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 스트리머가 너무 강함-132화 (132/143)

133화 가상현실 (1)“하나의 층이라구요?”

“그렇습니다.”

잠시 시간이 흐른 후, 크로스보우는 자신이 느낀 바에 대해 설명했다.

-딱 보니까 다음 패치될 공간인듯ㅋㅋ

-크보가 또….

-가상현실이고 탑이 배경이다?

-’그 게임’ on

“저는 잘 모르겠는데….”

“세린 씨는 수평선을 본 적이 있습니까?”

“음…어렸을 때 한 번? 잘 기억은 안 나지만요.”

“이렇게 한번 말해 보죠.”

크로스보우는 다시 저 멀리 보이는 벽을 가리켰다.

“사실 지동설 이전부터, 지구가 둥글다고 생각한 사람은 있었다고 합니다. 항해에 나갔던 배가 돌아올 때면 돛부터 보이며, 수평선을 자세히 보면 직선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이었죠.”

“네…?”

-크 선생님…

-개소리 1타 강사

-참 쉽죠?(개소리)

-ㅋㅋㅋㅋ

-나 이거 알아! 지구가 편평하단거잖아!

“마찬가지입니다. 멀리 있는 벽을 자세히 보세요.”

“…아!”

그의 말대로였다. 다가가 확인했던 벽은 그 위치에선 언뜻 평평한 듯 보였지만─희미하게 안쪽으로 말린 형태.

거기에 하늘엔 태양을 닮은 조명이 존재하고, 자세히 보면 천장이 존재한다.

말하자면 거대한 원기둥 모양의 공간인 셈. 다만 어마어마하게 넓을 뿐이다.

크로스보우가 이곳을 하나의 층이라 생각한 이유는 그런 때문이었다.

“그, 그렇구나.”

이세린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일견 드넓은 초원으로만 보였던 곳이 실내 공간이라니. 누군들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럼 역시….”

“그쵸.”

둘은 얼굴을 서로 마주보곤 무겁게 끄덕였다.

“합류를 노리면서 올라가 봐야….”

“나가야겠죠.”

갸우뚱하는 이세린. 그러나 크로스보우는 다시 한번 단언했다.

“따라오세요. 우선은 나가야 합니다.”

“…에…네?”

“다시 가죠.”

“어, 어딜요?”

“벽으로.”

-?

-??? : 난 여기서 나가야겠어!

-들어올땐 맘대로여도 나갈땐 아니지ㅋㅋ

간단하다.

“설마 출입구를 찾아서 벽을 전부 쭉 훑으시려는 건…! 아니죠? 너무 넓어요.”

“당연히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다시금 시간이 흘러 도착한 공간의 끝.

크로스보우는 벽을 매만졌다.

쭈욱, 흡수한다. 이펙트가 마치, 수면 위의 거미줄이 출렁이는 듯하다.

“부술 겁니다.”

“……네?”

-???

-?????

터져 나오는 의아함.

채팅창에 표정이 존재한다면 이세린과 똑같은 표정일 터다.

그러나 크로스보우는 다시 한번 단언했다.

“조금 어렵지만 시도는 해 보는 게 좋겠죠.”

캉-!

그는 쌍검을 빼들었다.

***

콰앙!!

이제 와서 하기에는 늦은 말이지만, 캐릭터 ‘단서라’는 정말 잘 디자인된 캐릭터였다.

그럴 만도 했다.

캐릭터 제작자인 스트리머 단서라는 올오버의 시작 때부터 올오버에 몸 담아온 게이머.

그것도, 방송에 복귀하자마자 그랜드마스터로 떨어졌던 계급을 금방 오버로드까지 올린 실력파 게이머다.

사정거리가 짧은 캐릭터의 단점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

스킬, ‘카운터 스트라이크’의 존재가 그랬다.

데미지를 입어야만 강력해진다는 컨셉의 스킬은, 원거리 공격수의 방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제격.

물론 발상 자체의 희소성은 조금 떨어지지만…조건부로 강해지는 스킬은 보통

콰아아아앙!!!

어마어마한 화력을 가진다.

-언제까지 때리냐

-ㅋㅋㅋ일진 크로스보우

-시끄러워!!!

-맨손노가다꾼 크로스보우

다만 문제는 벽에 전혀 손상이 없다는 것.

-되겠냐고 아ㅋㅋ

-분노조절장애

-신개념 샷건ㅋㅋ

-최소한 같은 곳을 쳐야지

“…크보 님?”

오랜만에 훈수충들의 등판.

그러나 크로스보우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냥 가격하는 걸로는 파괴는커녕 흠집 하나 남지 않겠다는 것 같은 사실은 이미 첫 일격을 날린 순간 깨달았다.

“저…안 될 거 같은데….”

“….”

그리고 더 나아가 깨달은 사실.

충격을 가하는 순간순간마다, 벽 내부에서 느껴지는 에너지의 흐름이 파동이 되어 흩어져 나간다는 것.

부딪히는 성력의 충격량을 주변으로 분산시키는 모습.

분산에는 일정한 ‘길’이 있는 것 같다.

물론 보통 인간의 감각으로 느끼기엔 복잡한 경로였지만….

‘보여.’

이쪽은 공감각이라는, 감각의 예민함만 따지자면 인류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능력을 탑재한 인간.

수많은 ‘길’ 중에서 취약점을 찾는다.

어렵지 않아.

집중만이 필요할 뿐.

콰아아앙─!!

[‘ㅋㅋ루크봉삥빵’님이 1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지금 뭐하는거에요?

후두둑.

살짝 쏟아지는 먼지 아래서 크로스보우가 대답했다.

“글쎄요…혹시 여러분은 수박 고를 때 어떻게들 하십니까?”

-갑자기?

-통통 치죠

-근데 직원들도 잘 모른다던데ㅋㅋ

-수박똥꼬를봄

-(차단된 채팅입니다.)

-이왜차단?

-매니저 머리가 썩었네ㅋㅋ

“통통 친다. 그쵸. 그거랑 비슷합니다.”

-??

-????

-농협명절알바 크로스보우ㅋㅋ

슬슬 결과가 보인다.

쿠아아앙!!

‘찾았다. 역시.’

이렇게 거대한 구조물에, 작은 약점 하나 없을 리 없다.

“…어? 방금 뭔가 소리가.”

-ㅇ?

-아ㅋㅋ안된다고~

“물러나세요.”

찾았다면 다음은 공략이다.

크로스보우는 호흡을 들이켰다.

───콰아아아앙!!

“꺄악…!”

“쉿.”

이번엔 때리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벽 내부가 충격량을 흩어내는 순간, 손을 붙이고…!

“흡!”

흩어지는 에너지를 다시 빨아들인다.

크로스보우는 문득 떠오른 드립에 대충 입을 열며 소리쳤다.

“성대법!”

-?

-?

-?

-ㅋㅋㅋㅋㅋ

무수한 갈고리의 요청.

흩어지려던 성력을 모아서…’절대방어’ 스킬을 구축한다!

스킬이 생성되는 목표지점은 벽의 내부.

허공과 금속이라는 매질의 차이는 잠깐 제쳐 둔다.

손상을 가할 수만 있다면 무슨 결과가 나오든 상관 없으니까.

그리고 정적.

“……”

“….”

“음…크보 님? 아무 일도 없….”

그때였다.

콰드드드득─!

무언가 갈라지는 듯한 들려왔다.

쩌적─!!

“없…는, 데…?”

-????

-아니 이게 된다고?

-아니ㅋㅋㅋㅋ

-쉬벌 뭐여

-또 ‘크보’했다

그 반응들과 함께.

쩌저저저저저적───!!!

벽에 생기는 균열이, 온 공간을 달리기 시작했다.

“됐다.”

나직하게 중얼거리는 크로스보우.

그때였다.

[SYSTEM]치명적 오류 발생!!!

[SYSTEM]알 수 없는 인과의 발생 : ??? ? ? ???

시스템 메시지가 눈앞을 메웠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만. 거기까지.]

문득,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트리키 뷰 방송모듈이 종료 되었습니다.]

다음 순간, 크로스보우는 어디론가 날아와 있었다.

지하인가. 서늘하다.

[어떻게 한 거지?]

사실, 이런 반응을 원했다.

크로스보우가 노린 것은 정말 벽의 파괴가 아니었다.

파괴행위를 보였을 때, 어떤 반응이 터져 나올지에 대한 것을 알아보려는 작업.

시스템이든, 오리지날의 반응이든…혹은 어떤 변화든간에, 단서를 모아야 뭐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파악할 수 있다.

그렇기에 벌였던 일.

“글쎄.”

크로스보우는 주위를 돌아보며 말했다.

어느새 초원으로 보이던 공간은 없다.

그는 지하의 어느 공간에 소환되어 있었다.

어슴푸레한 푸른색 빛이 싸늘한 곳.

[대답해. 크로스보우. 어떻게 한 건지.]

당황한 탓에 아바타를 바꾸는 것도 잊은 걸까.

오리지날은 또다시 얼굴이 엉망인 모습의 어린아이였다.

“어쩌고고 자시고.”

어깨를 으쓱이는 크로스보우.

[…지금 네가 무슨 짓을 한건지 알아? 방금 넌, 나조차도 도달한 적 없는 지점에 도달한거야.]

“고작 그깟 게? 게다가 네 말로는 네 능력으로 재현한 공간에 지나지 않나?”

[권능 - 복제는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야. 내가 경험한 것이라면 거의 전부를 그대로 만들 수 있다. 그리고…네가 한 파괴행위는 내가 한 번도 겪어 본 적이 없는 일이야.]

“그거 참 대단하군.”

오리지날의 입술이 달싹였다.

동공은 오락가락, 자세히 보면 손을 떨고 있다.

완벽한 당황 상태.

[올오버를 만들고 처음 겪어 보는 일이다. 시스템에 자료가 없어서 튕긴 거야.]

“또다른 현실이라더니? 현실에도 튕기는 게 있나?”

크로스보우는 피식 웃으며 의자를 끌어당겼다. 차가운 이 공간에는, 얼어붙은 듯 보이는 철제 의자가 몇 갠가 존재했다.

[…크로스보우. 대답해라. 너는 누구지?]

“뭐라는거야. 꼬맹아.”

[대단하다는 말로 끝날 게 아니야. 네가 한 일은.]

의심하고 있군. 당황한 나머지 그걸 감출 생각조차 못하는 모습.

─어느 정도는, 의도한 모습이었다.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끌려다니기만 할 수 없으니까.

제대로 된 사실도 밝히지 않은 이에게 힘을 보탤 이유는 없었다.

설령 종말이 실존한다고 해도 마찬가지.

지금까진 다만, 흘러가는 상황과 본인이 느껴왔던 의구심 탓에 그녀의 말을 대부분 믿어왔지만, 이제는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오늘 같이 제멋대로 굴도록 내버려 둘 순 없다. 준비해온 방송컨셉을 멋대로 망치다니.

[네가 부순 구조물은 그리 간단하게 부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간단한 발상에 내가 미치지 못했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

“호오.”

[그 복잡한 회로를 전부 파악해서 단 몇 번 만에 취약점을 밝혀냈다고? 아무런 장비도, 무엇도 없이 단지 충격량을 가하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되던데.”

여기서 시청자들이 있었다면, 아마 ??? : 되는데요 같은 채팅이 올라오지 않았을까.

크로스보우는 잠깐 든 생각에 피식 웃었다.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 크로스보우. 수십만 번. 말이 수십만 번이지 내가 보내온 시간이 몇 년이라고 생각해? 그딴 게 가능하다면 너는 이미…이미….]

“….”

익숙한 모습이다.

크로스보우는 머리를 잡고 비틀대는 오리지날을 보며 생각했다.

스스로가 쌓아온 것을 부정당한 인간의 전형적인 반응.

예전에는, 매번 봐 온 반응이었다. 그가 가진 폭력적인 재능은 다른 누군가가 느끼는 자괴감의 원천이 된다.

“…그런 것보다 할 말이 있지 않나?”

다만 위로를 해줄 상황은 아니다.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따로 있었다.

크로스보우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할 말?]

“뭔가 이상하다고는 생각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자면, 그래.

더 원 그라운드.

그 게임이 망하기 시작했던 때부터다.

“지금이야 올오버 본사 따위로 부르고 있지만…올오버의 제작사는 레드홀이란 회사였다.”

그리고 그곳은, 더원그라운드를 만든 제작사를 모기업으로 두는 곳이었다.

블루콕과 레드홀이다.

당시엔 그냥 장난스런 네이밍의 일종이라고만 생각했지만…아마 레드홀이란 균열을 뜻한 거겠지.

“그리고 나는 더 원 그라운드의 파트너 스트리머였다. 당연히 본사에도 방문한 적이 있다.”

[….]

“그때 봤던 광경은 꽤 괜찮은 회사라는 이미지였어. 가상공간도 아니었고, 게임 페스티벌에도 매번 참가하는 회사.”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이거다.”

내부를 천천히 걷던 크로스보우가, 오리지날을 돌아보았다.

곧, 그의 입에서 나온 말에 그녀가 표정을 굳혔다.13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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