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 가상현실의 청백전 (5) >
같은 시각.
퍼어엉─!
아득히 들려오는 폭발 소리를 배경으로, 코스튬을 차려입은 유저들이 인파를 헤치며 달리고 있었다.
“잡아!!! 스타디움 쪽으로 갔다!”
“저기 무슨 경긴데 폭탄이 막 터지고 그르냐?”
대기실을 박차고 나온 스트리머들 중에서도 선두, 울드와 일루션이었다.
“비켜 주세요! 여러분! 룰러입니다!”
“아아. 시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아무렇게나 입을 털자, 수근대면서도 길을 비켜 주는 사람들.
그러나 그도 잠시였다.
“···어어···이리로 오시면 안돼요···.”
“공무 집행···아니! 임무 수행 중입니다! 비키···서라님?”
돌연 길을 막는 인영이 있었다.
스트리머 단서라.
다른 장소에서 룰러 노릇을 하던 그녀였다.
“여기···10키로 이어달리기 경주 중인데요···트랙이에요···.”
“예? 이어달리기를 왜 길거리에서···.”
“스타디움에서 하면 빙글빙글 돌아야 하잖아요···이벤트 안내공지 못 보셨어요···?”
그들은 머리를 짚었다.
이벤트 하나 때문에 트랙에 난입할 수는 없는 일. 시청자들이 보고 있는데 무단횡단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가로질러 가면 바로 금방인데···!”
“···맵! 다른 길이 있을 거야···!”
빠르게 시스템창을 불러온 일루션. 약도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동쪽으로 한참은 가야 되는데요?”
“아니야. 저쪽 끝에 지하통로가 있다.”
“어디···거기가 더 멀어요!”
그렇게 둘이 발만 동동 구르던 때였다.
“···오잉. 울드 님. 일루션 님?”
뒷쪽에서, 그들을 알아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알았지. 할로윈 기간동안 어느정도 커스터마이징된 외모에도 불구하고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니.
둘은 서로를 마주보다가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헤헤.”
“안녕하세요.”
보이는 것은 긴 뿔을 달고 있는 마족 유저 하나와 인간족 유저 하나.
-ㅗㅜㅑ;
-퍄퍄; 눈나 모야
-오우야
잠자코 상황을 바라보던 시청자들이 감탄성을 올릴 만큼 섹시한 복장이었다.
“아. 사탕 님이···랑, 누구?”
“···저희 언니요.”
그 반응에 꾸벅 고개를 숙이는 세린과 심통이 난 하린의 모습.
“왜 저는 알아보고 언니는 못 알아봄요?”
“그, 게···인간족은 알아보기 좀 쉽지···요?”
“팩트. 둘 다 알아보기 어려움.”
“하, 하하···.”
-유부남들 식은땀ㅋㅋ
-ㅋㅋㅋ
-와이프들이 다 보고 있다 이말이야ㅋㅋ
잠시 헤프닝을 뒤로 한 그들은 빠르게 설명을 마쳤다.
요는, 건너편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이대로라면 빙 돌아가야 할 판이라는 것.
“아하. 그런거라면 저희가 해결해 줄 수 있는데.”
“어? 정말?”
“정확힌 저희 언니가.”
어디서 난 건지, 콘 아이스크림을 와작와작 씹어대며 말한 하린.
둘은 그에 반색했다.
“세린 씨가요?”
대답은 이세린에게서 나왔다.
“음. 스킬 중에 단거리 블링크가 있긴 해요.”
“오우쉣. 믿고 있었다고!”
급박한 상황. 한껏 오른 텐션에서 튀어나오는 리액션.
덩치는 산만 한 성인남자 둘이 키작은 꼬마를 앞에 두고 하는 것치곤 영 없어 보이는 장면이었다.
“방금 꼬마라고 생각했죠.”
“우리가요? 전혀요.”
“이상하다.”
-트최단on
-갓직히 꼬마 맞긴하지ㅋㅋ
-[정지된 시청자입니다.]
‘’’’’’’’-아ㅋㅋ뿅누나나 더 보여달라고!
“세린 씨. 빨리 부탁해도 될까요? 한시가 급해서.”
일루션은 발을 동동 구를듯한 태도로 말했다.
“···팔 잡으세요. 건너편으로만 데려다 드리면 되죠?”
“부탁합니다! 뿅님! 앞으로 뿅님한테만 호스팅할게요!”
“···해결되신 거죠···? 그럼 조금 뒤로 가세요···.”
“아. 서라 씨. 아무렴요.”
그렇게 복작대던 와중.
[현재 9번 스타디움 명장면!]
돌연, 거대 스크린에 또다시 뭔가가 송출되었다.
약속이나 한듯 그쪽으로 시선을 돌린 다섯명.
“···9번 스타디움?”
“어. 언니. 크보 형 있는데 아냐?”
영상 속에는 상공에 나타난 와이번.
그리고 또 다시 익숙한 뒷모습.
팀원을 구하는 순간의 크로스보우였다.
“오. 멋있다.”
“···.”
열뜬 한숨이 지켜보던 두명에게서 터져나왔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다.
하단 자막으로 떠오르는 설명. 진영 포인트를 주는 이벤트라는 것!
“아하. 두 분 저쪽으로 가려는 이유가 저거였구나.”
어느새 명장면 송출이 끝나고, 세린은 살포시 웃었다.
“······아, 아닌데요?”
“그러게. 전혀 아닌데요? 빨리 데려다 주세요.”
일이 틀어졌다.
그런 직감에 손사래를 치는 두 명.
그도 그럴 게, 세린의 종족은 ‘마족’.
진상을 알게 된 이상 순순히 길을 터 줄 리 없었던 것.
“저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가 봐야겠어요.”
싱긋.
-ㅋㅋㅋㅋ
-ㅋㅋㅋ
-단골멘트on
“아, 안돼앳!”
“돼요.”
고개를 돌려 애타는 눈길로 단서라 쪽을 바라보는 둘.
그러나 그녀는 눈썹을 세워 보였다.
“···절대···못 지나가요···.”
“아니, 서라 님은 이종족연합이잖아요!”
“공략완료야 뭐야!”
“아무튼···안됨···.”
두 여자의 철벽.
구슬픈 외침이 두 수컷의 입에서 터져나왔다.
“금발태닝 양아치냐고! 크로스보우!!!”
-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
배를 잡고 웃어대는 이하린과 시청자들까지.
완벽한 난장판이었다.
***
귀가 간지럽네.
크로스보우는 괜히 귀를 파며 입을 열었다.
“뭔가 개미떼 같군요.”
조금 멀리, 바겐세일을 마주한 사람들처럼 바글바글 모여 있는 유저들.
크로스보우 덕에, 와이번에 무사히 착지한 유저.
그가 나름의 퍼포먼스를 보이며 와이번을 추락시키는 데에 성공했던 것이다.
[잔인합니다! 이건 잔인해요! ㅈ간이 미안해!]
[이벤트몹이 그야말로 린치를 당하고 있습니다!]
얼떨결에 중계를 계속하고 있는 중계진까지.
“죽었어? 죽은 거야?”
“갈무리해. 갈무리.”
그 뒤는 뻔했다.
사탕에 달려드는 개미들마냥 제각각의 스킬을 뿌리며 유저들이 달려들었던 것.
제아무리 와이번, 그중에서도 상위종이라곤 하나 물량공세에는 어쩔 수 없었다.
“좀 불쌍한데.”
-?
-ㅋㅋㅋ당신이 죽인거야
-기억해! 니가 죽인거라고!
-ㄹㅇㅋㅋ마왕이 부하시켜서 떨군거 아니냐고 아ㅋㅋ
크로스보우는 어깨를 으쓱였다.
녀석이 보이는 최후의 반항에, 이리저리 치이면서도 행복하게 웃는 유저들의 모습.
그에 와이번은 마지막까지 공포를 느끼는 듯한 기척을 보였지만···.
‘착각이겠지.’
공포감을 감지한다는 건 아무리 그라도 아귀에 들어맞지 않는 일이지 않나.
크로스보우는 대충 넘어가기로 하고 고개를 돌렸다.
[SYSTEM]임무 완료!
[SYSTEM]기여도 순위 정산 중···정산 완료.
[SYSTEM]1순위는 마족 진영입니다.
[SYSTEM]10,000점의 진영 점수가 부여됩니다.
“이 정도면 상당한데요.”
-만점을 주네···
-개백수 집합
-레이드 고인물들 싹 집합해!
각 경기당 고작해야 50점의 점수를 주는 걸 생각해 보면, 200경기를 내리 이겨야 획득 가능한 점수.
이벤트의 정체가 밝혀진 만큼, 앞으로는 이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게 분명해 보였다.
그때였다.
“오! 이거 고기 나오는데요?”
“갖고 가서 요리해 달라고 하죠?”
“이거 지방이 너무 없는데? 육회로 먹을 수 있나?”
“가상현실인데 뭔들 못함.”
“···오옷!”
···어디에나 이상한 사람들은 있구나.
크로스보우는 어느새 해체를 끝내고 고기를 들어 올리는 유저들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
밤이 깊고, 축제의 한창.
“···크로스보우.”
어둠 속을 뚫고 접속한 남자가 있었다.
“···요란스러운 서버군.”
눈을 빛내며 중얼거리는 모습.
위치한 곳은 골목길.
남자는 주먹을 쥐었다펴 보고는, 벽을 짚었다.
“···괜찮군. 전부 컨트롤할 정신은 없나 보지?”
우웅-.
드드득!!
삽시간에 금가는 골목의 벽.
“아주 좋아.”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금 멀리에 가로등이 하나. 그곳을 향해 주먹을 휘두른다.
언뜻 보기에 의미없는 행동.
그러나 그 여파는 기묘했다.
···파앗-.
마치 원래부터 그랬다는 듯이, 아무런 전조없이 조명이 꺼져 버린 것이다.
“날 번거롭게 하다니. 크로스보우.”
드리워진 어둠 속에서, 이빨이 드러났다.
둥둥 떠 있는 환희.
기분나쁜 웃음이었다.
“각오는 하고 한 행동이었겠지?”
할로윈-운동회 시즌.
불순분자가 끼어들었다.
***
“크로스보우···! 오늘만을 기다렸다!! 으으으으···!”
“너무 그러지 마. 크보형은 기억도 못할 텐데. 너.”
“뭐?! 이 둔재 자식이···!”
밤거리의 한 중간에는 각각 종족이 다른 3명이 서있다.
“그 둔재한테 요즘 좀 많이 지던데.”
“···지금 뭐라고 했어요. 블래드.”
“사실을 말했는데?”
“이잇···!”
“왜 두 사람이 싸워?”
크로스보우에겐 과거의 인연들이었다.
그간 투기장이니, 신 캐릭터니 사건이 많았던 탓에 크로스보우로선 좀처럼 연락을 하지 못했던 이들.
TK의 카운터, 블래드 선수. 그리고 덤으로, 한때는 영국의 유망주였던 라우라 슈미츠였다.
“마족 진영이랬지? 경기 참여하는 족족 따라갈 거야. 이건 저격이라고 보기도 힘드니까!”
“···그때 싸워 보고 무서워서 저격 안 돌린 게 아니라?”
“다, 닥쳐! 둘이서 외국인 차별하는 거지?”
슈미츠는 이종족-엘프, 블래드가 인간족, 카운터는 마족을 선택한 가운데 거리를 거니는 세 사람.
“오오! 저기 봐요. 꼬치구이! 역시 이런 이벤트에 푸드트럭이 빠질 수가 없지!”
낮 동안 연습을 마치고 겨우 서버에 접속했던 것이다.
“···더러워. 위생 괜찮은 거야?”
“가상현실인데 무슨 소리야. 넌 또.”
“그렇잖아. 이런 동아시아 국가의 음식같은 건 좀···.”
세상 물정 모르는 그 말에 웃음을 감추지 못하는 블래드와 카운터.
이런데서 나이 차이를 느끼는 걸까. 카운터는 씁쓸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응. 이미 니네 나라 위생 허접인 거 예전 전염병 사태 때 다 뽀록났어. 넌 태어나기도 전이겠지만.”
“흠. 이게 그 유교식 꼰대문화란 건가?”
“···너 진짜 밉상이구나.”
언제나처럼 오로지 서로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데에 목적을 둔 대화가 오고간다.
결국 꼬치구이를 파는 푸드트럭까지 다가온 세 사람.
“아저씨. 이거 무슨 고기예요? 맛있다.”
겉보기로는 예쁘장한 소녀인 슈미츠.
그녀의 질문에 주인장은 친절한 웃음으로 대답했다.
“맛있나요? 하하. 그거 다른게 아니라···오늘 그 크보가 잡은 그 와이번 고긴데, 다 맛있다고 하는 거 보니까 이게 기가 막힌 모양이네.”
“···크보? 네? 그보다 지금, 무슨 고기···?”
“와 이 번. 그 날아다니는 닭? 공룡? 그런 거라던데. 괜찮슈. 가상현실인데 뭐 어때요. 이런게 또 별민게지.”
““···.””
잘못 들은 게 아니었구나.
“······맛있게 먹어라. 둘 다. 푸흡.”
주문하지 않은 블래드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고, 슈미츠와 카운터는 아연질색한 표정으로 손에 들린 꼬치를 바라본다.
“···또 너냐···크로스보우···.”
나직히 중얼거린 슈미츠는, 눈물이 글썽이는 눈으로 어디론가 뛰어갔다. 입은 굳게 막은 채였다.
크로스보우에게 언젠가는 복수하고 말리라는 그녀의 다짐을 또 한 번 굳게 만들어주는 헤프닝이었다.
< 101화 가상현실의 청백전 (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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