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대비 훈련 (1)[크로스보우 지금 뭐라는거임??]
-갑자기 저장하라고?? 뭐지
└ㄹㅇㅋㅋ좀 뜬금없네 하긴 했음
└걍 시리즈처럼 들고 있으란거 아님??
└설마 크보쯤 되는 애가 프리메이슨 이딴거 믿는건 아니겠지ㅋㅋ루삥뽕
[좀 의아하긴 하네ㅋㅋ]
-내가 뭔가 꺼림찍한거 잘 느끼는데 뭔가 싸늘했다ㅋㅋ
└난 바로 저장함ㅋㅋ크보가 지금까지 헛소리한 적도 없고
워낙 많이 여기저기서 화젯거리가 되곤 하는 크로스보우의 방송.
그 탓에, 그의 사소한 행동도 모두 도마에 오르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돌연 영상을 소장해달라는 부탁.
그것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단적으로 말하자면 의아함.
중간까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태반이었지만, 굳이 가족당 한 명이라고 콕 집는 데에서 이상함을 느낀 사람들이 생겨났던 것.
물론 그런 인간의 수는 소수에 불과했다.
[N년차 씹덕···바로 영상클립 싹 다 다운로드했다ㅋㅋ]
-크갓님···바라시옵는데로···완수하였나이다···
└솔직히 손해보는 것도 없는게 이게 맞긴하지ㅋㅋ
└나도 혹시 하는 맘에 저장하게 되더라
[솔직히 불법투기장 생각하면 크보가 이상한 말 할 거 같진 않다]
-보여준게 얼만데ㅋㅋ
└ㄹㅇ게임 스트리머로 이정도까지 가능하다는 한계를 보여주고 계신 분
└이거 보고 저장하러감
[형···형 말 듣고 저장했어 이거봐]
-[저장 폴더 목록 : 크로스보우, 아오이 하라, 마나나기 카논···.]
가끔 실수로 형 폴도 들어가긴 하는데 그래도 난 좋더라ㅎㅎ
└ㅋㅋㅋㅋㅋ이거 순 ㅁㅊ놈아니얔ㅋㅋ
└이색기 닉을 보셈ㅋㅋ
└이상성욕 쓰니야···.
이미 겜돌이 사이에선 우스갯소리로 종교나 다름없이 여겨지는 크로스보우.
그랬던 만큼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당부를 따라주었던 것.
커뮤니티 게시판을 관찰하고 있던 크로스보우의 매니저, 신예지는 그 현상을 보며 놀람을 금치 못했다.
“대한민국에서 셀럽의 힘이 이 정도일 수가 있다고?”
뭐만 하면 일단 물어뜯으려고 이빨부터 들이미는 그 네티즌들이 맞나 싶었던 것.
이게 똥을 싸기만 하면 유명해진다는···아니. 유명해지면 똥을 싸도 박수를 쳐 준다는 그건가.
반응이 이렇게까지 즉각적으로, 그리고 호의적으로 터져 나오는 것은 오랜 커뮤니티 생활에도 처음.
보여 준 것이 너무나도 대단하다 보니 유행을 넘어 모 국민MC의 전성기와 같은 시절을 떠올리게 할 정도가 된 걸까.
[ㅋㅋㅋ크보도 단물 다 빠졌네ㅋㅋ]
-방송에서 헛소리 하는 수준ㅋㅋ겜돌이가 뻔하지ㅋㅋ
“···그 정도는 아니네.”
신예지는 고개를 끄덕이곤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종종 해 왔던 댓글 작업이다. 어려울 건 없었다.
***
타아앙─!!
한 발.
철컥.
볼트를 잡아당기자, 탄피가 빠져 허공을 난다.
그것은 빛바랜 회색이었다.
“컷.”
-“크, 크보 님···! 덕분에 살았, 으아?!”
-그저 크-멘
-진짜 크로스보우는 전설이다···
-???: 응애 나 애기뿅이 맘마줘
-ㄹㅇ뿅누나도 전설이다···존내 못한다···
-(삭제된 채팅입니다.)
세상은 온통 색깔로 가득하다.
두뇌가 현상을 인식하기도 전에, 색으로 먼저 번지는 시야.
마치, 다른 세상이 들어온 것만 같은 감각이다.
‘···불편해 죽겠군.’
크로스보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이놈의 공감각인지 뭔지 하는 게 생겨난 것까진 좋았는데···막상 전투 상황이 되니 이거야말로 최악의 능력이었다.
색깔이 집중도를 격하시킨다. 시야를 가리는 일까진 없었지만, 본래 인식하던 사물과 지금 인식하는 사물 사이에 차이가 생겨나 버리는 것.
물론 단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전에는 집중해야만 느낄 수 있었던 주변의 상황이, 이제는 마치 숨 쉬듯 자연스럽게 시야에 비친다.
인지력이 수직상승하는 것은 당연한 일.
다만 그뿐이었다.
쓸데없는 부분이 강화된 만큼, 다른 부분이 상대적으로 약해졌다.
마치 슈퍼카의 연비가 별로인 것처럼, 효율이 좋지 못했던 것.
모르긴 몰라도 전투지속력이 급감했을 테지.
즉, 지구력과 집중력 하락을 대가로 인지능력을 손에 넣은 것이다.
‘별론데.’
크로스보우는 괜스레 눈을 가늘게 뜨며 격발을 이어나갔다.
──타아아앙!!
“···!”
퍼석, 하고 깨져나가는 머리통. 도플갱어 기생체에 감염된 인간의 것이었다.
단말마도 없이 쓰러지는 몸체. 그 목에서 검은 뭔가가 사사사삿-하고 빠져나갔다.
엄청나게 빠른 바퀴벌레라도 되는 것 같은 모습.
“서라 님.”
-“네.”
하지만 이쪽은 오버로드 계급이 둘이나 된다.
단서라는 검을 빙글 돌려 그걸 콱 찍어 버리곤 크로스보우를 향해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런 잠시간의 순간에도 앞쪽에서 달려드는 적.
-“윽···!”
통신으로 침음성이 들려왔다.
“저런. 조심하셔야지.”
-인성 ㄹㅇ 실화냐?
-제자라면서!! 알려준다면서!!
-맞으면서 배우기ㅋㅋ
-3대 호카게식 훈육ㅋㅋ
“다들 버거워 보이시네요. 여러분은 다들 즐거워 보이시구요.”
-꿀잼ㅋㅋ
-단아가는 지켜줘야하는데···
-미안···우리도 어쩔수없는 악질인가봐···
-ㅋㅋㅋㅋ역시 고생은 스트리머가 해야 재밋음
-그래서 강의는 언제 하나요 센세
“강의요?”
크로스보우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간대는 저녁을 넘어 밤이 되어 가는 때.
호텔 앞 상황은 그야말로 아비규환. 멀리서는 사이렌 소리가 다가온다.
자세히 보면, 조금 멀리 호텔의 창문에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분명 제자를 키우는 컨셉의 방송이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사전설명 없이 시작된 난전이었다.
크로스보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일단 안 좋은 버릇부터 고치는 게 우선이니까요. 난전 상황이야말로 그걸 관찰하기에 가장 좋은 시츄에이션인 거죠.”
-흠···터레스팅
-미심쩍지만 봐드리겟읍니다
어쩔 수 없었다.
잘 봐두세요. 이게 곧 일어날 일이니까요. 같은 말을 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썩 좋지 못한 대답.
“정말입니다. 이따가 잘 보세요. 아마 가상현실로 전투를 시작한 분들은 대부분 비슷한 실수들을 하실 테니까.”
따지고 보면 틀린 말도 아니었다.
-오
-메모장 켜라
-ㄹㅇㅋㅋ
-근데 이렇게하면 F랭크 받을텐데
말하는 사이, 호텔 정문 전투의 끝이 보였다.
어느새 단서라가 데미지를 축적하여 한 번에 터뜨릴 준비를 마쳤던 것이다. 참살한 기생체들의 수가 스킬 발동에 필요한 만큼 레벨을 올려 준 모양.
-“···풀 카운···아니. 카운터 스트라이크.”
받은 데미지를 모두 돌려주는 그녀 고유의 스킬.
그게 마지막이었다.
새하얀 격류가 도로를 휩쓸었다.
***
“두 분 다 잘하셨습니다. 서라 씨도 캐릭터 응용이 뛰어나셨고···세린 씨도 잘 버텨 주었습니다.”
상기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두 스트리머.
크로스보우는 피식 웃었다.
“그럼 클리어랭크를 확인해 볼까요?”
[SYSTEM]임무 실패.
[SYSTEM]기생체의 침입을 막지 못했습니다.
[SYSTEM]종합 랭크 판정 : F.
“어?”
“···?”
이번엔 얼빠진 표정으로 바뀌었다.
“왜, 왜요? 정문에서 다 틀어막았는데!”
“···이게, 균방전···?”
-ㅋㅋㅋㅋ
-아ㅋㅋ이게 균방전이지
-ㄹㅇㅋㅋ그간 크보쉑이 너무 쉽게 깼던거임ㅋㅋ
-골드건 오버로드건 균방전 앞에선 평등하지ㅋㅋ
[현재 시청자 수 : 212,301명.]
어느새 20만 명이 넘게 집결한 시청자들.
아마 태반이 균방전만 보는 소위 ‘균크리트’ 시청자들이겠지.
그리고 그런 이들이 잔뜩 합류해 있는 만큼, 채팅창에선 옳은 소리만 터져 나오고 있었다.
“당연합니다. 애초에 클리어 실패거든요.”
본래 임무는, ‘단 한 마리도 호텔 내부에 들이지 말 것’.
정문을 틀어막는다고 해서 다른 루트로 침입하는 기생체들까지 막을 수 있을 리는 없었던 것.
“···애초에 실패할 미션이었군요.”
“5명···필요···과연.”
그랬다.
호텔에 진입할 수 있는 커다란 진입로는 총 5개.
즉, 방금 그 웨이브를 한 명이 홀로 막아 내야만 클리어가 가능한 맵이라는 뜻.
“이거 가능해요? 셋이서?”
“···이게 균방전···크로스보우 님···괴물···새삼스레 깨달음···.”
-ㄹㅇㅋㅋ
-ㄹㅇㅋㅋ
부정적인 말들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상대는 그 크로스보우.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충분히 가능합니다.”
“···?”
“넹···?”
말보단 보는 것이 빠르겠지.
크로스보우는 인터넷을 열어서 [균열방어전 : 맵 하인트 호텔]을 찾아내었다.
-와
-;;ㅋㅋㅋㅋ
-균친놈들 ㄹㅇ실화냐?
상세히 만들어진 지도가 이미지 검색창에만 수십 개.
올오버 게이머들 중에서도 가장 집념이 강한 이들이라 평가받는 유저들다운 지도.
“여기 보시면···이쪽과 이쪽. 그리고 여기랑 여기는 서로 가깝습니다. 혼자서 충분히 커버할 수 있습니다.”
“···? 그, 그게 가능해요?”
“···네···?”
크로스보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려울 건 없을텐데. 기생체라고 해봤자 결국 힘이 무지막지하게 강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초능력자나 다름없는 능력을 갖고 있는 캐릭터로 무장한 플레이어라면, 누워서 떡 먹기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 그건 크보 님이나 가능한 거 아닌가···?”
그 말을 전해 줬더니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듯한 반응이 돌아왔지만, 못 들은 체 하고 넘어가는 크로스보우.
“아무튼 오늘의 목표는, 저랑 서라 씨가 각각 두 진입로. 그리고 세린 씨가 하나를 맡아서 성공하는 것입니다.”
-노방종 선언ㅋㅋㅋㅋ
-ㅋㅋㅋ크보야 이건 불가능하다
-??? : 이게 안된다고요? 왜요?
그렇게 어렵나?
크로스보우는 잠시 생각하다가 피식, 웃었다.
어려워 보이는 것은 사실 착각에 불과하다. 인간의 한계란 참 신기한 것이라서, 눈앞에서 다른 인간이 해내는 것을 보면 한계선이 더 넓어지기 마련.
“그럼 지금부터 캐릭터 스왑에 들어가겠습니다. 두 분은 캐릭터 유지해 주시면 되고···음. 서라 씨 캐릭터로 제가 바꿔올게요.”
보여 주면 되겠지.
크로스보우는 시스템 창의 재도전을 꾹 눌렀다.
[SYSTEM]이 멤버대로 재도전하시겠습니까?
두 명이 말릴 새도 없이 수락을 눌렀다.
그리고 곧.
묘하게 호리호리해진 크로스보우는 쌍검을 들고 앞으로 나아갔다.
“크, 크보 님?”
게임이 다시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차들이 멈추고, 멀리 화물 트럭이 돌격한다.
“···앗!”
화들짝 놀라 바리케이트를 올리려는 이세린.
그러나 손을 들어 막는 크로스보우.
지이이잉···.
올라오던 바리케이트가 다시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화물 트럭.
그는 앞으로 걸어 나가 중얼거렸다.
─절대 방어.
그리고 그제야 크로스보우가 하려는 짓을 깨달은 단서라.
실드를 믿고 화물차에 치여서 받은 데미지를 늘리려는 셈.
무모하기 그지없는 행동이다.
저 충격량을 버틸 수 있을 리 없다. 실드가 산산조각날 것은 물론, 즉사하고 만다.
그녀는 드물게 아연한 표정으로 변해서는 소리질렀다.
-“그거 일정 충격량 이상은···! 크보 님!”
“괜찮아요. 전생 트럭입니다. 이거.”
우스갯소리와 함께, 다음 순간.
어마어마한 굉음이 터져나왔다.
“······어?”
다음 순간, 질끈 눈을 감았던 이들에게 보인 것은 멀쩡히 서 있는 크로스보우.
“···사망 메시지가?”
“크보 님?”
─화물 트럭이, 하늘을 날고 있었다.
정확히는, 날아올라서───정확히 길을 막으며 쳐박힌다.
──콰아앙!!
완벽한 바리케이트.
크로스보우는 화물차 위로 점프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헐
-헐 ㅅㅂ;;
-뭐야 저게 버텨지는 실드스킬이 있다고?
-아니 무냐고
소란스러운 채팅창.
그리고 침묵만이 흐르는 인게임.
크로스보우가 픽, 웃었다.
“뭐해요? 얼른 타지 않고.”129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