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현실과 가상현실 (5)유어 캐릭터즈 올 오버.
약칭 올오버.
세계 최초로, ‘풀다이브’라는 기술을 앞세워 출시된 게임.
출시 직후 본래의 가상현실이라 불리던 게임들을 모두 제치고 앞도적인 점유율을 기록하고, 쇠락해 가던 PC게임계의 관짝에 마지막 대못을 박았다는 이야기로 알려진 게임.
다만 수많은 캐릭터 콜라보로 대부분의 연령층을 게임 이용자로 흡수하거나, 전염병 사태에 있어 가상공간을 제공하는 등의 외적으로도 가히 완벽에 가까운 운영을 보여 줬다는 평가를 듣는─
이렇듯 엄청난 행보를 보여 주고 있는 게임은, 지금까지 전무한 게임이었으며 동시에 후무할 게임이기도 했다.
올오버는, 인류의 마지막 게임이었기 때문이었다.
더 정확히는─본래라면 존재하지 않았던 게임이었다.
***
“완벽한 게임은 무슨.”
표절작에 불과하다. 누더기처럼 기워낸 게임 언저리의 무엇이다.
이제는 그 정신만이 남은 남자는, 오드맨에게 오리지날이라 불렸던 남자는···인생을 바쳐 만든 게임에 대해 그렇게 평가를 내렸다.
본디 그가 살았던 곳은 올오버가 존재하지 않았던 지구.
현 지구의 미래. 그리고 동시에 남자에겐 과거에 해당하는 세계.
그곳은 지금 시점으로부터 대략 9개월쯤이 더 지난 후부터─멸망은 시작된다.
그리고 올오버는, 그 멸망의 단초를 막기 위해 모방으로 만들어진 게임이었던 것이다.
“···기록 열람.”
[system]과거 기록을 열람합니다.
[20XX년 12월.]
[몇 번의 회귀 끝에 마침내,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을 발견했다. 성공할 수 있을까?]
“···더 지난 회차로.”
[20XX년 8월.]
[멸망의 게임. 그 마지막 시도 직전, 모두가 지쳤다.]
[···기대를 받던 유망주가 자살했다.]
[중압감을 완화시킬 뭔가가 필요하다. 다음부턴 전세계적인 대회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나는 또다시 죽는다.]
“1회차로.”
[20XX년 9월.]
[서울의 절반이 초토화되었다. 공권력은 더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사람이 괴물이 되었다.]
“···더, 전으로.”
[20XX년 7월.]
[부모님을 잃었다.]
“더, 더. 이것보다 1년 전으로.”
[20XX년 7월.]
[ERROR : 1회차 기록 없음]
[다른 회차를 열람하시겠습니까?]
이게 아니지.
“키워드. 크로스보우. 한국대학교 중퇴···.”
삐이이─.
[열람 가능 정보 : 없음]
“재검색. 이름···백일도.”
시야가 붉게 물든다.
[열람 가능 정보 : 없음]
“···역시, 몇 번을 확인해도. 똑같아.”
오리지날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개인방송인 크로스보우.
도무지 셀 수 없는 횟수의 회귀에도, 이 남자는 지금껏 단 한 번도 발견되지 않은 이레귤러였다.
“···대체.”
어느덧 희미해져 버린 세계의 반복. 매번 아주 작은 희망을 갖고 그저, 같은 짓을 반복하는 아득한 삶.
그런 와중에─아무런 나비효과도 없이, 오롯이 홀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 크로스보우.
단 하나의 변수.
“···.”
그는 저 멀리에서, 폭발하는 검은빛의 기운을 보며 생각했다.
기대를 걸어 봐도 될까.
···몇 개월이 지나면,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사회 전반적인 인프라가 무너지는 데에는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끔찍한 참상이 수없이 많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그 오랜 반복의 끝에서 결국 발견한, 그 모든 현상의 원인.
그것을 두고 오리지날은 이렇게 불렀다.
‘멸망의 게임.’
누군가는 그것을 던전이라 불렀다. 또다른 누군가는 초월자가 될 수 있는 탑이라고 말했고, 인류를 벌하기 위한 신의 철퇴라고도 얘기했다.
그러나 오리지날이 보기엔 그것은 그냥 게임의 일종이었다.
마치 오락실의 게임.
코인이라도 입력되어 있는 것처럼 단 3회의 시도만이 가능한 게임.
실패하면 세상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
그것이 회귀라는 걸 깨닫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돌아간 세계에는 또 다른 ‘자신’이 존재 했으니까.
···그가 오리지날이라고 불리는 이유. 동시에 SYSTEM이라는 문구 뒤에 숨어, 그저 정신체로 살아가는 이유였다.
“···크로스보우. 이런 나조차 이해할 수 없는 짓을 할 수 있는 너라면.”
사실을 얘기하자면, 그는 이제 인간이라고 부르기도 힘든─기억의 덩어리.
그것이 희미해진 감성의 사이로 단 하나 선연하게 느끼는 것.
이제 다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
“···너라면 혹시.”
그렇게 중얼거렸다.
***
“쿨럭···커헉.”
“아···죽겠네. 진짜.”
야밤에 돌연 쏟아져내리던 비.
어느새, 거셌던 비가 많이 누그러들었다.
서버가 천천히 복구되고 있다는 증거였다.
모종의 방식으로 무효화되었던, 통각 제어 시스템도 돌아오고 있는 걸까. 금방이라도 토해버릴 것 같던 감각 역시 많이 사그라들었다.
“근데 야. 무사시. 뭐라 했지. 이번에는 니 말이 옳길 빈다구?”
“···쿨럭. 닥쳐라.”
“아. 크크. 댁챼럐~진짜. 널 믿은 내 잘못이지. 뭐? 충검? 이 자식아. 그냥 벌레였네.”
“···더블혼(두개의 뿔)인지 컨셉 잡던 넌 대머리가 됐다만.”
“뭐, 뭐? 아니거든? 머리카락 있거든? 뿔만 부러졌을 뿐이거든?”
“흥. 녹용이로나 쓸모 있을 놈.”
“년이거든? 니 말 다 틀렸는데?”
나란히 누워 있는 둘은 입만 움직이며 문답을 주고 받고 있었다.
부정할 수 없는 완벽한 패배. 그에 충격이라도 받은걸까. 아무 말이나 주워섬기는 모습들.
“···대단하더군.”
“···난 아직도 이해가 안 가.”
“마찬가지다. 처음보는 테크닉은 그렇다고 하더라도···플레이 방식이 이해가 가질 않는다. 굳이 도박수를 던지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 자주 스스로를 던지더군. 이쪽의 예상까지 다 비틀리는 경험은 처음···.”
“네네. 그러시겠죠. 우리가 봤을 때나 도박수지, 저쪽은 확신으로 플레이하는 것 같던데. 합리화 수준. 크크.”
“···실력, 차이라는건가.”
쏴아─.
비가 멈췄다.
“맞아.”
“···?”
그리고 대답은 다른 곳에서 들려왔다.
그들은 고개만을 들어 그곳을 바라보았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빨간 우산.
쪼그려 앉은 여자가, 그들을 보며 턱을 괴고 있었다.
비가 그친 게 아니었다.
그들에게 우산이 씌워졌을 뿐.
“···어?”
“다, 당신이 여긴 왜···!”
“조금만 더 늦었으면 위험할 뻔했네. 이 머저리들.”
그녀는 뒷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쓰러져 있는 두 인영.
“···저들은?”
“니들 미래 동료.”
여자는 냉막한 인상이었다. 언제나 쓰고 있던 모자가 없는 탓일까. 눈매가 도드라진다.
게임 안에서도 그녀는, 양팔에 완력보조 장치를 달고 있다.
“···기절은 왜 시킨 겁니까?”
“적어도 너흰 돌아가는 상황을 알고 있잖아? 쟤들한테 니들이 이 꼬라지의 원흉이라는 걸 들킬 순 없지.”
그렇게 말한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산 밖으로 손을 내밀어, 빗방울을 움켜쥔다.
“비가 그칠 거야. 빨리 사라져.”
그녀의 정체는, 오리지날과 함께 회귀한 자.
채은아.
이 세계의 채은아와는 다른, 이미 몇 번이고 세상의 멸망을 봤던 인간.
옵저버의 역할을 수행하는 회귀자였다.
“···알겠습니다.”
“무서운 언니···으읏.”
그녀가 내뿜는 박력에, 더블혼과 무사시는 끙끙대기 시작했다.
“···뭐하는 거지?”
“저···몸이 안 움직입니다.”
“부, 부끄럽지만 저도.”
“···.”
완벽히 무력화를 당한 두 명.
그녀는 이 상황에 크로스보우의 능력에 감탄해야 할지, 오랜 과거에 함께했던 동료들의 멍청한 모습에 탄식을 해야 할지에 대해 고찰하며 한숨을 쉬었다.
“저희도 일부러는 아니구요···.”
“죄송합니다.”
오리지날처럼 십만 번을 넘기는 숫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한 회귀를 반복해 온 그녀에게도─영 낯선 일이었다.
“내 눈앞에서 10초···아니, 5초 안에 사라져.”
[SYSTEM]긴급 차단 프로토콜 종료
[SYSTEM]로그아웃 기능이 복구됩니다.
“예, 옙!”
“···흐엉”
파아앗-.
서버에 내리던 비가 그쳐간다.
“···크로스보우, 라.”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신’에게 다가갔다.
“아직 너희가 알 시기는 아니야. 미안하네. 조금 어지러울···.”
그런데 둘을 로그아웃 시키려고 할 때였다.
“···하응. 크보 님···거기에 풀다이브를 해 버리면···씹가능···우헤헷···.”
돌연, 묘한 잠꼬대를 지껄이는 ‘자신’의 모습.
“······.”
옵저버는 가만히 굳은 채 말을 잃었다.
***
[SYSTEM]로그아웃 기능이 복구 되었습니다.
[SYSTEM]외부 연결 기능이 복구 되었습니다.
[SYSTEM]또다른 현실, 올오버가 정상화 되었습니다.
[SYSTEM]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됐다!! 서버 복구됐대요!!!”
“진짜? 지금? 갑자기?”
“네. 사람들 다 빠져나오고 있답니다!!!”
새벽에 벌어진 해프닝.
대략 2시간쯤에 걸쳐, 벌어진 로그아웃, 로그인 불가 현상.
인터넷 기사에 앞다투어 올라오고 온 커뮤니티가 달아오르기 시작하던 중간.
돌연 아무런 사전 알림 없이, 사태가 진정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럴 줄 알았다니까! 이런 버그를 못 잡아낼 리가 없지!”
송정훈 감독의 말을 배경음 삼아, 사람들이 우르르 캡슐에 달려든다.
“카운터, 우리 운터는?!”
“외부 로그아웃 기능!! 복구됐는지 봐요!!”
손들이 앞다투어 뻗어진다.
삐익-.
[외부 로그아웃 요청]
[승인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푸쉬익-···.
캡슐이 열리는 소리.
“운터야!! 카운터!! 정신, 정신 차려 봐. 이 자식아. 정신 차리라고!”
곰같은 덩치의 란두인이 울부짖었다.
분명 로그아웃은 되었는데, 여전히 눈을 뜨지 못하는 카운터의 모습.
“···아니지? 설마, 아니지?”
대답이 없다.
사람들의 등허리에 오싹한 불길함이 달렸다.
‘쇼크사’.
그 단어가 스멀스멀 그들의 머릿속에 떠오르고.
“제발. 제발. 제발. 제발···아니라고 해 줘···.”
란두인이 가슴께에 귀를 갖다댔을 때였다.
“···왜 이래. 징그럽게···.”
“···!!!!!!”
희미한 대답.
별것도 아닌 그 말에, 환희가 사람들 사이를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이···이···! 살았으면 살았다고 말을 해 줘야 할 거 아니야!!! 크흑···.”
“다행이다. 진짜 다행이다.”
“···놀라게 만들고. 하아.”
모두가 고개를 돌리고 눈물을 닦아내고 있었다.
그때 한 편, 다른 쪽 캡슐의 슈미츠.
“···.”
이미 크로스보우가 그들을 구했을 때부터 멀쩡했던 그녀는, 살금살금 연습실을 빠져나가려 하고 있었다.
‘이이···이 내가 실례를 하다니···!’
아랫도리가 영 축축했던 탓이다.
얼른 화장실이라도 가서 뒷수습을 하려던 것.
“슈미츠도 멀쩡해!!!”
“다행이다!!”
그러나 그 많은 스탭들의 시선을 모두 속일 수는 없는 노릇.
“···!!!!”
우르르 이쪽으로 몰려오는 모습들을 보며, 그녀는 얼른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축축한 아래를 숨기려는 셈이었다.
이미 모두가 자신이 실례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걸 모른 채.
“어떻게 된 거야!”
“대체 어쩌다가···!”
“어···음···그게.”
“크보형이 나타나서 구해 줬어요.”
대답하는 카운터의 말에 다시 돌아간 시선.
“···그러고 보니까, 크보형은요?”
카운터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
그러자 이번엔 크로스보우가 들어간 캡슐 쪽으로 시선을 돌린 사람들.
그곳에 보인 것은, 망연자실한 채 캡슐 앞에 주저 앉은 신예지의 모습이었다.
“······오빠?”
[외부 로그아웃 요청]
[거절되었습니다.]
크로스보우.
두 사람을 구하기위해 풀다이브했던 그가, 여전히 연락두절인 상황.
휴대폰을 꼭 쥐고 있는 신예지의 손이 덜덜 떨린다.111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