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 스트리머가 너무 강함-105화 (105/143)

< 106화 현실과 가상현실 (1) >

크로스보우 대 블래드.

이벤트 기간 동안 성립된 경기는 별 탈 없이 마무리되었다.

다만, 치열했던 경기만큼 후폭풍 역시 대단했다.

한국을 대표해 우승컵을 들어 올린 주역 2명. 그 둘의 싸움은, 수많은 즐길 거리로 가득한 축제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주목을 받았던 것이다.

블래드의 예상대로라면 편 가르기로 나누어져 온통 싸움밭이었어야 할 커뮤.

그런데 대부분 게시판의 반응은 드물게도, 성숙함 그 자체였다.

"···이런 이벤트성 매치업에 과몰입하는 분 없길 바랍니다. 저희끼리만 아는 비밀이에요."

-아ㅋㅋ맞지 12만명만 아는 비밀~

-ㄹㅇ방구석 레전드들 다 나와서 방송보누

-가게하는데 사람이 없어···방송이나 보는 중ㅋㅋ개꿀

이처럼 크로스보우의 은근한 언급이 있었다곤 하나, 그래도 스트리머의 권고가 다 지켜지지는 않을 일.

커뮤니티의 반응은 오히려 유저들 간의 자정작용에 의한 것이었다.

[ㅋㅋㅋㅅㅂ블래드까던 새끼들은 다 어디가고 악플은 ㄴㄴ해 ㅇㅈㄹ만 하고 있냐ㄹㅇㅋㅋ]

-역겨운새끼들ㅋㅋ니들이 그러고도 사람이야?

└ㄹㅇㅋㅋ이게 맞지

└어떻게든 까고 싶어서 안달난 놈들 ㄹㅇ추했는데ㅋㅋ이렇게라도 터져서 다행

└반성합니다.

└ㅂㅅ합니다.

└빌어먹게 죄송했습니다!!!

특유의 장난기는 여전했지만 어떻게든 까려는 사람들은 대부분 보이지 않는 분위기가 유지되었다.

몇몇이 처음 시작한 반성식 댓글이 오히려 밈처럼 변해버린 것.

익명을 달고 있는 것치곤 대단하다고 할 만큼 클린한 모습.

물론 어디에나 미꾸라지는 존재하기 마련이었지만, 그게 기조에 영향을 주진 않았다.

[솔직히 블래드 까는 애는 거의 없지ㅋㅋㅋ크로스보우 까는 놈이야 인방충ㅇㅈㄹ하면서 좀 있었는데ㅋㅋ]

-퇴물이라고 하는 것도 다 장난 아님?

└어그로 끌지말고 출근이나 해ㅋㅋ

└나 출근 안해

└학교는

└나 학교 안다녀

└여친이 걱정할거야

└*발련아 그만해

└ㅋㅋㅋㅋ

"···하아."

그런 커뮤니티를 눈팅하고 있었던 이.

프로팀 TK의 전력분석관이자 아이튜버 '옆집뇨끼네'로 활동하고 있는 송다혜.

네이션스 컵 이래로 꽤 길게 두문불출하고 있는 그녀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얘네들이 나보다 낫네."

커뮤니티에 글을 쓴 게시판 이용자들을 보고 하는 말이었다.

──방 안의 쓰레기통엔 반으로 부러진 담배가 잔뜩.

"···."

피고 싶다. 옥상에 가면 만날 수 있으려나.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스마트폰을 바라봤다.

화면에 비치는 것은 어느새 커뮤니티가 아닌, 어떤 영상.

영상 속에선 정확히 그녀의 취향대로 생긴 남자가 말하고 있었다.

[넌 주변의 분석에 스스로를 끼워 맞추고 있어.]

블래드와 크로스보우의 매치업. 크로스보우가 소리 송출을 중지했을 때.

팀 TK의 방송으로 송출되고 있다는 사실은 미처 몰랐기에 영상으로 남을 수 있었던 말.

[진짜 전문가는 너야. 블래드. 그걸 잊지 마.]

"···볼 낯이 없네."

가짜 전문가는 고개를 푹 숙였다.

지금껏 국제대회에서 TK의 부진이, 마치 자기 탓이 된 거 같은 기분이었다.

오래전부터 해왔던 피드백이 블래드를 갉아먹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 천재성을 내가 억지로 조형하려고 했던 게 아닐까.

한낱 전력분석관이라곤 해도 감독의 여동생이다. 그 관계에서 오는 권력이 없을 리 없다. 당연히 말에 의도치 않은 파워가 담긴다.

한 번 시작한 그 의심은 거대하게 불어나선, 그녀를 짓누르고 있었다.

···분석관으로서, 본인의 역량에 대한 고민으로 시작된 히키코모리 생활이 더 길게 지속될 거 같은 예감이 들었다.

"정신 나갈 거 같다···털어놓을 데도 없고."

또다시 한숨을 내쉬는 송다혜.

예전에 갖고 있던 직업, 승무원 관련 인맥은 모두 끊어진 지 오래.

이스포츠업계의 녹을 먹는 일원으로 투신한 그녀에게 현재 가장 친한 것은 TK의 사람들이라 할 수 있었지만···.

"으으···."

지금 같은 상황에 가서 털어놓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사과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제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그리곤 벽을 노려본다. 그 너머에 있을 크로스보우를 생각했던 것. 그나마 남은 친한 사람이라곤 그였던 것이다.

초인종. 눌러볼까.

그녀는 고민했다. 그냥 맥주라도 한 캔 건네면서 얘기하면 되잖아.

아마 아직 잠자리에 들진 않았을 거다. 화장실만 방음이 되지 않는 이 건물의 특성상, 그가 잠들기 전 항상 들리는 씻는 소리가 아직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어떡하지."

···불러내면 어쩔건데? 그다음도 문제였다.

오빠인 송정훈 감독이 연애 좀 하라고 할 정도로 그녀는 영 경험이 없었던 것.

그러던 때였다.

지이잉-.

까톡 메시지가 돌연 하나 도착했다.

[친오래비 발신]

〈늦게미안한데깨잇으면크보님 초인종좀 눌러봐 나한테 바꿔줘〉

〈빠리〉

〈빨리부탁해〉

"응?"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와주려는 건가? 어떻게 알고? 그런 생각이 잠시.

이내, 그녀는 제 오빠가 톡에서도 최소한의 맞춤법은 지키는 스타일이라는 걸 떠올렸다.

"···뭔 일 있나 본데."

안 그러던 사람이 그런다는 건, 대부분 일이 생겼다는 의미.

그녀는 빠르게 전화를 걸며 윗도리를 걸쳤다. 내심 조금 기쁜 마음과 함께였다.

띵-동-.

그러나, 그 생각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뀌고 말았다.

***

가벼운 차림으로 커뮤니티나 눈팅하고 있던 크로스보우.

돌연, 집안을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그가 문을 열어준 게 방금.

"···풀다이브 해제가 안 된다고요?"

송다혜의 스마트폰으로 통화하던 그는 그렇게 되뇌었다.

-"네. 밖에서 하는 것도 안됩니다. 게다가 캡슐 밖에 있는 화면에 플레이 영상도 송출되질 않아요."

"신고는요?"

-"했는데, 이런 사건은 올오버 쪽에서 사람을 보내주면 보통 해결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침까지 기다리려고 했습니다만···."

"무슨 문제가 더 있었군요."

-"···둘 다 몸 상태가 이상합니다. 운터는 식은땀을 너무 많이 흘리고, 슈미츠는 캡슐 안에 실례까지···."

"그거까지 알려주실 필요는...."

-"아. 죄송합니다."

TK의 카운터와 슈미츠, 두 선수의 캡슐에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풀다이브가 해제되지 않는다는 모양. 바깥에서 시도해도 에러메시지만 뜬다고.

단순한 기기고장 아닌가. 그가 그렇게 고개를 갸웃거릴 때였다.

-"···게다가, 화면에는···라고 뜹니다."

"···."

어느 단어.

그를 들은 크로스보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지금 가겠습니다."

-"···! 그래 주신다면 바로 차량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통화가 끝났다.

그는 스마프톤을 넘겨주고 잠시 생각하다가, 작은 저장 장치를 챙겼다.

그 중에는, 현관의 신발장에 대충 올려두었던 것까지 포함. 그가 본의 아니게 쉬던 기간, 본사에서 보내온 또 다른 저장장치.

그때였다.

"..저, 저도 따라갈게요."

"그러시죠."

"어···? 앗. 네."

송다혜의 말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 크로스보우.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다른 이들에게도 연락을 돌렸다.

[은아(크보쨩핥짝)]

〈지금요?ㅎ..ㅎㅎ···ㅎㅎ쌉가능〉

〈상관ㄴㄴ긴함〉

[예지]

〈ㅇㅋㅇㅋ〉

〈지금 갈게〉

그의 예상으론 아마 투기장 관련 사태.

해결에 일조한 이들도 호출했던 것이다.

"가죠."

***

TK의 숙소에 도착한 후 본 광경은 생각보다 더 심각한 모습이었다

온 팀의 스탭들이 모두 연습실에 빙 둘러 모여있었던 것이다.

"아. 오셨군요. ···옆에 분들은?"

"제 매니저랑 편집자입니다. 도움이 좀 될 거에요."

"알겠습니다."

예지와 은아가 고개를 꾸벅이고, 눈이 빨개져 있는 블래드와 안부를 주고받은 것도 잠시.

스르륵 비켜나는 스탭들의 사이, 크로스보우는 캡슐로 다가갔다.

"···녹화도 하는 건가요?"

"혹시 몰라서 찍어두는 중입니다."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시선을 돌린다.

짙게 썬팅된 캡슐의 겉면.

크로스보우는 캡슐을 능숙하게 조작해 내부가 보이도록 설정을 바꿨다.

"···."

그리고 나타난 카운터 선수의 모습.

크로스보우는 가만히 그를 살피다가 당최 영문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변했다.

"언제부터?"

"얼마 안 됐습니다. 이 시간까지 둘이 연습경기 1대1을 치르는 일이 빈번했거든요. 그래서 오늘도 당연히···그런 줄 알았습니다만···."

"일단, 플레이 중인 게임은 올오버네요."

어느새 다가온 신예지의 말이었다.

[캡슐이 가동 중입니다]

[가상 현실 ‘올오버’ 모듈 활성화 중···]

"이벤트 서버가 열리면서 버그가 생겼나···?"

"그런 것치곤 안색이 너무 안 좋은데. 며칠 로그인한 상태도 버틴다고 들었는데."

말을 받은 건 그들을 따라서 상태를 보러 온 채은아.

"······게다가, 단순한 버그면 저런 메시지가 뜰 리도 없고."

채은아가 가리키는 곳.

고개를 들어 바라본 곳에는 플레이하는 사람의 시점을 보여주는 스크린이 존재했다.

[COME IN. CROSSBOW]

검은색 화면에 그렇게 적혀 있었던 것이다.

"···."

가만히 침묵을 지키고 있던 크로스보우.

그는 신예지와 채은아를 지나쳐, 뭔가를 꺼냈다.

"그건···?"

"저장 장치 아닙니까."

과거 자격의 방에 접속할 때에 사용했던 저장 장치.

그걸 캡슐에 냅다 찔러넣는다.

"···무슨?"

"오빠?"

잠시 정적.

의문을 띄운 채 그를 바라보는 스탭들.

"그게 뭔지 여쭤봐도···?"

그때였다.

송출 화면이 바뀐다.

-"아아. 아아. 드디어 연결됐군. 크로스보우. 크로스보우. 이제야 왔나?"

어둠 속.

내부가 잘 보이지 않는 공간.

-"그나저나 늦었군. 자네라면 대충 시험해볼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늦게 연결되다니. 생각보다 눈치가 없는 타입인가?"

"···누구?"

"저, 저 새끼 뭐야."

잠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던 사람들. 그러나 그들은 이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 봤자 이쪽은 들리지 않는다네. 그쪽 말을 들을 수단이 없어서 말이야."

화각을 꽉 채우는 거한의 남자.

-"그래도 이걸 보여주면 대충은 알아듣겠지?"

그렇게 말한 남자가 스윽, 몸을 비켰던 것이다.

"···카운터!!!"

"운터야!!!"

만신창이가 된 카운터의 모습. 오른팔이 어깻죽지에서 덜렁대고 있었다.

슈미츠는 그 옆에서 주저앉은 채 덜덜 떨어대는 모습.

-"이 꼬맹이. 밖에서는 멀쩡한가? 응? 고통은 그대로 느끼고 있을 텐데 말이야."

"···이런 개!!!"

"야 이 씨발 새끼야!!! 애 팔을···!"

격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대부분이 선수들에게서였다.

"···오, 오빠. 이건."

"저 새끼 뭐에요? 좀 좆같네."

그리고 속삭여오는 둘.

크로스보우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캡슐의 뭔가를 빠르게 조작하기 시작했다.

복잡한 손놀림.

-"크로스보우. 너라면 대충 알아들었으리라 믿는다. 이 둘을 살리고 싶다면 당장 접속해라."

그때였다.

돌연, 카운터가 정신이 든 듯 보였다.

-"크, 크보···? 형? 형이야? 혀, 형. 오지 마. 오지마!! 이 자식들. 사람들을···!"

-"닥치게."

꽈득.

쓸데없이 선명하게, 그런 소리가 들렸다.

-"끄으으으윽···으으···."

-"비명을 참아? 대단한 기개다. 하하."

"저, 저, 저 새끼!!!"

"그만 둬. 개새끼야!!!!"

-"지금쯤 괴성을 지르고 있겠지? 아쉽구먼. 그걸 못 들어서 말일세."

그때였다.

삐빅.

치익-!

[수리 기능 활성화]

[외부 장치를 적용할 수 있습니다.]

[마이크가 작동합니다.]

캡슐의 하단부가 열리고, USB를 잔뜩 꽂을 수 있는 판 같은 것이 나타난다.

다시 주머니를 뒤져서, 그는 다른 저장 장치를 꽂아넣었다.

투기장 사태가 끝나고, 관계자라 할 수 있는 그에게 완력 보조 장치의 직원이 주고 간 것.

그러자.

[통각 제어 장치가 삽입되었습니다.]

-"···어?"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응?"

제대로 됐군.

고개를 끄덕인 크로스보우는, 무표정하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지, 지금?"

"크보님...? 어떻게...?"

"...역시."

주변의 감탄성따윈 들리지 않았다.

대회 기간, 카운터와 많은 친분을 쌓았던 크로스보우에게, 이 상황은 영 마음에 들지 않는 종류의 것.

치직.

그런 소리가 송출 영상에서 들리고.

[오드맨.]

──목소리가 전달되었다.

-"···혀, 형? 크보 형! 오면 안···!!"

-"···닥쳐라."

으드득.

이를 가는 소리가 들린다.

-"···시스템. 시스템. 이 개 같은 시스템이 또···!!"

거한의 남자에게서 난 소리.

-"······누구와 이미 접촉했나?···뭐 좋네. 어차피 풀다이브 해제가 불가능한 것은 똑같으니."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는 크로스보우.

그는 대꾸하지 않고, 그저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냥 테러리스트나 다름 없는 놈이었군.]

가늘게 뜬 눈이, 영상 속 남자를 정확히 잡아낸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지만 당황스러운 표정.

[넌 뒤졌다.]

바로 옆에 있던 캡슐 문을 확, 열어젖혔다.

< 106화 현실과 가상현실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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