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 스트리머가 너무 강함-137화 (137/143)

138화 이 몸 등장 (3)“아아악!!”

놀랍게도, 괴생명체는 인간같은 비명을 질러댔다.

‘…꼭 게임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군.’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온몸의 에너지가 제각각의 답을 내며 폭포수처럼 정보를 쏟아내고 있었다. 처음 겪는 감각에, 무의식이 거르지 못하는 정보량이 뇌리를 하얗게 물들이는 기분.

그러나 크로스보우는 집중의 세계 속에서, 모든 것을 관조해내었다.

그리고, 정보의 폭포 속에서 도출된 정답은 하나.

총포상에서 뺏다시피 해온 단검을 내리그었다.

“키아아아악!!!”

피가 튀어 올랐다.

“저, 저…!”

“위험합…?”

뒤에서 어안이 벙벙한 듯 들리는 반응 소리.

어디선가 나타난 복면 남자가, 두 개째 다리를 칼로 분쇄해 버린 것이다!!

총탄을 죄다 튕겨내던 그 다리를!

그러나 감탄은 길지 않았다.

“위, 위험!”

“조심해!!!”

마치 거미와 전갈을 합쳐둔 것으로 보이는 괴생명체.

꼬리가 크로스보우의 등으로 날아들고 있었던 것.

“어림없는 소리.”

그러나 통할 리 만무했다.

각성구를 삼키고, 아예 이 일대를 감각에 전부 넣을 수 있는 수준의 에너지를 손에 넣은 크로스보우였다.

그런 그에게, 지금 이 순간─사각死角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

오히려 꼬리에 올라타는 모습. 뒤늦게 그걸 알아차린 괴물이 꼬리를 털듯이 휘둘렀지만….

“느려.”

이미 그는 공중에 떠 있는 상태였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 모든 것이 느렸다.

게다가 각성구의 효능일까. 게임에서만 사용하던 ‘회색 세상’이, 현실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사용된다.

“망겜의 단차(몬스터 위에 올라타는 행위)맛 좀 봐라.”

“카아아악!!!”

이거 괴물헌터들 생각나는데.

몸을 휘감는 모든 감각이 기꺼워서, 크로스보우는 환하게 웃었다. 이게 게임은 아니란 걸 인식하고 있지만 그래도 흥이 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단검을, 괴물의 등에 마구 박아 넣었다.

“…크, 로스보우. 크로스보우…!!!”

“?”

그런데 어째선지 자신의 닉네임이 들렸다.

크로스보우란 게 실은 미국에선 살려달란 의미일까?

잠시 고민하고 있던 와중, 거미의 형체를 한 괴물에 달려 있던 목이─

끼긱, 하고 그를 바라보았다.

쐐액!

“크아아악! 누, 눈! 내 눈이!!”

“어우. 깜짝이야.”

너무 징그러운 광경에 자기도 모르게 칼을 휘둘러 버린 크로스보우.

그는 이내 머리를 긁적이며 기억을 더듬었다.

어째 기억에 있는 얼굴인데….

“…붉은 검신?”

“크로스…보우…! 크로스보…!!!!”

“틀렸다. 정의의 스타킹맨이지.”

하마터면 치밀한 계획을 방해받을 뻔했군.

크로스보우는 인간 얼굴의 형체를 하고 있던 거미에게 다시 한번 칼찌를 선사해 주며 말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보는 이들에겐 필사의 혈투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피, 피가.”

“저 사람은 대체.”

“히어로. 그는 히어로야. 뭣들 하고 있어!! 영웅을 어떻게든 도와라!!”

피를 뒤집어쓰면서까지 어떻게든 쓰러뜨리려 올라타 버티는 모습이, 오히려 숭고한 감상을 불러일으킨 게 분명했다.

‘…이런.’

그러나, 크로스보우에겐 오히려 난처할 뿐이었다. 지금껏 흠집 하나 내지 못했던 이들이, 이제 와서 합류한다고 해서 큰 도움이 될 리가 없었던 것.

오히려 방해만 되고 말 터다.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으아아아아! 죽어라! 괴물 자식!! 대니를 살려내!!”

“이, 이봐! 위험해!”

제대로 간격을 두고 있던 이들 중 하나가 붉은 검신의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오고 말았다.

미국인들의 히어로 사랑이 대단하다는 언젠가의 뉴스기사가 떠오르고 찰나.

“□□□──!!!”

기괴한 괴성와 함께 꼬리가 날아간다.

‘젠장.’

저대로면 죽는다. 크로스보우는 으득, 이를 악물었다.

될까?

세상이 더욱 느려졌다.

그는 괴물의 등을 박찼다.

그리고 다음 순간.

“으아아악!!…응?”

속절없이 몸이 꿰뚫리고 말 뻔했던 남자.

그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에 슬며시 눈을 떴다.

“허억!!”

“…뒤로 빠져.”

피가 흐른다.

모두 복면 쓴 영웅의 손에서 흐르는 피였다.

크로스보우가 양손으로 꼬리를 멈춰 세운 것.

“다, 당신…고, 고마워!”

“빠져. 얼른.”

꽈드득.

크로스보우는 지금의 그가 다룰 수 있는 모든 다원에너지를, 버티는 데에 쏟아 부으며 중얼거렸다.

“말도, 안돼.”

“…그야말로 슈퍼 히어로. 그는 영웅이야.”

얼빠진 반응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크로스보우는 그런 것들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괴물에게 밀리지 않도록 힘을 쏟아 붓는 것에 힘껏이었기 때문.

자신이었다면 그냥 피해 버리고 말았을 일.

이런 방식의 싸움은 영 성미에 맞지 않는다.

뭣보다, 손바닥이 아프다.

“이봐!!! 뭔가 좀 해 봐!!!”

“이제 됐어. 기다리게 해서 미안!!!”

힘을 겨루고 있는 상태.

잠시 회복에 전념하던 채은아가 나섰다.

공중에 뛰어오른 그녀의 팔.

철컥!!

평범하게 달려 있던 완력 보조 장치가, 어째선지 탄피를 뱉어냈다.

전력을 다한 주먹이 휘둘러진다.

────콰아앙!!!

“카아아아악!!!”

“…저들은, 대체.”

그 모습들이, 후방에 자리한 에이미의 카메라에 녹화되고 있었다.

***

[놀라운 일입니다! 한 명의 남자가 빗발치는 총알을 뚫고 뛰어들었습니다!]

[사격을 멈출 새도 없죠! 이 슈퍼히어로는 대체 뭐하는 인간일까요!]

"…."

한국.

신예지와 채은아는 빠르게 마트에서 다시 크로스보우의 자취방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방송 주인이 돌연 사라져 버린 터라,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발걸음이었다.

"…크보 님. 저거 크보 님 맞지?"

"지금 오빠한테 걸면 국제전화로 연결되긴 하는데…잘 모르겠어."

예지의 말에 채은아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까부터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의 투성이였던 것이다.

"…."

"…괜찮을 거야."

혼란은 단지 타지에서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낸 크로스보우에 관한 것 때문만이 아니었다.

'분명 나…였어.'

누가 봐도 자신과 같은 외모의 여자.

그녀는 방송용 드론에 잠시 비쳤던 모습을 떠올렸다.

아마 자신이 몇 년 더 나이를 먹으면 그런 모습을 하고 있겠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똑 닮은 얼굴이었다.

잘못 본 게 아니다.

여자를 본 순간─ 터져나온 채팅창의 반응이 그를 반증한다.

"…도플갱어. 그런 걸까."

"글쎄."

채은아는 신예지의 말에 중얼거렸다.

아마 크로스보우가 말했던 멸망의 게임과 관련된 것일까.

이번엔 대체 얼마나 위험한 곳에 손을 댄 건지, 알 수조차 없다.

미국 한복판에서 괴생명체에게 달려들다니. 그가 무슨 히어로는 아니지 않은가. 객관적으로,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지금껏 크로스보우라는 이름이 몇 번이나 전세계의 이목을 잡아당긴 것은 맞지만…그것은 모두 가상현실에서나 일어난 일.

결국 그의 정체성은 겜잘스.

게임 잘하는 스트리머에 불과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없지."

신예지의 질문에서, 채은아는 오묘한 감각을 느꼈다.

어쩌면 자신이 지금 혼란스러워하는 것이 다른 이유가 아닌, 크로스보우라는 남자를 걱정해서일지도 모르겠다고.

이 무력감은 사실 다른 게 아니라 저 남자를 돕지 못하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일지도 모르겠다고.

그걸 자각하는 순간, 채은아는 얼굴에 열이 확 오르는 걸 느꼈다.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처음엔 분명 단순한 팬심에서, 그것보다 더 전에는 단순한 승부욕에서 시작되었던 관계였는데.

‘언제부터 누굴 걱정하는 성격이었다고,’

애초에 냉소적이고 염세적인 자아를 가진 그녀에게 있어, 타인의 사정이란 코웃음치고 넘어가는 종류의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저 남자에게는 다르다.

“…크로스보우.”

그럴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모든 게 남달랐으니까.

채은아. 25세.

날아가는 표적을 쏘는 스키트 종목의 사격선수였던 이.

그녀의 정체는 다름 아닌 엘리트 체육인이었다.

지금처럼 크로스보우의 매니저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은 은퇴한 탓.

그리고 은퇴하게 된 것은, 엘리트 체육계에선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폭력사건이었다.

지속된 구타로 인해, 양팔에 문제가 생겨 버렸던 것.

다행히 일상생활에는 문제가 없는 수준까지 회복되었지만….

‘사격은 무리였지.’

어렸을 때부터 이어 온 선수 생활.

남은 것이라고는, 은퇴할 때 거액의 배상금을 받은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노력했는데.

실력만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세상엔 실력만으로 되지 않는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하여, 미련만이 남아 하루하루 게임 속 적들이나 쏴대고 있던 나날.

크로스보우를 만났다.

은퇴했지만, 자존심은 남아있었다. 그렇기에 그를 처음 봤을 때는 코웃음 쳤다.

일개 스트리머가 선수단 출신의 자신보다 더 랭킹이 높다니. 말도 안 되지. 만나기만 하면 무조건 자신이 이길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졌다.

말도 안 돼. 핵인가?

그런 마음에 방송을 시청하기 시작했다.

아니었다.

깨달으니 그의 방송은, 어느새 그녀의 하루하루가 되어 있었다.

크로스보우라는 인간, 그 자체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무슨 일에도 꺾이지 않는 멘탈. 그 누구의 의견에도 휩쓸리지 않고, 모두가 안된다고 할 때 가능성을 보는 눈.

‘…조금 더 일찍 만났더라면.’

그랬다면 자신의 인생도 달라졌을까. 채은아는, 몇 번이나 쓸쓸히 되뇌어 왔던 말이 다시 한 번 속내에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흘러, 더 원 그라운드 내에 핵쟁이들이 넘쳐나던 때.

채은아 역시 학을 떼며 게임을 접을 때.

모두가 더원그라는 게임에 미련을 버리고 있었는데, 크로스보우는 달랐다.

그들을 상대로 꾸역꾸역 플레이 시간을 쌓더니 어느 순간부터 핵쟁이들을 압도해 버리기 시작했던 것.

그때부터였다.

‘….’

완전히 빠져들었다.

거기까지, 생각을 정리한 채은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더 이상 제 마음을 부정하지 않았다.

“뭔가.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자신은 명백히, 저 남자를 어떻게든 돕고 싶다.

그때였다.

돌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system]‘단초’가 시작됩니다.

[system]게임이 시도됩니다.

[system]모든 지성생명체에게 같은 권한이 주어집니다.

[system]‘스테이터스’라 말하십시오.

시야에 뭔가 가득 떠올랐다.

“?”

“…뭐야. 지금?”

채은아는 멍한 표정이 되어 신예지를 바라보았다.

“나만 보이는 거 아니지?”

“…응.”

게임과 닮았다.

알림창도, 말투도.

올오버를 빼다박은 느낌.

“…스테이터스?”

한 마디 하는 게 어렵지는 않다는 생각에, 채은아와 신예지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떠오르는 문자열에 숨을 삼켰다.

***

“젠장. 젠장. 젠장!!!”

오리지날은 소리를 지르며 머리를 마구 쥐어뜯었다.

말도 안 돼.

제발. 거짓말이라고 해줘.

당장 올오버를 중지하고, 나가야 한다.

본래보다 근 1년 빠른 시점.

이 시점에 멸망의 게임이 시도되면 안 돼.

“제임스. 제임스!!!!!”

그녀는 책상을 내리쳤다.

[SYSTEM]올오버를 즐겨주시는 플레이어 여러분!

[SYSTEM]잠시 긴급점검이 있을 예정입니다. 오늘 입으신 손해는 모두 보상처리되니 안심하시고 로그아웃 하시길.

[SYSTEM]또 다른 현실, 올오버는 당신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전세계적인 게임이, 긴급 점검에 들어갔다.13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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