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가상현실의 아이콘 (1)아이가 화면을 바라보고 있다.
보이는 것은 파괴되어 가는 뉴 올오버의 정경.
연기가 치솟고, 건물의 파편이 하늘을 난다.
온갖 스킬들의 향연으로 도시는 확실하게 파괴되어 가고 있다.
“…이게 네 대답인 거지? 크로스보우.”
그 모습에 대한 오리지날의 평가.
아이는 홀로 중얼거렸다.
현실의 몸을 벗고, 아이에게 남은 것은 오로지 스스로 만든 세계뿐.
“적으로 돌아선다면, 크로스보우. 너는 가장 먼저 제거되어야 한다.”
“…모르겠어.”
“네 진의는 뭐지?”
공허한 중얼거림만이 허공에 남는다.
이젠, 도무지 어떤 선택이 옳은지 알 수가 없다. 다른 인간의 의도마저 읽기가 힘들어졌다.
“….”
오리지날이 생각하기에, 수많은 회귀가 인간을 완전하게 만든다는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물론, 한두 번의 회귀라면 다를지도 모른다. 지난 인생에서 했던 실수를 바로잡고 좀 더 올바른 길로 나아가는 것이 가능하게 될 테니까.
실제로 오리지날에게도 그랬던 나날이 존재했다.
다만 이건, 경우가 다르다.
종말을 막는 것.
말도 안되는 목표에 계속해서 도전해야하는 매번의 삶.
끝없이 쌓이는 기억들. 좌절.
매번 겪지만 매번 피눈물을 삼켜야 하는 동료들의 죽음.
…그리고, 다시 처음부터 쌓아올려야 하는 관계. 소중한 인간의 기억에서 사라져 버리고, 적의를 사 버리는 수많은 경험.
어쩌면 오리지날이 몸을 벗고 가상 공간에만 존재하기로 결심한 이유.
“…또 이러네.”
십만번을 넘는 회귀의 기억은 때때로 마구 범람한다. 기억이 뒤섞이고, 자신이 가진 게 누구의 감정인지마저 헷갈리도록 만든다.
오로지 종말에 대한 생각에만 매몰되고 만다.
아무리 오리지날이라 하여도, 정신의 베이스는 인간.
비록 호르몬 따위에 오락가락 하는 육체는 벗었을지언정 길고 긴 세월에는 어찌 할 바가 없었다.
범람한 기억들과 감정들이 이리저리 요동치다가, 종래에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무.
다시 한번 마모되어 간다.
모든 것이.
이제는, 스스로가 인간이 아닌 무언가로만 느껴진다.
스스로에게 존재하는 것은 그저 종말을 막는다는 목적의식뿐.
“피난처가 될지도 모르는 뉴 올오버를 박살낸다는 건…협력하지 않겠다는 소리지? 아니면 올오버 같은 건 필요없다는 소릴까?”
뭐가 되었든 기록해 놓는 편이 옳겠지.
오리지날은 조용히 시스템을 호출했다.
“오늘을 기록하겠다. 기록 열람.”
[system]기록을 저장하시겠습니까?
“…10월 기록. 찾아냈던 희망, 크로스보우는 어쩌면….”
어쩌면 헛된 기대였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적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말하려던 때였다.
-“거리, 1790미터. 저분 100점짜리 맞죠? 총알배송 가요~!”
화면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분위기 있어 보이는 외견과는 다른, 조금 얄미운 투.
크로스보우다.
“…그냥 생각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20XX년 10월]
[찾아냈던 희망, 크로스보우는 어쩌면 그냥 생각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system]기록하시겠습니까?
“…아니. 기록하지 않겠다.”
초장거리 저격에 성공하고는 이상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크로스보우.
“미쳤나 봐. 진짜.”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요즈음 크로스보우를 관측하고 나서는 잊었던 감정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 같다.
적이 될 거 같다는 불안일까.
드디어 끝날지도 모르겠다는 심정에서 온 기대일까.
뭔지는 몰라도, 그를 보고 있으면 무뎌져 버린 감정이 오락가락 움직이고 만다.
“제발. 크로스보우. 부탁할게.”
오리지날은 손을 꼭 마주쥐었다.
본인은 아니라고 주장하겠지만, 이미 크로스보우의 시청자 중 한 명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태도.
그는 홀로 계속해서 방송을 지켜보았다.
***
다음날.
언제나 그렇듯, 커뮤니티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정확히는 커뮤니티뿐만이 아니었다.
야심차게 준비한-이미 성공이 검증된-올오버의 이번 이벤트.
그 거대한 스케일만큼, 참여하는 국민이 거의 전체의 절반에 미칠 정도.
젊은 층의 참여는 거의 모두라고 할 만큼 나라를 관통하는 이슈였던 것이다.
“김 대리. 그거 봤어? 이게 말이 되냐고.”
“크로스보우 말하시는 거죠? 봤죠. 당연히. 와. 진짜 무슨 여포인 줄 알았습니다.”
“아니. 이게 한 명한테 당하는 게 맞아? 이거 지켜볼 수가 없어. 나도 접속해야지. 그나저나…김 대리. 진영이 어디랬지?”
“저 이종족입니다.”
“크, 크흠…나도라네. 이봐. 오늘 회식 캡슐방에서 하는 건 어떻겠나? 나은 사원이 싫어하는 거 아니겠지?”
“오오. 아뇨. 아마 엄청 좋아할걸요? 맨날 하는 것 같던데요.”
“…그래? 좋아. 좋구만. 그럼….”
“나은 씨 근데 인간족일걸요.”
“뭐! 이 가증스러운 인간족이 우리 팀에 있었단 말이야!!”
윗세대도 게임에 익숙한 세대로 교체된지도 한참.
그 이유 때문일까. 사회적인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대학교 동아리 같은 곳에서, 한창 전투를 벌이고 있는 뉴 올오버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이요, 심지어 딱딱함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기업의 동호회에서마저 참가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샤대 가상현실 동아리! 다들 이리로 모이세요~!”
“한국대 게임동아리! 스탠바이. 우리 목표는 기스라도 내는 것!!!”
“타도 크로스보우! 가자!”
“크로스보우 따먹고 싶다!!”
오픈 서버의 위엄이라고 할까.
풀다이브하는 유저의 숫자가 끊이질 않는다.
[크로스보우! 찢었다!]
[아직도 전투 중! 막을 수 있으면 막아 봐!]
[국민 게임영웅 크로스보우의 새로운 행보]
온갖 인터넷 언론을 넘어, 심지어 방송까지 타며 그 현상이 가속화.
크로스보우라는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던 당시가 고작해야 몇 개월 전일 텐데, 이제는 무려 올오버의 아이콘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왜 이리 귀가 가려워.”
-그럴만도 하지
-슈퍼스타on
-논란도 딱히 없고…방송도 여기저기 나오고…잡지 모델도 하고…
-뉴스도 나옴ㅋㅋ
-나작크 어디ㅠㅠㅠ
그리고 시간이 좀 더 흐르고 올오버.
크로스보우는 괜시리 간지러운 귀를 후비며 말했다.
주변에는 온통 시체뿐. 분명 시가전으로 전투를 시작했었는데, 그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반경 몇 백 미터는 온통 박살난 건물의 잔해만이 존재했다.
“이 정도면 오늘도 슬슬 끝이군요.”
-한국대!!!!니들 동아리에 그마 있다메!!!
-엘리트 출신 오성전자 동호회도…안되는건가…
-엘리트(였던것)
-큿소!!아이츠!!
-우리 대학 애들도 모아서 덤벼볼까ㅋㅋ재밋겟당
-님네 대학은 모여도 이슈 안됨
-ㅇㅎ 그럼 걍 다른 거나 해야지ㅋㅋ
진영 간 경쟁에 참여한 지 이틀째. 크로스보우에게 상처를 한번 입혀 보겠다며 모인 이들도 모두 퇴치 완료.
“더 없나.”
정오 무렵에 접속했는데, 이젠 저녁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점수 정산은 다음과 같았다.
[1. 인간족 진영 점수 : 559,192점]
[2. 이종족 진영 점수 : 540,912점]
[3. 마족 진영 점수 : 431,514점]
점수 차이 자체는 많이 줄였지만, 다른 진영 역시 놀기만 했던 것은 아니라는 걸까.
상당히 높아진 점수들.
“…이 정도면 선방하고 있긴 하네요.”
크로스보우의 중얼거림.
다만 확실한 역전에는 아직 한참 모자라다.
아무리 혼자서 수많은 플레이어를 죽여 봤자, 다른 곳에서 왕창 점수를 얻어 버리는 것에는 손쓸 방도가 존재치 않았던 것.
“자잘한 분들 말고 고계급만 모여서 한번 싸우러 와 주면 좋겠는데.”
브실골로 대표되는 아래계급은 아무리 많이 죽여 봤자 고작해야 1점, 혹은 10점.
역전하려면, 결국 점수를 많이 주는 고계급 유저를 죽여야 한다.
어찌보면 고계급들이 연합해서 덤벼도 이길 수 있다는 오만한 반응.
그러나 채팅창의 누구도 그 말에 대해 의아함을 느끼는 이는 존재치 않았다.
-ㅋㅋㅋ응~못이겨~
-아무리 크보라도 혼자서 역전은 힘들지ㅋㅋㅋ
-ㄹㅇㅋㅋ~ㄹㅇㅋㅋ~
-꼬우면…아시죠?
-다 꺼져!!! 니들 다 나가!!!!!
“하하. 귀여운 사람들.”
이미 고계급 스트리머 연합이 처참하게 깨지고 난 뒤였던 것이다.
그저 마족이 이길 수는 없다는 말로 이를 악물고 놀릴려는 채팅들.
아마 저들 모두가 그에게 한 번씩 죽은 타 진영의 유저겠지.
시청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버린 이상, 어쩔 수 없었다.
카앙-!!
“어이구. 참.”
크로스보우는 검을 들어 허공을 쳐냈다.
타앙---!
그리고 뒤늦게 울리는 충성.
“탄속이 초속 1650미터 쯤. 이 정도 소리 오차면…저쯤이군요.”
어디선가 날아온 총탄을 아무렇지 않게 쳐낸 것이었다.
순식간에 위치 특정을 마친 크로스보우.
그러나 스코프를 들여다봐도 아무도 없는 모습.
“…또 방플.”
그랬다.
아까부터 이런 일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와의 정면 승부로는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걸까. 절대로 직접 와서 싸워 주지는 않고, 방송을 확인하면서 이따금 저격을 날린다.
그마저도 몇 번 역으로 당하더니…이젠 모기가 알짱이는 것마냥 쏘아내고 엄폐해 버리고 있었다.
거리가 아무리 멀던 간에 그랬다.
“짜증나는군.”
점수는 못 올리고, 귀찮게만 하는 짓.
“…숨어 봤자 소용없습니다.”
지금까진 무시해 왔지만, 이런 식이면 넘어가 줄 수가 없다.
본보기로 삼아 주마.
크로스보우는, 최상급을 넘어 특급에 다다라 버린 폭발하는 총알을 발사하곤 몸을 돌렸다.
퍼어어엉---!!!
저 멀리 폭발하는 이펙트와 함께, 자그마한 점수가 추가되는 모습.
-아…방플 좀 하지말지
-와난각
-ㄹㅇㅋㅋ점수에 목 맨 과몰입충들 때문에 방송 노잼됨
-다 도망만 다니누
-저게 맞지 뭐래
그는 빙긋 웃어 보이며, 폭발을 배경삼아 말했다.
“방플이 너무 많군요.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크바
-크바
-크바….
-역전 포기한 거냐고!!!
“글쎄요. 아무튼 다들 바이-.”
[스트리머 ‘크로스보우’님의 방송이 종료되었습니다.]
***
“오빠? 괜찮아?”
“…흐흐. 이 자식들이.”
조금 이른 방종 시간이었던 탓일까.
평소와는 달리, 아직 크로스보우의 방에 있는 신예지.
“괘, 괜찮아?”
“괜찮고 말고. 방플 정도로 뭘.”
흔히 방송 시청자들끼리 밈으론, 하이드 모드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분노 상태.
대답하는 걸로 보아 그 정도는 아닌 듯 보였지만….
“…마지막에 시청자 30만 명 찍었던데. 조금 아쉽….”
“그래서야.”
“으, 응?”
다만 화가 났다기보단, 누군가를 엿먹일 때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똥침이라도 날릴려고 하는 초등학생의 얼굴이었다. 가끔 장난을 칠 때 보곤 했던 것.
“예지야. 방송인에겐 아주 강력한 무기가 있다는 거 알아?”
“…드디어 미친 거야? 오빠. 나 생이별한 과부 만들려는 셈이야?”
“닥쳐.”
크로스보우는 빙긋, 웃었다.
“몰랭…아니, 몰오버로 간다.”
몰래 온 손님이 뭔지 보여 주마.
크로스보우는 다시 캡슐에 누워 버렸다.
“…오빠? 오빠.”
당황한 신예지의 부름에도 묵묵부답.
이미 다시 풀다이브를 해 버린 것이다.
띠링!
그때 스마트폰에 울리는 알림.
커뮤니티의 게시글 중, 크로스보우라는 단어가 포함되면 자동으로 울리게끔 해 놓은 알람이다.
“…어…음.”
[속보! 크로스보우 방송 종료! 마왕 휴식타임!!]
[점수 피버타임이다!! 가즈아아아!!!]
[마족 놈들 다 죽여!!!!!!]
[내일이 종료다 두배까지는 벌려놓자]
[인간족놈들 발등에 불떨어진거보소ㅋㅋㅋ]
[응~ 니들도 다 죽었어~]
“대단한 건가….”
이건 어찌보면 노림수가 잘 통한 거라고 할까.
“…제정신 아닌 거 같아. 다들.”
그냥 게임 내 점수 같은 거 아닌가?
신예지는 알 수 없는 열정의 틈바구니에서 고개를 갸웃거렸다.120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