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종족 갈등 (4)“오늘, 우리는 드디어 차별에서 벗어나 권리를 되찾는다.”
도시의 어느 외곽.
여러 개의 뿔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자신들이 당연히 우월하다고 믿는 가증스러운 인간족 놈들. 차별에 맞서겠다며 정작 본인들은 마족차별의 선두에 서는 역겨운 이종족 놈들.”
엄숙한 분위기가 장내에 흐른다.
그들이 모여 있는 곳은, 아직 텅 비어 있는 건물들로만 가득한 장소.
여가 시설도, 스타디움도, 심지어 사람조차 찾아볼 수 없다. 가끔 커플들만이 야밤에 찾는 장소.
그곳에서 마족이 일어난다.
“목표는 아득하다. 숫자는 명백한 열세. 점수는 무려 트리플 스코어(세 배 차이).”
“···.”
홀로 높은 건물 위에 선 연설자.
그녀의 정체는 한때 크로스보우와 함께했던 실력파 스트리머, 짬먹을타임.
분명 캐릭터 제작 패치가 이뤄진 지 꽤 시일이 지났음에도,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은 거대한 망치였다.
새카만 그것이 불길하게 빛난다.
“실패할지도 모른다. 세상의 비웃음거리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마족. 그런 일에는 다들 익숙하지 않던가.”
“···그렇습니다.”
“···.”
모인 군중 속.
누군가 대답했다.
“실패하면 다시 시도한다. 넘어지면 일어나고, 죽으면 다시 풀다이브 해라!! 점수가 세 배 차이인 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 우리는 끝없이 도전하고, 또 꺾일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속사포처럼 쏟아진 말들.
저 멀리에서 축제의 소리가 들려오는 와중에, 명백히 귀에 꽂히는 그것은 생각보다 더한 엄숙함을 낳았다.
“우리가, 이길 것이다.”
“···”
“···이범배.”
“···풉.”
누군가 이상한 말을 했지만 상관없다.
짬탐은 저 멀리, 도시의 중심부를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모른 채 축제를 즐기고 있는 바보들. 그들은 오늘, 천대받던 마족이 간 칼에 의해 피를 쏟아낼 것이다.
그녀는 손을 들어 그곳을 가리켰다.
정확히는, 인간과 이종족의 진영이 갈라진 그 지점.
거대한 중앙 분수대를.
“모두 박살낸다.”
시커먼 기운이 전신에서 뿜어져나온다.
“···전쟁. 결코 다시 전쟁.”
호응은 무거웠다.
“···와칸다 포에버.”
“내 심장을, 아이어에!!!!”
“성전이다!! 이단놈들아!!”
“저녁은 지옥에서 먹는다.”
온갖 종류의 부정형 에너지가, 울컥울컥 장소를 메운다.
도시 내 적대 행위 금지가 해제된지 12시간하고도 3시간 후.
보너스 점수마냥 죽어나가기만 하던 마족 진영이 드디어, 반격의 칼을 빼들었다.
***
커뮤니티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수류탄인지 마력탄인지 알 수 없는 방법으로 건물을 폭파시키는 장면과 함께, 온 커뮤니티에 마왕의 등장이라는 제목이 퍼다날라지고 있었다.
크로스보우가 접속한지 단 1시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바로 접속 간다. 딱 기다리라고.”
“뭐야. 이게. 대도시에서 깽판친다고? 에이. 아무리 크로스보우라도 그건 불가능···응?”
“가상현실 1팀, 2팀 다 모여서 지금 당장 접속해. 현장 취재할 수 있는 일이잖아!!!”
“네, 넵!”
파란이 일었다.
올오버가 이제는 단순히 오락을 넘어 하나의 새로운 세상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증거일까. 크로스보우의 모습을 보기위해 사람들이 속속히 몰려들고 있었던 것.
그리고 그 시각.
크로스보우는 고심하고 있었다.
“너무 넓군.”
가상현실의 도시 뉴 올오버.
올오버가 처음 선보이는 오픈서버.
몇몇 사람들은 처음에 뉴 올오버에 대해, 그래 봤자 운동장 몇 개를 합쳐 놓은 수준이 아니겠냐 생각했었다.
특히 pc게임만을 접했던 세대.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게임 속 축제라 하면, 캐릭터 아바타가 마구 겹치고 온갖 버그와 렉으로 인해 서버가 툭하면 다운되었던 그 시절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것.
크로스보우도 이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기본적으로 집구석에 쳐박혀 있는 것이 일과 중 하나인 그에게, 올오버의 규모에 대해 직접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던 까닭.
“그리고···너무 많아.”
동시 접속자 수가 전세계적으로 무려 1억에 달한 적이 있다는 게임.
그중에서도 가장 활성도가 좋은 서버 중 하나, 한국 서버.
평일이라고 해도, 몇 십만쯤은 우습게 접속하는 게임인 것이다.
그런 수준의 인구 모두를 수용할 수 있는 것이 도시, 뉴 올오버.
서버 크기가 서울의 3분의 2 수준이었던 것이다.
“크로스보우!!! 아무리 너라도 이렇게 많은 숫자의 사람을 모두 죽일 수는 없을 거다!!”
“···흐음.”
크로스보우는 속속 몰려든 인간족 진영 유저들을 바라보며 침음성을 삼켰다.
거리는 두 진영으로 나뉘어 있었던 것이다.
한쪽은 다수, 그리고 한쪽은 단 한 명.
몇 백 명쯤은 되어 보이는 인파를 앞에 두고 있었던 것.
“확실히···이건 좀.”
그게 다가 아니다. 어디선가 슬금슬금 계속해서 합류하는 유저들.
“현재 뉴 올오버에 나와 있는 김대기 기자 연결해 보겠습니다.”
“엄청납니다! 수백 명의 인파를 앞에 두고 태연한 개인방송인 크로스보우의 모습을 확인하실 수가 있습니다.”
-ㅈ댔다
-ㄹㅇ일기당천 보여주는거임??
-아ㅋㅋ걍 범위스킬 다 꼴박하면 크보라도 죽겠는데?
뭔가, 주목도가 엄청나게 오르고 있는 기분. 크로스보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접속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거 같은데, 설마 이렇게까지 몰려나올줄은 몰랐단 것.
“뭐···좋습니다. 해 볼 때까진 해 봐야죠.”
그러나, 인파를 앞에 뒀다고 해서 긴장이라도 하는 성격이었다면 대회같은 건 나가지도 못했다.
크로스보우는 아무렇지 않게 품 속에 손을 넣었다.
그러자 동시에 움찔 반응하는 유저들.
“초, 총을 버려!!!!”
“스킬 발사해!! 발사하라고!!!”
“아군이 맞는다! 진정해!”
일촉즉발의 긴장.
지금이 기회다. 그저 사람이 모였을 뿐, 지휘체계가 아직 확립되기 전의 상황인 지금.
크로스보우는 품속에서 꺼낸 것을 바닥에 내리쳤다.
그러자.
푸슈슈슉!!!
“여, 연막?”
“이런 젠장. 먼저 쏩니다!!!”
“잡아!!! 놓친다!!!”
잔뜩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연기.
그에 맞춰 각종 스킬들이 마구 발사되기 시작한다.
각각의 스킬은 미비한 수준이라 하더라도, 그 숫자가 백에 달하면 상승작용을 일으키기 마련.
콰과과과광!!!
자욱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연막과 함께, 시야의 모든 것을 지워버리는 사이.
“···해, 해치웠나?”
“야. 그딴 말을 하면···!”
“도망갔겠지.”
그 순간이었다.
돌연, 연막을 뚫고 무언가 튀어나왔다.
커다란 두개의 뿔이었다.
“커, 헉···?!”
“당신은 10점. 아니, 1점인가요? 티어가 어디에요.”
“이런 미, 친···.”
당연히 도망갈 거라 생각했던 것과는 반대.
수많은 인파를 앞에 두고도, 크로스보우는 아무렇지 않게 전투라는 선택지를 골랐다.
“···끄아아악! 쏘지 마!! 아군이 맞는다!”
“근접 가능한 사람만 붙어!!!”
“아니. 그냥 범위 스킬로 날려버려!!!!”
대응은 언제나 그렇듯, 단출하다.
“소용 없습니다.”
실력자들 상대로는 타이밍을 재서 사용하던 기술, 스킬 되돌리기.
그것을 망설임 없이 선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어디에도 아군은 없었던 것.
아무데로나 스킬이 날아가도 상관없다.
“이건 못 쳐내겠지. 디버프, 탈진! 고통스러운 상처!”
“피해 보세요. 크보님!!!”
회심에 찬 외침들.
그러나
[SYSTEM]타겟팅이 불가능한 대상입니다!
[SYSTEM]해당 지점에 대상이 없습니다!
“그렇게 느려 터져서야.”
묘한 시스템 메시지만을 남기고 그곳에는 아무도 없다.
서로간의 크로스레인지에서, 크로스보우가 패배한 적은 지금까지 없음.
쳐내고,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해 낸다. 뒤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보지도 않고 잡아 비튼다.
“우와아악! 관절 돌아가욧!!!”
“어케 막았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올오버도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
[SYSTEM]트리키 뷰 전용 모듈 - 1인칭 보기 기능이 열렸습니다.
-오우쉐에에엣!!!
-올오버 일한다
-바로간다ㅋㅋ이건못참지ㅋㅋ루삥뽕
돌연 1인칭 보기 기능이 오픈되었다.
크로스보우가 4시즌 최고라고 불리는 스트리머인 것을 감안했을 때, 늦은 감이 있지만 아무튼.
다만 집중 상태에 빠진 크로스보우의 눈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연습 때엔 아무리 시도해도 되지 않던, 까만색 시야에 웃고 있을 뿐.
“크로스보우!!!! 여기에 내가 왔다!!!”
쉬지 않고 전투를 수행한지 대략 5분쯤.
슬슬 네임드급의 유저들도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때 문도 입에 수류탄 채웠죠? 이젠 다를 겁니다!!!”
“샷건 띱. 무자식아. 이번엔 킬딸 띱하러 왔다!!!”
낯이 익은 얼굴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던 것.
“···좋습니다.”
그는 땅속을 뚫고 발목을 잡으려고 드는 식물줄기를 꽈악 짓밟으며 중얼거렸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대답하는 와중에도 뒤에서 누군가 은신으로 덤벼들고 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저 멀리서 계속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다.
흘러들어가는 마나의 흐름으로 볼 때, 아마 거대한 폭발물을 소환하는 계열의 주문이겠지.
명백한 열세.
“···덤비시죠.”
상관 없다.
“이제 좀 재밌겠군요.”
감각이 확장되어 가고 있다.
카앙-!
그는 빙글, 몸을 돌려 떨어져내리던 화염구를 쳐냈다.
그리고 굉음.
콰아아아아앙──!!!
“──!!!”
크로스보우의 머리를 노리며 숨죽이고 있던 저격수. 그가 있던 건물이 단번에 박살난다.
“···.”
“···.”
“···괴물이긴 해.”
잠깐 벙쪄 버린 인파.
“안 오면 제가 갑니다?”
커뮤니티에선 우스갯소리로, 크로스보우를 죽이려면 대한민국의 모든 군대가 출동해야 한다고 하였다.
마왕을 상대하려면 용사들이 있어야 한다는 유머였다. 병사들의 호칭이 용사였던 탓.
즉, 우스갯소리로나마···크로스보우가 마왕이라 불리는 것을 다들 어느 정도 납득하고 있었다는 뜻.
“···미친놈.”
인정할 수밖에 없다.
···우스갯소리 따위를 마음 한 편으로 인정하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아까 전, 크로스보우를 죽일거라 엄포를 놓았던 유저는 가만히 침을 삼켰다.
***
그 시각, 겪었던 수모에 대한 보복을 위해 뭉친 마족 유저들.
연설 때는 아무말이나 지껄였었지만, 그들에게도 어느 정도의 작전은 존재했다.
“저긴가.”
“뭔가 소란스럽네요.”
먼저 인간 진영이 점령한 영토의, 가장 높은 건물.
5층으로 이뤄진 가게.
그곳을 점령하는 것.
게릴라전을 펼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를 먼저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콰아아아앙──!!!
도시 안쪽에서 들려오는 굉음.
“또 싸우나 보군.”
“지금이 적기입니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마족들.
그 말대로였다.
추정컨대 이종족과의 싸움으로 눈이 돌아가 있을 지금 시점.
시가전에서 꽤 중요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장소를 미리 먹어둔다면···계획달성에 큰 한발자국을 내딛는 것이니까.
“···가죠.”
“가즈아.”
“한 방에 가자!! 뚫어!!”
“무브무브!! 고고!!”
한 명의 중얼거림이 신호탄이 되었다.
제각기 함성을 지르며 건물에 돌진한 그들.
“이 정도 다가갔으면 이제 인식했을 겁니다! 실드류 스킬 준비!!”
“준비!!!”
“저격계열 유저님들. 준비되셨습니까?”
“원조 대기중.”
“돌진으로 한 번에 갑니다! 충격에 대비하세요!”
빠른 브리핑과 오더가 오고가는 긴박한 상황.
그러나 그런 긴박감은 잠시뿐이었다.
“···뭐야.”
“대응이 없는데요?”
진작에 난리가 났어야 할 상대 진영의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이다.
“···이상한데?”
“그러게요.”
분명 시가전에 있어 중요할 건물이지 않던가. 가드가 한두 명쯤은 있을 거라 생각했던 그들.
“···손님도 없습니다.”
“···무슨?”
그래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천천히 건물에 진입한 그들.
“···여기 뭘 마신 흔적이 있습니다.”
“뜨겁군. 방금까지 여기 있던거야.”
그러던 때였다.
───콰아아아아아앙!!!!
──끄아아악!!
이번엔 훨씬 더 가깝게, 들려오는 굉음.
그리고 비명소리.
드드드드─···
“뭐, 뭐야?!”
“무슨 일이야!”
당황스러운 일의 연속.
건물의 흔들림에 유저들이 비틀거린다.
“다, 다들 옥상으로 올라가!”
“상황 파악이 먼저입니다!”
말보다 빨리 움직인 이가 있었다.
그녀는 멍하니, 눈에 보이는 광경을 부정했다.
“···저게 뭐야.”
수많은 인원이, 단 한 명에게 죽어나가고 있었다.118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