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종족 갈등 (5)현장에 취재를 나와 있는 기자의 말로는, 추정컨대 400명 가량.
400명 대 1명.
전례없는 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미쳤네. 저 인간.”
“괴물이라니까요.”
그리고 그 시각.
조금 떨어진 장소의 건물에 모여 있는 인원들.
모두가 인간족의 모습은 아니었다.
개중에는 거대고양이로만 보이는 유저나, 단순하게는 동물귀를 달고 있는 유저까지.
그 인원이 대략 스무 명쯤 될까.
“후우. 가능할까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이게 맞아요.”
“인정한다냥~.”
“말투 진짜 극혐.”
그들의 정체는 바로, 대對 크로스보우 타격대였다.
태반이 고계급 스트리머로 이뤄진 인원들.
발 빠르게 그들을 모으게 한 것은 바로, 트리키 뷰 마당발로 유명한 김볼모와 커물쥐.
“근데···이렇게까지 해야 될까요?”
“해야 돼요. 크보 님이라면 진짜 무조건 마족 1등 만들 거임.”
“···불안하긴 하네.”
“실패해도 아이튜브 각이에요.”
“고건 인정.”
크로스보우 타격대.
그들의 목적은 하나였다.
스트리머 크로스보우를 죽여서, 치고 올라올지도 모를 마족 진영을 미리 밟아 주는 것.
이종족과 인간 진영 간의 진영 논리를 가속화시켰던 스트리머가 이번엔 마족 진영의 확실한 처리를 위해 작전을 세운 것이다.
“너무 과대망상 아니에요? 여기 뉴 올오버 크기가 얼만데. 고작 한 사람한테 진영점수가 뒤집힌다고? 좀 억지 같은데···.”
“결승전 20대1 승리는 억지 아니었고요? 이제 적응할 때 되지 않았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김볼모의 말에, 그 자리에 있던 대부분의 스트리머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모두가 네이션스 컵에서 크로스보우의 진면목을 조금이나마 엿봤던 이들.
크로스보우가 합류한 이상, 정말로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몰라.
그를 옆에서 봤던 이라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ㅋㅋㅋㅋㅋ
-졸-렬
-ㄹㅇ마왕잡으러가누?
-똥스트리머데수웅! 데챠아앗!
-연합 바로 결성되는거봐 아ㅋㅋ
-김볼모 행동력 ㄹㅇ실화냐고
시청자들의 반응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건 조금 아니지 않냐는 반응이 아주 조금 있었지만, 대부분이 이해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전설적인, 순간입니다. 어쩌면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하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보십시오!”
누군가의 방송에서 함께 틀어둔 지상파 뉴스방송. 그 소리.
현장 취재를 위해 나와 있는 기자가 마치, 게임해설자라도 된 것 같은 텐션으로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300명이 넘는 인원과 단 한 명. 그러나 한 치도 밀리지 않습니다. 대단합니다. 이게 정말 사람의 퍼포먼스일까요?”
“···어째 멘트가 저럼하네.”
“저는 이해합니다.”
저걸 보면, 저 정도 체면을 유지하는 것도 대단할 정도니까.
“양민학살이네요. 진짜.”
저 멀리 마구 폭발하는 이벤트.
[마족 진영 : 86,451점.]
동시에 폭발적으로 올라가고 있는 마족 진영의 점수.
“······갑시다.”
“해 보자고.”
“안 믿고 있다고. 줴엔장.”
***
크로스보우의 퍼포먼스는 끝이 없었다.
모든 기반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는 캐릭터, ‘크로스보우’.
싸우는 내내 그것들을 몸 주변에 순환시키는 것만으로, 타겟팅 디버프 스킬을 모두 차단한다.
말도 안 되는 수준의 테크닉.
그뿐만이 아니다.
보이는 것, 느껴지는 스킬은 전부 쳐내고 근접공격은 교묘하게 흘려내거나 역이용하는 모습.
간간히 시야에서 사라졌다가···멀리에 나타나 상대를 단칼에 죽이는 모습까지.
“···저게 뭐야.”
그야말로 전투의 신, 그 자체.
게다가 어느덧 엄청나게 쌓인 킬수에 따라 스펙까지 전례없이 오른 상태에 도달하고 말았다.
[최상급 마기의 탄환]
[관통력이 대폭 증가합니다.]
[실드에 가하는 대미지가 대폭 보정됩니다.]
[최상급 오러의 탄환]
[탄속이 대폭 증가합니다.]
[반동이 대폭 증가하는 대신 발사 궤적에 따라 강력한 플라즈마가 생성됩니다.]
이쪽이 우월한 스펙을 가지고 있었을 때도···이기는 것은 까마득했던 상황. 그런데 이제는 동등한 수준의 스펙까지 내주고 말았다.
크로스보우에게 이제, 다대일 전투는 사실상 단순 반복이나 마찬가지인 상황.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상당히 많은 숫자의 유저가 모여 있는 만큼, 저계급 유저들의 비율이 상당히 높았던 탓.
그런 유저들이, 함께 공격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봤을 리가 없다.
공격 경로에 돌연 아군이 몸을 끼워 넣거나 상성이 좋지 않은 스킬이 함께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젠장. 비켜!!”
“응? 끄에에엑!! 왜 나한테 쏴요!!”
“앞을 막지 말라고!”
짜증에 차오른 인간 진영 유저들끼리의 신경질이 오고 간 것도 잠시.
어느새 인파가 슬금슬금 물러나고 있다.
“이게 전부인가요?”
“···.”
압도당했다.
몇 백 명이 단 한 사람에게.
쓰러뜨릴 수 없다.
이는 전투가 지속되면 될수록,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느낀 사실.
“···.”
“···말도 안돼.”
“괴물.”
“왜 그러십니까. 다들.”
“···젠장.”
이대로는 안돼. 그 자리에 있던 몇 안 되는 고계급 유저의 중얼거림.
일전에 크로스보우에게 샷건으로 사망했던 유저다.
“누가 커뮤니티에 글 좀 올···.”
“다이아 계급 이하는 다 빠져요!! 킬만 주고 말겁니다!!”
그때 그렇게 외치는 또다른 고계급의 유저.
분명 맞는 말이었지만, 그래 봤자 의미는 없다.
대충 모아 놓은 인원들로는 이길 수 없다.
“···똑같아.”
그는 다시 한번 중얼거렸다.
저 괴물을 쓰러뜨리려면 최소한 최고계급 수준의 실력자들만 끌어모아서···일종의 타격대를 만들어야 한다.
“······젠장.”
···사실, 그런다고 해도 결과는 미지수다.
크로스보우. 아무렇게나 지은 느낌의···적당한 이름을 갖고 있는 스트리머.
고작 좋은 캐릭터를 잡았다는 이유로 우승권 프로게이머들과의 20대1에서 승리한 전적이 있는 유저.
격이 다른 괴물이다.
마족 코스튬을 하고 있길래 내심 얕봐 버렸던 모양.
“끝입니까?”
철컥.
유저들의 고심도 모른 채, 크로스보우는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새로 탄을 갈았다.
“안 오시면 제가···응?”
그때였다.
돌연 뒷쪽을 바라본 크로스보우.
또 저격을 하려던 누군가 위치를 들킨 건가. 지켜보던 사람들에게 그런 생각이 든 것도 잠시.
“오호라.”
괴물이 히죽, 웃었다.
“···뭐, 좋습니다. 그런 일도 가능하겠죠.”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기 시작한다.
온갖 스킬들에 의해 파괴된 도시를 배경삼아, 그가 훌쩍 도약했다.
“딱 기다리세요.”
***
크로스보우 타격대.
그런 이름으로 모인 스트리머들이, 크로스보우를 죽이려는 방법은 다른 게 아니었다.
한 사람에게 쏟아붓는 것치곤 과도할만큼의 원거리 스킬을 때려넣는 것.
그런 와중에 아군이 조금 죽을 수도 있었지만···크로스보우를 죽일 수 있다면 충분히 해 볼 만한 짓이라 여겼던 것이다.
“이레이져 준비 완료---.”
“천인살 준비됐습니다.”
“정조준 일격 준비 끝.”
“친구가 되는 마력포 준비 완료요.”
“그건 뭡니까.”
다만 모든 것이 계획한 대로만 흘러갈수는 없었다.
“어? 잠깐만. 뭔가 이상한데요?”
“···응?”
분명 저 멀리 싸우고 있었던 크로스보우의 모습이 돌연 사라진 것이다.
-“어, 어디로 간 걸까요? 유유히 현장을 떠나 버립니다!”
틀어둔 중계도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뭐야. 갑자기?”
“다 죽일 것처럼 굴더니.”
어리둥절한 스트리머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다들, 생각에 빠진 것.
“자, 잠깐만. 설마.”
“···설마.”
그 잠깐 사이에 내린 결론이 대부분 똑같았던 것일까. 김볼모를 필두로 한 스트리머들의 얼굴이 하얗게 변한다.
“왜, 왜들 그래요. 불안하게. 스킬 캔슬하고 다시 작전 짜면 되잖아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허공에 흩으지는 의문.
그렇게 숨 막히는 찰나가 지나고, 누군가 입을 열었다.
골똘히 생각하던 스트리머-커물쥐였다.
“···들켰다?”
“정답.”
문득, 귓가에 속삭여지는 목소리.
“““------!!!!!”””
그리고 다음 순간.
동료의 가슴에서 칼이 자라났다.
“억···?”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았다.
너무나도 빠른 찌르기.
어느 새 후방을 잡은 크로스보우는 씨익, 웃으며 칼날을 빼냈다.
[SYSTEM]당신의 공격으로 명탐정도도 님이 사망하였습니다.
[SYSTEM]마족 진영에 300점 추가!
“와. 300점이나 주시네.”
생각보다 후한 점수에 기분이 살짝 좋아졌던 것이다.
“그랜드 마스터 계급이셨죠? 고계급 잡는 게 훨씬 낫네요. 감사합니다. 역시 챙겨 주는 건 직장동료밖에 없다니까.”
“···크보 님.”
“네?”
기껏 짠 작전, 충동질해 모은 스트리머들. 그리고 그걸 간단히 무너뜨리려 드는 크로스보우.
비웃음거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김볼모는 그런 생각에 덜덜 떠는 와중에도 입을 열어 말했다.
“당하지만은 않습니다!!! 이건 이미 예견된 상황 중 하나니까!!! 다들 대응해요!!!”
우웅-.
차징이 완료되었던 스킬들이, 크로스보우를 향해 그 사출구를 튼다.
대낮임에도 그 밝기가 눈이 부시다.
“얼마든지 오세요.”
다만, 크로스보우에게 있어선 그리 놀라울 것도 아니라는 걸까.
그는 시커멓게 물들어 버린 시야 속에서 선언했다.
“내 소중한 점수님들. 달달하게 빨아야지. 쿠쿠루삥뽕.”
-ㅋㅋㅋㅋㅋ
-ㅋㅋㅋ진짜ㅋㅋ
-이거 역전시키냐? 이거 역전시키냐? 이거 역전시키냐?
[현재 시청자 수 : 201,823명.]
지상파 방송의 힘일까.
시청자 수가 20만 명을 넘었다.
크로스보우는 철컥, 총을 들어 올렸다.
그런데 그 총의 모양새가 평소와는 다르다.
[‘연속으로쏘는남자’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크보님 근데 그거 뭐에요?
때마침 들어온 후원.
크로스보우는 잠시 생각하다가 아무렇게나 대답했다.
“아아. 이건···M249···음. 아무튼 따발총입니다. 벌집을 만들 때 쓰는 무기죠.”
-와! 그렇구나!
-ㅋㅋㅋㅋㅋ
“죽어어어어어어!!!!”
“여기가 님 무덤입니다. 크보님!!!”
“주거라아앗!”
“안 죽어.”
[최상급 마기의 탄환]
[최상급 마나의 탄환]
[최상급 정수의 탄환]
.
.
.
지금껏 전투를 하며 업그레이드 시켜 만들어둔 탄환이, 초당 수백 발의 속도로 쏘아졌다.
***
그 시각, 짬탐과 함께 모인 마족 유저들.
“빨리 가요. 빨리. 크보 님 혼자 싸우고 있다구요!”
“···필요한 인원은 여기에 남죠. 텔레포트 스킬 있는 사람 있지 않아요?”
“오케이. 그런 느낌으로 가요.”
그들은 우선 아무도 없는 건물에 필요한 인원만 남고 저 멀리 보였던 전투에 합류하기로 했다.
옥상에서 봤던 싸움. 그게 크로스보우와 인간 진영의 유저들 사이에 벌어진 격전이라는 것을 깨닫고 난 후 내려진 결정이었다.
“마왕님께서 돌아오셨다. 나 혼자 여기 겁쟁이처럼 남으라고?”
“아니. 컨셉질 그만하시고···.”
“닥쳐라. 명예도 모르는 자 같으니!”
“···.”
너도 나도 전투에 합류하겠다고 우겨대서 문제가 잠시 생겼지만, 어쩔 수 없었다.
기껏 무혈로 얻은 건물을 포기할 수는 없던 노릇.
“···저긴가요.”
“끝났나···?”
“무슨 일이야.”
그렇게 아까 봤던 전투 장소로 빠르게 순간이동한 이들.
그러나 신기루라도 본 걸까.
“···뭐야.”
크로스보우가 없다.
격렬한 전투의 흔적만이 남아 있었다. 충격받은 듯한 얼굴의 유저들 몇몇만이 그들을 반겨 주는 상황.
“저, 저쪽에서 소리가 납니다!”
“···바로 가 보죠. 지금은 일단 합류가 먼저입니다.”
허탈하게 그들을 보던 것도 잠시.
마족 진영의 유저들은 빠르게 태세를 추스리곤 다른 건물로 향했다.
“시청자님들. 뭐 제보같은 거 없어요? 왜 다들 가만히 있어.”
-;;;가보면 알아요
-다 구경하느라 방 나올 기색이 없음
-사람 미어터져서 렉 엄청 걸리던데
-대충 말해보면 스트리머들이 연합해서 크보 다굴하는중
-다굴···?그게 다굴이 맞누ㅋㅋㅋ
“뭐?! 다굴이요?!”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크로스보우가 싸우고 있다는 건물.
“···아무도 없는데?”
“조용하네요.”
건물이 반파되어 있다.
그리고 잠시 후 얼굴을 빼꼼 내미는 누군가.
“아. 짬탐 님?”
크로스보우였다.
“무슨 일이십니까. 다들.”
“무, 무슨 일이라뇨! 크로스보우 님. 괜찮으세요? 분명 연합한 스트리머들한테···!”
“응···? 아. 스트리머요.”
그는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대답했다.
“저거 얘기하는 건가.”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본 유저들.
“···허억···!”
“저, 저게···?”
벌집이 된 시체.
누구도 숨을 쉬고 있지 않았다.
“···뭐, 뭣.”
띠리리리-!
[마족 진영 점수 : 93,412점]
“오. 이제야 오르네.”
멀리, 전광판 소리.
분명, 눈앞의 남자가 접속한지는 이제 고작 2시간쯤 지났을텐데.
“···만 점?”
단 한 사람의 손으로, 게임 판도가 달라지려 하고 있었다.
도무지 이해하기가 힘든 상황.
인간은 가끔 너무나도 상식과 어긋나는 사건에 마주하면 말을 잃곤 한다.
감탄을 넘어서, 경외.
“전 이만. 바빠서.”
“······.”
-ㅋㅋㅋㅋ···
-무냐고···진짜···.
채팅창이건 스트리머들이건, 항거할 수 없는 정적을 지켰다.119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