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화 두 천재 (1) >
축제는 대성황이었다.
청백전을 모토로 만든 진영간 경쟁전은, 3파전으로 바뀌고 더욱 좋은 평가를 받았다.
[마왕을 잡아라! 타도 마왕! 크로스보우!]
“···이게 그 특이점인가 하는 그거지?”
가상현실. 거리에 걸린 현수막의 내용이었다.
알만한 업체들까지 전부 몰려들어서 진영논리를 마케팅에 사용하고, 크로스보우를 이기는 사람에게 상금을 수여하는 등의 작은 이벤트를 열어 SNS 상의 화제가 되고···올오버가 이젠, 처음 겪어 보는 게임이 되어 가고 있었다.
본래라면 신촌 거리 등에 있어야 할 버스커들이, ‘뉴 올오버’의 중앙 스트리트에서 노래를 부르고, 초청을 받은 가수들까지 현장에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 등, 그야말로 대화합의 현장.
“이익! 죽어라!! 크로스보우!”
“···.”
물론 그런 와중에도, 어딜가나 분위기를 흐리는 인간이 있기 마련이다.
카운터는 동료이자 경쟁자인 슈미츠를 보며 생각했다.
그들이 있는 곳은 중앙 스트리트에서 한참 벗어난 3번 스트리트.
작은 게임들이 거리에 온통 흩어져 있는 곳.
[물풍선 던지기].
싫어하는 사람의 얼굴을 프린팅해서, 인형에 붙여 놓고 물풍선을 던지는 게임.
본래라면 물풍선을 터뜨려서 점수를 내는 게 게임의 목적이지만···.
“죽어! 죽어! 죽어랏!”
우우웅─.
이곳은 게임 내부.
저렇게 이를 악물고, 게임 캐릭터의 초인적인 힘으로 던지면···날아가기도 전에 터져 버리는 게 당연하다.
“이, 이 자식! 피하다니···여기서까지 날 비참하게 만드는 거야?!”
물을 잔뜩 뒤집어쓴 채 프린팅된 크로스보우의 얼굴을 향해 소리를 빽 지르는 슈미츠.
그에 카운터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난동을 부리는 애새끼로만 보이는 슈미츠에게, 한때나마 주전 자리를 넘겨줄 생각을 했다니.
스스로 생각하기에 어처구니가 없었던 것이다.
“···민폐 끼치지 말고 가자. 블래드 형 보러.”
목덜미를 잡아서 질질 끌어당기는 카운터.
그도 그럴 게, 녹화라도 따이면 곤란해진다.
물론 지금은 이벤트 기간이고, 선택한 진영에 걸맞은 식으로 얼굴이 다들 조금씩 바뀌었지만···그럼에도 누군가 알아볼지도 모른다는 위험성이 없지는 않다.
모 갤러리에 [실시간 영국 유망주ㅋㅋㅋ]같은 글로 박제되어 버릴지도 모르는 일.
“이, 이거 놔! 못해도 1등···아니, 2등이라도 하고 가야겠어!”
“풍선 잡는 족족 터뜨리는데 2등은 무슨.”
“안돼엣! 이거 놔이잇!! 악! 때렸어! 때렸겠다!”
“···어라? 내 손이 왜 여기에.”
반사적인 꿀밤이었다.
그러던 때였다.
그녀를 질질 끌어 자리를 뜨려던 카운터.
돌연 거대한 덩치에 부딪혔다.
“아. 죄송합니다.”
“···이봐.”
사소한 해프닝.
그러나 상대에겐 아니었던 모양일까.
“너희. 지금 크로스보우를 욕하고 있지 않았나?”
“···네?”
그러고보면 사내의 이마에는 뿔이 달려 있다.
‘마족 진영 유저들 과몰입이 그렇게 심하다더니 진짜였네. 진짜 자기네 마왕이라도 욕한 거마냥···.’
중년쯤 되어 보이는데도 크보형 광팬이 있을 줄이야. 생각해보면 오히려 이런 컨셉놀이에 익숙한 세대던가? 카운터는 잠시 머리를 굴렸다.
정체를 밝혀야 하나에 대한 빠른 고민.
그가 선택한 건 적당한 변명이었다.
“어···저. 그게···죄송합니다. 이 친구가 팬래터를 보냈는데 무시당하더니 안티가 되어서요. 하하.”
“내가 언···!”
“하하, 하하하.”
그러나 중년의 사내에겐 통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니. 너희는 확실히 크로스보우 욕을 하고 있었다. 애초에 크로스보우는 제 주소를 공개하지 않은 걸로 안다만.”
“메일이란 게 또 있으니까요···.”
빙그레, 웃는 모습.
“뭐. 좋아. 얘기를 좀 들어보면 알겠지.”
“음. 저. 닉네임이?”
“닉네임은 왜 묻지.”
“아. 저희가 바빠서요. 친구 추가 해 놓고 얘기는 나중에 해도 될까요?”
“아니. 안되지. 이렇게 귀중한 사람들을.”
남자는 수염을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내 닉네임이라. 상관없겠지.”
“···.”
카운터는 뒷목을 스쳐지나가는 느낌에 잠시 팔을 쓰다듬었다.
“나는 오드맨이라는 자다.”
***
평균 시청자 수 근 7만 명.
사건이 터질 때마다 10만 명은 무조건 넘는 크로스보우의 방송.
그 방송의 대체적인 구조는, 크로스보우가 놀라운 피지컬을 선보이면 시청자들이 감탄하는 식으로 이뤄져 있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자신의 계급을 인증한 고계급 시청자들이, 그가 조금 전 보여 준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에 대해 설명하는 식.
그렇기에 그의 방송에서 가장 많이 올라오는 반응이라 하면, 대부분이 ‘와’, 혹은 땀 흘리는 기호가 대부분이었다.
“···잡았다. 하하.”
-와;;;
-미친놈인가봐 진짜로
-개쩔었다
[‘어케했누’님이 1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봐도봐도 모르겠네요^오^ 앞으로 브실골들 안놀리겠습니다
-동의ㅋㅋㅅㅂ
-분석까지 썹어먹는 크로스보우 수듄;
-ㅋㅋㅋㅅㅂㅋㅋ
-??? : 저희도 모르겠습니다···
-대학원생을 시켜 알아오세요!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옆집뇨끼네’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크로스보우의 피지컬을 분석하는 컨텐츠를 등으로 꿀을 달달하게 빨던 크리에이터 시청자들.
그들 중 상당한 네임드가 당최 알 수 없다는 후원을 올렸던 것이다.
-수억 명의 올오버 플레이어. 그 정점에 선 인간 크로스보우···
-그렇네; 대단한 놈이엇누
그 이유는 간단.
크로스보우가 또다시 기상천외한 짓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아주 재미를 들린 것인지, 각 스타디움에서 일어나는 경기에 모두 참여를 하며 기상천외한 퍼포먼스를 보여 주는 행보.
그걸 쉬지도 않고 계속하는 걸 넘어, 머릿속에 뭐가 든지 알 수 없는 방법을 꺼내들고 온 크로스보우.
[섬멸전-비행정 전투]
3번 스타디움.
크로스보우가 참가하고 있는 경기의 이름이었다.
열기구에 가까운 비행정들.
거기에 타 둥둥 떠다니며 상대의 비행정을 추락시키는 방식의 경기.
다만 비행정에 탑승할 수 있는 인원은 제한, 기본적으로 육상에서의 전투가 주를 이루는 경기다.
[크로스보우. 미쳤습니다. 미쳤다고밖에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대체···이 남자의 한계란 없는걸까요. 괴물을 넘어서서···저 정도면 정말 마왕이라고 불리는 그 이유를 알 만합니다!]
채팅창뿐만 아니다.
중계진과 관중석의 반응까지 뜨거웠다.
거대한 비행정의 조종석.
투명한 장막으로 이뤄져 있는 곳에, 홀연히 크로스보우가 올라탔던 것이다.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올라갔는지 알 도리가 없다.
다만 그 손에는 달랑 단검이 하나.
“바람이 차네요.”
상공.
크로스보우.
그는 아래에서 어떤 반향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선 전혀 모른 채 중얼거렸다.
거대하기 그지없는 비행정. 그 크기가 주는 위압감은 비행체를 넘어 마치 요새와 같다.
상공의 바람 역시 강하다. 이 쓸데 없이 현실적인 게임은, 조금 높은 하늘의 난기류까지 완벽히 구현해 뒀던 것.
경기의 이름이 비행정 전투일 만큼, 이 비행정이야말로 매치업의 주인공.
그런 만큼 수많은 스킬의 포격을 버틸 만큼 단단한 실드를 주변에 두르고 있었다···만.
“갑니다.”
크로스보우의 일격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허둥대는 유저들.
어이가 없을 만도 하다.
“흡!”
분명 견고해야 할 비행정의 장막.
그런데 크로스보우가 내려친 일격에, 단순한 보조무기 따위가 아무런 저항없이 끝까지 파묻혀 버린 것이다!
─쩌적, 하는 소리가 들렸다.
단검을 중심으로 거미줄 같은 균열이 삽시간에 퍼져나가고, 1초도 되지 못해 조각으로 비산한다.
“···동력원은 어디냐.”
내부에 들어선 크로스보우의 질문.
“···.”
컨셉임이 분명한 말투.
그러나 알고 있음에도, 움직일 수 없다.
상대팀 유저의 전원이 숨을 잊었다.
손가락은 커녕 눈 하나 깜빡할 수 없는 감각이 그들을 옭아맨다···.
“어디 있지?”
부릅뜬 눈.
분명 미남형인 얼굴.
그러나, 새빨건 색의 동공은 그 이미지마저 왜곡시켰다.
“묵비권인가?”
말과 동시에 손이 움직인 듯 보였다.
“······어?”
“세 번째 묻는다. 어디 있지?”
그 말이 흘러나온 것은 털썩, 하는 유저의 죽음과 함께였다. 크로스보우는 단검을 털었다.
촤악.
검에 묻은 피가 흩뿌려진다.
그리고 그게 방아쇠였다.
“우, 우와아아아악!”
“주, 죽여!!!”
“히이이이! 저는 그냥 골딱이에요!! 죄송합니다!”
그러나 그들과 담소나 나눌 정도로, 시간이 넉넉하진 않다.
크로스보우는 시야의 오른쪽 상단을 확인했다.
[스킬 ‘해방’ 유지시간 - 00:00:37]
‘30초라.’
1분간 모든 페널티를 해제하는 스킬. 그 지속시간이 이제 30초 남짓.
“남겠군.”
동시에 쏟아지는 스킬들.
그는 아무렇게나 단검을 휘둘렀다.
단 반 걸음.
그 자리에 있던 모두의 목숨이 사라지기까지, 크로스보우가 움직인 거리였다.
“그레서 동력원은 어디 있지?”
“···여기는 비행정···침입자···존나 쎄다고 알림···커헉!”
마지막 남은 유저.
그에게 다가간 크로스보우가 물었다.
“순순히 말하지 않으면 시체로 이상한 자세를 만들겠다. 시청자 수가 몇 만인진 알겠지?”
“크윽···그것만은···.”
-ㅋㅋㅋㅋ
-ㅋㅋㅋ시체매너요
그러나 남은 한 수가 있었다는걸까.
대화를 나누면서도 크로스보우의 눈치를 살피던 그 유저.
‘···지금!’
분명 그 패널티 제거 스킬이 끝난 것일 터!
그는 크로스보우의 기척이 급격히 쪼그라든 걸 느끼곤 숨겨뒀던 총을 격발했다.
‘치명타는 될 거다! 나도 나름 고계급이라고!’
타앙!
“흥.”
그러나 그 탄환은, 무심히 휘두른 단검에 불꽃 하나를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행위예술가가 되고 싶나 보군.”
“···크, 크보 님. 살려···아니, 곱게 죽여 주세요.”
“크큭. 어림도 없지. 쿠쿠루삥뽕.”
그리고 잠시 후, 크로스보우는 기묘한 포즈의 시체를 뒤로 하곤 조종실을 나섰다.
-저거 무냐
-리버스 배변누기ㅋㅋ
-퍄퍄; 마왕님 취향이···?
-응가앗
-[차단된 채팅입니다.]
경보음이 요란스럽게 울리고 있었다.
-근데 어디로 감 이제?
-뒤지게넓네
“위치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길을 몰라서 그렇지.”
-??
-?
그랬다.
이렇게 거대한 비행정을 움직이는 에너지원.
사실 동력원의 위치 따윈 감지하면 그만이었다.
다만 문제는 방향은 알아도 길은 모른다는 것.
“뭐, 길을 모를 땐 물어보면 되죠.”
크로스보우는 희번뜩 주위를 둘러보았다.
***
그 시각 동력원실.
거대한 수정을 매만지는 인영이 하나.
“크로스보우.”
아마 마법사 계열의 캐릭터일까. 로브를 쓰고 있는 모습.
“꼭 한 번 싸워 보고 싶었는데.”
남자는 중얼거리며 다시금 수정을 쓰다듬었다.
“이렇게 빨리 무대가 생겨 줄지는 몰랐어.”
우웅─.
눈앞의 수정. 그 에너지의 정체는 ‘정수’.
“우리에게 알맞은 무대야. 정말이지.”
완벽하다, 고 그는 생각했다.
어두운 동력실에서 고고히 홀로 빛나는 수정.
크로스보우로 인해 약해진 방벽에 쏟아지는 상대편의 스킬들. 그리고 그에 따른 진동과 고도 변화.
마치 영화의 한 장면.
붓으로 그린 듯한 배경이었다.
“···준비는 다 갖춰졌어.”
자세히 보면 수정에 꽤 긴 흠집이 나 있다.
그에, 에너지가 바깥으로 조금씩 유출되고 있었다.
“기반 에너지, 정수가 약한 이유. 그건 리젠이 끔찍하게 느리기 때문.”
흥분감에 중얼중얼거리는 남자.
“그런데, 이렇게 거대한 동력원에서 정수에너지가 새어나오고···그게 공간을 잠식하면 어떨까.”
한 방 한 방의 파괴력만큼은 최상위급인 ‘정수’가, 회복속도까지 급격히 늘어난다.
강한 스킬을 마구잡이로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하하. 기대되네.”
남자는 한쪽 구석의 계단에 주저앉았다.
“크보 형···. 우르프 모드 같은 거 해 본 적 있을까?”
스킬의 쿨타임이 대폭 줄고, 그 소모량이 사라지는 과거 PC게임의 모드.
그가 입에 담은 것은 이름의 정체였다.
없겠지.
그만큼 구시대의 게임이니까.
"나한테만 적용되는 모드지만."
그리고 정적.
그 속에서 블래드는 눈을 형형히 빛냈다.
"전략전술을 혼자 부정할 순 없어. 크로스보우."
< 102화 두 천재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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