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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스트리머가 너무 강함-112화 (112/143)

113화 현실과 가상현실 (8)부우우우웅─.

서울의 어느 원룸촌.

수도권의 원룸촌의 주말이 대부분 그렇듯, 배달 오토바이 소리가 아침부터 정적을 깬다.

한껏 다가온 듯 보였던 가을이 어느새 그 중반을 지나 겨울에 가까워진 때.

쌀쌀한 날씨가 이른 새벽 입김의 형태로 나타난다.

크로스보우는 멍하니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요즘따라 어쩐 일인지, 영 기분이나 상태에 멕아리가 없다.

마치 시청자가 거의 없던 시절의 크로스보우.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 것만 같은 정신 상태.

“여기 근천데.”

그때의 소란 이후로, 본의 아니게 방송을 쉬기 시작한 지도 벌써 3일째.

갑작스런 3일간의 휴방. 별다른 이유는 아니었다.

연습 모드에서 홀로 시험해 보던, 크로스보우 전용이라 할 수 있는 의식가속화 능력.

아직도 그 기술의 정확한 발동 조건이나 효과를 알 수 없었던 것이다.

하나에 꽂히면 계속해서 붙잡아 버리는 크로스보우의 성격 특성상, 아직 온전히 밝혀내지 못한 공략법을 놔두고 다른데에 몰입한다는 것은 불가능이나 다름없는 일.

당장 크로스보우 갤러리에선 ‘갤주 마왕 소리 듣더니 봉인당함?’’크가놈 ㄹㅇ이세카이감??’ 따위의 글들이 올라오고 있음에도 그랬다.

단적으로 말하자면─그가 멍하니 있는 이유 중 태반은, 밝혀지지 않은 올오버 내의 일에 대한 생각이었다.

‘···조금만 더 시험해 보면 알 수도 있을 거 같았는데.’

결국 오늘이 와 버렸군. 그는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횡단보도.

눈앞에 있는 것은 거대한 건물.

꼭대기 즈음에는 올오버라는 게임명과 함께, 레드홀이란 사명이 적혀 있는 모습.

올오버 본사다.

찾아오라는 이야기를 듣고, 결국 추가적인 연락을 통해 방문하겠다고 한 날이 오늘.

그는 조용하게 건물 정문에 발을 디뎠다.

***

게임에 알 수 없는 장치를 해 놓은 수상한 회사. 아마 본사도 어딘가 수상할 게 분명하다.

“오호.”

그랬던 크로스보우의 생각과는 다르게, 건물의 내부는 생각보다 잘 정돈되어 있었다.

“방문 목적을 알 수 있을까요.”

“여기 사장이 불러서 왔습니다.”

“···아. 크로스보우 님. 환영합니다.”

삐익-.

보통의 건물처럼 개찰구가 존재한다. 경비원들 역시 멀쩡히 근무하고 있는 모습. 1층 멀리에는 평범하게 프랜차이즈 카페나, 식당 따위가 들어서 있다.

근미래적인 디자인, 혹은 극도로 캐주얼한 환경을 상상했던 크로스보우의 입장에선 조금 힘이 빠지는 일.

“···흐음.”

뭐, 아무렴 어떠랴.

크로스보우는 안내데스크의 인도에 따라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회장실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럼요.”

엘리베이터 걸인가. 지금은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직업. 크로스보우는 잠시 그 모습을 묘하게 바라보다가, 점잖게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삑.

크로스보우는 여자가 층수를 누르는 걸 보며 의심의 불을 당겼다.

‘카드를 찍지 않으면 층수버튼을 누르지 못하는 시스템···굳이?’

마치 고급 호텔을 떠올리게 하는 방식. 어차피 모든 것이 설정인 가운데 굳이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지만···개인의 취향이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내려가는데요?”

“네. 내려갑니다.”

회장실이라 하면 보통 최상층에 있지 않던가?

“특이한 사람이네.”

“회장님 말씀이십니까?”

“네. 그럼 누구겠어요.”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크로스보우는 고속으로 내려가는 와중에 피식 웃었다. 일부러 이런 식으로 배치한 것일까. 위화감을 가득 넣어서 알아차리라고? 만약 그렇다면 대체 뭘 위해서?

그런 생각과 함께 물었다.

“그래서 왜 부른 거지.”

“···?”

“인게임에서 애기해도 얼마든지 상관 없었을텐데.”

“고객님. 곧 있으면 회장실에 도착합니다. 이야기는 회장님께 물어봐 주시면···.”

“음?”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치, 정말로 어리둥절한 사람을 연기한다.

“지금 회장한테 얘기하고 있는데. 뭐 굳이 거기까지 가서 얘기한다면야···.”

“저는 회장이 아닙니다. 고객님. 저는 고객님들의 편의를 위해 안내원으로···.”

잡아떼겠다면야 할 얘긴 없다.

크로스보우는 피식 웃었다.

“눈치채지 못할거라고 생각한 건 아닐 테고···이러시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저···고객님?”

눈치채지 못했을거라 생각하면 재미없다. 그는 조용히 선언했다.

“롤플레이는 그만.”

우웅─.

마치 공기가 급격히 쪼그라드는 듯한 뭔가의 응집.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하기엔, 너무나도 돌연한 현상.

크로스보우가 대기 중에 있는 ‘기운’을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올오버에서처럼.

“······.”

그것이 엘리베이터를 지배하고 잠시.

정적.

“···언제부터 알았지?”

돌연, 안내원 복장을 하던 여자가 빙그레 웃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오싹함을 느끼게 할 탈바꿈.

그러나 크로스보우는 그에 마주 웃을 뿐이었다.

“처음 건물에 들어온 순간. 아. 들어왔다기보단 ‘접속’이라고 말하는 게 맞을까?”

띵.

덜컹.

엘리베이터가 멈춘다.

고급스러운 황동색 문이 좌우로 열리고, 그 너머에 있는 것은 지난번에 보았던 것과 비슷한, 참상의 흔적.

도저히 건물 안에 존재할 풍경은 아닌 모습.

“그건 다행이군. 그리고 동시에 내 기대대로야.”

온통 핏자국과 시체가 즐비한 장소.

그곳을 장식하듯, 달랑거리는 파란색 지하철 푯말.

그곳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사○역]

“인지 능력 하나만큼은 괴물이네. 크로스보우. 환영해.”

이전에 봤던, 얼굴이 짓이겨진 아이의 형상을 했던 자.

그자가, 하이힐의 여자를 뒤집어 쓴 채 빙긋 웃었다.

“내 추억의 장소에.”

“······.”

크로스보우는 조용히 부서진 푯말에 다가갔다.

사○역.

그리고 눈에 익은 구조.

그는 작게 중얼거렸다.

“···여긴, 사당역이었나 보군.”

“그렇단다. 물론 지금은 진짜로 있는 장소는 아니지만.”

그랬다.

느껴지는 바, 이곳은 가상현실 내부.

“그렇겠지.”

분명 멀쩡히 서 있던 본사를 찾아온 크로스보우에겐, 어쩌면 어처구니 없는 일.

그러나 그는 본인이 겪고 있는 일의 시발점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올오버 본사 건물. 그 문에 손을 댄 순간부터다. 그때부터 모든 것이 가상현실 속이었다.

말하자면 건물 전체가, 일종의 거대한 캡슐이었던 셈.

다만 문제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풀다이브가 되어 버린 점.

깨달은 순간 이미 가상현실 내부에 들어와 있다.

역시, 호오好惡를 모르겠군.

“얘기해 봐라.”

크로스보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런 짓을 하고 있는 이유가 뭔지.”

***

“그거 알아? 이 세상은 곧 멸망해. 크로스보우.”

마치, A형은 소심하대~ 따위의 이야기라도 하는 듯한 태도로, 하이힐의 여성은 말했다.

“아참. 내 소개가 아직이었네. 나는 적당히 오리지날이라고 불러 주겠니.”

“크로스보우다.”

“알고 있단다.”

여성의 이야기는 길었다.

그리고 믿을 수 있는 종류의 것도 아니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크로스보우는 마치 2012년의 종말설, 혹은 노스트라다무스의 종말설이라도 들은 사람처럼 심드렁한 표정으로 일관했다.

“와. 그렇구나.”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한 거니?”

“그럼. 요약하자면 이런 거잖아. 세상에 멸망이 다가오는데 그걸 막는 유일한 방법이 어떤 게임을 클리어해야 한다는 거.”

“···그렇게 말하니까 정말 없어 보이네.”

요약을 과하게 하긴 했지만, 결국 요점은 그것이었다

멸망을 막기 위해 회귀를 반복해 온 것이 눈앞의 오리지날이라는 알 수 없는 인간.

그리고 수없이 많이 시도하던 중, 혼자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생각되어 같이 회귀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오드맨과─어떤 여성이라는 듯했다.

“그 여자쪽의 이름은 비밀인가?”

“아직은. 비밀로 해두고 싶네.”

그리고 전세계를 강타한 가상현실게임─올오버는 그 게임에 적합한 이를 미리 선별하기 위한 게임.

또한 모두가 종말 이후에는 모든 이가 약간의 초능력 같은 것을 개방하게 된단다. 그래서 그때를 대비해, 미리 초현실적인 것에 적응케 하기 위한 게임이기도 하다는 것.

본인의 캐릭터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패치는 몇 번의 회귀를 거듭한 결과···그렇게 하면 정말로 캐릭터의 능력에 따라 개인별 능력을 비슷하게 개방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

“증강현실의 발전형이 아니었나?”

“틀렸어. 올오버는 이진법으로 이뤄진 뭔가가 아니야. 올오버는 내 능력의 산물이란다.”

“···능력?”

‘모방.’

오리지날이 가진 능력의 정체였다.

처음에는 그저 무기의 형체나, 능력을 조금 따라할 수 있었던 수준의 것이 회귀 끝에는 ‘멸망의 게임’을 모방할 수준이 되었다는 모양.

그렇게해서 만든 것이 바로, 올오버.

“오오. 신기해.”

“···너무 결여되어 있는 거 아니니?”

숨겨져 있던 진실을 들었음에도 크로스보우의 반응은 과장되지 않았다.

그저 시체들을 뒤적이며, 전소된 지하철의 차체를 이리저리 헤집고 다닐 뿐.

덕분에 오리지날이 졸졸 따라다니며 설명을 계속하는 중이었다.

“뭘 그렇게 찾는 거야? 그보다 정말 시체랑 똑같은데···현대인 주제에 무슨 비위일까.”

“···.”

대답없이 한참을 돌아다니던 크로스보우.

그는 마지막으로 시체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까맣게 검댕이가 묻은 좌석에 앉았다.

“···사람들이, 인게임과 똑같군. 균방전 인게임과.”

“···그걸 어떻게. 아니. 너 NPC들의 얼굴도 기억하는 거야?”

“그 정돈 기본이니까.”

이러면 신뢰가 조금은 생긴다.

자칭 ‘오리지날’의 이야기를 믿을 수 없는 것은 매한가지였지만, 이렇게까지 부속증거가 튀어나오면 한 번쯤은 고민해 볼 법한 말이 되는 것이다.

“균방전을 막아 내지 못했을 때, 이렇게 되는 건가?”

“···제대로 봤네.”

“예전부터 묘하게 현실적이라고 생각하긴 했다.”

크로스보우는 차분히 생각에 빠졌다.

그러고 보면,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균열방어전 광안대교맵.

만약 본인을 제외한 모두가 초능력자 비슷한 것이고, 본인만이 일반인의 스펙을 갖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생각.

말이 씨가 된다고는 하던데, 생각마저 씨가 될 줄은 몰랐는데.

“···믿을 만하군. 그런데 하나만 더 물어보지.”

그래도 아직, 하나의 의문은 남아있다.

“투기장. 오드맨을 비롯한 ‘자격의 방’. 그건 뭐지.”

“···.”

“부디 지금까지처럼 진실된 대답을 들려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이번엔 크로스보우가 빙긋, 웃어 보였다.

“······상관없겠지. 다른 것보다 네게 적대감을 사는 것보단 나을 테니까.”

고민하다가 반대편 의자에 풀썩 주저앉은 오리지날.

그는 아주 조심스러운 어투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

“···자격의 방은, 종말이 도래한 이후 각지에서 두각을 드러냈던 이들을 모아 놓은 곳이란다. 처음에는 그저 미리 안면을 터서 후에 협동하라는 뜻으로 만들었는데···오드맨이 끼어들며 뭔가 달라지기 시작했어. “

“올오버를 통해서 아무리 미리 실력을 쌓아도, 결국 다가올 종말 앞에선 무의미한 경우가 많았거든. 그 대부분의 이유가 ‘통각’ 탓이었지. 돌연 현실로 다가온 전투 등에서 느껴지는 격통. 그건 랭커라는 소리를 듣는 사람도 간단히 죽게 하는 꼴을 만들었어.”

“그래서 제임스···오드맨이 주장한 것은 미리 그것에 대한 대처를 익힐 수 있도록 하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지.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투기장이란다. 물론 그것이 비인간적이란 건 동의한단다. 그러나 설마 인간을 사육하는 식으로까지 진행되었을 줄은 지금까지 몰랐어. 알았다고 한들 막을 수도 없었겠지만···.”

거기까지 들었을 때, 크로스보우에게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이러니저러니해도 눈앞의 인간에게는 뭔가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

‘투기장’.

그곳에서 벌어진 일은, 웬만한 수준에도 멀쩡한 정신을 유지하는 크로스보우에게도 분노를 차오르게 하는 종류의 것이었다.

마치 인간이 개미를 통 안에 넣고, 다리를 하나씩 뜯으며 관찰이라도 하는 듯한 태도.

그것이 투기장을 관통하는 수준의 윤리의식이었다.

그런데 이 오리지날이란 인간은···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걸 알고는 있지만, 아무런 감정이 동하지는 않는 모양.

“막을 수 없다는 것은 무슨 뜻이지?”

“···날카로운 질문이네. 그런 건 그냥 좀 넘어가 줄 수 없었을까 싶은데.”

한숨을 쉰 오리지날은 그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올오버라는 게임은 앞서 말한 이유만으로 구성한 게임이 아니야. 여긴 일종의 대피처야. 내가 죽지 않는 한은 말이야.”

“대피처?”

“그래. 현실의 몸은 죽어 없어질지언정, 정신만은 남아서 게임 세상에 머무르게 되지. 물론, 내가 죽으면 올오버는 무너져 내리고 그들도 전부 죽겠지만.”

이건 즉, 가상현실이 현실을 대체하게 된다는 의미.

크로스보우는 잠시 아연해하다가 물었다.

“···너는 회귀하지 않던가. 그럼 지금껏 지나온 세상에선.”

“그래. ‘나’는 회귀하지. 다만.”

오리지날이라 불리는 자. 여자의 얼굴을 뒤집어 쓴 그는, 서글프게 미소 지었다.

“···회귀한 세상의 또 다른 ‘나’는 회귀하지 않아. 크로스보우.”

“또 다른 나?”

“응. 나에겐 기본적으로 ‘모방’의 재능이 있으니까. 내가 회귀하면 그녀석이 올오버를 유지하는 거란다.”

“···그 또 다른 너도 죽는다면?”

“그럴 일은 없어.”

오리지날은 담담히 말했다.

“종말이 온 순간 ‘또 다른 나’는 꽁꽁 얼려져서 지하 수백 미터 밑에 처박힐 운명이거든.”

그리곤 이렇게 덧붙였다.

“’오리지날’이라고 불리는 난 지금 그렇게 되어 있고 말이야. 일종의 배터리 교체 같은 거지.”

그래서 막을 수 없어.

“···.”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정적이 흘렀다.11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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