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현실과 가상현실 (7)소리가 울린다.
“윽···.”
크로스보우는 자신이 관의 모양새를 하고 있는 공간에 갇혀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여기는 어디야.
그는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고 생각했다.
“숙취도 아니고. 죽겠군.”
방금 들렸던 건 환청 비슷한 것일까.
메시지 소리에 묻힌 것인지, 더이상 들리지 않는다.
그나저나. 크로스보우는 멍한 기분 속에서 생각했다.
어쩌다 이렇게 됐지.
분명, 오늘의 그는···이벤트 서버가 오픈되어서 블래드와 재밌는 경기를 한 판하고, 집에서 잠이나 자려는 셈이었다.
내일 일정도 정해져 있었다.
3개의 진영으로 나뉘어 경쟁하는 이벤트 기간. 내일도 방송을 켜 진영 승리에 대충 힘이나 보태려는 생각뿐이었던 것이다.
그게 근데 갑자기···가상현실을 수단으로 삼아 펼쳐지는 인질극에 휘말리지를 않나, 괜히 악성 게임폐인한테 협박이나 당하고, 컨셉충 두명과 원치 않는 전투를 해 버리고 말았다.
심지어는 그 과정에 캐릭터 생성 권한 하나와, 강화권까지 날려먹었다.
“···하아.”
운이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없다.
나중에 시청자들에겐 뭐라고 말하지. 이번 사건에 대해 섣불리 말할 수는 없을 거다. 직감적으로 그는 그렇게 느꼈다.
그냥 엿 바꿔먹었다고 뻔뻔하게 나갈까?
“흐음.”
그러던 때였다.
──빠! 오빠!
돌연, 누군가 그를 부르는 소리.
“?”
이건 예지 목소린데.
그가 고개를 갸웃거린 순간.
푸쉬이익──!!
관뚜껑이, 열렸다.
“오빠!!!!!”
“커헉!”
갑작스런 박치기 공격.
“흑···흐윽···흐으으···다행, 다행이다···.”
“??????”
그리고 저 너머에 보이는 걱정스러운 얼굴들.
영문을 모르는 크로스보우가 평소와 같이 그녀를 떨쳐내려고 할때였다.
문득, 무게감이 느껴지는 가슴께가 뜨끈하고 축축해졌다.
“죽으면 안 돼···응? 오빠···.”
“안 죽는다. 얘가 왜 이래?”
“팔 잘렸잖아. 괜찮아? 안 아파? 어떡해. 바보야···왜, 왜 그렇게까지···.”
크로스보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론 이 축축함의 정체에 대한 것이었다.
“야. 근데 우냐?”
“···울면 어쩔 건데.”
“오호라.”
그렇다면 응당 해 줘야 할 말이 있다. 크로스보우는 잔뜩 쏠린 주목도를 체감하며 웃었다.
스읍.
숨을 들이킨다.
“걱정돼서 죽는 줄 알았다고. 오빠. 나 죽는 꼴 보고 싶···.”
“야! 우냐?”
“아, 아니라고!!!”
“야! 얘 운다!!”
“이, 이잇···!”
계속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은 것일까.
신예지는 울며 미소 지었다.
“뚝해라. 징그럽게.”
“···무사히 돌아와 줘서 고마워. 오빠.”
“별 말씀을.”
***
“보였다고?”
“중간부터는요.”
송다혜의 대답.
인게임에서, 크로스보우의 팔이 잘린 것인지에 대해 알 수 있었는지에 대한 대답이었다.
분명 크로스보우가 게임에 진입할 땐 인게임 화면이고 뭐고, 전부 먹통이었는데···어느 순간부터 다시 인게임 상황이 보였다는 듯했다.
“어느 시점부터 보였죠?”
“상대가 죽어라라고 말할 때였어요. 꼼짝없이 죽겠구나 했던 장면···.”
“과연.”
대충 어느 시점인지 알겠다. 아마 시스템 메시지가 다시 보이기 시작한 순간부터겠지.
크로스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우선 다들 쉬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저도 피곤하네요.”
“알겠습니다. 자자. 다들! 크보님도 무사히 돌아왔으니까 다들 퇴근들 하세요. 게임단에서 무슨 야근을 하고 있습니까.”
상황이 정리되었다. 우르르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사람들. 크로스보우는 마지막으로 캡슐을 힐끗, 바라보며 TK의 연습실을 나섰다.
“···그래서, 무슨 일이었어?”
“리얼. 본인도 조금 궁금.”
그리고 늦은 새벽. 송정훈 감독이 직접 운전해 데려다 준 원룸의 앞.
“글쎄···.”
크로스보우는 잠시 고민했다.
스스로도 아직 명확히 정리된 사실이 없다는 점은 둘째치더라도, 이들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정확히 얘기해도 되는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그도 그럴 게, 아까 직접 몸을 움직일 때까진 전혀 의식하지 않았지만···이제 와 생각하니 있었던 일들이 영 말도 안 되었던 것.
다만 마지막 순간에 들은 실마리는 존재했다.
‘···본사로 찾아와 주겠니. 크로스보우. 초대장을 보낸 지는 한참 되긴 했는데.’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던 이가 그를 로그아웃 시키며 한 말.
그러고보면 방문권 받고서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었다. 크로스보우는 그 말을 곱씹다가 말을 이었다.
“조금 정리하고 말해 줄게.”
***
어제의 소란에서 부정적인 여론은 생각보다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이상하게도, 서버봉쇄 현상이 몇몇 유저들 사이에선 자랑거리로 탈바꿈해 있었다.
[걍 차라리 계속 서버 문제 있었어야함 ㅇㅈ?]
-씹덕들은 이세카이물 주인공 돼서 좋고 현실에선 인구문제 해결에 유전자 개선까지ㅋㅋㄹㅇ누이 좋고 매부 좋고 아ㅋㅋ
└(울부짖는 개구리콘)
└솔직히 그 시간에 접속하고 있던 레전드들 다 그 생각 했을듯
└ㄹㅇㅋㅋ내일 회사 안갈거 생각하니까 개 신났었는데ㅋㅋㅅㅂ···ㅅㅂㅅㅂ
└하와와 본인쟝 방금 리얼 마족되는 상상했는데 하읏···
└게시판에서 좀 꺼져!!!!!!!
“···.”
크로스보우는 알 수 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방송을 오래 지속해 오고, 어제는 새로운 감각의 경지로 나아가기까지 한 그에게도···커뮤니티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당장에 현실에 남겨진 몸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불안이, 분명 모두에게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했지만···.
“문제 없네.”
“···그러게.”
아무리 여기저기를 눈팅해도 드는 결론은···어제의 소란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는 것.
그렇게 올오버의 이벤트는 아무런 변화없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날 밤.
방송마저 하루 거르고 접속한 올오버.
벌써 두 번째 뜬 시스템의 에러메시지.
그게 무슨 원리인 건지, 시스템이 정확히 뭔지에 대한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SYSTEM]환영합니다. 크로스보우 님.
“···지멋대로 호칭이 바뀌는군.”
이 시스템의 너머에 어쩌면 누군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은 이미 몇 번이고 느껴 본 사항.
다만 그 실체는 여전히 알 수 없다.
가장 근접한 추리는 어린아이의 아바타를 뒤집어쓰고 있던 자가 시스템을 컨트롤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다만···인간 개인으론 처리할 만한 정보량이 아닐 터다. 자동화가 되어 있다고 한들, 작업량이 어마어마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무엇보다 이쪽을 향한 호오를 모르겠다.’
적대적으로 돌변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 주어야 해.
그렇다면 최소한, 불미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지만.’
오늘의 접속.
시스템 에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오드맨이 한 말이 모두 헛소리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 직감이 들었다.
“모드 선택. [연습 모드].”
[SYSTEM]연습 모드로 진입합니다.
[SYSTEM]플레이할 캐릭터를 선택해 주세요!
주르륵 펼쳐지는 수없이 많은 목록 중에 크로스보우가 픽한 것은, 오랜 그의 친구.
[SYSTEM]’더 원 그라운드’ 선택 완료.
철컹!!
아주 오래간만에, 눈앞에 사격장이 펼쳐졌다.
“···.”
아직 연습을 시작하진 않는다.
잠시 눈을 감았다가, 부릅 뜬 크로스보우.
“역시, 회색 세상 속에 진입하는 건 그대로 되는군.”
언제나 시스템이 부서질 때, 그가 진입해 있던 세상.
지금까진 이게 단순한···극한의 집중 탓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뭔가 다른 현상일지 모른다.
혹시 초능력?
잠시 그런 생각을 한 크로스보우.
“···그럴 리가.”
어린애같은 발상에 피식 웃으면서도 내심 기대하는 감정을 숨길 수는 없다.
“···흡.”
생각은 여기까지다. 시스템에 오류를 일으키려면, 경함상 회색 세상을 넘어 시야가 검게 변하게 하도록 하는 지점까지 도달해야 한다.
“···잘 안되는데. 역시 실전상황이어야 하나.”
어쩔 수 없지.
더 원 그라운드의 연습 모드. 사격장.
그는 시스템을 불러와 세팅하기 시작했다.
[SYSTEM]설정 난이도를 말해 주십시오.
“최고 난이도.”
[SYSTEM]난이도 : 불가해가 설정되었습니다.
“임의 설정 변경. 모든 타겟의 넓이 절반 감소. 피격 가능 시간 절반 감소.”
[SYSTEM]설정 중입니다···.
[SYSTEM]경고! 불가해 난이도 대비 9.78배 난이도가 상승합니다.
[SYSTEM]이대로 결정하시겟습니까?
“결정한다.”
[SYSTEM]난이도 : ‘크로스보우’ 설정 완료.
[SYSTEM]목표 점수를 말씀해 주십시오.
크로스보우는 잠시 생각하다가 피식, 웃었다.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하드 게이머라면 당연한 대답.
그는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실마리를 얻을 때까지.”
***
“하아.”
신예지는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오늘도 거르지 않고 캡슐에 꿋꿋이 기어들어간, 크로스보우를 향한 한숨이었다.
“···강아지두 아니고···분리불안 올 거 같다.”
어제의 일이 정신 상태에 뭔가 좋지 않은 작용을 한 것일까.
캡슐에 들어가 있는 크로스보우를 보면, 자꾸만 불안한 생각이 든다.
자신의 정신이 얼마나 크로스보우에게 의지하고 있었는지는 진작에 깨닫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로 심각할 줄은 몰랐다.
따지고 보면 자신은, 크로스보우의 편집자로서 일을 한다기보단, 오히려 돈을 받고 치료를 받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런 생각마저 들 정도.
의지할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제 가치를 알아봐 주며 일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심지어 월급 역시 상당한 수준. 이는 크로스보우가 하꼬 방송인일 때 역시 마찬가지였다. 많은 수준에서 더더욱 많은 수준으로 올라간 느낌.
“오빠···.”
인생 전반이, 캡슐에 들어가 있는 남자에게 영향을 받고 있다. 신예지는 그걸 깨닫고 씁쓸하게 미소지었다.
언제까지고 민폐만 끼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나도 올오버···해야 하는데.”
결국 돌고 돌아 드는 생각은 그것이다.
요즘 사람들 중엔 아주 드물게도, 그녀는 올오버 게임을 하지 않는 인간.
그녀 스스로의 흥미 탓은 아니었다.
신예지도 시도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언제나 캡슐에 누워 풀다이브를 하려고 하면, 본능적인 거부감이 확 올라왔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마치 마취약이 잘 듣지 않는 사람처럼, 풀다이브 기능 역시 잘 작동하지 않았다.
문의를 남기도 캡슐을 업그레이드하면 해결될 거란 답변뿐. 이미 최신형 캡슐이라고 해도 추가 답변 따윈 없었다.
“하아.”
우웅─.
[캡슐이 가동 중입니다]
[가상 현실 ‘올오버’ 모듈 활성화 중···]
그렇게 한참동안 크로스보우의 캡슐을 바라보았다.
“···나는 나대로 할 수 있는 걸 찾아봐야 해.”
그 모습에서 결심을 바로 세운 것일까.
그녀는 이를 악물고, 작게 중얼거렸다.
언제까지 은혜만 입을 순 없어.
올오버에서의 사건이 점차 하나둘씩 벌어지고 있는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지금까지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이란 직감이 들었다.
“편집 말고 잘하는 게···있긴 하네.”
하꼬 시절의 크로스보우를 커뮤에 알게 모르게 홍보하며, 각종 밈에 통달해 버린 그녀.
어느덧 크로스보우가 커뮤니티 반응에 잘 신경쓰지 않게 되어 버렸다고 한들···이슈의 흐름은 여전히 커뮤가 주도하기 마련이다.
자신이라도 지켜보고 검색해야 한다.
그게, 어떤 정보가 되었든 말이다.
[검색창]
[올오버 본사]
[오드맨]
[1회 네이션스 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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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과 현실]
방에는 어느새 정적만이 감돌았다.
타닥타닥하는 키보드음과, 캡슐이 가동되는 소리만이 가득할 뿐.
크로스보우와 신예지.
예상치 못한 방송의 대기업화로 잠시 풀려 버린 두 사람.
오랜만에, 두 사람의 눈이 바로 떠졌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113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