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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버프를 만들어 드립니다-5화 (5/149)

힐링 요리사 (1)

이상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자신의 클래스가 제일 수상쩍었다.

요리사라는 클래스는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아니, 요리사 비스름한 클래스도 안 보인다.

죄다 전투를 위한 클래스뿐이다. 다른 RPG 게임에서 종종 보이는 대장장이 같은 클래스는 보이지 않았다. 아니, 없다고 하는 것이 맞을 거다. 오직 인간의 생존과 몬스터의 처치를 위해 만들어진 오리진 시스템이다. 요리사나 연기자 같은 전투에 필요 없는 클래스가 있을 리 만무했다.

대장장이도 굳이 필요 없었다. 과학자들과 마법사들이 신소재를 개발해 따로 무구류를 제작한다. 인챈트는 마법사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럼 난 뭐야? 그것도 그냥 요리사가 아니라 ‘힐링’ 요리사?”

왕호는 의아함을 참지 못하고, 오리진에 글 하나를 올렸다.

<고수님들! 제 클래스 좀 봐주세요. 뭔가 이상합니다······.>

[며칠 전, 어떤 이상한 할아버지에게 빨간약을 먹고 각성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제 클래스가 “힐링 요리사”라고 나오네요. 한데, 아무리 찾아봐도 요리사는커녕··· 생산 관련 클래스는 코빼기도 안 보입니다. 혹시, 이것에 대해 아시는 분 계시나요?]

그리고 글을 올린 지 몇 분 되지 않아서,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하, 또 생산직 떡밥이네······.]

[-ㅋㅋㅋㅋㅋ 요리사? 힐링은 또 뭐야? ㅋㅋ 님들 얘 관종 어그로꾼인 듯?]

[-맞네.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병먹금이요.]

[-빨간약? 고전 영화라도 보고 왔냐? 딱 봐도 매트릭스네.]

[-엌ㅋㅋㅋㅋ 매트릭스ㅋㅋㅋ 그럼 님이 혹시 네오? 그 이상한 할아버지가 바로 모피어스? ㅋㅋㅋ]

[-횐님의 유우머에 김밥 한 줄 놓고 갑니다 *^^* @))))))]

“아씨······.”

조롱이 잔뜩 섞인 댓글들에, 왕호는 짜증을 내며 창을 팍 닫아버렸다.

‘그래 어차피 인생은 독고다이다. 몸으로 직접 부딪히자!’

“스킬 데이터베이스!”

왕호는 스킬들을 익히기 위해, 스킬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했다.

[지금 익힐 수 있는 직업 스킬은 총 세 가지입니다. 모두 다운로드 하시겠습니까?]

[조건이 더 갖춰진다면, 더욱 많은 스킬을 습득할 수 있습니다.]

“모두 다운!”

[앞으로 원활한 스킬 습득을 위해, 습득 가능한 스킬은 자동으로 습득됩니다. 이 설정은 원하지 않으면 다시 해제할 수 있습니다.]

[직업 스킬 “요리”가 생성되었습니다.]

[직업 스킬 “절대미각”이 생성되었습니다.]

[직업 스킬 “절대후각”이 생성되었습니다.]

다운 받아진 스킬은 러닝 스킬에 의해 자동으로 왕호의 뇌리에 입력됐다.

왕호는 곧바로 스킬창을 열어 새로 익힌 스킬을 확인했다.

[초급 요리(패시브) – 숙련도 90%]

[기존의 실력과 합쳐져, 숙련도가 90%로 상승하였습니다.]

[많은 종류의 요리를 하실 수 있지만, 맛은 평범한 상태입니다.]

[숙련도가 100%로 오르면, 중급 요리로 업그레이드됩니다.]

왕호는 눈앞에 떠오른 홀로그램 창을 한 글자도 빠짐없이 읽었다. 그리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내, 내가 겨우 초급밖에 안 돼?”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다.

10년을 넘게 요리만 주야장천 해왔다. 게다가 5성급이라 불리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5년을 일했다. 그것도 세컨드로!

호텔조리학과에서는 수석을 놓쳐본 적이 없다.

레스토랑에서 일할 적에는 맛있다는 칭찬은 자주 듣지 못했어도, 그래도 맛없다는 소리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고작 ‘초급’이라니······.

왕호는 께름칙한 표정을 지으며 다음 스킬을 확인했다.

[절대미각(패시브) - 숙련도 0%]

[미각이 민감해집니다.]

[맛의 심층적 구별이 가능해집니다.]

[숙련도가 오를수록, 요리에 담긴 재료 하나하나까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요리 스킬에 영향을 줍니다.]

[절대후각(패시브) - 숙련도 0%]

[후각이 민감해집니다.]

[냄새의 심층적 구별이 가능해집니다.]

[숙련도가 오를수록, 숨은 향과, 깊은 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요리 스킬에 영향을 줍니다.]

요리 스킬로 심란해진 마음이, 이 두 가지 스킬을 보자 완전히 스르르 녹아내렸다.

미각과 후각의 상승이라니!!!

요리사라는 직업에 비춰보면, 재능이 오른다고 봐도 무방하다.

“으하하하! 하하하하!”

너무 기쁜 나머지, 왕호는 발을 동동 굴리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다행이 반지하여서 층간소음으로 올라오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 내 미각과 후각이 평범했기에, 요리 스킬의 숙련도가 낮은 것뿐이야!’

이 절대미각과 절대후각 스킬의 숙련도를 올린다면, 충분히 중급 요리로 업그레이드 할 수 있다.

요리의 맛과 풍미가 더 깊어질 거고, 그렇게 되면 장사가 대박 나는 것은 시간문제다.

“바로 요리해봐야겠다. 어차피 희영이도 이제 올 시간이고.”

과연 이 스킬들이 자신의 요리를 얼마나 변화시킬지, 너무 궁금해 참을 수가 없었다.

오리진에서 정보를 모으느라, 어느덧 시곗바늘은 저녁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30분 후면 희영이가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올 거고, 지금 저녁을 준비한다면 얼추 시간이 맞을 거다.

왕호는 곧장 부엌으로 향했다.

투룸의 구조상, 부엌과 거실이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 해서, 창문을 다 열어놓고 요리를 시작했다. 안 그러면 쇼파에 냄새 밴다.

왕호의 전공은 양식이다. 그것도 이태리. 디저트도 곧잘 한다. 레스토랑에서는 양식 세컨드였지만, 디저트 담당이기도 했다. 왕호의 손재주가 좋아 플레이팅과 후식은 거의 퍼스트처럼 담당했다.

손재주 스탯이 시작부터 11인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또한, 레스토랑에서는 퓨전 요리도 많이 시도했기에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도 가지고 있다. 물론, 이 자격증은 고교 시절 때 이미 따놓은 거다.

양식을 가장 잘하지만, 희영이에게는 어머니의 손맛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 매번 집밥을 해준다. 고3이라 영양가 있는 재료도 아끼지 않는다.

한식을 잘 먹어야 어디 가서 엄마 없이 자랐다는 소리를 안 듣는다. 어머니는 청주에 계시기 때문에, 방학 때나 겨우 볼 수 있어 거의 왕호가 키우다시피 한다.

“희영이가 요새 입맛이 없다고 했으니, 오랜만에 소고기 뭇국을 해야겠다. 칼칼하게 경상도식으로 가자.”

메뉴를 정했으니, 필요한 재료를 꺼내 조리대에 올린다.

꺼낸 김에 감정 스킬을 사용해 본다.

“감정!”

[신선한 고랭지 여름 무.]

[출하된 지 얼마 안 된 신선한 무이다. 수분이 꽉 차 있다.]

[흙이 묻어 있어, 깨끗이 씻고 사용해야 한다.]

“헉!”

기본 스킬로 감정한 건데, 어마어마한 정보가 나열됐다.

이것이 오리진의 힘인가?

왕호는 다른 재료에다가도 감정을 시도했다.

[한우 1++ 양지살.]

[도축한지 얼마 안 돼, 신선하다.]

[육질이 치밀하고 지방이 많아, 국거리와 장조림용으로 적합하다.]

“너무 좋은데?”

왕호의 입꼬리가 또다시 하늘을 찔렀다.

왕호는 재료를 고르는 데 만큼은 무척이나 꼼꼼하다. 재료에 대한 지식도 풍부하기 때문에, 항상 좋은 재료를 고른다.

하지만 이 감정스킬을 사용한다면, 굳이 꼼꼼하게 살피지 않아도 신선한 재료들을 골라낼 수 있다. 시간을 엄청나게 단축하는 거다.

왕호는 콧노래를 부르며, 무를 씻었다. 씻은 무는 곧바로 도마에 올렸다.

그리고는 큼지막하게 썰어나갔다.

써걱-

[스킬 “썰기”가 생성되었습니다.]

[기존의 실력과 합쳐져, 숙련도가 100%로 상승하였습니다.]

[초급 썰기가 중급 썰기로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중급 썰기의 숙련도가 10%로 상승하였습니다.]

“뭐, 뭐야!”

갑작스런 알림에, 왕호는 잡고 있던 식칼을 그대로 내려놓았다.

“스킬 확인!”

[중급 썰기 – 숙련도 10%]

[통, 채, 깍둑, 어슷썰기 뿐만 아니라, 물결, 솔방울, 빗살무늬, 십자썰기 같은 고난도 썰기가 가능합니다.]

[숙련도가 올라갈수록, 비고정 대상을 쉽게 썰 수 있습니다.]

[숙련도가 올라갈수록, 단단한 재료를 쉽게 썰 수 있습니다.]

[힘과 민첩 스탯의 영향을 받습니다.]

[숙련도가 100%로 오르면 고급 썰기로 업그레이드됩니다.]

무를 단 한 번 썰었을 뿐인데, 썰기 스킬이 생성됐다.

뿐만 아니라, 숙련도가 올라 중급 썰기로까지 업그레이드됐다.

‘설마?’

왕호는 혹시나 하며, 깐 마늘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는 칼의 손잡이 아랫부분으로 마늘을 으깼다.

와작-

[스킬 “으깨기”가 생성되었습니다.]

[기존의 실력과 합쳐져, 숙련도가 100%로 상승하였습니다.]

[초급 으깨기가 중급 으깨기로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이것도?’

으깨진 마늘을 칼로 빠르게 다졌다.

다다다다-

[스킬 “다지기”가 생성되었습니다.]

[기존의 실력과 합쳐져, 숙련도가 100%로 상승하였습니다.]

[초급 다지기가 중급 다지기로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중급 다지기의 숙련도가 15%로 상승하였습니다.]

세상에!

왕호의 입이 쩍 벌어졌다.

제대로 된 오리진의 육성 시스템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자신의 실력을 객관적인 수치로 알 수 있다. 이를 이용해 실력을 빠르게 키울 수 있다.

재능이 평범해 요리의 숙련도는 초급 90%까지밖에 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썰기, 으깨기, 다지기 같은, 노력으로 일궈낸 기술들은 곧바로 중급에 도달했다. 왕호가 얼마나 독종이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지표였다.

눈누난나-

왕호의 콧노래가 더욱 흥겨워졌다.

마저 무를 널찍한 네모로 깍둑썰기 하고, 우둔살을 꺼내 키친타올로 감싸 꾹꾹 눌렀다. 속에 남아있는 피를 제거하고 잡내를 없애기 위함이다.

탁탁탁-

능숙하게 가스 불을 킨 왕호는 냄비를 올리고, 거기에 기름을 아주 살짝궁 둘렀다. 이러면 고기가 냄비에 눌어붙는 것을 막아준다.

치이익-

우둔살을 냄비에 넣고는 빠르게 볶는다.

고기의 겉면이 익으며 색이 점점 변하자, 썰어놓은 무를 한꺼번에 투하한다.

칼칼함을 위한 고춧가루와 방금 다져놓은 마늘도 같이 넣는다. 그리고는 아직 물을 넣지 않은 상태에서 재료들을 섞기 시작했다.

지글지글-

처음엔 물기가 없어 잘 섞이지 않았지만, 무에서 수분이 조금씩 빠져나오더니 재료들이 제법 잘 어우러진다.

재료들이 뻘겋게 잘 섞이자, 왕호는 생수를 부었다.

콸콸- 콸콸-

멸치 육수를 넣어도 되지만, 무 본연의 시원한 맛을 살리기 위해 일반 생수를 사용했다.

보글보글-

이윽고 물이 끓자, 따로 손질해놓은 콩나물 한 줌과 큼지막하게 썬 대파까지 넣는다. 콩나물과 대파들이 먼저 들어가 있던 재료들과 반갑게 인사한다.

솔솔솔솔-

마지막으로 국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쳤다.

여기까지가 평소의 왕호식 요리과정이다. 정량의 물과, 정량의 재료. 그리고 정량의 소금으로 간을 한다.

하지만 지금은 절대미각과 절대후각이라는 스킬이 있다.

‘이번엔 맛을 보고 제대로 간을 보자!’

후각이 발달해서일까?

벌써부터 칼칼한 향과 무의 시원한 내음이 콧속을 자극했다.

후루룹-

왕호는 수저로 국을 살짝 떠서 맛보았다.

아아아-

왕호의 눈이 풀리면서, 탄성이 스르르 새어 나왔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맛이다.

자신의 요리가 정말 맛있어서 나오는 탄성이 아니다. 혀의 미뢰세포 하나하나가 민감해진 탓에, 맛이 개별적으로 세분화 되어 느껴진다. 그 정보들은 왕호의 머리에 따닥따닥 입력됐다.

[고유 스탯 “미식”이 생성되었습니다.]

[미식 스탯은 절대미각에 영향을 줍니다.]

[절대미각의 숙련도가 상승하였습니다.]

‘약간··· 싱겁다! 미세하게 싱거워!’

왕호는 평소에 먹던 자기 요리의 단점을 정확히 파악했다.

그리하여 국간장을 살짝 더 넣고는, 냄비 뚜껑을 닫고 불을 껐다.

요리가 완성됐다.

[“동생을 위한 칼칼한 소고기 뭇국”이 완성되었습니다.]

[간이 완벽합니다. 초급 요리의 숙련도가 상승하였습니다.]

[경험치가 상승하였습니다.]

-동생을 위한 칼칼한 소고기 뭇국-

[사랑하는 동생을 위해 오빠가 정성을 들여 끓인 소고기 뭇국이다.]

[영양학적으로 밸런스가 좋고, 싱싱한 재료만을 사용해 건강에도 좋다.]

[칼칼함과 시원함의 조화가 가히 일품이다.]

[효과 : 잃어버렸던 입맛을 되살려줍니다.]

왕호는 각성자가 되고, 처음으로 요리 하나를 완성했다.

그리고 그 요리 하나로 많은 것을 얻었다.

각종 스킬과 미식이라는 고유 스탯. 그리고 경험치까지 말이다.

띠띠띠띠- 철컥-!

때마침 요리가 끝나자, 희영이가 도어락을 거칠게 열며 들어왔다.

“오빠! 오늘 일 안 나갔지? ···어? 맛있는 냄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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