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이 몸 등장 (6)데쟈뷰.
어떠한 사건, 광경을 보았을 때 그것을 이미 접한 것처럼 느껴지는 현상.
강력한 기시감이 다리 위 사람들을 뒤흔들고 있었다.
아직 얼마 지나지도 않은 일.
광안대교, 떨어지는 오크, 그걸 막으려는 초능력자 같은 인원들. 저 멀리 보이는 해변가-.
그리고─…크로스보우.
“…크로스보우? 점마 크로스보우 아이가?”
분위기를 깨버리는 누군가의 중얼거림에도, 사람들은 미동도 하지 못했다. 전신을 달리는 소름이 모두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크로스보우는 어쩐지 유쾌해진 기분에 푸하하, 하고 웃어댔다.
“될 줄은 몰랐는데.”
그랬다.
상황이 급박하니까 일단은 집어던지고 봤는데─.
결과는 원하던 대로.
멀리, 오크의 머리통이 터져 있었다.
꿈틀거리는 팔다리가 방금 받은 공격의 충격량을 알려 주는 모습.
돌연 나타난 상태창에는 제대로 된 설명이 나와 있지 않았기에 더욱 그랬다.
“…대체.”
옆에선 블래드가 아연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크로스보우 자신이 생각해 봐도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 던질 만한 속력과 비거리가 아니었던 탓이다.
“형…지금 어떻게 한 거야. 무슨, 초능력자라도 되는 것처럼….”
“글쎄다.”
크로스보우는 픽, 웃었다.
지금까지 차량을 밟으며 함께 뛰어다닌 블래드가 할 말은 아니지 않나.
“가능한 거야? 그런 게?”
아직 현실감이 떨어지는 모양이었다. 크로스보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문득 자신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블래드. 내가 말했지.”
“?”
“네 생각을 믿어라. 게임에서만큼은-물론 지금은 게임이 아니지만. 아무튼 네가 진짜 전문가니까.”
“…!”
그제야 눈을 크게 뜨는 블래드.
똑똑한 녀석이니까, 이 정도만 해도 알아듣겠지.
“크우에에엑!!”
아직 더 온다.
답은 광안대교를 지키는 것.
크로스보우는 다리 한복판을 막아섰다.
다만 이 자리에 있는 운전자들이, 상황을 파악하고 이탈하길 바라며.
“스킬 발동. 해방解放.”
[system]스킬 : 해방이 시전됩니다.
[system]주의하십시오. 후유증이 존재하는 고위험 스킬입니다.
다음 순간.
크로스보우는 달려나가 또다른 오크의 머리통을 일격에 부숴 버렸다.
***
‘…나를 믿으라고?’
크로스보우의 충고.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블래드는 그제야 제 손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면.’
게임이 아니다. 가상현실 따위가 아니다.
그런데 마약처럼 몸에 스며드는 이 기운은 대체 뭐─
‘마나?’
그래. 그것과 닮았다.
마치 게임 같은 감각.
‘아니. 마나가 아니야. 이건….’
마나보다 훨씬 응집되어 있고, 촘촘한 것.
정수.
블래드 자신이 직접, 크로스보우를 상대하기 위해 만들었던 대對 크로스보우 캐릭터.
그 캐릭터가 가진 기반에너지가 아닌가.
그는 어제부터 보이기 시작하는 소위 ‘스테이터스’창을 살폈다.
[이정혁]
[기반 : 정수]
[스킬 : 감각 증대(S)-잠김, 다중 캐스팅(S)-잠김, 깨지지 않는 방패(S)-잠김, 구체 폭발(A)-잠김, 초강화(A), 정수의 손아귀(B), 소형미사일 사출(C)]
[능력치 총합 평가 : S]
블래드는 저도 모르게 입을 헤 벌렸다.
“이게…진짜라고?”
처음엔 막연히 이게 무슨 환각인가 싶어서, 하루 자고 일어나면 안 보이겠거니 생각했던 블래드.
그럴 수밖에 없었다.
스킬을 사용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
블래드로서는 알 길이 없었지만, 그때까지 아직까지 균열이 일어나지 않아서-여전히 닫힌 세계인 지구에 스킬을 사용할 만한 충분한 에너지가 쌓이지 않아서 벌어진 일.
콰아아앙-!!
“크욱…크웨에엑….”
힘차게 날아가, 다리 난간에 부딪히는 오크.
블래드는 멀리, 싸우고 있는 크로스보우를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호흡을 정돈한다. 이 상황을 ‘진짜’로 받아들인 신체에, 심장이 혈액을 보내려 미친 듯이 펌프질하는 게 느껴진다.
“블래드!! 던진다아-!”
쐐액-.
그 순간, 저 멀리서 날아오는 검.
블래드는 저도 모르게 그걸 잡았다.
분명, 상당한 속도였는데도.
“……초강화.”
[system]스킬 : 초강화가 시전됩니다.
블래드의 눈이 똑바로 떠졌다.
어느새 크로스보우가 싸우는 곳을 기점으로, 시민들이 차량으로 바리케이트를 만들어 놓은 모습.
광안대교 위의 균열. 그곳에서 떨어지는 몬스터들이 차근차근, 정리되기 시작했다.
***
크로스보우, 그리고 블래드가 벌이는 대 몬스터전을 보고 있던 이들.
그 사람들의 몸을 타고 흐르는 전율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다리 초입부터 들려오는 커다란 경적소리.
그리고 멈추지 않는 주행.
부우우웅─.
빵! 빠아아앙!!
어느새 나타난 거대한 괴물의 모습까지.
───■■■■■■!!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가슴을 웅웅-울리는 괴성을 지르는 용 형태의 괴물.
그것의 정체를…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만큼, 이제부터 벌어질 장면이 너무나도 유명한 장면의 데쟈뷰였기 때문.
“…저거.”
“그거잖아. 드레이크.”
“진짜…말도 안되잖아.”
“오빠. 오빠. 도망가야하는거…”
마치 그 자리에 붙박이가 된 것처럼, 자리를 뜨지 못하는 시민들.
본래는 경찰차였을 차가, 현실에선 벤으로 바뀌어서 달려오고 있었다.
크로스보우는 그 폭력적인 소리를 들으며 그저 미소지었다.
아마 저 차량을 운전하고 있을 이는 프로게이머, 카운터.
그가 타이밍을 맞출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는다.
“바리케이트 좀 살짝 치워 주세요.”
단지, 차량이 막고 있는 곳으로 가 그렇게 말할 뿐.
급박한 상황.
한 치 앞으로 다가온 차의 모습에, 크로스보우는 블래드에게 속삭였다.
“실드 스킬. 위로 비스듬하게.”
“…! 그 스킬, 아직 잠금…!”
“잠금이 어디 있어.”
그는 그의 팔을 꽉 잡았다.
“그냥, 발동해.”
“…스킬, 깨지지 않는 방패!”
[system]사용할 수 없는
[system]정정 : 외부 조건에 의해 발동 가능.
반짝.
점프대가 생성되었다.
“간다아아아아!!!!”
부웅-!!!
크로스보우는 날아오르는 차의 하단부를 한 대 후려갈기며 외쳤다.
“지금!! 뛰어내려!!!”
실드 스킬을 발판삼아 날아가는 차.
크륵-…?
그리고, 그 장면이 자리의 모두에게, 또 한 번 강렬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마지막으로.
콰아아아아앙────!!!!
폭발이 번쩍, 사람들의 눈을 찔렀다.
이게 균방전이었다면.
아마 종합 랭크 SSS를 받지 않을까.
그 정도로 완벽한 폭발.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바다로 떨어지는 카운터를 바라보았다.
형. 해냈어.
엄지를 척 들며 웃는 카운터.
크로스보우 역시 엄지로 호응해 주며, 마무리를 위해 달려들었다.
***
“오빠!!! 괜찮아?”
채은아와 신예지가 합류한 것은 그 뒤였다.
드레이크를 어떻게든 처리하고, 남은 잔당들을 처리하고 있던 시점.
“주, 죽어라!”
“마!! 니 뜨겁나!!”
제대로 된 회귀 버전의 힘을 보여 주겠다는 듯 날뛰는 스펙터. 그리고 뭔가 귀여운 힘을 발휘하는 시민들을 뒤로한 채 달려온 둘.
가방 가득하게 뭔가를 챙겨온 모양이었지만…여기까지 도착하는 데에 오래 걸린 모양이었다.
“지금 왔는데 미안하지만 자리를 좀 뜨자.”
“…응?”
“이번에는 운좋게 막았을 뿐이야. 계속 이러리란 법이 없어.”
모두가 전투의 흥분에 허우적대고 있을 시간에 내려지는 냉정한 판단.
그랬다.
굳이 얼굴을 복면으로 가리고 온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던 것.
게임 시스템이 현실이 되었다고 한들, 현실은 여전히 현실이다.
이 정도의 재난이 벌어졌는데, 그걸 사전에 알고 막아 낸 이들.
대체 어떤 접촉이 쏟아질지 모르는 일이다.
“희생자는 반드시 나와. 이번 일을 틀어막은 것도, 사실상 시스템을 잘 알고 있는 프로게이머들까지 동원한 덕이니까.”
“….”
첫 번째 균열을 방어해 낸 것만으로도, 조금이나마 이런 사건이 벌어질 거라 먼저 알고 있던 입장의 의무는 다 했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는 세상이 더 끔찍해질 거야. 적어도 몇 년 동안은.”
“…그런.”
그렇다면 이제 해야 할 일은, 대비하는 것.
크로스보우는 블래드에게 슬쩍 눈짓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여길 어서 벗어나야…!”
“…근데, 어떻게.”
돌연 닥친 심각한 일에 당황한 그녀들.
크로스보우는 피식 웃으며 어깨 동무를 했다.
““…?””
그리곤 뒤로, 쭈욱 잡아당겼다.
“꺅?”
“어어어? 뭐임!”
뭐긴 뭐야.
입수지.
크로스보우는 그들을 꽉 잡고 그대로, 광안대교 밑으로 떨어져내렸다.
풍-덩!!
“푸핫! 어푸푸! 무, 무슨 짓…!!”
코로 물을 잔뜩 먹은 신예지가 항의하려고 하던 때, 그들 앞으로 구명 조끼가 던져졌다.
“오우. 슈미츠. 쓸모가 있구나. 너도.”
“…흥.”
그들을 데리러, 보트를 타고 온 슈미츠였다.
은근히 무시당하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슈미츠는 팔짱을 꼈다.
***
[드레이크 진짜 나타남ㄹㅇ구라아님.gif]
-아ㅋㅋ킹룡이 왜 나오냐고ㅋㅋ
└;;;개소름 돋네진짜
└뭐냐? 합성아님?
└아니;; 균방전이냐고
[실시간 광안대교.jpg]
-미국에 나타났던 복면 쓴 남자가 또 왔다고 함
└진짜 뭐냐ㄷㄷㄷ
└저거 크로스보우라고 하지 않음??
└정의의 스타킹맨이라던데 CMN피셜
└그게 뭔데 씹덕아
[요즘 상황 진짜 뭐냐;;;]
-미국엔 뭔 인간거미 같은게 나타나도 한국에는 누가봐도 오크랑 누가봐도 고블린이랑 드레이크까지 나온다고?ㅋㅋ아예 그냥 크보가 퇴치했다고 하질 그러냐
└짜잔~ 진짜 퇴치했습니다
└ㅋㅋㅋㅋㄹㅇ인게 유머네
└세상이 어케 돌아가는거냐 내가 틀딱인거임??
당연한 일이지만, 난리가 났다.
커뮤니티뿐만이 아니다. 정부, 언론, 모든 기관을 관통하는 이슈였다.
“그러니까, 지금 저게 게임에 나오는 괴물이란 거요?”
“…그렇습니다. 각하. 비서실에서도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그 유사성 정도가….”
“이…뭔….”
“어떻게든 컨택해!! 누가봐도 크로스보우잖아!!! 지금 밥이 입으로 넘어가냐?”
-“저…그게, 크로스보우 측은 ‘자신과 스타킹맨은 상관없는 인물’이라고 해서….”
“이런 개같은!!”
진상규명.
모두가 그것으로 미쳐 날뛸 때, 크로스보우의 일상은 단조로웠다.
“…역시 답은 통조림 햄인가?”
“으음…왕도긴 한데….”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그저 대비하고 있을 뿐이었다.
스트리머 생활을 하며 모아둔 돈은 꽤 풍족한 상황.
발빠르게 적당한 쉘터로 쓸만한 지하실을 매입해서, 이런저런 재난 대비 물품을 채워넣고 있었던 것.
“…한 달 남았다며.”
“그렇지.”
멸망의 게임.
다음 도전까지 남은 시간 한 달.
그러나 크로스보우는 어깨를 으쓱이고 말았다.
지금 상황에서 어쩔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 것.
그저, 다음 시도 때에 열리는 ‘진입로’에 오드맨과 함께 들어가는 방법밖엔 없다.
그리고 아마, 오드맨도 이 사실을 알겠지.
“…함정일 거야.”
“그렇겠지.”
크로스보우가 찾아오면, 죽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142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