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 스트리머가 너무 강함-102화 (102/143)

< 103화 두 천재 (2) >

─넌 천재야.

환청이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한국의 희망!

─블래드라면 다릅니다!

“···.”

블래드.

TK 블래드.

가상현실이란 것이 처음 세상에 개시되고, 언제나 1위 자리를 꿰차고 있던 실력자.

한국은 몰라도 블래드는 안다고 할 정도로, 그 자리를 오랫동안 굳건히 지키고 있던 이.

“···후우.”

그러나 그 화려한 명성과 달리, 그 속이 썩어들어가고 있다는 것은 아무도 몰랐다.

자신을 치켜세워 주는 말들. 과도한 기대. 칭찬. 믿는다는 시선들.

그리고 자신의 기량에 반절도 미치지 못하는 팀원들.

모든 것이 그에겐 독이나 다름 없었던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재미 없네.”

관성에 의해 계속하고 있는 프로게이머라는 직업.

전국에서 게임 잘한다고 모인 이들 중, 그와 같은 관점을 공유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물론, 인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매 시즌 새로운 실력자라며 고계급 유저들이 나타났던 때가 있었다.

─블래드의 대항마! 계급전의 전설! 공식경기 10전 10승의 로키!!

─글쎄요. 블래드? 거품이죠. 거품.

그러나 그들 모두, 한철 실력에 불과했다.

─못 이겨···이건

─갑작스러운 프로 은퇴선언···어떻게 된 걸까요?

그들 모두 블래드가 쌓아올린 것들에 잡아먹혔던 것이다.

모든 변수를 없애고, 상대의 버릇을 분석하여 파훼하는 블래드의 스타일.

손도 까딱하지 못하게 말려죽이는 것이 바로 그의 전투법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개개인의 피지컬이 중대 요소가 된 가상현실.

본인의 실력에 자부심을 갖고 있을 게 뻔한 이들이 겪는 처참한 패배.

패배한 이들이 극심한 무력감을 느끼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

─진짜 천재라는건 저런거구나

─블래드야. 이제 어떡할까?

어느새 구단은 아예 블래드에게 의지하기 시작했다.

전략에 깊이 관여하기 시작했고, 동료는 언제든 바뀌었다.

몇 번은 승부조작으로 프로를 은퇴할 걸 각오하고, 시험 삼아 킬을 내줘 본 적도 있다.

그러나 게임은 결국 블래드가 있는 쪽의 승리. 기본적인 실력 차이가 존재했던 것이다.

그때쯤, 세간에선 ‘경기가 길어지면 블래드가 있는 쪽이 이긴다’ 는 식의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멍청이들.”

일부러 당해 준 건데,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다.

게임 보는 눈.

그것이 애초에, 그와 다른 사람 사이에는 극심한 격차가 존재했던 것이다.

재미가 없다. 의미도 없다.

정점에 도달한 실력은 늘 기미가 없다.

심지어, 개인의 실력이 정점이라고 한들 혼자서는 네이션스 컵의 우승을 거머쥘 수 없다.

아무리 잘해 봤자, 팀원들이 받쳐 주지 못하면 한계가 명백히 존재하는 것이다.

개인으로선 여기가 한계점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크로스보우.”

모 개인방송인.

총을 쓰는 캐릭터를 다룬다고만 들어봤던 스트리머.

그를 보기 전까진.

“···처음엔 좋았는데.”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을 드디어 만났다는 감정.

마치 외딴 섬에서 사람을 만난 듯한 기쁨.

그러나 그건 오래가지 않았다.

그 감정은 곧 다른 것으로 변해 갔던 것이다.

블래드가 지고 있던 모든 짐.

승리를 향한 부담감. 나라를 대표한다는 프레셔. 반푼어치만도 못한 팀원들.

그것들을 모두 가져가고도 아무렇지 않아보였던 크로스보우.

그 모습에, 해방감도 잠시.

오히려 상실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부러워졌어.”

자신과는 정반대의 스타일.

전투 간에 그 어떤 변수도 통제하지 않고, 그저 방치한다.

그리고 상대가 그중 어떤 수를 사용하든 알고 있었다는 듯이 대응한다.

모든 게 자유자재처럼 보였다.

그 덕일까.

그에게 패배한 사람은 블래드에게 패배했던 이와 다르게 무력감은 느끼지 않는 듯 보였다. 사람들과 당연하다는 듯 친해져갔다.

네티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크로스보우를, 웃으며 좋아한다. 진지한 악의 따윈 없다. 유쾌하게 바라보는 게시글들뿐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주 결정적인 것.

크로스보우라는 우스꽝스러운 이름을 쓰는 남자는, 자신과는 또 다르게···네이션스 컵의 우승을 차지해 내었다.

그 모든 게, 사실상 크로스보우 혼자 해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

자신이 생각해 왔던 모든 것을 부정하는 듯한 인물, 크로스보우.

“······싸워 보자. 누가 더 나은지.”

블래드는 아주 오랜만에, 이를 악물었다.

***

비행선 내부는 난장판이었다.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알 수 없는 이들이 자꾸만 튀어나와서는, 앞길을 막았던 것이다.

아무리 크로스보우라도 그냥 지나칠 순 없었다.

“오호라.”

한 번의 감탄성.

그리고 남은 것은 처참한 전투의 흔적.

-“크보 님! 지원은 불가할 거 같습니다···상대쪽이랑 상성이 안 좋아서···!”

-“마왕님께 영광을! 크악!”

-“컨셉 리얼 실화냐? 크크.”

그 와중에 들어온 연락에, 크로스보우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상관 없습니다.”

애초에 도움따윈 생각도 않고 있었으니까.

···철퍽.

문득, 바닥에는 기분 나쁜 액체가 밟혔다.

그는 발을 들어 신발 밑창을 잠시 바라보다가 툭툭 털었다.

“여기 웅덩이가 있네.”

-????

-??ㅋㅋㅋㅋㅋㅋㅋ본인이 만든거잖아요ㅋㅋ아

-공포게임(크로스보우)

-ㄹㅇㅋㅋ둠가이의 재림이냐고 아ㅋㅋ

- 그저 -크-

시청자들의 말대로, 바닥은 어느새 적들의 피로 흥건한 상황.

우스꽝스러운 꼴로 죽어 있는 시체들이 만드는 광경은 차라리 전위적이라 표현하는 것이 옳을 정도.

“그나저나 다들 대답을 안 해 주네요.”

동력실의 위치를 매번 물은 크로스보우.

보통 같으면 리얼한 현실감에 기가 질려서 대답해줬을 터인데, 축제 탓인지 다들 동력실의 위치를 절대 발설하지 않았던 것이다.

-대답하기 전에 죽였잖아여ㅋㅋㅋ

-ㅋㅋㅋㄹㅇ아ㅋㅋ

이래서야 비행정을 떨어뜨릴 수가 없다.

물론 조종실로 가서 떨어뜨리는 방법도 있기야 있을 터였지만···그쪽은 감각에도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 대강의 위치도 모르고 헤맬 수 있는 것.

-어차피 섬멸전인데 그냥 내려가서 다 죽이자

-뭐래ㅋㅋ하이제킹은 예술인데

-이건 해야지ㅋㅋㅋㅋ

“어쩔 수 없죠.”

크로스보우는 진지하게 말했다. 방송에선 거의 보여준 적 없는 표정이었다.

“시청자 찬스 쓰겠습니다. 위치 아시는 분?”

-인간미on

-크보도 이건 못참지ㅋㅋ

[‘크보쨩핥짝’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걍 벽을 부수셈ㅋㅋ투기장에선 그렇게 부숴대고 저 벽에 꼈는데 그냥 갔잖슴

“오.”

-오ㅋㅋ

-그래서 stuck in wall이 뭔데ㅋㅋ

-아무도 그런말은 안했는데요?

그는 옅게 감탄했다.

다른 게 아니라, 채은아가 저런 과격한 발상의 전환을 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던 것.

다만 문제는 방법이었다.

“어떻게요?”

-ㅇ?

-??

“저도 그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닙니다만, 벽을 어떻게 부숩니까. 이렇게 단단해 보이는데.”

-??크 선생님···실드는 한방에 부수셔놓고 벽은 못 부수는건가요ㅋㅋ

-ㄹㅇㅋㅋ못하는게 없는거 아녔누

의아해하는 시청자들의 반응.

그러나 의아한 것은 크로스보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건 스킬 사용 상태에서 몸에 데미지도 축적되기 전이니까요. 단검도 있었고. 지금 똑같은 걸 시도하면 페널티로 죽을 겁니다.”

-띠용

-아 그건 안되는 건가요?

-우린 또 다 되는줄 알았자너ㅋㅋ

-사실 뭐가 다른지 모르겠음···

-그냥 코런갑다 하라고ㅋㅋ

이미 비장의 한 수라 할 수 있는 ‘해방’ 스킬은 사용한 후.

지상에서 여기까지 단번에 뛰어오르는 짓 까지 하면서, 아바타 자체에 과부하가 걸려 버렸다.

유리몸 특성으로 잘못하면 돌연사 해 버릴지도 모르는 상태다.

어떻게든 위치에 향해야 한다.

“그래서 위치를 아시는 분은 없는 거 같고. 어쩔 수 없군요.”

다 돌아다녀 보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할 때.

그때였다.

“응?”

돌연 감각에 묘한 것이 잡혔다.

“···이건?”

꿈틀거리는 정제된 마력이, 복도를 타고 일렁인다.

멀리서도 인지할 만큼 강대한 위화감.

“정수···?”

마치 물이 넘치듯, 복도를 따라 흘러나온 것.

대기 중엔 찾아볼 수 없는 에너지였다.

그렇다면 필시 동력원에서 흘러나온 것일 터.

그 자취가 마치 지도처럼 길을 밝히고 있었다.

“길을 찾았네요. 후원 그만하셔도 됩니다.”

크로스보우는 잠시 숙였던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동력실의 위치에 대해 앞다투어 후원하는 시청자들을 만류한 것.

-??

-이럴거면 우리한테 왜 물어봣어

-ㅋㅋㅋ인방에서도 도움안되는 석궁단 수준ㅋㅋ

-자괴감on···취업 실패했을때보다 더 괴롭다···

-ㅋㅋ넌 좀 방에서 나가!!!

“빠르게 가겠습니다.”

***

블래드 vs 크로스보우.

네이션스 컵이 시작할 때 즈음부터 시작된 인터넷 게시판의 주된 토론거리.

한쪽은 전통의 최강, 다른 한쪽은 4시즌 한정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 준 게이머.

예전과는 달리 지금은 크로스보우의 손을 들어주는 수가 압도적으로 변해 버려, 케케묵은 토론거리로 전락했지만···블래드의 승리를 점치는 이들의 수는 여전히 많았다.

항상 인터넷 게시판에서 둘의 팬이 물고 뜯으며 싸웠던 터라, 심지어는 TK의 사무국에서 직접 그 둘은 붙어 본 적이 없으며 사이도 좋다는 오피셜까지 발표한 상태.

그 정도로 이목을 집중시키는 이슈였다.

그리고 또 그런 만큼, 바깥은 난리통이나 다름없었다.

“···야. 근데 인간족도 오버로드 참여하고 있다고 뜨는데. 누구래?”

“몰라.”

“오버로드면 무조건 네임드인데···스트리머는 아닌 거 같네? 크보 상대면 몇 만 명은 모을 텐데 방송도 안하고 있고.”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한 의문.

그러자 중계진은 그런 의문을 파악한 것인지, 중계화면을 돌려 해당유저를 잡았다.

[인간족의 오버로드! 아. 지금 동력원실에 있습니다만···로브를 쓰고 있습니다!]

[마법사 계열로 캐릭터를 제작하면 저런 외형을 갖게 되거든요? 각 모드의 오버로드 중에 그래도 메이지 계열을 사용하는 유저는 꽤 있는 편입니다!]

─파삭!

그리고 그 순간. 동력원에 직접 흠집을 내는 인간족 쪽 오버로드 유저.

“어. 뭐야?”

“트롤?”

“근데 실시간 밴 안 당하는데.”

그리고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

어두운 동력실.

로브 속에 감춰져 있던 해당 유저의 얼굴이 드러나는 순간.

[···서, 설마?]

[저, 저저저?!]

“···어?”

이벤트 기간동안 조금씩 바뀐 얼굴.

그러나 그 본판은 본래의 얼굴에 기반을 둔 탓일까.

많은 사람들이 잠시 텀을 두고, 그 얼굴을 알아보았던 것이다.

“브, 브···블래드다!!!!”

“블래드! 블래드? 블래드라고?!”

[브, 블래드으으으으!!! 인간족 측의 오버로드!!! 그 정체는 블래드였습니다!!!!]

[이, 이게 무슨 일인가요!! 블래드!! 블래드입니다! 1,2,3 시즌. 한국의 최강자!!! 게임 잘하는 나라의 위명을 지금까지 굳건이 지켰던 바로 그 선수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온 공간에 그 이름이 연호되기 시작했다.

그 호응이 대단했던 것인지, 이벤트 도시에 설치된 거대 스크린에 실시간 명장면으로 떠올랐다.

단지 등장만으로 수많은 경기들을 뚫고 명장면에 등록된 것.

대단한 위용이었다.

“블래드랑 크로스보우랑 붙는 거야?”

“야. 야!! 당장 지금 연락 돌려!! 한가하게 이벤트 리뷰뉴스나 쓰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지, 지금 흘러가는 상황을 봐선 블래드 선수와 크로스보우 선수가 한바탕 붙을 거 같은데요!!!]

[대매치! 엄청난 우연입니다!! 당장 경기장에 수많은 후원광고가 떠올라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그리고 그 시각.

바깥에서의 상황도 모른 채 전진하던 크로스보우.

어느새 도착한 그는, 동력실의 문을 강제로 개방했다.

──끼긱, 끼이이익···.

보이는 것은 거대한 수정.

그리고 지금까지 지나온 곳들 중, 그 어느곳보다 큰 내부.

그는 옅은 푸른빛을 등지고 있는 유저를 바라보았다

“···누가 이런 짓을 하나 했더니.”

“오셨군요.”

“블래드.”

너구나?

크로스보우는 씨익 웃었다.

어째서 거기에 있냐는 질문 따윈 하지 않는다.

타고난 방송인.

지금 상황이 밖에서 어떻게 보일지 정확히 이해한 것.

그리고 블래드 역시 오랜 기간 선수로서 방송에 출연했던 터. 나름 장단을 맞출 줄 알았다.

“이렇게 만나네.”

“기다렸어요. 형. 아니.”

둘의 웃음이 교차되었다.

“크로스보우.”

“블래드.”

< 103화 두 천재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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