다.
'플래시몹'이라 불리는 즉석 공연도 벌어졌다고 한다.
시위 쪽은 투기장에 대한 규탄.
그리고 플래시몹 쪽은 방송인 크로스보우에게 헌정하는 공연이었다.
"월클이네. 오빠."
이뿐만이 아니었다.
그 이름 크로스보우.
네이션스 컵에 이어 또다시 굵직한 사건을 해결한 그의 이름은 어느새, 대한민국을 관통하는 하나의 트렌드가 되어버린 것.
그리고 유행이 하나 불면, 수많은 크리에이터들이 달라붙어 그와 관련된 창작물을 쏟아내는 것이 전통.
이슈 아이튜버의 분석, 헌정곡, 만화, 에니메이션, 성대 모사 등등.
세기도 힘들만큼 수많은 컨텐츠들이 우후죽순 튀어나왔던 것이다.
거기에 급기야.
"아마 조만간 대통령이랑 보는 자리가 마련될지도 몰라요."
"···?"
"명분이 충분하다 못해 넘칠 정도거든요. 국민 스포츠 영웅에···뭇 이들에게 귀감이 되는 행동까지. 물론 정치적인 계산도 조금은 들어 있겠지만서도."
참고인 자격으로 다시 받은 연락.
사건 담당 검사의 말이었다.
"···역시 이런 건 거절해야 제맛이겠지?"
개인방송인으로서 정치와 관련되는 건 좋지 않다.
그걸 수많은 선례들로 잘 알고 있던 크로스보우.
대답은 거절이었다.
[아ㅋㅋ우리 크보좀 냅두라고]
-나작크로 돌아와!!!
└평균 5만명 보는 대기업인데 스케일이 넘 커져버림ㅋㅋ
[숨이 안쉬어진다···휴방 언제 끝나나]
-아ㅋㅋ 3일만 한다면서요!
그리고 여전히, 시청자들은 애타게 크로스보우의 방송이 다시 시작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와중.
"···안녕하세요. 크로스보웁니다."
-'TIME START'
-신의 귀환
-ㅠㅠㅠ기다렸다고!!!ㅠㅠ
-돌아왔구나···크태식이···
다시 시간이 조금 더 흘러.
오랜 휴방기를 마친 크로스보우가 다시금, 트리키 뷰에서 방송을 시작했다.
***
"흐음. 후우."
본의 아닌 부지런한 나날을 보낸 크로스보우.
그는 오랜만에 접속한 올오버의 공기에 눈을 감았다.
-킁카킁카on
-꿀휴가 어땟누ㅋㅋ
"휴가가 휴가가 아니었습니다. 썰 방송 한 번 해야겠다 싶을 정도로 일이 많았어요."
그래도 깔끔하게 일단락난 일들.
크로스보우는 대강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며 시청 인원을 확인했다.
[현재 시청자 수 : 100,971명]
이젠 별다른 일이 없어도 10만명을 넘기는 숫자.
그러나 크로스보우는, 이젠 여상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거의···일주일이 넘었나요."
-ㅇㅇ
-님 없는 사이에 ㄹㅇ 많은 변화가 있었음
-크보 다시 뉴비행ㅋㅋ루삥뽕
-응 그건 아니야
이번엔 시청자들의 차례였다.
올오버 내에서, 그간 있었던 일에 대해 전달해주는 시청자들.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다음과 같은 후원이었다.
['티어구분'님이 1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신캐들 캐릭터 티어제 도입됨요ㅋㅋOP티어부터 10티어급까지
"후원 감사합니다. 티어표요?"
-ㅇㅇ올오버에 직접 신청하면 AI가 급 나눠줌
-상성관계나 스펙수준이 얼마나 되는지 알려줘요
"···?"
크로스보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뭔가 이상한 제도가 생겨난 듯 보였던 것이다.
"그러니까···각 캐릭터 자체에 캐릭터 계급이 존재한다는거죠?"
-ㅇㅇ
-맞음
-그 와중에 캐릭터 '크로스보우' 10티어급도 아님ㅋㅋ없는 캐릭 취급
-ㄹㅇㅋㅋ등급 외라 돼 있던데
캐릭터 티어제라.
"흐음. 그렇구나."
-8티어 이상 차이나면 실력차이가 일반인이랑 프로게이머여도 힘들다던데
-캐릭터 '크로스보우' 등급 외 티어ㅋㅋㅋㅋㅋ
전세계 유저들, 그 중 골드계급에게 전부 뿌렸던 캐릭터 생성권.
그 정도로 캐릭터 숫자가 많아지면 모종의 기준이 필요할거라고는 여겼는데, 정말로 생겼을 줄은 몰랐다.
"뭐, 상관은 없습니다."
그러나 크로스보우는 어깨를 으쓱이고 말았다.
오래전부터 그의 주력 픽은 모두 쓰레기나 다름없다고 여겨지던 캐릭터들.
게임 자체가 그걸 인증해준다고 한들, 뭐가 변하는 게 있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크보님이 스타트 끊은 뒤로 온갖 테크닉들 다 발명됐어요
-ㄹㅇㅋㅋ가끔 주말에 토론하는 채팅방 드가보면 꿀잼이다이말이야
-기반에너지 돌리는 방법이랑 스킬테크닉 요령 존나 공유하던데
-그러다가 지들끼리 싸움^^ㅣ발ㅋㅋ
그리고 또 주목할만한 건 이것이었다.
다양한 공략의 활성화.
"커뮤니티 유입이 더 많이 되겠군요."
그리고 거기서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이란 그것이었다.
이미 PC시절보다 커뮤니티를 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아진 세상.
거기에 올오버가 불을 지핀 것이다.
"게임에 빠질 수밖에 없이 만들어놓고···폐인이 많이 늘었겠네."
각자 만든 캐릭터로 유저들이 애정을 갖도록 하고, 공략이 존재할 여지를 수많이 만들어 놓는다.
그리고 그 공략들은 인터넷상을 떠돈다.
···이건 즉, 흐름에 뒤쳐지는 순간 게임 내에서 초보취급을 받게 되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
"딴 건 몰라도 게임 못할 수는 없죠. 확실히."
특히 한국인들이라면 더욱더 그럴 터.
그런만큼 기존에 커뮤니티따윈 거들떠도 안보던 사람들까지 모두 커뮤니티를 하도록 하는 효과를 낳는 것이다.
"많이 변하긴 했겠네요. 확실히."
국민 대다수가 커뮤니티를 하게 될지도 모르는 나라라니.
크로스보우는 이마에 손을 얹고 싶어지는 충동에 중얼거렸다.
그리고 마치 그걸 증명하듯 채팅이 주르륵 올라왔다.
-ㄹㅇㅋㅋ드립 못 알아듣고 급발진하는 뉴비들 많아짐
-아ㅋㅋ10수놈들 또 지들만 알아듣는 말 하는거봐ㅋㅋ
-10만명이 보는 방송에 지들? 뉴비는 닥눈삼이나 해라
"···은아 씨."
새로운 사람들의 유입. 그리고 본래 있던 사람들과의 가벼운 다툼.
그것이 가장 빨리 눈에 띄는 곳인 채팅창.
그 상태가 속된 말로, 개판이나 다름 없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크로스보우는 한숨을 내쉬곤 매니저를 찾았다.
띠링!
['크보쨩핥짝'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매니조 대기중
"아시죠?"
['크보쨩핥짝'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모루겟소요ㅋㅋ루삥뽕빵
"···."
마침내 안정된 방송.
-아ㅋㅋ매니저누님한테 밴 당하는건 포상이지ㅋㅋ
-우효옷- 밴 당하는 걸 좋아한다니 이 녀석 시청자로서 끝이잖아?www(쑻)
-[차단당한 채팅입니다.]
아무런 대꾸없이 제한을 걸어버리는 은아의 모습에 크로스보우는 픽 웃다가 말했다.
돌연 생각난 것이 있었던 탓이다.
"···그러고보니 곧 할로윈 아닌가요?"
할로윈.
게임이라면 필시 이벤트가 존재할 기간.
어느새 날짜가 10월의 중순으로 넘어가고 있었던 것.
"작년엔 뭔가 했나요?"
그러자 시청자들은 별 거 아니라는 듯 대꾸했다.
-아ㅋㅋ생각해보니까 '그 시즌' 이네
-ㄹㅇㅋㅋ생각해보니까 곧 공지뜰듯
-이번에는 글고보니 신캐만 존내 나오겠네
-그게 뭔데 씹덕들아
-할로윈 운동회 시즌요
***
청백전.
크로스보우가 어렷을 때만 해도 존재했던, 초등학교 운동회라 하면 생각나는 것.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린 이벤트.
특이하게도 올오버에서는, 매년 청백전과 같은 이벤트를 개최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개최 시기가 바로 딱 할로윈 시즌.
"기대되네."
크로스보우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도 그럴 게, 일반적인 청백전이랑은 다르게 그 규모가 엄청난 수준이었던 것이다.
평소에는 서버량 문제로 열리지 않는 '공성전'과 같은 모드의 오픈.
게다가 운동회라는 이름이 걸맞는 이벤트 모드들까지.
"어느 진영이 좋죠?"
-닥치고 이종족이지; 뿔 하나쯤 달아줘야 깐지임
-ㄹㅇㅋㅋ다 죽인다 가증스러운 인간놈들
-??크보방에 역겨운 이종족쟁이들 있냐 설마?
-아ㅋㅋ인외물 사절이요 ^^ㅣ발
"···."
그리고 그중 백미는 바로 이것이었다.
마치 청백전처럼 두 진영으로 나눠져 경쟁하는 것.
그 이름이 바로, [인간 대 이종족연합].
운동회 시즌이 시작되는 순간, 그때부터 이뤄지는 모든 매치의 승패는 모두 포인트로 환산되어, 종료 시점까지 더 많은 포인트를 쌓은 진영이 승리하는 시스템이었다.
반 정도가 장난인 그 진영 논리에 유명인들도 가담하여 한바탕 즐기는 축제라는 모양.
게다가, 매년 승리보상까지 상당한 것으로 준비되어 왔다고 들었다.
"재밌겠네요. 진짜로."
다만 올해엔 하도 많은 일들이 순식간에 벌어져 들을 기회가 없었던 탓일까.
크로스보우로선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공지 사항 : 할로윈 시즌]
[당신의 진영을 선택해주세요!]
그리고 시청자들의 말대로, 며칠 지나지 않아 뜬 공지.
"···응?"
그러나, 공지를 확인하던 크로스보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띠용?
-머임??
시청자들의 반응 역시 대동소이한 상황.
크로스보우는 채팅창을 확인하다가 다시 공지로 시선을 돌렸다.
"···진영이, 세 갠데요?"
[진영 : 인간]
[진영 : 이종족연합]
[진영 : 마족]
분명 인간족이랑 이종족밖에 없다고 하지 않았나?
그뿐만이 아니었다.
[할로윈 시즌 한정, 올오버 내에 오픈월드가 열립니다!]
[노점과 푸드트럭, 공연장, 숙박시절과 온천, 유흥시설까지! 축제와 관련된 모든 것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분위기를 즐겨보세요!]
"오픈 월드를 연다고?"
올오버 최초로, 종일 열어두는 가상공간이 생긴다는 모양이었다.
크로스보우는 그걸 읽어내려가다가 새삼스레 깨달았다.
"···지하투기장. 아마 이 패치내용을 먼저 받았서 만든 공간이었나보네요."
-오우쉣
-치트키쓰네 올오버놈들ㄷㄷ
-투기장사태로 전세계적으로 좀 맞긴했지
-와^^ㅣ발ㅋㅋ노점 딱대ㅋㅋ
***
그 시각 스트리머 뿅맛사탕의 방송.
자매 중 동생, 이하린은 말했다.
"네? 이종족이요? 그런 거 안받아요."
-아ㅋㅋ사탕이 가증스런 인간족 이었누ㅋㅋ
-당장 구독버튼 두 번 누르러간다
-똥스트리머인거데샤아앗!!!
"아. 진짜. 찐따들 이때다 싶어서 이종족 하는거 솔직히 좀 변태 같거든요? 님들."
"하, 하린아."
"님들 귀가 길어진다고 잘생···흠흠. 아! 드워프는 어울리겠다."
-ㅋㅋㅋㅋ팩트로 쥐어패누
-충격! 시청자를 매도하는 스트리머가 있다?
-그게 사탕이 방송 맛이지ㄹㅇㅋㅋ
"왜. 언니는 뭐. 이종족하게? 설마 아니지?"
"···."
"언니?"
은근히 시선을 피하는 세린의 모습.
"···언니."
"아니. 그게···솔직히 인간족은 지금이랑 그냥 똑같잖아. 모처럼 축젠데···."
"와! 우리 언니가 역겨운 이종이라니!"
팔을 휘저으며 난리를 피우는 단신의 동생.
그리고 그걸 한손으로 제압하는 세린의 모습까지.
시청자들 역시 한바탕 신이 난 모습이었다.
-ㅋㅋㅋㅋㅋㅋ
-ㅋㅋ아ㅋㅋ뿅누나 말이 맞긴 하지
-ㄹㅇㅋㅋ찐따들 놀줄 몰라서 인간족 하는거지ㅋㅋ인싸는 바로 이종족 박음
-? 말박이 밴
"···몰라. 오늘부터 할로윈 시즌 끝날 때까지 딴방서 자자"
"그건 하린아. 니가 먼저 같이 자자고 했는데?"
"그, 그걸 말하면!!"
-이하린 25세, 혼자 못 잠
-ㅋㅋㅋㅋ
"···그래서 진짜 이종족하게?"
그 질문에 잠시 고민한 이세린.
이내 그녀는 동생의 귓가에 뭔가를 속삭였다.
그에 응, 응, 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이하린.
그녀는 이때다 싶었는지, 돌연 과장된 모습으로 외쳤다.
"뭐어어?! 크보님이 하는 진영 따라간다고오오?"
"야, 야!!"
"오오오옷! 언니! 얼마나 일편단심인거냐고! 개쩔어엇!"
"이, 이이!"
-아ㅋㅋㅋㅋ
-남친 따라가유~
-뿅이모···아직도 크보님이 이모보고 연상인줄 알던데..ㅋㅋ
"······정말요?"
***
크로스보우의 진영 선택을 기대하는 사람들은 그녀들뿐만이 아니었다.
"저는 크보님 따라갑니다."
"솔직히 크보 낀 공성전 이길 거 같지가 않은데?"
"에이. 저는 때려죽여도 역겨운 이종족 고르진 않죠."
일약 스타를 넘어 이젠 국민 영웅이라고까지 불리는 위치.
흥미로운 주제를 앞두면, 언제나 유명인의 선택이 기대되는 것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크로스보우는 그 시각, 떨떠름한 표정으로 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걸요? 제가요? 정말요?"
-ㅋㅋㅋ잠자코 해!!!
-ㄹㅇㅋㅋ민심 반영 하자
시청자 투표로 진행된 진영 선택.
"이건 뭐 기미상궁도 아니고."
그 결과는 바로 '마족'이었던 것이다.
이미 고정수요가 존재하는 인간족, 이종족과는 다르게 새롭게 등장한 진영.
그렇기에 스트리머를 시켜 체험하게 해보자! 는 게 주요 여론이었던 것.
"뭐, 스트리머라면 당연한 일이긴 하네요."
[SYSTEM]진영 : 마족을 선택하셨습니다.
[SYSTEM]외형이 변경됩니다!
크로스보우는 시청자들과 드립을 주고받다가, 어깨를 으쓱이고 말았다.
운동회라고 해봤자 뭐가 어떻겠어. 어차피 게임이니까.
그런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건, 얼마 지나지 않아 전면철회될 생각이었다.
-ㅋㅋㅋㅋ크보에게서 야한 뉴비의 냄새가 난다
-ㄹㅇ맨날 잘하는거만 봤는데ㅋㅋ
-소매넣기 가요오오옷!
< 97화 가상현실의 청백전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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