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 요리사 (2)
온 집안을 뒤덮은 고소한 향기가 희영의 후각을 자극한다.
꿀꺽-
군침이 절로 넘어간다.
“이 향기는?! 소고기 뭇국!”
내음만으로 금세 메뉴를 맞춰버리는 희영이다.
휙-
희영이는 가방을 자기 방안으로 대충 던져넣고는, 식탁으로 후다닥 향했다.
주린 배를 자극하는 저 향기는 누구도 이겨낼 수 없다.
“밖에 나갔다 오면 뭐부터 하랬지?”
왕호는 뭇국에 눈이 돌아간 희영이를 저지하며 말했다.
“아, 맞다! 손발 안 씻었네······. 나 너무 배고픈데, 먹고 씻으면··· 안 되겠구나······.”
왕호의 단호한 눈빛을 보고, 희영은 재빨리 화장실로 들어갔다.
희영이 손발을 씻고 나오자, 밥상은 어느새 완벽하게 차려져 있었다.
미리 만들어 놓은 각종 반찬과 어머니가 담가주신 김치가 식탁의 중앙을 휘놀았다.
방금 만든 뭇국은 국그릇에 따로 담아, 흰밥 옆에서 그 위용을 뽐낸다.
모락모락-
“우와! 국물 빨간 것 좀 봐! 딱 내 스타일이야! 헤헤.”
“그럴 줄 알고 고춧가루 팍팍 넣었다. 많이 먹어라!”
“오빠두! 그럼, 잘 먹겠습니다!!!”
식탁에 앉아 힘차게 소리친 희영은, 곧바로 쌀밥을 퍼서 뭇국에 말아버렸다.
희영이 숟가락을 퍼 올리자, 빨간 국물에 젖은 흰색 밥알, 잘 익은 양지살, 그리고 부드러워진 무가 함께 몸을 섞었다.
주욱-
희영은 거기에 어머니의 김치를 한 조각 찢어 올리고는, 한입에 털어넣었다.
우물우물-
희영의 동공이 커졌다.
“마이따(맛있다)!”
“다 먹고 말해. 체할라.”
꿀꺽-
“진짜 맛있어!”
“그래? 전에 먹은 거랑 뭐 달라진 거 없어?”
“예전이랑? 음··· 저번 것도 맛있었는데, 이게 더 뭐랄까? 더 깊은 맛? 간이 잘 배어 있다고 해야 하나?”
“정말? 다행이네.”
그제야 왕호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폈다.
매번 자신의 음식을 먹는 희영이가 느낄 정도면, 요리 실력이 미세하게나마 성장했다는 뜻이다. 이것이 절대미각 스킬의 힘이다.
“하, 오빠랑 이렇게 매일 저녁 먹었으면 좋겠다. 포장마차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미안하다 매번 밥 못 차려줘서.”
왕호의 말에, 희영이 손을 휙휙 저으며 답했다.
“아냐 아냐. 오빠가 맨날 반찬 해놓고 가잖아. 오빠 요리 솜씨가 너무 뛰어나서, 급식이 맛없을 정도라니까? 그리고··· 요새 입맛이 없어서, 배는 고픈데 한두 숟갈 밖에 못 먹었거든? 근데 이거 뭇국 먹으니까 막 입맛이 엄청 살아나는 거 같애! 오늘은 두 공기 뚝딱 해야겠다! 헤헷.”
“그래, 많이 먹어라.”
“오빠도 많이 먹어! 아, 글구 나 없다고 저번처럼 라면 같은 거 먹다 걸리면 가만 안 둘 거야! 밥 먹어 밥. 한국인은 밥심이야.”
“하하. 알았어. 밥 먹을게.”
왕호는 요리를 직업으로 삼다 보니, 스스로에게 요리해주는 것을 조금 인색하게 여긴다. 레스토랑에서 일할 때는 너무 바쁜 탓에, 항상 음식을 가볍게 먹었다. 서서 먹은 적도 많다.
포차를 차리고도 5년이 넘은 그 습관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가볍게 먹거나, 어떨 때는 간단하게 라면을 끓여 먹기도 한다. 포차 음식은 잘 먹지 않는다. 혹시나 재료가 모자랄 수도 있어서다. 이것도 다 돈이다.
희영이는 그런 왕호의 모습을 포차 구경 갔다가 직접 목격했다. 속상함에 집에 와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
희영이가 얼마 전 라면을 굳이 먹고 싶다고 한 이유도, 왕호가 쟁여둔 라면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라면이 떨어지면 밥을 차려 먹을 테니까.
탁-
희영이가 갑자기 밥을 먹다 말고,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진중한 눈빛으로 말을 붙였다.
“오빠, 오빠.”
희영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 올라와 있었다.
“응?”
“내가 학교에서 이것저것 물어봤거든? 우리 학교 친구들 중에, 레이더 오빠를 둔 애들이 두 명이나 있단 말이야. 근데 그거 되게 위험하대! 하다가 많이 죽는대. 오죽하면 보험회사들도 보험을 안 들어 주겠어.”
“아, 나도 들었어.”
“그니까 절대 하면 안 돼! 알았지? 절대 절대 절대 절대 절대 하지 마! 돈을 한 보따리 갖다 줘도 그건 아니야. 오빠는 오빠 하고 싶은 거 해. 요리 할 때 제일 좋다며. 나도 오빠가 요리 할 때가 제일 멋있더라. 옛날 오빠네 셰프처럼 티비에 나오면 되겠다. 오빠두 이제 각성자잖아.”
“그래, 나도 포차 계속할 생각이야. 걱정 안 해도 돼.”
그제야 희영의 얼굴에 다시 웃음꽃이 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희영은 다시 숟가락을 들어, 뭇국을 맛있게 떠먹었다.
‘그래. 내가 비록 손에서 불을 뿜어서 고기를 익히진 못하지만, 이젠 맛으로 최고가 될 거다!’
맛있게 먹는 희영이의 모습을 보고, 왕호는 또 한번 다짐을 굳혔다.
*
자신감이 잔뜩 붙은 왕호는 일요일 아침부터 포차에 나와 신메뉴 개발에 들어갔다.
어느 정도 단골도 생겼겠다. 본격적으로 고급진 메뉴로 테이블의 회전율을 올릴 생각이었다. 만약 각성해서 스킬을 얻지 못했다면 좀 더 지켜봤겠지만, 스킬을 얻은 터라 한층 과감해졌다.
이제는 한강 주변 다른 포차들과 차별화를 둘 때라 판단한 것이다.
맥주족들을 위한 맥주도둑과, 소주족을 위한 소주도둑. 이 두 가지를 만들 생각이다.
그리하여,
맥주도둑으로는 할라피뇨와 각종 치즈를 꾸덕하게 넣은 맥앤치즈를. 소주도둑으로는 매콤한 쭈꾸미 철판 볶음을 메뉴에 추가하기로 결정했다.
두 메뉴 모두, 만들기는 어렵지 않은 요리다. 하지만 맛있게 만들기란 쉽지 않다. 때문에 왕호가 이때까지 감히 시도하지 않은 것이다.
잘못 만들었다간, 잘하는 맥주 펍이나 쭈꾸미 전문점과 비교당하기 십상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절대미각과 절대후각이라는 스킬이 왕호를 도와준다. 충분히 시도해 볼만하다. 이젠, 맛을 미세하게 분간할 수도 있다.
“좋아 이제 ‘첫’ 시작이다! 첫 단추를 잘 꿰야 해. 혹시 알아? 희영이 말처럼 매스컴에도 나올지.”
왕호는 앞치마의 끈을 꽉 조이며 요리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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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숙련도가 미약한데도 이 정도라니!’
왕호는 절대미각과 절대후각의 영향력에 다시 한 번 놀라야 했다.
치즈의 고소함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느끼함만을 할라피뇨의 새콤함으로 잡아야 한다. 어느 한 쪽의 맛이 강하게 되면, 밸런스가 붕괴된다.
왕호는 강해진 미각과 후각으로 그것을 어느 정도 컨트롤할 수 있었다.
[“지친 직장인을 위로하는 할라피뇨 맥앤치즈”가 완성되었습니다.]
[맛의 밸런스가 완벽합니다. 초급 요리의 숙련도가 상승하였습니다.]
[경험치가 상승하였습니다.]
-지친 직장인을 위로하는 할라피뇨 맥앤치즈(Mac and Cheese)-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를 한 번에 날려버릴 악마의 요리.]
[마카로니와, 체다&고다 치즈, 그리고 할라피뇨가 들어간 칼로리 폭탄의 맥주 안주.]
[맥주와의 궁합이 매우 좋습니다.]
[맛과 비주얼이 강렬해, 다이어트 의지를 사라지게 만듭니다.]
[효과 : 스트레스가 해소됩니다.]
이번에도 경험치와 숙련도가 상승했다.
얌-
왕호는 숟가락으로 요리를 살짝 퍼서 입속으로 가져갔다. 막 만든 뜨거운 요리라, 후후 부는 것도 있지 않는다.
‘확실히, 더 나아졌다.’
그러니까 경험치와 숙련도가 오른 것일 테지. 제자리걸음이라면 당연히 오르지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 가지 사실을 더 알 수 있었다.
주 소비 대상인 직장인을 생각하며 만들어서 그런지, 요리의 이름부터가 직장인을 위로하는 요리다.
누굴 생각하며 요리하는 가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왕호는 내친김에, 쭈꾸미 철판 볶음도 빠르게 만들기 시작했다.
이 요리도 소스의 새콤함과 매콤함의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요즘 트렌드답게 매운맛을 강하게 입힐 건데, 그 매운맛이 쭈꾸미 고유의 맛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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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케이노 쭈꾸미 철판 볶음”이 완성되었습니다.]
[쭈꾸미가 살짝 타서 아쉽습니다. 초급 요리의 숙련도가 미약하게 상승하였습니다.]
-볼케이노 쭈꾸미 철판 볶음-
[매운맛을 듬뿍 넣은 쭈꾸미 철판 볶음이다. 상당히 맵다.]
[맵지만 쭈꾸미의 맛을 방해하지 않습니다. 싱싱한 쭈꾸미를 사용해서 맛이 더욱 좋습니다.]
[살짝 탔지만, 소주와의 궁합이 예술이다.]
[효과 : 아무 생각이 안 날 정도로 맵다. 기분이 좋아진다.]
불의 세기가 조금 강했다. 아무래도 철판의 온도를 조절하는 게 쉽지 않다.
‘실수 한번 하니까 경험치가 안 올랐네. 숙련도도 조금밖에 안 올랐고.’
아주 살짝 타서, 일반인들은 탄 맛을 거의 못 느낄 테지만 그래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레스토랑에서 일할 때는, 비접촉 적외선 온도계로 정확한 온도를 재서 요리하던 왕호다. 하지만, 작은 포차를 운영하는데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한다. 그냥 이 요리에 익숙해지면 된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저물자, 손님이 하나둘씩 포차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왕호의 포차를 지켜줬던 단골 박씨 아저씨도 있었다.
“어! 아저씨! 오셨어요?”
왕호가 웃으며 아저씨를 반겼다.
“하하, 사장님 몸은 좀 어떱니까?”
“아저씨께서 빨리 대처해 주셔서 괜찮습니다. 하루 푸욱~ 쉬고 왔어요.”
“어제 포차가 닫혀있길래 걱정 많이 했습니다. 이제 괜찮아 보이니 좋군요.”
“예 고맙습니다. 일단 이쪽으로 앉으세요. 오늘은 혼자 오셨나 봐요?”
왕호는 조리대 가장 가까운 곳에 아저씨를 앉혔다.
“어휴, 주말인데 골치 아픈 일 때문에 사무실 나가서 야근까지 합니다. 친구들은 일요일이라 힘들고, 심란해서 한 번 들렀습니다. 오늘은 혼술이나 하렵니다.”
아저씨의 한숨이 아스팔트를 뚫을 것만 같았다.
“많이 지쳐 보이세요. 오늘은 제가 서비스 많이 넣어드릴 테니까, 맘껏 드세요! 돈은 안 받겠습니다.”
“허, 그럴 수야 없지요. 먹고살기 힘든 세상 아닙니까? 서로 돕고 살아야죠.”
“아닙니다. 아저씨 아니었으면, 진짜 큰일 날뻔했어요. 괜찮습니다.”
“하하, 정 그러면 메뉴 하나만 공짜로 주십쇼.”
“그럼 오늘 새로 추가한 메뉴가 있는데, 한번 평가 부탁드립니다.”
왕호는 ‘지친 직장인을 위로하는 할라피뇨 맥앤치즈’를 만들어, 맥주 한 병과 함께 아저씨 앞으로 가져갔다.
모락모락-
“와··· 이거 먹으면 한 5키로는 그냥 찌겠는데요?”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죠. 스트레스 푸는데 이만한 것도 없습니다.”
“그럼, 맛있게 먹겠습니다.”
후아압-
스트레스 쌓인 것이 많았는지, 아저씨는 맥앤치즈를 한가득 퍼서 단숨에 집어넣었다.
맥앤치즈를 우물우물 씹으면서, 맥주를 자신의 잔에 거침없이 따른다.
콸콸콸-
빠른 속도로 따른 탓에, 몽글몽글한 흰색 거품이 넘실거리며 올라온다.
아저씨는 거품이 잔을 넘치기 전에, 입속으로 빠르게 가져갔다.
꿀꺽- 꿀꺽- 꿀꺽-
단 세 번의 목넘김 만으로, 맥주 한 잔을 원 샷 했다.
크으으으으---
눈살을 강하게 찌푸리고 길게 내뱉는 탄성 속에, 스트레스가 함께 섞여 나오는 듯했다.
“와, 이거 진짜 궁합이 대박이네요!”
“그렇습니까?”
아저씨가 맛있게 흡입하는 모습을 보자, 왕호도 기분이 덩달아 좋아졌다.
[손님이 당신의 요리에 매우 감동했습니다.]
[경험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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