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막간 (1)***
고계급 48인의 연합.
그리고 올오버 시즌 4의 크로스보우.
이들의 격돌은 결국 크로스보우의 승리로 끝을 맺었다.
극적인 승리.
트리키 뷰의 최신 방송 모듈은 대규모 폭격 후 돌연 뒷쪽에서 나타난 크로스보우의 모습을 정확하게 잡아내었고, 그 장면은 하루만에 편집이 되어 온 커뮤니티에 퍼지고 있었다.
눈에서 붉은빛이 줄기줄기 뿜어지는 오글거리는 편집부터 크로스보우에게 영화 조커의 분장을 입힌 편집까지.
그 순간이 얼마나 극적이었는지 말해 주는 반응들.
그리고 그것은 더 이상 국내 커뮤니티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아이튜브는 물론이요 서양 쪽 커뮤니티를 대표하는 레딧, 중국의 웨이보와 일본의 라인과 4ch마저 점령한 것.
[형님나라의 ‘그 스트리머’ 근황]
[움직이는 짤방]
-이런 사람을 다이고에 비벼?www잽랜드 주민들 핵폭탄 후유증이 아직도 있는거냐www
└넷우익들 빼고 아무도 비빈 적없다www역시 대단한www
└팬티 갈아입고 오기때문에 기다리고 있어요
└너무 굉장한…역시 형님 나라다 동아시아의 자랑
└일본은 도대체 뭘하는거야? 멍청한 집단ww당장 크보를 수입해와라 ! !
중국의 반응은 떨떠름, 일본 반응은 그럭저럭인 반면 레딧 쪽은 폭발적이었다.
어느새 생겨난 수많은 서브레딧(게시판)에서 그 인기를 반추할 수 있을 정도.
대표적으로 활성화된 서브레딧만 4개에 달하는 모습이었다.
/r/crossbow
/r/cbfans
/r/cbperformance
/r/cbmontage
각각 크로스보우, 크로스보우팬, 크로스보우 퍼포먼스, 크로스보우 매드무비 등으로 해석할 수 있는 서브레딧들.
그날 밤에 이어 다음날까지, 이 4개의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 레딧의 모든 메인화면을 뒤덮을 정도.
[한국의 이 남자가 엄청나다] -1,214 코멘트
[동영상]
[미친 실력, 미친 간지] - 876 코멘트
[동영상]
[한국의 올오버 마왕 출현] - 541 코멘트
[동영상]
크로스보우 신드롬.
크로스보우가 처음 국내에서 떠오르던 때 들리던 단어.
그것이 전세계적으로 확장되는 모습.
국내에선 크로스보우가 국위선양을 했다는 의견이 커뮤니티 여론의 태반을 차지할 정도.
그런 이가 군대 문제까지 깨끗하니, 여초남초를 가리지 않고 까방권을 획득한 유일무이한 스트리머가 되어 버린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인기는, 아이튜브의 구독자수로 증명되었다.
본래도 200만 명이 조금 넘는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던 크로스보우 채널의 구독자 수가, 단 하루 사이에 100만이 더 늘어 버린 것이다.
“…살다살다 다이아 버튼도 받아 보겠는데? 오빠?”
정말 셀럽들이나 받는 구독 세례.
그러나 크로스보우의 대응은 생각보다 더 담백했다.
“구독자 수 안 보이게 할 수 있지? 그거 설정해두자.”
“응? 굳이? 그렇게 하면 홍보 효과가 조금….”
“공개하고 있으면 없던 말도 나올거야. 괜히 유사언론에서나 보도되고 그럴 거다. 그냥 비공개 해둬. 어차피 중요한 건 영상 조회수니까.”
“그건 그렇지. 그나저나 괜찮아?”
크로스보우의 자취방.
어느 때처럼 신예지가 뒹굴거리고 있었다.
밑에 꿈틀거리는 반죽음시체 비슷한 것을 깔아뭉갠 채였다.
“무슨 대학원이라도 갔어 나 몰래? 피곤해 죽으려고 하네.”
“…내려가. 이 자식아.”
“뭐래. 힐 하고 있는건데.”
“뭐, 엉덩이에 치유 주문이라도 새겨 놨냐?”
“아니. 오빠 이름.”
“….”
손을 들어 등짝을 후려치고 싶었지만, 그 정도의 힘도 없다.
크로스보우는 벌레라도 쫓듯 팔을 휘휘 저어 보이는 걸로 언짢음을 표현하곤 눈을 감았다.
평소같으면 이미 방송을 위해 씻고 있어야 할 시간.
그러나 크로스보우는 도저히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누워 있었다.
어제 싸움의 후유증. 제아무리 크로스보우라고 한들, 그 정도 집중과 감각을 유지한 채로 계속 전투에 임했던 것이다.
덕분에, 아침부터 뇌가 녹아내릴 것 같은 기분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온오프 안되나. 이거.’
소리나 촉감이, 문자 그대로 ‘보이고’ 있었다. 눈을 감으면 그나마 괜찮지만…처음 겪어 보는 감각.
가상현실 게임을 하도 많이 해서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닐까 하고 검색해 봤지만, ‘공감각’이란 건 현실에서도 꽤 많은 사례가 있었다는 모양.
리처드 파인만, 니콜라 테슬라 같은 물리학자들도 일평생 겪었던 현상이라고 하니, 아마 건강상의 문제는 크게 없지 않을까.
대충 떠올린 생각이었다.
‘그래도 의사한테 확인 받아야겠지.’
조금 귀찮은 일이 되겠군.
눈에 보이는 이것들도 익숙해지려면 시일이 걸릴 터다.
이렇게도면 적어도 오늘은 휴방 확정.
크로스보우는 자신에게 올라탄 신예지를 발로 밀어냈다.
“꺅? 발가락 세우면 어떡해…!”
“안 세웠다. 헛소리 말고 오늘 휴방 공지 좀 부탁해.”
푹 쉬어야겠다.
진영 경쟁의 마지막 날이지만, 상관 없을 터다.
어제의 격전으로 점수를 꽤 벌려 놨으니까.
“다시 잔다.”
그렇게 말한 크로스보우는 금새 잠에 빠져들었고, 이내 깊은 숨소리를 내는 크로스보우를 보며 신예지는 묘한 표정이 되었다.
“진짜, 봐도봐도 놀랄 여지가 있는 사람….”
그녀가 들고 있는 스마트폰.
그 화면에 보이는 것은 현 시점의 진영경쟁 포인트.
[3. 이종족 진영 점수 : 643,120점]
[2. 인간족 진영 점수 : 662,150점]
분명 어제까지만해도 각각 1등, 2등이던 두 진영이 한 계단씩 밀려난 모습이었다.
어제에 비해 상당히 많이 오른 점수에도 그랬다.
그리고 그 순위 하락의 이유.
“점수 변동은…확인 안해도 되겠다.”
신예지가 중얼거렸다.
[1. 마족 진영 점수 : 850,120점]
근 20만 점 차이.
서버에도 몇 없는 최고계급들이 단 한 명에게 몰살당한 결과였다.
“…이게 개인이 할 수 있는 거 맞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스마트폰을 내려놓는 신예지.
이 남자가 태연하게 해내는 짓들을 보고있자면, 기준이 이상해져 버리고 만다.
오후에는 손님이 온다.
그녀는 청소나 해 놓을 생각으로 기지개를 켰다.
***
그 시각.
점수가 뒤집혔다고 해서, 올오버 유저들이 모두 놀고만 있지는 않았다.
어떻게든 따라잡기 위해 지지고 볶고를 반복하는 모습들이 뉴 올오버의 여기저기서 벌어지는 상황.
마족 유저들도 마찬가지였다. 크로스보우의 엄청난 기여가 있었다곤 해도, 마냥 놀고만 있지는 않았던 것.
“저기다!! 잡아!!”
“무조건 최소 2인으로 다니세요! 마족 유저들 암살 계열 다 몰려들어와 있습니다! 권장 4인!”
“오케이. 상황 종료. 싹 다 죽여!!”
처음에 물을 먹었던 짬먹을타임과 스트리머들이 다시 뭉쳐서 각 진영들을 휘젓고 다니는 모습.
모두가 각각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물론 그 최선이 게임 속 일인 것에 아이러니함을 느낄 순 있겠지만…곧 도래할 세상을 생각해보면 썩 옳은 모습들이다.
라고, 오리지날은 생각했다.
“….”
크로스보우가 펼친 격전을 관찰하고 난 후, 도저히 믿기지 않아 현장을 방문한 오리지날.
그는 건물이 바스라진 흔적을 집어들었다.
“에너지 간 상호작용이…아직 0년차인데도, 이 정도까지 가능하다고?”
이 정도는 정말 최고 수준의 재능을 가진 이가, 종말이 시작되고 3년은 있어야만 겨우겨우 도달할 수 있는 수준.
“크로스보우. 크로스보우….”
눈이 뒤집힐 것 같았다. 어느새 숨을 가쁘게 쉬고 있는 오리지날의 모습.
죽어가던 와중 찾아낸 유일한 희망. 숨이 끊어지기 직전에 기적의 약이 있다는 소리를 들은 사람 같은 표정이었다.
그럴만도 했다.
──곧 찾아올 종말. 그것에는 ‘단계’가 존재한다.
아직 사회와 질서가 어떻게든 유지되는 1단계.
게이트는 아주 간간히 발현한다. 아주 커다란 재해가 될 사건 몇몇을 제외하면 세상은 평소와 같이 돌아간다. 세상에는 본래 없던 무형의 에너지가 풀려나 초보적인 수준의 각성자들이 나타난다.
멸망의 게임은 아직 시도되지 않았을 때의, 천천히 종말을 향해 가는 수준의 상태.
그리고 2단계.
멸망의 게임 그 첫 번째 시도가 실패했을 때 벌어지는 단계.
게이트는 이제 자주 발발한다. 물리력이 대부분이었던 기존의 괴물들과 달리, 현상을 조종하는 괴물들이 나타난다. 사당역에선, 그림자 괴물이 대거 풀려나고…이로 인해 사회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각성자들이 가질 수 있는 힘도 늘어난다.
3단계. 두 번째 시도가 실패했을때 벌어지는 단계.
각성자들을 필두로, 몇몇 인간의 몸이 한 부위를 시작으로 점차 괴물로 화하기 시작한다. 풀려난 그림자 괴물, 혹은 각성할 당시에 괴물의 인자가 몸에 침입한 탓인 듯 생각되었다. 사회는 완전히 붕괴된다.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리고 마지막 시도가 실패했을 때.
─알 수 없다.
오리지날은 항상 마지막 시도가 실패하면 회귀해 왔으니까.
이미 3단계에만 진입해도 인류의 태반이 사망에 이르는 것을 생각해 보면…지옥도가 펼쳐지지 않을까. 그런 예상을 할 뿐이었다.
그리고 크로스보우가 도달한 수준은, 2단계의 끝에서나 드물게 관찰되는 수준. 일전 오드맨을 이긴 꼼수와는 상황이 다른 것이다.
“가능해. 이번엔 정말로 가능해. 크로스보우만 있다면. 가능해…정말로. 크로스보우.”
오리지날은 미칠 것만 같은 심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던 때였다.
점수를 얻기 위해 주변을 돌던 유저들이 오리지날을 발견했다.
“엇…? 사람이다!!”
“이런 곳에? 인간족인…모, 몬스터?”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진 어린아이의 형체를 한 오리지날.
그를 보며 몬스터라 착각하는 그들.
“그럼 이종족 아니…컥?!”
“뭐, 뭐야.”
그에 마음 속 깊은 곳이 쿡 찔리는 기분.
묻어뒀던 감정이, 찾아낸 희망 탓에 급격히 요동쳤다.
“뭐, 뭐야! 고계급…! 커흑?”
“…꺼져라.”
두 명의 유저가 나자빠지는 건 찰나에 불과했다.
굴러 떨어지는 목.
평상시완 달리 심히 잔인한 연출.
그러나 튀어 오르는 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발걸음을 옮기는 오리지날.
다른 것은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관리를 하고 있어야 할 자격의 방도, 크로스보우에 의해 바뀌어 버린 유망주들도 모두 잊었다.
‘…신체를 꺼내 올까? 어차피 상관없잖아. 이번에 끝을 맺으면.’
오로지 찾아낸 희망, 크로스보우에게 접촉할 방도를 생각할 뿐이었다.
***
알 수 없는 곳.
어딘가.
─…배신이라? 네가?
─추잡한 말이로군.
─네 손에 죽어 간 동포가 몇인가. 정녕 자각이 있나?
웅웅, 공기가 떨리고 있었다.
묘한 울림이 공기를 타고 퍼져나가는 탓.
“무얼. 간단한 이야기일세…동료가 미쳤다. 자네들이 만들어나갈 세계에 붙는 게 차라리 나아 보이더군.”
─믿을 수 없다.
─믿을 수 없어.
─증명해 봐라.
“뭘 증명하면 되지? 오리지날 그 계집이 미쳤다는 거? 아니면 내가 네놈들에게 붙는다는 걸 보여 주면 되겠나?”
─….
“크로스보우라는 인간. 오리지날은 그 남자한테 미쳤다. 확실해.”
─…크로스보우. 그래. 그럴 수밖에 없지….
─그가 너희 시간도둑을 막는 단초가 될 것이다….
중년 남성.
커다란 눈썹이 꿈틀댔다.
“…그놈은 극도로 이기적인 놈에 불과해. 주목받는 걸 좋아하고, 여자나 재물에만 관심이 있는 놈이지. 쓰레기 같은 인성은 두말할 것도 없어.”
마구 쏟아지는 비난.
그러나 목소리의 반응은 마치 웃는 듯했다.
─네 얘기를 하고 있는 건가? 오드맨.
─…인간들의 우스움이란.
“앞으로 동료가 될 몸인데, 막말은 삼가지 그러나.”
─증명해 봐라.
“…좋네. 비밀을 하나 알려 주지.”
─…?
오드맨은 비열하게 웃었다.
“나는 매 회귀마다 기억을 계승해 오지 않는다. 숨어 사는 채은아와 정신체로 존재하는 오리지날과 다르게 나는 겉면에서 활동해야 하는 역할. 그렇기에 매번 기억만을 계승해 왔어야 하는데 말이지.”
─무슨…? 아아. 그렇군.
─…회귀할 때마다 또 다른 너를 살해해 온 것인가.
─…웃기는, 놈이군.
“흥. 내 덕에 매번 너희들이 좀 더 쉽게 활동했던 거 아닌가. 나로 인해 게이트 현상에 필요한 힘이 적어졌을 테니.”
─믿을 만하군. 또…?
─하나로는 부족하다….
“글쎄. 다음은 조건일세. 옳은 편에 서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다. 자격의 방 멤버들도 나를 따른다. 전면에 나선 건 오리지날이 아닌 나니까. 최소한 오리지날 쪽에 가담하지 않게 만들 수 있지.”
─…그건.
─….
목소리들이 고민하는 듯 보였다.
오드맨이 쐐기를 박았다.
“또 있네. 바로 충분한 자금이지. 너희들이 운신할 공간을 만들어 주겠다. 그리고 입을 몸도 마련해 주지.”
─….
“부족한가? 그렇다면 거기에 이건 어떤가.”
협상 테이블에, 뭔가 내밀어진다.
─…이건?
“오리지날의 신체가 존재하는 곳, 지하 수백 미터 공간.”
말하자면 조커. 노림패.
“그곳에 출입할 수 있는 카드다.”
─…!!
웃음.
“올오버를 유지하던 그 어마어마한 능력이 풀려나는 것. 너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그것이지 않나.”
─…이, 이걸.
─…이것만, 있으면…!
“자. 어떻게 하겠나.”
갑을이 뒤바뀌었다.
오리지날의 가장 큰 아군이었던 이가 돌아서는 순간이었다.125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