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 스트리머가 너무 강함-131화 (131/143)

132화 대비 훈련 (5)─상념이, 색깔이 되어 범람한다.

실은 모든 게 다 그저 망상에 불과한 게 아닐까.

오리지날은 정신이 모자란 인간이고, 그녀가 하는 말은 전부 허구인 게 아닐까.

혹은 조헌병의 일종은 아닐까. 어쩌면 게임 내의 스토리에 과하게 몰입한 개발자일지도 모른다.

크로스보우는 이야기를 듣고 난 뒤부터, 계속해서 의심해왔다.

그도 그럴 게, 현실을 살아가는 그에게 있어서는 너무나도 비약적인 이야기나 다름없었던 탓이다.

갑자기 세상이 멸망할 거라니. 그리고 본인이 몇 번이고 회귀를 반복한 회귀자라니.

애초에 회귀 같은 것은 소설 속에나 나오는 설정 아니던가. 현실에서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며, 설령 돌아갔다고 한들 수많은 오류에 시달린다는 이야기를, 크로스보우는 어디선가 들었었다.

멸망의 기록.

오리지날에게서 받은 문서.

그리고 그 문서에 대한 열람 권한.

크로스보우는 회고록의 형식을 띄고 있는 것을 받았을 때에도, 내심으론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종말에 대비한다면, 그 수십만 번의 회귀를 거듭해 왔던 인간이라면 분명 맺어 온 인연이 수없이 많이 존재할 터.

본인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인물들도 엄청나게 많을 것이며, 그들의 재능이 어디까지 닿았었는지에 대한 데이터도 분명, 충분히 존재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이런 가상현실게임보단, 차라리 본인이 직접 그들을 훈련시키는 게 낫지 않을까.

“…이상하군.”

의심은, 비단 방법론에 한한 것이 아니었다.

올오버 본사…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가상공간에 방문했을때, 그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사람은 단 한 명.

오리지날뿐.

여기서 또 의문이었다.

회사란.

특히 올오버같은 거대 게임을 제작한 게임사가, 아무리 회귀자라 한들 한 명만으로 돌아갈 리 만무했던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당장 크로스보우만해도 연습모드에서 최고기록을 받았다는 이유로, 고가의 악세사리 등을 받았던 것이나…개인 인장을 받았던 걸 생각해 보면─도저히 오리지날 혼자 해결할 만한 업무가 아니었다.

“이상하기 그지없어. 정말로 이상하단 말이지.”

차라리, 오리지날이, 회사의 개발진 중 하나였고…그녀의 정신에 이상이 생겨, 가상현실에 정신을 묶어 놨을 가능성이 차라리 높다.

그리하여 혼자인 것이다.

그래서 제 편을 갈구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역시 거짓말인가.

아니면 나의 의심에 불과한가.

거짓말이라면 어디서부터 거짓말인가.

“진짜, 이상합니다. 그렇죠?”

크로스보우는 다시 한번 되뇌었다.

그리고 가장 우스운 것은─이런 모든 생각, 당연한 의심은─.

우우웅─….

거대한 내부. 묘한 소리가 울려 퍼지는 곳.

지옥의 안쪽쯤 될 거라 각오했던 균열.

그 안으로 들어오고 나서부터, 문득 든 생각이었던 것이다.

뭐에 홀려 있기라도 했었던 걸까.

상식적으로, 게임이 종말과 연관되어 있을 리 없잖아.

가상현실은 그냥 과학의 발전에 불과한 것이다.

누군가의 초능력이라니. 그딴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날 리가

“───보 님. 크로스보우 님!!!”

“───!!!”

상념에 물든 크로스보우를 끌어올린 것은 세린의 외침이었다.

어느새 깨달으니, 시야에 간신히 들어오는 그녀의 걱정스런 표정.

-뭐임?

-나 크보가 저러는거 첨봐ㄷㄷㄷ

-안쪽은 공포겜인가보네

-ㄷㄷㄷㄷ신이시여…크멘이시여…

주위를 둘러보면 다른 스트리머들이 보이지 않았다.

“…다른 분들은요?”

“모르겠어요. 저희 둘만 이런 곳에 전송되어 있고…아마 다른 사람들도 흩어지지 않았을까요…? 그보다 크보 님. 숨이 거친데.”

“…?”

무슨 소리지.

가상현실에서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 숨이 거칠어질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크로스보우는 이내, 그녀의 말이 옳다는 것을 깨달았다.

“…불길하군요.”

실제로 그는 헐떡이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괜찮으시죠…?”

“문제없습니다.”

아직 시야에 온갖 것들이 비치고 있었다.

그러나 캐릭터는 적당히 움직인다. 평소 때와 다르게 조금 반응속도가 느리지만, 이 정도는 감수할 만하다.

“저…이제 어쩌죠?”

“…문제는 그거군요.”

상황은 이렇다.

균열에 진입하는 순간, 크로스보우는 거의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눈을 뜨니 팀원들과 떨어져있는 상황.

동료는 이세린뿐이었다.

“팀 보이스는…안되는군요.”

“네. 처음 여기 들어왔을 때부터.”

크로스보우는 예상한 대답에 우선 주위를 둘러보았다. 생각보다 짜여진 느낌의 실내…다만, 엄청나게 넓다.

마치, 인공정원을 보는 것 같은 기분.

그는 저멀리 끝에 보이는 벽이, 하늘 높이까지 솟아 있는 모습을 보며 몸을 일으켰다.

“일단 끝으로 가 보죠. 건물의 내부인 것 같으니까…구조를 먼저 파악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실내요? 아. 그렇구나.”

-아니

-아니 무야

-트리키 뷰 일 안하냐??

-??먼 일임?

-1인칭 보기 들어가 있었는데 튕김

-저두여

그때, 시청자들 사이에서 한바탕 파란이 일었다.

1인칭 보기…그러니까, 빙의 상태로 시청하던 이들이 모두 방송에서 강제로 나가진 것 같았다.

“…빨리 가 보죠. 결국 목적은 균열을 닫는 거니까.”

“네, 네!”

어쩐지 달리기만 하는 건 기분 탓일까.

저 멀리 보이는 벽을 향해 그들은 달려나갔다.

***

“…이건…?”

“벽…이긴 하군요.”

도착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그냥 달려서는 한참 걸릴 듯 보였지만, 달리던 크로스보우가 속도를 빠르게 할 방법을 생각해냈던 덕이다.

“저…근데, 괜찮으세요?”

“괜찮습니다.”

그가 플레이하고 있는 캐릭터는, 캐릭터명 ‘단서라’.

그리고 캐릭터 ‘단서라’의 스킬 중에는, 받은 데미지를 고스란히 출력으로 뒤바꾸는 스킬이 존재했다.

이걸 부스터로 사용했던 것이다.

다만, 스킬 발동을 위해 이세린에게 있는 힘껏 자신을 가격하라고 한 크로스보우.

그녀가 자꾸 미안해하는 이유였다.

“그, 그래도….”

“쉿.”

-몽환의 숲

-ㅋㅋㅋ크보님 등 한번만 보여주세요

-자국났을듯ㅋㅋ

-퍄퍄; 포상이자너

-전직 레이싱걸 누님이 때려주는 시츄에이션…ㄹㅇㅋㅋㄹㅇㅋㅋㄹㅇㅋㅋ

-라는 내용의 애니는 없습니다

잠깐의 해프닝을 끝내고, 크로스보우는 거대한 벽을 쓰다듬었다.

견고한 금속재질.

그뿐만이 아니었다.

“크보 님…?”

“만지지 마세요. 기반 에너지가 흡수당합니다.”

“꺅!”

그랬다. 접촉하는 순간, 마치 수영장의 정화시스템에 닿기라도 한 것마냥 쭈욱 빨리는 기분이 들었다.

기분만 그런 것이 아니다.

‘…흡수하는군.’

크로스보우의 경우, 캐릭터의 마나 역할을 하는 ‘성력’이 빠져나갔던 것.

“…흐음.”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아주 미약하지만 인근의 식물에 생기가 도는 걸 발견했다.

빨아들여서 양분으로 삼는 건가?

실험이 필요하다.

“정정하겠습니다. 한번 만져 보세요.”

“…네, 네? 지금 에너지 흡수당한다고….”

“구라였습니다.”

“그, 그냥 안 만지면 안될까요?”

-ㅗㅜㅑ;

-??? : 이것좀 만져봐~

-(차단된 채팅입니다.)

문답무용.

크로스보우는 가차없이 그녀의 손을 쥐곤 벽에 갖다댔다.

“흐익?!…으에에에…! 빨려들어가욧!”

-이게 그 진공펠

-(차단된 사용자입니다.)

-ㅋㅋㅋㅋㅋ아ㅋㅋ저건 못참지

동일한 상황.

그는 이세린이 화들짝 손을 떼는 것을 보며 턱을 쓰다듬었다.

“…세린 씨 캐릭터. 분명 마나베이스였죠?”

“네, 네. 다른 건 쓰지도 못할거라고 시청자들이 그래서….”

“알겠습니다.”

“저…아까 때린 거에 혹시 서운하셨…?”

대답하지 않는 크로스보우.

그에 시청자들이 신나게 물어뜯고 놀던말던,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나는 흡수하고도 변화가 없어. 무슨 차이…아니. 아니었군.’

─낮게, 바람이 불고 있었다.

“벽을 따라서 쭉 가 보죠.”

“어…또요?”

“문이 있을 거라면 벽 근처에 있을 겁니다.”

“…넹.”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헥…헥…너무 넓은데요? 크보님?”

“더 안가도 됩니다.”

크로스보우는 대충 이곳의 구조를 예상할 수 있었다.

그의 예상이 옳다면, 이 공간은 한 개의 ‘층’이었다.

거기서 생각이었다.

‘…오리지날의 말이 맞다면, 게임은 그녀의 능력에 의해 유지되는 곳이다. 그리고 ‘균열’은 종말을 초래하는, 반드시 막아 내야 할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그녀의 말과는 달리…균열의 내부는 평화로워도 너무 평화로운 모습이다.

오리지날의 말과 다르다.

이건 차라리, 아직 공개되지 않은 ‘올오버의 다음 패치 지역’ 같은 느낌이지 않은가.

“….”

크로스보우는 눈을 가늘게 떴다.

***

채은아.

정확히는 회귀를 거듭해 온 채은아.

이제는 은아라는 이름보다 스펙테이터(방관자)따위의 별명이 더 익숙한 그녀.

그녀는 오드맨을 찾아가던 와중, 헛웃음을 지었다.

“하하. 하하하. 이런 개같은.”

연락을 계속 받지 않아서 회귀자끼리 연결해 두었던 패스를 따라왔는데….

“────□□□□□!!!”

“어이구. 시끄러워라.”

어째 패스가 영 다른 사람하고 연결되어 있었다.

아니, 저것을 사람이라 칭하는 것은 인권에 대한 모독이나 다름없다.

“거대 거미? 인간이 괴화한다니. 이 시점에 저딴 게 왜 나와? 어떻게 만든 거야?”

최소한 멸망의 게임 2단계 정도는 실패해야 생겨나는 그런 괴물이다. 괴물의 인자를 잘못 받은 인간에게 오랜 시간이 흐르면, 마치 썩어 버리듯이….

“좆됐네.”

거친 단어와는 달리 처연히 미소짓는 채은아.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런 괴물이 난데없이 등장한 것도 큰일인데, 심지어 오드맨의 패스가 저것과 연결되어 있다.

이 상황이 말해 주는 것은 둘 중 하나다.

오드맨이 저것에게 잡아먹히고, 모종의 능력에 의해 패스를 탈취당했거나.

혹은 오드맨이 배신했거나.

그렇다면 두 경우의 수 중 어떤 것이 더 낫나?

“진짜 좆됐네. 히히.”

둘 모두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최악이다.

마치 용호상박이랄까. 은아는 픽, 웃었다.

전자는 다음 회차로 넘어간다고 해도, 오드맨이 다음 오드맨에게 자신의 기억을 넘겨 주지 못한다.

그녀가 알던 제임스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후자는 전자보다 조금 더 끔찍하다. 오드맨의 기억을 모두 갖고, 저쪽에 붙어 버리는 순간…앞으로의 계획이 모두 어그러지고 만다.

사실, 크로스보우 때문에 이미 죄다 어그러져서 큰 상관은 없다 싶기도 했지만…그래도 강력한 동료가 돌아선 것은 치명적이다.

“꺄아아아악!!”

“으아아악! 씨발! 뭐야!!”

타아앙─!

타앙!

“어림없을걸…그래 봤자….”

그녀는 멀리서 화를 돋구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과연 총의 나라. 돌연 시가지에 나타난 괴물을 향해 총격이 쏟아졌지만….

“────□□□□!!!”

“…에휴.”

화만 돋궜을 뿐이다.

“끄아아악!! 살려 줘!”

“이런 젠장!”

그녀는 학살극을 시작한 괴물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서둘러 돌아섰다.

근처에 있다가는 자신도 휘말릴 판.

아직 제대로 된 능력이 돌아오지 않은 시점에 저런 것과 맞섰다가는 개죽음일 뿐.

“…우선은, 오리지날한테 보고해야겠네.”

아무런 흔적 없이 사라지면 저쪽도 시민 중 하나인 본인을 찾지 못할 터.

“내일 1면은 따 놓은 당상이네.”

여기선 군대에 맡겨 놓도록 하자.133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