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마왕 토벌전 (2)***
인생은 시작선이 제각기 다른 마라톤 같은 것이다.
그것이 부모든, 외모든, 태생적으로 갖고 태어나는 재능이든…시작선이 다른 것은 모두 같다.
프로게이머 얼론은, 자신이 그것들 중 어떤 것도 갖고 태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1년이 어쩌면 천재의 한 달.
그걸 넘어서 단순한 1보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걸 똑똑히 자각하고 있다.
그렇기에 남들보다 몇 배는 더 노력해야 한다. 죽고 싶을 만큼 힘들어도 참는다. 그저 반복, 그걸 될 때까지.
그렇게 쌓아가다 보면 어느새, 저 앞에만 보이던 이를 따라잡는 희열의 순간에 도달한다.
그는 그 순간을 사랑했다.
느릴지언정 적어도 벽에 막하진 않는다. 천천히 나아가는 것이 얼론 자신이 평가하는 스스로의 장점.
그런 확신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얼론Alone이란 닉네임.
모두가 잠에 들 때 홀로 남아 연습하는 이.
어느새 그는 유명 프로팀의 주전이 되었다. 블래드에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선수라는 수식어까지 갖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크로스보우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크로스보우.”
올 한 해 동안 대체 얼마나 많이 불렸던 이름일까.
알 수 없다.
그는 처음으로 적으로 마주한 남자, 미친 듯한 재능덩어리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넘을 수 없다.
생애 처음 마주한 벽.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신이 저 수준을 뛰어넘을 경우의 수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깨달으면 자신은 쓰러져 있었다.
털썩, 하는 소리가 그걸 적나라하게 자각시킨다.
……노력은 대부분의 재능을 뛰어넘을 수 있다. 그건 얼론이 지금까지 분명하게 느껴왔던 사실.
그런데 가끔은,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재능 차이라는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여기까진가.
“…강하군. 너무나도.”
그런데 그때였다.
“글쎄요. 얼론 씨. 그나저나 대단하군요.”
그런 말이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보면 태평한 미소.
“…무슨 말이지.”
네이션스 컵에선 몇 번이나 저 표정에 안심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새 실력이 많이 느셨어요. 나쁜 버릇도 전부 사라졌고…몸에 붙은 버릇이라는 게 고친다고 고쳐지는 게 아닐텐데요.”
한때는 자신으로 하여금 좌절에 빠지도록 만들었던 괴물.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생각만 하도록 만든 이.
크로스보우가 검을 털었다.
그 팔에 희미한 자상이 새겨져 있었다.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다음 시즌이 기대되네요.”
무슨 말이 들린 것 같았다.
그러나 얼론 선수의 시선은 오직 크로스보우의 상처에만 가 있는 상태.
그는 믿기지 않는 심정으로 물었다.
“…방금 공격, 닿았나?”
“닿았습니다. 분명히.”
“…그렇군.”
데미지를 입는 일이 거의 없던 괴물, 크로스보우.
얼론에겐 알 도리가 없었지만…지금껏 서로 간의 사정거리 내에서 그에게 상처를 입힌 상대라고 해 봤자 블래드나 오드맨 정도.
여기에 굳이 더한다면 더원그 시스템 속에서의 채은아 정도가 끝이었던 것이다.
비록 다대일이라는 상황 속이지만…조금 과장하자면, 그가 세계 최정상급 실력자들과 시작선에 드디어 어깨를 나란히 했다고 봐도 좋을 정도.
“…그래. 그런가. 하하.”
닿은 건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래도 발전하고 있었던 것인가.
후련해진 기분.
막혔던 무언가가 뚫린 감각.
얼론이 웃으며 말했다.
“인정하지. 크로스보우. 너는 명백히…현재 올오버 최강자다.”
“새삼스레 인정 받으니 기분은 좋네요.”
“…그렇지만 안심하지 말라고. 언제든 쫓아가 줄 테니까.”
그 선언에, 크로스보우는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듣던 중 반가운….”
“…주변을 봐라.”
어느새 고개를 떨어뜨린 얼론.
“주변?…로그아웃 당했나.”
지금 그를 마지막으로, 근접전을 담당하던 4명의 플레이어가 모두 죽었다.
-지금 1인칭보기인 사람? 방금 뭐였는지 봄?
-몬가…몬가 일어나고 있음…
-그냥 슈슈슉 하니까 투두둑함ㅋㅋㅋ^^ㅣ벌ㅋㅋ
-크보는 커녕 상대 움직임도 모르겠더라 난
전투양상은 간단했다.
이쪽의 인지 속도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방법을 택했던 유저는 제 속도를 못 이기고 크로스보우의 단검에 돌진해 사망.
마치 사슬낫과 닮은 무기를 사용하던 유저는 역으로 크로스보우의 무기이해도가 앞서 버린 탓에, 제 사슬에 당해 사망.
“우오오오!! 문도였던 때의 한을 갚아 주…우업?!”
“이거 함 무봐라. 지긴다.”
-ㅋㅋㅋㅋ
-ㅋㅋㅋ
전위에서 탱커를 담당하던 유저는, 이번에도 교묘히 농락만 당하다가 입안에 수류탄이 가득 머금어져 사망해 버렸다.
그나마 분전을 한 것이 얼론 선수였다. 단검 두 자루로 쉴 새 없는 공격일변도 스타일. 후방의 서포터들이 지원하는 버프기와 실드 덕에 조금 곤란한 상황에 처했던 것이다.
다만, 상처를 입는 걸 각오한 크로스보우에게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아니;;’님이 1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님 대체 뭐임?
“가상현실에서는 결국 인지가 앞서면 이길 수밖에 없습니다. 대응책이 없을 수가 없으니까요.”
그리하여 48인이었던 연합이 어느덧 4명이나 줄어 버렸다. 프로게이머가 한 명 포함되었던 근접조였던만큼 그 타격은 상당할 수밖에 없을 터.
죽어! 같은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그나저나 주변을 보란 소리…그렇군요.”
──드드드드….
건물이 무너져내리려 하고 있었다.
첫 격돌, 크로스보우의 퍼포먼스를 본 이들이 모두 주변 건물로 이동하여 포격을 쏘아대고 있던 탓.
그뿐만이 아니다.
어느덧, 심상치 않은 흐름이 그를 둘러싼 온 사방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시간이 끌리긴 했네요.”
우우우우웅──.
대기가 떨린다. 소리로는 제대로 인지할 수 없지만, 가슴께를 통해 느껴지는 위압감.
이런 뜻이었군. 크로스보우가 얼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순간.
그 순간이었다.
“됐다───모든 인원 올 스탠바이! 차징 스킬준비 완료!”
“일제히 격발!!!”
“격발!!!”
“얼론 님이 벌어 준 시간!! 뒤져라아아앗! 크로스보우!!!”
“건물째 무너뜨려 버려!!”
희미하던 상대의 오더가 또렷이 들려왔다.
어느새 수많은 스킬들이 어두운 밤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그에 마주하는 이는 단 한 명.
“죽기는. 어림도 없지.”
-가슴이 웅장해진다…
-진짜무냐고ㅋㅋ이게 말이 되냐?
-정신나갈거같애!정신나갈거같애!
수많은 외부자극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크로스보우는 천천히, 눈을 가늘게 뜨며 생각했다.
‘…쳐내기엔 무리. 광범위한 포격이 너무 많다. 어중간한 길이의 무기로는 제대로 쳐낼 수 없어.’
의식이 다시 한번, 가속한다.
마치 사진을 찍듯 하늘을 나는 모든 스킬을 인지하는 모습.
쿵.
발을 굴렀다.
마치 수면에 물방울이 떨어지듯, 감각을 넓힌다.
‘…인지 범위를 조금 더, 더 넓게. 액체처럼 흐르게 하는게 아니야. 평면으로 확장시킨다.’
가능해.
모든 에너지를 사용가능한 캐릭터, ‘크로스보우’라면.
지금껏 겪어온 것들이 있다.
홀로 생각하고, 홀로 느껴 왔던 것들이.
예를 들면 마나는 오러와 섞이지 않지만 밀어내지 않는다. 강제로 섞으려 할 때만 반발현상을 일으킨다.
그러나 기력과 마나는 다르다. 이들은 평소엔 가만 있다가도, 일정 이상 활성화를 시키면 극심한 반발현상을 일으킨다.
정수와 초능력. 이 두 개는 서로 상승 작용을 일으킨다. 정수가 초능력 기반 스킬을 강화한다. 다만 이것은 초능력과 영력 등의 몇몇 에너지에만 한정되는 이야기. 아무데나 섞으면 픽, 하고 소실되고 만다…!
이런 사소한 현상들이, 크로스보우가 파악하기로만 수십 가지.
-피해!!!
-건물째 무너진다!!
“할 수 있어요.”
지금껏 쌓아온 경험.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그저 이렇구나 정도로 여겨온 테크닉. 본능적인 스킬.
캐릭터 ‘크로스보우’이기에 가능했던 것들.
[SYSTEM]신체에 무리한 데미지가 누적되고 있습니다. 사용하는 스킬을 중지하십시오.
[SYSTEM]중지하지 않을 시 패널티 : 유리몸이 활성화됩니다. 5…4….
즉사를 앞에 두고도 그는 태연했다.
그가 시도하는 것은 스스로에게도, 일종의 줄타기였다.
아무도 모르지만…분명 성장한 크로스보우.
그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기 위한 행위.
시야의 색이 돌아왔다가, 다시금 시커먼 회색으로 변하기가 여러 번.
[SYSTEM]패널티 발동이 중지됩니다.
[SYSTEM]신체에 무리한 데미지가 누적되고 있습니다. 사용하는 스킬을 중지하십시오.
[SYSTEM]패널티 발동이 중지됩니다.
경고 메시지가 어지럽게 시야를 메운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이미 파악이 모두 끝났으니까.
이제 남은 것은 그에 따라 대응책을 내놓는 것.
“상쇄와 역이용. 제가 할 건 간단합니다. 덧셈과 뺄셈이에요.”
하루가 지나 다시 쿨타임이 돌아온 스킬.
‘해방’을 망설임 없이 발동시켰다.
스스로의 존재감이 돌연 화악 커지는 느낌.
스읍.
후─.
심호흡.
어느덧 불꽃 등의 상세 이펙트까지 보일 만큼 가까워진 스킬.
-설마?
-이걸?
“…뭐하려는 거지?”
“탈진했나?”
쏟아지는 의문들 사이에서, 크로스보우가 다시 한번 발을 구른다.
쿠웅──.
“이런 때만을 위해 지금껏 기다려왔습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쏟아지는 기쁨.
비웃음을 사는 캐릭터를 플레이하고, 쓰레기 소리를 듣는 스킬을 만든다.
그 행동원리는 별 것도 아니었다.
일전에는 블래드에게 훈수를 두었지만, 사실 크로스보우의 기저 역시 마찬가지.
누군가 쫓아와 줬으면 하는 마음. 대등히 싸워 보고 싶은 마음.
그리고 그것은 올오버를 플레이하는 동안, 벌써 여러 번 충족된 욕구.
크로스보우는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이 순간, 오리지날이 말한 종말이란 것이─얼마나 자신과 상극의 것인지 어렴풋이 이해했다.
방송의 즐거움이란, 게이머의 즐거움이란 함께하는 것에 있지 않겠는가.
함께할 사람이 없어져서야 의미가 없다. 혼자 게임을 즐기는 것엔 한계가 있기 마련.
상념이 거기에 도달한 순간.
인식의 한계가 돌연─쭈욱 넓어졌다.
시커멓게만 보이던 시야에 문득 색채가 나타난다. 촉각이, 냄새가…‘보이기’ 시작한다. 에너지들은 두말할 것 없었다.
크로스보우가 가진 감각의 정체.
‘공감각’이, 기반 에너지라는 자극에 마침내 꽃을 피우는 순간.
────콰아아아아아앙!!!!!
건물이 성대하게 폭발했다.
“….”
“….”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해치…아니, 된 건가?”
“이걸 맞고 살아나면 인간이 아니야.”
“이, 겼다고? 우리가?”
“…아냐. 아니야!!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질 않아요!”
“…살았다고? 미친.”
폭삭 무너져 사라져 버린 건물.
연합한 게이머들은 제각기 경계 태세를 취하며 먼지가 걷히길 기다렸다.
그리고 자욱했던 먼지가 사라지고.
“…없다?”
“뭐야.”
의아함의 목소리가 슬금슬금 새어나올 때쯤이었다.
“그, 커윽…?”
──털썩.
문득, 누군가 쓰러져 건물 밑으로 떨어져내렸다.
“뭐, 뭐야!!”
“…대망 님!!”
어느새 뒷편.
크로스보우가 빙긋, 웃었다.
방금 공격으로 잘려 버린 한쪽 뿔을 매만지며 말한다.
“아아. 죽는 줄 알았네.”
그 목소리가 묘하다. 마치 에너지와 결합한 듯한 느낌으로, 웅웅 귓가에 박히는 소리.
공감각의 응용.
“이제 됐습니다. 여러분. 다 죽여드릴게요.”
“““──!!!”””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가 순간 등허리를 세웠다.
크로스보우가 말한 대사. 거기서 느껴지는 기시감.
그것에 말미암아 그 대사가, 네이션스 컵에서 그가 본격적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던 대사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마왕, 크로스보우.”
-크로스보우!!!!!!
-믿고 있었다고 줴에에엔자앙!!!
-크로스보우!크로스보우!크로스보우!
-무쳤다!! 이남자!! ^^ㅣ발 개미쳤다!!!
아주 오랜만에, 채팅창이 폭발했다.124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