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을 주는 라면 한 그릇 (1)
“사장님! 여기 이슬이 두 병이랑 골뱅이 소면 하나요!”
“예~.”
왕호는 손님의 주문을 받자마자 조리에 들어갔다.
왕호는 요리사다.
아니, 요리사였다. 지금은 한강변 작은 포장마차에서 안주를 조리해 판매한다. 작은 포차지만, 어쨌든 요리를 하니 요리사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셰프의 칭호를 붙일만한 수준의 요리는 아니다.
“거, 손 하나는 빠르네. 레스토랑에서 일했다며? 요리 실력은 안 늘고, 요리하는 속도만 늘었군그래.”
최 영감이 바쁘게 움직이는 왕호를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찼다.
포차의 특성상, 주방과 식당이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
최 영감은 조리대 가장 앞에 있는 조촐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소주 한 병을 홀짝이고 있었다.
“요리사는 원래 손이 빨라야 하지 않습니까. 특히 제가 일했던 곳은 유난히 손님이 많았죠.”
왕호는 요리를 하면서도, 최 영감님의 말에 일일이 대꾸를 해주고 있었다.
최 영감님은 자신을 한 때 요리계의 거물이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호텔조리학과를 나오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5년 씩이나 일한 왕호는 전혀 모르는 인물이다. 오히려 겉모습만 보면, 거렁뱅이 노인에 가까웠다.
매번 똑같은 옷을 입고 온다. 그것도 누더기에 가까운 거적때기 옷. 그래도 왕호는 친절하게 최 영감님의 말동무가 되어드린다.
최 영감은 벌써 일주일 내내, 왕호의 포차에 들락날락 거리며 왕호를 관찰했다.
“이눔아! 요리사가 요리를 맛깔나게 만들어야지 손만 빠르면 어따 쓰겠냐!”
최 영감은 왕호에게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좋은 소리를 해준 적이 없다.
다른 사람들이었으면, 화를 버럭버럭 냈을 거다. 거렁뱅이 노인네를 쫓아내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왕호의 성격이 모질지 못한 것도 있었지만, 최 영감님이 내뱉는 소리가 아주 헛소리도 아니었다.
왕호는 미리 만들어놓은 소스에, 손질한 골뱅이와 삶은 소면을 빠르게 무치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레스토랑 때려치우고 돈 벌려고 포차 하는 거 아닙니까. 그래도 이쪽 바닥에서는 꽤 잘 먹히는 실력입니다.”
빈말이 아니다. 정말로 잘 먹힌다. 개업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포차였지만, 제법 단골도 생겼다. 게다가 오늘은 불타는 금요일의 힘인지, 포차 안은 손님으로 북적거렸다. 비록 싸구려 플라스틱 테이블과 의자들이었지만, 한 테이블 빼고 전부 착석한 상태다.
“그렇게 돈 벌고 싶으면 남들처럼 장사해야지, 세금 낼 거 다 내고 카드까지 받으면 어느 세월에 돈을 벌꼬. 쯧쯧.”
“돈 벌려는 것도 조촐한 제 레스토랑을 꾸리고 싶어섭니다. 불법으로 영업하면 돈이야 더 벌겠지만, 제 레스토랑이 생겼을 때 떳떳하게 장사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세금 안 낸다고 끝이 아닙니다. 어차피 노점상 단체에 협회비도 내야 하고, 자릿세라는 것도 따로 내야 합니다. 한두 푼 더 벌자고 그렇게까지 하긴 싫습니다.”
“크크, 마인드는 꽤 괜찮네그려.”
왕호는 완성된 골뱅이 소면 무침을 깨끗한 접시에 예쁘게 플레이팅 했다. 그리고는 소주 두 병과 함께 주문했던 테이블에 가져다주었다.
“맛있게 드십쇼!”
웃으며 인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조리대로 돌아온 왕호는, 요리하느라 살짝 지저분해진 조리대를 깔끔히 정리하며 최 영감님께 말을 건넸다.
“정말 제 요리가 그렇게 형편없습니까? 제 요리를 먹고 매번 투덜거리시는 것 같아요.”
“끌끌. 내 기준에서는 형편없고말고! 네 요리는 너무··· 정석적이다.”
“정석적이요?”
“그래. 너무 완벽하게 레시피대로만 한다는 뜻이다. 재료의 신선도를 비롯한 각종 특성이 때마다 다를진대, 먹어보면서 만들어야지. 네놈처럼 항상 정량에 맞춰 조리 시간까지 매번 똑같다면, 재료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로 달라질 거다. 네놈이 무슨 전통의 3대 국밥 후계자냐? 맨날 똑같이 요리하게? 게다가 재료의 궁합이나 적절한 조합에 대한 지식은 많지만, 제대로 응용을 못 해. 즉, 너는 미각이 뛰어난 편이 아니다. 미세한 맛 감별을 못 하니, 정석적이 될 수밖에 없지.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네놈은 요리에 재능이 없다.”
최 영감님은 속사포처럼 가시돋힌 말을 내뱉었다. 일주일 동안 왕호를 관찰해온 결과였다.
왕호는 그런 최 영감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다 사실이었으니까······.
왕호는 자신이 요리의 길을 가겠다고 다짐한 순간부터, 정말 노력을 많이 했다. ‘독종’이란 별명이 붙을 만큼, 지독하게 노력했다. 그렇게 피, 땀, 눈물을 쏟아부은 지가 10년이 넘었다.
하지만 세상엔 노력만 가지고 되는 일이 많지 않았다.
요리도 그중 하나였다.
왕호는 이뤄질 수 없는 꿈의 끝자락을 놓지 못했었다. 하루살이처럼 희망만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희망이라고 알았던 것이 ‘희망고문’인 것도 모른 채 말이다.
재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는 10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걸 깨닫고는 레스토랑을 박차고 나왔다.
세 식구 단란하게 살 수 있는 내 집 마련과 작은 가게를 꿈꾸며, 5년을 세컨드(2nd Cook)로 일한 레스토랑을 말이다.
“그래도 동네 기준에서는 먹어주지 않습니까? 큰 거는 안 바랍니다. 그저 ‘아, 이 음식 괜찮네.’ 하며 맛있게 먹어주는 요리를 ‘제 레스토랑’에서 만드는 게 새로운 꿈입니다.”
“쯧쯧, 사내새끼가 그렇게 배포가 작아서야 쓰나. 이눔아! 자고로 요리사란 식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하는 법이다. 최고의 요리사가 될 생각을 해야지! 동네 기준이 뭐냐 동네가!”
최 영감은 희망을 놓아버린 왕호가 안타까운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답답함을 못 이긴 최 영감은 작은 소주잔에 소주를 거침없이 따르기 시작했다.
콸콸콸-
어찌나 험하게 쏟아 넣었던지, 소주가 잔을 넘어 주변으로 넘쳐 흘렀다.
최 영감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흘러넘치는 소주잔을 단숨에 털어 넣었다.
“크으~.”
탁-
거칠게 소주잔을 내려놓은 최 영감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내 마지막으로 주문하나 하지. 라면 하나만 끓여주게.”
“라면이요? 라면은 메뉴에 없는데······. 우동은 어떻습니까?”
“저번에 네놈이 동생에게 라면 끓여주는 거 내 똑똑히 보았다. 거기 서랍 안에 분명 한 봉지가 남았을 텐데?”
“헉! 그건 또 언제 보셨대······.”
왕호가 흠칫 놀란다.
며칠 전 동생이 다른 것도 아니고, 라면이 먹고 싶다고 해서 끓여준 적이 있었다. 설마··· 그것까지 보고 있었을 줄이야.
‘영감님 사실은 내 사생팬아니야?’
왕호는 소름 끼치는 상념을 떨쳐내고는 주섬주섬 라면을 꺼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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