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대비 훈련 (4)“아이고. 죽겠다.”
“한 달치 운동 다 했네요.”
올오버 내부. 하인트 호텔의 최상층.
엘리베이터가 가동하지 않았던 탓에 20층이나 되는 계단을 뛰어올라온 스트리머들이 무릎을 잡고 헥헥대고 있었다.
-ㅋㅋㅋ아니 실제로도 힘드냐고ㅋㅋ
-숨 조금 차긴함ㅋㅋ
-이것도 과몰입 같은거냐?
균열이 열리는 곳은 최고급 호텔의 최고급 객실.
프레지덴셜 스위트 룸.
“이 너머에 그러니까 개쩌는 객실이 있다는 거죠?”
“나 이런 데 처음 와 봐.”
“…높아서…귀가 먹먹….”
…의 문밖이었다.
그리고 동료들의 소란에도 아랑곳 않고, 눈을 가늘게 뜬 채 뭔가를 어루만지고 있는 크로스보우.
-ㅗㅜㅑ;;
-손놀림ㄷㄷ
-선생님들의 대가리엔 그런 것밖에 안 차있나요?
-네!!
그가 하고 있는 짓은 바로 균열의 근처에서 조금 큰 기생체를 어루만지는 행위였다.
“이게…균열.”
“뭔가 징그럽네요.”
다만 그의 행동에도, 조금씩 범위를 넓혀 가는 시커먼 균열.
“크보 님 화이팅…!”
“보여…주나…?”
그때였다.
“…못 끊어 내겠군요.”
보여 주지 못했다.
번-쩍!
그의 선언과 함께 적당한 밝기를 유지하던 복도가 확 밝아진다.
플레이하고 있는 캐릭터의 기반에너지, ‘성력’이 퍼뜩 공간을 밝힌 것.
“헉?!”
“깜짝 놀랐네.”
크로스보우는 손을 털었다. 순간 충격이 팔을 타고 오르려는 것을 막아 낸 탓에 저림이 조금 있었다.
“반발하는군요. 이 캐릭터로는 너무 상극입니다.”
그는 어느새 잔해만 남아 버린 기생체를 보며 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캐릭터 ‘크로스보우’를 유지할 걸 그랬군. 크로스보우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랬다고 뭐가 바뀌진 않았을 거다. 당장 기생체를 죽였음에도 그대로니.’
-그니까 지금 무슨 일인거임???
-??머리 위에 달린 건 장식품인가요?
-능지처참ㄷㄷ
-방금왔다 나쁜놈들아
흘러가는 상황이 너무 빨랐던 탓일까. 슬슬 혼란을 느끼기 시작하는 시청자들.
[‘존나빠른웨건’님이 1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하인트 맵 균방전하다가 히든루트 발견함…균열 발생했대서 막으러 왔더니 도플갱어기생체 한마리가 균열이랑 연결되어 있어서 끊으려는 것ㅇㅇ
-고마워요 스피드웨건!
-안물어봤어요! 스피드웨건!
-크보식 클리어도 모자라서 이젠 히든루트임??
-아ㅋㅋ이정도면 올오버에서 편애하는거잖어
시청자들의 반응과 달리, 심각한 표정이 된 스트리머들.
“크보 님도 안되는 게 있었다니.”
“그게 되면 진짜 좆망겜이죠…밸런스 무냐고.”
“자유도가 높은 거 아니에요?”
“…그런가?”
글쎄.
분명 자신의 감각이 알려 주는 바에 따르면…방금 타죽어 버린 개체가 균열과 패스를 연결하고 있는 것은 확실.
그렇다면 그 패스만 끊어 낸다면 균열을 닿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추측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옳은 방법이었을 것이다.
다만.
“이미 패스가…괴랄한 수준의 견고함입니다. 너무 늦었군요. 아니. 견고하다기보다 이건 꼭….”
…마치, 어떤 법칙이라도 되는 듯하다.
당연히 유지되어야 한다는 듯한, 거대한 힘.
“그, 그래서 이제 어쩌죠?”
“스킬이라도 쏟아 부어 볼까요? 아님 돌아갈까요.”
어느새 남은 시간은 4분 남짓.
시시각각 줄어드는 시간초.
“….”
곧, 정적을 지키던 크로스보우가 입을 열었다.
“들어가죠.”
“돌아간다라…그럼 이번 도전은 포기군요.”
“다른 캐릭터로 다시 한번…!”
“…크보 님?”
-아쉽네
-이걸 빼?
-스트리머라면 뭐라도 하는게 국룰이지 아ㅋㅋ
생각과는 다른 반응에, 잠시 어리둥절해 하던 크로스보우.
그는 이내 피식 웃으며 다시 말했다.
“뭔가 오해하셨군요.”
“네?”
“돌아가는 게 아니라, 들어가자, 고 했습니다.”
이번엔 스트리머들이 정적을 지켰다.
“들어가자니. 어딜…?”
“느껴지는 바, 이건 양쪽으로 연결된 패스 통로입니다. 저쪽에서 나오는 것도 가능하지만, 이쪽에서 진입할 수 있을 겁니다.”
“에…?”
잠시 시커멓게 소용돌이치는 구멍을 바라본 스트리머들.
“여길요…? 저희가요…? 왜요…?”
“왜냐뇨.”
크로스보우의 대답은 간결했다.
“그게 스트리머니까.”
-(끄덕)
-이거지!!!!
-ㅋㅋㅋㅋㅋ
-믿고 있었다고!!! 크로스보우!!!!
-저거 구현돼 있을까?
-아ㅋㅋ일단 구멍이면 들이밀어보는 크보ㄷㄷ
-(차단된 채팅입니다.)
***
[이름 : 크로스보우. 본명 알 수 없음.]
[초월적인 인식능력. 그에 따른 반사 신경.]
[압도당하지 않는 대담한 성격. 변수 투성이에 몸을 밀어 넣는 과감함.]
[높은 마력 이해도.]
“이리 보니 별거 아닌 것 같군.”
오드맨이 중얼거렸다. 어울리지도 않게 종이 쪼가리를 손에 들고 있는 모습.
그를 패퇴시켰던 남자. 난데없이 등장한 변수에 대한 분석.
“어디. 표현 방식을 조금 바꿔 볼까.”
인식능력 SS. 반사 신경 S…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게 좀 더 직관적인가….
그러던 때였다.
돌연 누군가 큰소리를 냈다.
“오드맨. 무슨 개짓거리를 하고 있는진 몰라도 대체 언제…!”
“아. 잠시 기다리라고. 금방 도착할 테니까.”
이를 가는 붉은 머리 여자.
놀랍게도, 그녀는 투기장의 [붉은 검신].
여전히 이슈몰이 중인 불법투기장 사건의 관계자.
국제사회에선 ‘블러디소드’ 따위의, 유치한 별명까지 얻은 여자였던 것이다.
“…확실하겠지. 크로스보우가 온다는 말.”
“확실하고말고. 캡슐도 마련해 뒀고, 정 짜증나면 현실에서 싸우라고 링도 준비해 놨지 않나.”
“…캡슐이면 충분해. 그것보다 저거. 풀다이브 되는 거 맞아? 이런 외딴 섬에서도 캡슐이 돌아가나?”
외딴 섬.
그 말이 옳았다.
그들이 있는 곳은 태평양의 어느 섬.
해변가에 세워져 있는 별장.
“무얼. 이런 섬이 아니면 자네가 있을 곳도 없다네. 본토로 돌아가고 싶다면 언제든 말하게나. 아마 하루이틀쯤은 살겠지.”
아니, 아니지. 하루에 걸겠네.
오드맨은 종이를 꾸깃꾸깃 접으며 단언했다.
미국으로 붉은 검신을, 그녀를 돌려보냈을 때의 이야기였다.
투기장의 희생자를 만들어내는 데에 일조한 붉은 검신.
그녀를 가차없이 살해하고 싶어하는 희생자들의 가족은 얼마든지 있었다.
가차없이 얼굴을 방송에 내보낸 미국의 방송정서 덕이었다.
“그, 그건 알고 있어. 그래도 4시간째라고! 크리스피든 크로스보우든 뭐라도 좀 보여 줘야…!”
“알면 좀 닥치고 있게…오. 그래. 친구들이 도착했군.”
“…친구?”
그때였다.
불현듯 별장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방문객이다.
“─이. 어이. 오드맨. 아무도 없습니까-.”
“와. 여기 좋은데. 저거 봐. 수집품인가? 엄청 고풍스러워 보이는 책인걸.”
“…확실히, 엄청난 재화군.”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리는 바깥.
온갖 억양이 섞인 어설픈 영어들.
실로 보기 드물게도 그들의 정체는 ‘자격의 방’ 멤버들.
“…뭐야. 크로스보우가 온 게 아니었어?”
“일단은 무대가 완성되어야 하지 않겠나. 젊은 아녀자가 참을성이 부족하군그래.”
“…내게도 한계란 게 있어. 오드맨. 혹시라도 거짓말이었다면…!”
아무리 말로 그래 봤자 여성의 몸.
이런 공권력도 닿지 않는 곳에서 떠들어 봐야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한다.
오드맨의 입꼬리가 잔뜩 올라갔다.
“자. 그러지 말게. 그 눈으로 크로스보우를 보는 것은 머지 않은 날일 터니….”
“…약속 지켜. 오드맨.”
“약속. 그래. 근데 다만 아쉬운 점은 있겠군.”
그 말과 함께 문을 활짝, 여는 모습.
“?”
움찔. 반사적으로 몸을 숨기는 붉은 검신.
“오. 뭐야! 있었으면 말을 하지!”
바깥에 있던 자격의 방 인원들이 오드맨을 발견하곤 화색을 띄었다.
그러나 그 표정이 오래 유지되는 일은 없었다.
“이들로 어떤가? 친우들이여.”
─…괜찮군….
─정말, 데려올 줄이야….
난데없이, 바닥을 기는 듯한─끈적이는 소리가 들려왔던 탓이다.
“…!”
“뭐, 뭐야?”
싸늘하게 공간이 식는 듯한 기분이 그 자리의 모두를 관통했다.
인간의 본능이 경종이 울린다.
“…지금 뭐야?”
“무슨 소리가…?”
“…뭐냐. 오드맨.”
항의하는 듯한 시선.
그러나 오드맨은 무덤덤하게 양팔을 활짝 펼쳤다.
“자. 들어가게. 미래의 인재들의 몸이다. 모자랄 건 없겠지.”
─…좋군.
─아주, 좋다….
─그림자를…잘 이해하고 있군….
목재 바닥의 틈새.
그곳에서 뭔가 스며나온다.
꿈틀.
꾸물꾸물….
“오…드맨?”
“아저씨…저게 뭐야. 아저씨?”
뒷걸음질.
그러나, 거기까지다.
제아무리 올오버의 랭커라 한들 연약한 육신에 갇혀 있을 뿐인 인간.
“으, 으아아악!!”
“뭐야!! 뭐냐고!!”
피할 수 있을 리 없다.
꾸물대며 천천히 기어오는 부정형의 마물을.
“히이이익…!”
─우리와 하나가 되어라….
─그림자를…받아들여라….
─…맛은 없는데…? 우…웩….
그리고 그 장면을 모두 본 붉은 검신.
“…함정이었구나.”
당황은 잠시였다.
투기장이 너무나도 현실적일때부터 그녀는 이런 일이 있지 않을까 대비해왔다.
망상이라고 크리스피는 손사래를 쳤었지만,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이봐! 정신들 차려! 머저리들아!!”
누구나 하는 일이다.
“…이거, 거짓말이지? 이거 그거잖아. 올오버의 도플갱어…!”
“그…그윽…사, 살려….”
사람의 그림자에, 꿈틀거리는 무언가가 침잠해간다.
“…씨발! 비켜!!”
다른 이들에게 가망은 없다.
그녀는 이를 악물곤, 도망가기 위해 달린다.
저들이 먹히고 있을 때가 행동하기엔 적기.
동정심 따윈 없었다.
“어이쿠. 하하하. 그렇겐 안된다네. 자네에겐 특별히 다른 개체를 남겨 놨거든.”
그러나 도망갈 수 없다.
“이, 이거 놔!!”
“자네는 조금 특별하게 바뀌어 줘야겠어. 자.”
다가오는 거구의 오드맨. 그리고 그 손에 들린 것은 검은색 구체.
“…그거.”
“특식이지. 자네를 위해 준비한.”
…불길하게 꿀렁인다.
“놔라! 놔!!”
“어디 가서 이런 거 못 먹는다니깐.”
그것은 오리지날이 명명하기로, ‘그림자의 찌꺼기’.
오드맨은 억지로, 그녀의 턱을 잡고 입을 벌렸다.
“웁, 우우웁….흐익?!”
“그림자의 찌꺼기…그러니까 이건…도플갱어가 수십만 번의 회귀동안 쌓아온 괴물의 인자일세. 기생하고 변이하면서 발생한 찌꺼기의 모음 같은 거지.”
“웁!!! 우우웁!!!”
“이런. 내 손가락 말고 다른 걸 씹어 먹어야지.”
콰득.
─…악랄하군.
─동의, 한다…형제여….
“그대가 난동을 좀 피워 줘야겠어. 붉은 검신…아니.”
검은색의 구체를 먹이자, 터져 나오는 작용은 빨랐다.
“으그그그그극. 으그그그극….”
“오우. 대단하군. 아무튼 그래. 이제는…음. 붉은….”
붉은 괴물 정도면 될까.
오드맨은 빙긋, 웃었다.
“경이롭군. 내 이토록 역겨운 생물체는 본 적이 없어.”
오리지날의 시선이 닿지 못하는 곳에서,그녀의 계획과는 다른…유의미한 변수가 생겨나는 순간이었다.
“─────□□□□□□!!!”
기괴한 괴성이, 별장을 뚫고 터져나왔다.132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