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 스트리머가 너무 강함-135화 (135/143)

136화 이 몸 등장 (1)“그게 가당키나 한 소립니까?”

“아, 아니 그게.”

대충 설명을 전부 들은 크로스보우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도와줄 사람이 없다. 그래서 희생을 감안하고 자신을 이곳으로 불렀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현대과학의 이치를 전부 부정하는 것 같은 짓을 시도하여 성공했다는 것은 둘째치더라도, 요구사항이 너무 거창했던 것이다.

“택배 기사님. 저는 게임에 미친놈이지만 현실과 게임은 구분할 줄 압니다.”

“…그렇지.”

게임 속 아바타도 아니고, 아무런 레벨업도 안전장치도 없이 저걸 잡으라고?

크로스보우는 뉴스방송으로 송출되고 있는 괴물의 면면을 다시 한번 살폈다.

군대와 대치해도 아직까지 살아있는 모양인데, 최강대국이라는 미국에서 난장을 피운 것치고는 멀쩡한 모습이다.

파괴력뿐만이 아니라, 지능이 있다는 반증.

그렇다면 이건 그냥 가서 뒈지라는 소리지 않은가.

“게다가 사전협의도 없던 상태에서…막말로 제가 밖이었으니까 망정이지, 씻고 있기라도 했으면 어쩌려고 그럽니까?”

제멋대로 소환해 버린 것도 문제였다. 올드버전의 채은아가 사용한 방법이 뭔지는 모르지만, 합법적인 방법은 절대 아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분쟁에 휘말리고 싶진 않았던 것.

“그런 건 괜찮을거야. 어차피 곧 사소한 거에 신경쓸 상황이 아니게 될 테니까.”

“….”

크로스보우는 눈을 깜빡였다. 삽시간에 정상화되는 시야 속에서 그는 미심쩍은 눈초리로 채은아를 바라보았다.

-(크보쨩핥짝의 귓속말) : ????

-(크보쨩핥짝의 귓속말) : 뭐임…?

‘이것도 문제란 말이지.’

갑자기 사라져 버린 크로스보우를 찾기 위해 방송에 들어왔을 매니저. 같은 채은아지만 이쪽은 종말이니 하는 것과는 전혀 연관이 없다. 크로스보우의 팬으로서 오랜 기간 활동해 왔고, 그렇기에 매니저가 되었을 뿐.

그런 사람이 자신과 똑 닮은 누군가를 다른 곳에서 보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심지어 흔히 말하는 닮은 수준이 아니라 정말 똑같이 생긴 사람이었다.

‘보통이라면 이게 진짠지부터 의심하겠지.’

“…뭐 그건 그렇다 칩시다.”

문제는 아직 한참 남았다.

크로스보우의 방송엔 그녀뿐만이 아닌, 수많은 인원들이 몰려들어 있었다.

자타공인 가장 인기 있는 개인방송인, 크로스보우.

그 탓인지 갑작스런 방송에도 벌써 만 명이 넘는 시청자라는 쓸데없는 기염을 토하고 있던 것.

[현재 시청자 수 : 10,213명.]

방금 막 방송이 켜진 것을 생각해 보면 엄청난 숫자였다. 그의 팬을 자처하는 고정층. 아마 커뮤니티 활동도 활발한 이들일 터다.

‘…변명…할 수는 없나.’

크로스보우는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는 척 보기에도 상당히 심각한 안건이다. 사상자 역시 발생했을 게 분명해 보였다.

그렇다면 이 뒤로는 몰카였다느니, 장난이었다느니 하는 변명이 통하지 않을 것이다.

인명이 죽어나간 사건을 가벼이 여겼다는 여론이 대세가 되겠지.

‘…외통수인가…잠깐.’

잠시 생각하던 크로스보우.

‘아니. 아니지. 오히려….’

그는 불현듯 떠오르는 아이디어에 눈을 빛냈다.

이대로 방송을 종료해도, 별다른 문제 없이 방송을 계속할 수 있을 만한 아이디어.

갑자기 미국에 나타난 것도 책 잡히지 않을만한 방법.

물론 갑자기 떠올린 방법인만큼 허점이 있겠지만….

‘괜한 일에 휘말리는 것보단 낫겠군.’

크로스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

-뭔데 해명하고 가라

-세트장 빌려서 뭐 몰카하는거임??

-그게 가능함? 괴생명체가 미국 때려부술 걸 어케 미리알어;

-뭐든간에 이거 좀 위험한데

-해

-명

-해

-해

-겜방비제이수준ㅋㅋㅋ잘가라 멀리 안간다

-크보님도 생각이 있겠죠; 고나리질 자제좀

아니나 다를까. 삽시간에 불 붙은 민심.

다만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크로스보우는 또렷한 눈동자로 말했다.

“사랑하는 시청자 여러분. 좋은 주말 되시길.”

이렇게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 참. 오늘 일은 저희끼리만 아는 비밀입니다.”

-??

-아ㅋㅋ크하다 추보야!

-???

-비밀(유행)

-ㄹㅇㅋㅋ

여전히 불타는 채팅창.

그러나 많은 시청자들이 채팅을 잠시 멈췄다.

그도 그럴 게.

‘뭐지?’

‘또 뭔가 보여 주려는 건가?’

길다면 긴 기간동안 방송을 봐 온 시청자들에게 있어, 그 말은 또다시 기상천외한 짓을 저지르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

“…어쩌려고 그래?”

그 모습을 옆에서 본 택배기사.

크로스보우는 헷갈리니까 그녀를 대충 ‘늙은아’라고 부르기로 마음먹으며 대답했다.

“그쪽이 할 말은 아닌거 같은데.”

“…미안. 저지른 인간이 할 말은 아니긴 한데, 걱정돼서….”

걱정. 확실히 그렇다.

그는 방송을 종료한 스마트폰이 마치 전동안마기마냥 울리는 것을 잠시 바라보았다. 아마 채은아와 신예지 등의 연락일테지.

“보시면 알 겁니다. 그런 것보다 저걸 어떻게든 해 줬으면 한다는 걸 들었으니, 이제 그 방법을 알려 주시죠.”

“…!”

그 말에 눈을 반짝 빛내는 늙은 버전의 채은아. 에전에 관찰할 때부터 생각했지만, 눈앞의 남자는 배려심이 깊으면서도 시원시원한 맛이 있었다.

“간단해. 올오버에서 각성구 한번 먹어 본 적 있지?”

“음. 그랬던가.”

크로스보우가 네이션스 컵에도 참전하기 전. 북미의 또 다른 참가권이라 명성을 드높이던 ‘그레이드’와의 대결.

그녀는 바로 그때를 말하고 있었다.

“그 아이템이 실제 현실을 기반해서 만들어진 건 알고 있어? 여기. 이거. 이게 각성구거든.”

“….”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동그란 구체를 내밀었다. 심상치 않은 찬란함에 눈이 절로 찌푸려졌지만, 그런 것보다는 할 말이 있었다.

“그 다음에는요? 설마 이걸 먹으면 저 괴물과 싸울 수 있는 힘이 넘쳐난다고 말할 셈은 아니죠?”

“…맞는데?”

크로스보우는 이 여자의 이마에 딱밤을 선사해 줄까 고민하다가 그만뒀다. 이게 뭐든 간에, 빛나는 유리구체 같은 걸 집어먹는다고 초인적인 힘을 얻게 된다고 지껄이는 이가 있다면 그건 약팔이거나 마약상이었다.

아니, 둘다 약팔이는 맞나?

“상세한 계획같은 건 없다는 말?”

“음. 일단 우리 뒤에 총포상이 있잖아. 저기를 털면 그래도 적당히 무장할 정도는….”

“턴다고? 무슨 강돕니까?”

“저…무서우니까 그냥 반말해 줄래?”

이게 게임인 줄 아는 건가. 크로스보우는 참지 못하고 채은아의 귀를 잡아당겼다.

“아, 아야야야…아파…미안….”

“…이거. 먹으면 무슨 부작용이 있죠? 그것도 들어야겠어.”

예상보다 시무룩한 반응이 돌아온 탓에 크로스보우는 그냥 질문을 계속했다.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이건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싶었던 것.

그렇다면 확실한 설명이라도 들어야 한다.

“음…좀 아픈 거…정도? 그냥 영약 정도로 생각하면 편할걸?”

“….”

이게 뭔 개소린가.

내심 약품 부작용 같은 것을 생각하고 물은 것인데, 어째 꿈같은 얘기가 돌아왔다.

“흐음.”

“….”

크로스보우는 고민을 이어나갔다.

과연 이 여자의 머릿속이 꽃밭인가.

그렇지 않으면 받아들이는 이쪽의 기준이 문제인가.

“늙은아 씨.”

“…느, 늙? 나?”

‘예. 늙은아 씨.”

“…차라리 스펙터라고 불러 줄래?”

“글쎄요.”

크로스보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보통, 머릿속이 꽃밭인 경우에는 하는 언행에서 티가 나기 마련인데….

이 상황을 위기로 받아들이고 있는 크로스보우의 예민한 감각에도, 아무런 반응이 잡히지 않는다.

지극히 정상적인 인간을 대하는 것 같다.

“일단 먹고 생각해 보죠. 먹고 뒤진 귀신이 때깔도 좋다는데.”

“…정말?”

“내놓으시죠.”

가타부타 더 들을 말은 없었다.

[사상자가 수백 명을 넘을 것으로 예견되며….]

한쪽에서 들리는 미국의 뉴스 방송이, 정적을 타고 흘러들었다.

크로스보우는 채은아의 품에서 각성구를 뺏어들곤 바라보았다.

‘재밌네.’

위험한 상황에 내몰린 상태.

그러나 크로스보우는 실제로 조금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게임이 현실이 된다.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었던 만큼 급박한 감정은 분명 있었지만, 그런 유아적인 흥분에서 그도 자유롭지는 못했던 것이다.

“자, 잠…! 그래서 방송 쪽은 어쩔지…!”

꿀꺽.

총천연색의 구체.

크로스보우는 그것을 꿀꺽 집어삼켰다.

“…오.”

***

그 시각 남극의 은신처.

위이이이잉─.

철컹.

“좋아. 순조롭군.”

오드맨은 기지의 보안장치를 하나하나 무력화시키며 침입해 있는 상태였다.

이곳의 정체는, 그 거대한 올오버를 유지시키는 자…오리지날의 육체가 잠들어 있는 곳.

수십만번의 회귀로 쌓아올린 테크닉이 이곳을 유지시키고, 감추며 보호하고 있었지만….

[출입자 : 꼬맹이 제임스]

[확인되었습니다.]

“…지랄. 코드명 하곤”

애초에 들락날락이 가능한 오드맨에겐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이런 실물 보안의 가장 큰 취약점은 바로 아군의 배신이니까.

“…이렇게 쉬워도 되는 건가?”

“나니까 가능한 걸세.”

옆에서 그 모습을 떨떠름하게 보고 있던 두 남녀.

모드레와 키린.

각각 자격의 방의 멤버들이었지만, 이제는 시간을 거슬러 오리지날을 쫓아온 괴물-’도플갱어’에게 몸을 잠식당한 이들이었다.

“그래도 그 오리지날이다. 이런 사태도 예견해 놓긴 했을 거 같다만….”

“글쎄. 너희들에게 붙기 전에는 내가 이곳의 관리자였네.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드나든 적도 있지.”

오드맨은 씨익 웃으며 그들을 돌아보았다.

“아무리 오리지날이 위대한 초월자 수준이라고는 해도, 올오버를 혼자 감당하고 있지. 그 사이에 무슨 장치를 더 해 놨을 거 같지는 않군.”

“…그런가.”

남극.

아래로 2키로미터.

수십만 번의 회귀동안 단 한 번도 세상을 구원하지 못했던 실패자는, 그 경계심을 보여 주기라도 하듯 깊은 곳에 굴을 파놓고 숨어 있었다.

철통같은 보안과 장치들은 그녀의 편집증과도 같았다.

다만, 수만 번을 함께한 이가 배신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던 것일까.

[인증되었습니다.]

위이이잉….

“열렸군.”

“…대단한데.”

“…그륵. 굉장….”

“이봐. 키린. 일단 말을 아끼라니까. 오랜만에 얻은 육신이 그리도 불편하던가?”

“…인간의 몸, 은…연약하다…그르륵.”

‘네놈들이 우악스러운 거겠지.’

오드맨은 자꾸 뭔가를 뱉어내는 여성체 도플갱어-키린을 보며 생각했다.

계획은 몇 번이고 확인했지만…하는 행동이 영 불안했다.

그는 환기시킬 목적으로 다시 작전개요를 전달했다.

“잘 들어라. 오늘 우리가 이곳에 온 목적은 오리지날을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멸망의 게임에 도전할 수 있는 ‘열쇠’. 그걸 가지러 온 거야.”

“흐음. 다시 한번 듣지만 이해할 수 없군. 그냥 죽여 버리면 되는거 아닌가?”

“…그륵. “

“다시 말하지만 불가능하다. 아직 지구는 ‘닫힌 세계’야. 제대로 된 이능을 휘두를 수 없지. 그렇기에 네 녀석들도 볼품없는 꿈틀이 따위로 기다리고 있던 것 아닌가.”

옳은 말이었다. 단어 선택은 불쾌하지만…모드레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덕에 지금은 육체를 얻었지만.”

“그래. 우리 모두가 힘을 제대로 쓸 수 없는 이 시점에서, 오리지날의 육체는 그야말로 이능의 결정체다. 거대한 신비와 과학. 모든 것을 총동원하여 보호되고 있다.”

그랬다. 문제는 이것이었다.

오리지날의 육신.

그 숨을 끊고 싶어도 개인이 할 수 있는 수단으론 도저히 불가능했던 것.

“오히려 적대행위를 하는 순간, 오리지날은 깨어날걸세. 어쩌면 올오버를 유지하는 것을 포기하고, 우릴 모두 죽여 버릴지도 모르지.”

“깨어난다는 게, 벌떡 일어나진 못할 거 아냐? 냉동 고기 신세라며?”

“…대략 6시간 전후쯤 걸릴 터다. 그래도 깨어난 순간 바로 우릴 찾아내서 죽일 게 분명해.”

“…그륵.”

쉽게 말하자면 이런 뜻이었다.

어차피 오리지날은 못 죽인다. 죽이려다가 역관광당한다.

그러니 멸망의 게임에 도전할 수 있게 해 주는 ‘열쇠’를 강탈하여서──

“일부러, 실패하자는 거군.”

“그래. 한 번 실패하는 순간 다원多元 에너지가 지구상에 마구 풀려날 거다. 그렇게 힘을 되찾는다면 오리지날을 죽일 수 있을 걸세.”

‘멸망의 게임’에 의도적으로 실패한다.

종말은 본래보다 이른 시간에 시작되고, 그들은 누구보다 빨리 힘을 되찾는다.

“…알겠다. 이리 들으니 괜찮군.”

“그륵.”

오드맨은 도플갱어들의 납득에 그제야 만족스럽게 미소지었다.

“그래. 알아들었으면 됐네. 이걸 위해 귀중한 아이템까지 사용하여 미국을 뒤집어 놓고 있지 않나.”

“과연!”

“그르륵!”

“….”13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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