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화 현실과 가상현실 (2) >
하이재킹.
보통은 항공기를 납치하는 범죄를 가리키는 말.
본래는 꼭 항공기가 아닌, 그저 ‘납치하다’라는 뜻의 영단어. 그러나 일종의 상용어로 굳어진 단어였다.
선박 납치는 씨재킹, 암호화폐를 채굴하도록 하는 해킹을 크립토재킹이라 부른 것처럼 -재킹의 형태로, 납치 범죄를 보통 표현하곤 했다.
같은 맥락으로, 지난 투기장 사태에 벌어진 범죄를 언론에선 이렇게 부르곤 했다.
‘버추얼재킹’.
“···아직 사건이 일어난지 얼마 안됐는데, 또 이렇게···.”
있어서는 안될 일.
명백히 드러난 법의 구멍.
그 후폭풍은─크로스보우로선 그냥 세상이 돌아가나 보다 하고 넘어갔던 일들이었지만, 파급력이 상당했다.
심지어는 그가 모르는 곳에서, 엄청난 숫자의 목소리를 얻어 현재진행형이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다.
「가상현실 안전 및 보안에 관한 법률」
약칭 ‘투기장 법’.
혹자는 ‘크로스보우 법’이라고 부를 기색이 보이는 그것.
뜨겁게 달아오른 여론에 화들짝 놀란 입법부가 허둥지둥 발의하려는 움직임이 보이는 법률이었지만···.
“또 이렇게 빨리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는데.”
버추얼재킹.
같은 일이 또다시 발생하고 말았다.
그것도 프로 선수를 향한 범죄였다.
“···위험한데. 이거.”
“무슨 일이냐고···.”
“우리도 풀다이브했다가 잡히는 거 아냐?”
상황을 살피던 스탭들은 갑작스런 일에 다들 당황한 듯 보였다.
그럴만도 하다.
대다수가 게임과 관련된 사람들. 위험한 일에 연관된 것 같은 감각은 영 낯선 것이겠지.
그러나 크로스보우는 망설이지 않았다.
다행이도, 이미 녹화는 따고 있는 상황. 지체한다고 좋을 건 없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차라리 기다렸다가 전문가가 오면 하는 게···이미 통각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까.”
송정훈 감독의 말이었다. 그러나 크로스보우는 고개를 저었다.
─근본적인 문제는 버추얼재킹 그것만이 아니다.
하는 행동으로 보건데, 뭔가 목적이 있는 게 분명.
상대의 의중도, 대체 어떻게 게임 내에서 저런 짓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 역시 없다.
당장의 문제 역시 존재했다.
“당장 슈미츠를 보호할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주머니를 뒤집어 보이는 크로스보우.
텅 빈 모습.
“끼워 넣을 수 있는 통각제어 장치. 이거 하나가 전부입니다.”
“···그 말은.”
“둘 중 하나만 보호할 수 있단 소리죠.”
카운터와 슈미츠.
둘 중 하나는 확실하게 트라우마를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소리였다.
“지금이야 당황하게 만들어서 시간을 벌었습니다만, 제어 장치가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저쪽이 알아차리는 것도 시간 문제.”
게다가 하나 있는 통각 제한 장치의 성능도 의심스럽다.
지금이야 다시 제 기능을 다하고 있더라도, 언제 또 파훼될지 모르는 상황.
“···뭐···저쪽은 밉상이긴 합니다만.”
그는 고개를 돌려, 멀리 떨어져있는 캡슐을 바라보았다.
마치 카운터와 친하지 않다고 주장이라도 하고 싶은 듯한 거리.
“이대로 놔둘 순 없습니다.”
더이상 말릴 수 없다.
그걸 깨달은 송정훈 감독은 침음성을 삼켰다.
“···알겠습니다. 저희는 빠르게 타 팀에 연락하겠습니다. 함께하는 인원이 많을수록 좋겠죠.”
그러나 크로스보우.
그는 그런 것은 기대도 하지 않는다는 양, 고개를 저었다.
“섣불리 상대를 자극하는 행동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 같네요.”
“······예?”
“애초에 상대는 한국 서버 출신이 아닙니다. 그런데 한국 서버에 있다는 건, 서버를 옮겨 다닐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얘기. 자극이라도 했다간 그냥 인질 두 명을 죽이고 달아나 버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들의 의아함을 방치했다간 무슨 변수를 창출해버릴지 모른다. 다들 정신이 없어 보이기도 하고.
그렇게, 구태여 설명을 마친 크로스보우.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크로스보우는 다이빙하듯 캡슐에 누웠다.
“···형.”
“──크, 크로스보우님.”
그런 그에게 말을 건 블래드.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목소리로 고개를 숙여오는 인간이 있었다.
“···크로스보우 님. 혹시, 혹시···저. 지난 네이션스 컵 때 제가 무례하게 군 일이 있다면 모두 사과드리겠습니다.”
“···누구···셨더라?”
“···TK의 란두인입니다. 크로스보우님의 의견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그런 방송인의 오더같은 걸 따라서 뭣하냐 했던 바보같은 인간 중 한 명입니다.”
“아하.”
크로스보우는 캡슐 뚜껑을 손에 쥔 채 눈짓했다.
빨리 말하라는 제스쳐였다.
“그리고 나서 사과도 한마디 안했죠. 이미···너무 늦었지만···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크보 님.”
지켜보고 있던 스태프들에게서 숨을 잊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커다란 덩치를 가진 이 란두인이라는 선수의 목소리가 반쯤 울먹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크보님이 얼마나 대단한지 계속해서 얘기했던 게 카운터 저 녀석입니다. 그러니 제발···부탁드리겠습니다. 제발, 제발 카운터, 저 녀석 좀 무사히 데려와 주시면···뭐든지 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투기장에서 죽으면 쇼크사할 수도 있다. 커다란 헤드라인으로 보도되었던 것.
아마 그는 그 이야기를 떠올리고 있는 듯했다.
“카운터 덕분에 계속 프로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쟤 어머님한테도···잘 부탁한다는 소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는···너무, 아무것도 못해서···부탁합니다. 크로스보우님. 제발.”
필사적인 모습이었다.
“···.”
그에 대한 크로스보우의 반응은 대단치 않았다.
사과를 받아주지도 위로하지도 않는다.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어느새 눈앞에, 홀로그램이 떠오르고 있었다.
띠링!
[일치하는 신체 정보를 발견했습니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 하꼬 스트리머에 불과했던 그 이름이, 그 자리 모두의 눈동자에 아로새겨진다.
띠링!
[계정명 : 크로스보우]
그리고 마지막 저장장치를 꽂아넣는 크로스보우.
그를 바라보는 스탭들.
“···크보님.”
“형.”
푸쉬익-!
[환영합니다!]
캡슐문이 닫히기 전.
그 틈새로 크로스보우는 중얼거렸다.
“뒤졌다. 씹새.”
어느새, 함께 온 신예지는 멀리 책상에 앉아 뭔가를 준비하고 잇었다.
그리고 채은아.
“아, 앗···! 저기요!”
“안에서 보자구. 크보쟝. 쿠쿠루삥뽕~!”
든든한 지원군으로서 캡슐에 들어간 그녀는 손을 흔들어 보였다.
“···저도 지켜보다가 접속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비록 크로스보우에게 패배했지만 여전히 최강의 게이머 중 하나로 꼽히는 이.
블래드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다이브를 준비했다.
“거기까지. 더 오지 마세요. 괜히 도망만 가면 안 되니까.”
눈을 감았다.
“풀 다이브.”
음성인식. 과연 신형 캡슐. 이게 그리웠다.
그는 순간 점멸하는 정신에 문득 생각했다.
결국 상대의 목적은 자신. 카운터와 슈미츠는 인질피해자.
그렇다면 TK의 사람들에게 조금 원망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고.
***
“···크보님. 그러다 크보님까지 저렇게 되면···.”
“어떡해···어떡해 진짜.”
“···흑, 흑···.”
크로스보우의 풀다이브 후.
TK의 연습실에는 정적만이 감돌았다.
아주 작게 소근거리는 스탭들.
개중 여성스탭 몇몇은 울기까지 하는 모습.
“너무 위험해요.”
“감독님. 말렸어야죠···.”
원망을 받을지도 모르겠다는 건 크로스보우의 착각에 불과했다.
그도 그럴 게, 스탭들 대부분이 네이션스 컵 당시 그와 친분을 나눴던 이들이었던 것이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절대 안 돼. 나도 접속할거야.”
“···코치님 다딱이잖아요.”
“그게 중요해?”
스탭 중 크로스보우와 식사를 같이 해 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
대화하며 유쾌하게 웃어 보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밖으로 알려진 이미지는 어떤 상황에도 침착하고, 엄청난 피지컬로 매판 경기를 역전으로 이끌었던, 가히 국민영웅이라 할 법한 선수.
그러나 실제로는, 스탭들과 친하게 지내며 끊었다던 담배도 켁켁 거리면서 같이 펴 주기까지 하는 인간미를 보였던 것이다.
“자자. 다들 걱정 마시고 상황별로 어떻게 할지 생각 좀 해 보죠.”
“···감독님은 걱정 안 되세요?”
“···걱정?”
잠시 생각한 송정훈 감독.
이내 그는 피식 웃었다.
“···별일 없을 거에요. 잘은 모르지만.”
확언에 가까운 말.
그러나 듣던 사람들에게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끔 하는 말이었다.
그도 그럴 게─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하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것이야말로 크로스보우, 그의 캐릭터가 아니던가.
어느새 스탭들은 울음을 그쳤다.
“···후우. 마이크. 아직 저쪽에 연결되어 있는 거 아냐?”
“저쪽에서 끊은 거 같던데.”
“젠장···.”
긴박감이 감돌기 시작한 연습실.
송 감독은 제 동생을 돌아보며 손짓했다.
“다혜야. 니가 필요하다.”
"어, 어? 나?"
"그쪽 분이 분석관 님이죠? 저 좀 도와주세요."
신예지.
지금껏 조용히 있던 그녀가, 이벤트 도시의 지도를 키며 말했다.
***
밤이다.
새롭게 오픈된 서버의 내부의 시간대는 현실과 같았다.
사계절이 반대, 시간대도 빠르게 흘러가는 각각의 매칭게임과는 달리, 현실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는 탓이었다.
“···.”
크로스보우는 로그인 지역에서 눈을 떴다.
쌀쌀한 밤바람에 느껴지는 냄새. 저 멀리서 이 늦은 시간까지, 폭죽이 터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자.
해 보자.
지금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아까, 카운터가 했던 말.
사람들을 어떻게 한다던가, 하는 그런 말이었다.
“···빡세겠는데.”
그는 중얼거렸다.
아무렇게나 너저분하게 얻은 단서들이 대체 뭘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공략하는 것 같군.”
균방전이라도 하는 기분이다.
그리고 크로스보우는 가끔, 이렇게 두루뭉술한 게임을 공략할 때 항상 명심했단 사실을 떠올렸다.
‘있는 그대로 생각해 보자.’
단서는 다음과 같다.
오드맨. 알 수 없는 자. 시스템 혐오.
크로스보우와 같은 칭호. 시스템의 보호를 무력화 할 수 있음.
거기에 사람들을 어떻게 해 버릴 거라고 말하던 카운터의 말.
“···신상을 모르는 실력 있는 범죄자···거기에 사회 체제(시스템)까지 혐오한다라. 테러리스트 그 자체구먼.”
심지어 자격의 방이라는 은밀한 조직의 수장이다. 진위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올오버의 실운영진과 접촉할 수 있다고도 했다.
“근데 또···굳이 폭로한 이쪽한테 외부 통각 제어장치를 줬단 말이지.”
회사 내에 문제가 있는 건가. 그런 생각도 잠시. 크로스보우는 고개를 저었다.
‘뭐가 됐든 단순한 게임은 아니다.’
일련의 사항들을 확인하면 가장 먼저 드는 것은 지난번과 같은 의심이다.
그렇지 않으면, 고작해야 게임 시스템에 불과한 것을 혐오할 리도, 굳이 인질극을 벌여서 크로스보우를 불러야 할 이유도 없다.
“직접 듣는 수밖에 없군.”
상대를 만난다. 결론은 그것이었다.
크로스보우는 아주 오래간만에, 진심이 된 기분이 들었다.
찾을 필요까진 없다. 저쪽도 이쪽을 불러내기 위해 그를 찾은 것이니까.
‘처음 서버에 접속해 태어나는 장소는 고작 5군데. 분명 어딘가에 이정표 같은 게 있을 터.’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안녕. 크로스보우.”
허리 아래서, 돌연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오랜만이네.”
시선을 내리자 보이는 것은 묘하게 낯이 익은 캐릭터.
“···.”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는데.”
갑작스런 등장.
그러나 크로스보우는 덤덤히 말했다.
“이건 또 뭐야.”
“아아. 난 안내를 취미로 하는 히어로···.”
거기까지 들었을 때, 크로스보우는 기억해내었다.
눈앞의 캐릭터, 그 정체가 과거 자격의 방에서 가장 처음 마주했던 ‘더블혼’이라는 이름의 유저라는 걸.
"더블혼. 그렇군. 이건 자격의 방인지 하는 놈들이 오드맨의 의사에 따라 움직인다는 걸로 이해해도 되겠지?"
"그렇게 이해해도 된다는 걸 부정할 수 없지 않을 리가 없지는 않은 여지가 없는 말이네."
장난기 그득한 말.
크로스보우의 호응은 없었다.
그는 건조하게 중얼거렸다.
"그렇다는 의미군."
어느새, 상대의 쇄골 위에 크로스보우의 손가락이 올려져 있었다.
"오오. 근데 뭐하는거래? 그래봤자 아플 리가 없···?"
꾸우우욱.
"어···? 아아아악!?"
파닥거리는 녀석의 턱을 잡고는, 크로스보우는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벤트 기간.
코스튬의 일환으로 붉게 변해 있는 눈동자가 사납게 빛난다.
"거 말 좀 물읍시다. 2회 우승자 양반."
후배를 위할 줄 아는 선배라면, 대답해줄만 하다.
< 107화 현실과 가상현실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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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