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맛있는 버프를 만들어 드립니다-7화 (7/149)

힐링 요리사 (3)

‘레벨이 올랐다?!’

왕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왕호는 “대폭”이라는 말에 주목했다.

일단 아저씨가 먹은 저 맥앤치즈는, 직장인을 생각하며 만든 요리다. 아저씨는 직장인이다. 그것도 지쳐있는 상태. 거기에 왕호의 요리를 먹고 감동까지 했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경험치 대폭 상승이라는 열매를 맺은 것이다.

‘반면에 희영이는 내 요리에 익숙해진 상태여서 그랬겠군.’

희영이는 매일매일 왕호의 손맛을 본다. 때문에 실력이 아주 살짝 상승한 것으로는, 크게 감동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스트레스가 상당했는지, 아저씨는 뜨끈한 맥앤치즈를 게눈 감추듯 먹어 치웠다. 누가 보면 인간 진공청소기라 부를만했다.

후루룹- 꿀꺽꿀꺽-

“키야아~ 그야말로 미친 맛이네. 미친 맛이야! 맥주가 남아나질 않는 구만.”

그런 아저씨의 격한 반응에, 왕호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새로 들어오는 주문들을 처리했다.

치이익-

달궈진 철판 위에, 싱싱한 쭈꾸미들이 투하된다. 그러자 새빨간 옷을 입은 쭈꾸미들이, 철판의 뜨거운 열기에 몸을 베베 꼰다.

“크으, 사장님 그것도 굉장히 맛나 보이네요. 신 메뉴인가요? 보고만 있어도 소주가 절로 땡깁니다 그려.”

아저씨가 맥앤치즈로도 모자랐는지, 입맛을 슬쩍 다신다.

“한 접시 드릴까요? 내일이 월요일이라 일부러 맥주와 잘 어울리는 안주로 드렸습니다. 소주는 힘드실 거 같아서요.”

“하하, 아닙니다. 안 그래도 맥주 딱 한 잔만 하려고 온 겁니다. 이거 제 몸까지 생각해주시니, 음식 맛도 좋고 조만간 북적북적하겠습니다?”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생각만 해도 좋은지, 왕호의 얼굴에 웃음꽃이 만개했다.

이야기를 하면서도 왕호의 손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민첩이 상승하였습니다.]

덕분에 민첩 스탯이 올랐다.

“빈말 아닙니다? 저만 알고 있는 포차가 유명해지면 조금 아쉽기야 하겠지만, 뿌듯함이 더 크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좋은 사장님과 미친 음식이 있는데, 당연히 승승장구해야지요.”

“그렇게 되면 다 아저씨 같은 좋은 분들이 널리 소문을 퍼트려준 덕분일 테죠.”

“하하하, 조만간 동료들 데리고 한 번 오겠습니다. 뭐, 동료들이 워낙 고급을 따지는 터라 데리고 오기가 쉽지는 않은데, 한 번 맛보면 완전 반할 겁니다. 저 박칠우가 장담합니다!”

아저씨가 가슴을 팡팡 때리며 호언장담했다.

‘아저씨 성함이 박칠우였구나.’

얼굴 본지 3주 가까이 됐지만, 아직 이름은 모르고 있었다. 그냥 박씨 아저씨로만 알고 있었다.

이것이 요리의 힘일까?

감동한 아저씨는, 남들에게 잘 알려주지 않는 자신의 본명도 서슴지 않고 얘기했다.

왕호는 완성된 쭈꾸미 철판 볶음을 예쁘게 담고는, 주문한 테이블로 직접 가져다주었다.

“음식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다 드시면, 밥 볶아다 드리겠습니다.”

“와, 볶음밥까지요? 이 가격에 볶음밥까지는 기대 안 했었는데··· 쭈꾸미 전문점에 비하면 완전 혜자네요.”

손님의 칭찬에, 왕호는 웃으며 조리대로 돌아왔다.

양념이 튄 조리대를 깨끗이 닦으며, 음식을 받은 젊은 커플을 유심히 관찰했다.

젊은 커플은 의외로 맛있다는 듯이, 연신 탄성을 내뱉으며 서로에게 쭈꾸미를 먹여주고 있었다.

‘다행이다. 두 메뉴 다 성공하겠다.’

왕호의 함박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사장님. 세상 사는 게 쉽지가 않습니다.”

박칠우는 왕호가 한결 더 편해졌는지, 어느새 넋두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전 사실 남부럽지 않은 직장에 다니고 있습니다.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만한 데죠. 봉급도 많이 줍니다. 한데··· 그래서 그런지, 동료들이 하나같이 다들 잘난 놈들입니다. 돈도 빽도 어마어마하죠. 그에 비해, 전 쥐뿔도 없는데 실력 하나만으로 여기까지 올라왔습니다.”

박칠우는 답답했는지, 마지막 남은 맥주를 단숨에 들이키고는 말을 계속했다.

크으-

“그런 제가 이 바닥에서 살아남으려면, 계속해서 실력을 유지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려면 쉴 틈 없이 일해야 합니다. 저에겐 주말도 사치죠. 제가 왜 이렇게 열심히 사는지 아십니까?”

“글쎄요?”

“제 아들내미 때문입니다. 늦둥이라서 이제 초등학교 4학년 올라가는데 아주 귀엽습니다. 머리도 아주 똘똘하죠. 영재교육원에서도 오라고들 합니다. 요놈이 제 아들놈입니다.”

박칠우는 팔불출답게, 핸드폰을 꺼내 사진 하나를 보여줬다.

그곳에는 아저씨를 빼다 박은 박칠우 주니어가 방긋방긋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야~ 아저씨랑 정말 판박이네요. 완전 장군감입니다.”

“하하하하, 그런 말 많이 듣습니다. 이놈 나중에 유학도 보내고, 장가도 보내려면 지금 잘 벌 때 많이 일해야죠.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통 얼굴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늦게까지 일하고 들어오면 아들놈은 항상 자고 있죠. 그래서 그런지, 요즘엔 저를 멀리하는 느낌까지도 받습니다. 용돈 줄 때는 그렇게 애교를 부리다가도, 받고 나면 엄마 뒤로 숨기 바쁩니다. 나중에 크면 이 애비의 고충을 좀 알겠죠?”

박칠우의 눈빛이 조금은 서글퍼졌다.

딱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왕호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어릴 적 돌아가셨다. 하지만, 주말마다 피곤해서 낮잠을 주무시는 아버지의 모습은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때는 잘 놀아주지 않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는데,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그 찌든 피곤함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아버지들은 가족을 위해서 평일에 쉴 새 없이 일만 한다. 유일하게 쉴 수 있는 날이 주말인 것이다.

왕호는 박칠우를 위로하기 위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형식적인 위로보다는, 자기가 느낀 감정을 그대로 얘기하고 싶었다.

“저는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추억이 많이 없습니다.”

“저런······. 제가 괜한 얘길 꺼냈나 봅니다.”

“괜찮습니다. 그런 저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뭔지 아십니까?”

“음··· 글쎄요?”

“바로, 아버지 손잡고 함께 야구장에 갔을 땝니다.”

“야구장이요?”

“네. 구름 한 점 없는 토요일이었죠. 점심때, 둘이서 짜장면 한 그릇을 싹싹 비우고 목욕탕에 갔습니다. 거기서 같이 물장구도 치고 때도 박박 밀었죠. 아버지의 등은 마치 태평양처럼 넓었습니다. 그렇게 목욕을 마치고 야구장 가서 신나게 응원했었죠. 비록, 응원하던 팀은 졌지만 너무 재밌는 하루였습니다. 아직도 그 기억이 뇌리에 강하게 박혀있습니다. 때로는 아들의 손에 쥐여주는 만 원짜리 지폐 한 장 보다, 나눠 먹는 자장면 한 그릇이 더 기억에 남는 법이죠.”

“······.”

박칠우는 왕호의 말에 충격을 받았는지,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미래를 위해 돈을 버는 것도 좋지만, 아저씨에게 뭐가 더 소중한지 잘 생각해 보세요. 뭣이 중헌디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뭣이 중헌디라······. 하하하하하, 제가 젊은 사장님에게 많은 걸 배우네요. 오랜만에 연차라는 걸 한 번 써봐야겠습니다.”

아들의 이야기를 나눠서일까?

박칠우는 아들의 얼굴을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맥앤치즈와 맥주는 아주 싹싹 긁어먹고 없었다. 누가 보면 설거지를 해놓은 거라 착각할 정도다.

“하하, 사장님 아주 잘 먹었습니다. 이거 아들놈한테 뽀뽀라도 해주려면, 가글이라도 하고 들어가야겠군요.”

“맛있게 드시니 제가 다 고맙습니다. 그럼 조심히 살펴가세요 아저씨.”

왕호는 환한 웃음으로 아저씨를 배웅했다.

*

박칠우의 예상대로 포차는 승승장구했다.

차별화된 두 가지 신메뉴는 대히트를 쳤다. 맛있다는 소문이 입소문을 타고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와, 군침 확 도네.”

남자는 그새를 못 참고 젓가락을 쭈꾸미에 가져다 댄다.

하지만, 그의 손은 쭈꾸미에 채 당도하기도 전에 저지당했다.

찰싹-

“아얏!”

여자가 남자의 손을 강하게 때렸다.

“오빠 지금 뭐 하는 거야? 아직 사진 안 찍었잖아!”

“미, 미안. 너무 맛있게 보여서 그만······.”

“아, 예쁜 음식 완전 망가질뻔했네.”

찰칵- 찰칵- 차라라라라랄칵-

여자는 쭈꾸미 철판 볶음의 사진을 다각도에서 마구잡이로 촬영했다.

그리고는 가장 잘 나온 항공샷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했다.

[오빠랑 분위기 좋게 한강 포차에서 찰칵!

지독하게 매운데 중독성이 엄청남! 계속 집어먹다 오빠랑 싸울 뻔ㅠ

이때까지 먹어본 쭈꾸미 볶음 중에 최고로 맛있었음. 강추!

#먹스타그램 #맛스타그램 #쭈꾸미볶음 #혜자 #존맛 #볼케이노 #한강포차 #볶음밥도줌]

인스타 관종··· 아니 여신답게, 올린지 얼마 되지 않아 댓글이 순식간에 달리기 시작했다.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댓글들을 보면서, 관심에 목마라 있던 그녀는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와 플레이팅 예술이다. 넘나 이쁜 것!]

[-우와, 언니 여기 어디에요? 나도 가고 시퐁···.]

[-어, 나 여기 알아! 내가 위치 보내줄게.]

[-다이어트 중인데 넘 맛나보영ㅠㅠ]

[-이 시간에 이걸 올리면 고문 아냐?]

이렇듯, 입소문뿐만 아니라 각종 SNS를 통해서도 소문이 퍼져나갔다.

왕호는 레스토랑에서도 플레이팅으로는 셰프 이상의 수준이었다. 당연히, 포차에서도 음식을 담을 때 허투루 담지 않는다. 너무 예쁘게 담은 나머지, 사진을 찍기 위해 지방에서까지 올라올 정도였다.

결국 신 메뉴를 공개한지 한 달도 안되어, 왕호는 테이블의 숫자를 두 배로 늘려야 했다. 심지어 금요일 같은 경우엔, 줄을 서는 일까지 생겨났다.

‘이 번달 순이익은 500 조금 넘겠다.’

현금 영수증도 끊어주고, 박리다매 형식으로 팔다 보니 아주 큰 돈은 만지지 못했다. 쉬지 않고 일한 것치고는 적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돈 말고도 얻은 성과가 꽤 있다.

늘어난 재료를 손질하고, 다량으로 음식을 하다 보니 힘 스탯이 많이 올랐다. 게다가 손님이 많아지고 쉴 틈 없이 요리하다 보니, 민첩과 지구력도 많이 올랐다. 당연히 손재주도 상승했다.

레벨도 10계단이나 상승했고, 스킬들의 숙련도는 말할 것도 없었다.

‘이대로 꽃길만 걷자!’

이대로만 잘 흘러간다면 조만간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으리라.

더 잘 되면, 넓은 집으로 이사 가고 어머니도 서울로 올려보낼 생각이다.

“저기··· 사장님 되십니까?”

생각에 잠겨있던 왕호의 앞에, 양복을 멋들어지게 빼입은 아저씨가 불쑥 나타났다.

“아, 예. 혼자 오셨습니까?”

“헛, 전 손님으로 온 거 아닙니다. 하이드에서 나온 영업부 대리입니다. 자, 여기 제 명함입니다.”

이상한 아저씨는 곧바로 명함을 건넸고, 왕호는 얼떨떨하며 명함을 받았다. 명함에는 주류회사인 하이드의 로고가 큼지막하게 박혀있었다.

“하이드에서 여긴 어쩐 일로···?”

“다름이 아니라, 저희 회사의 주류를 독점으로 납품할 수 없을까 해서요. 그렇게만 해주시면 도매가의 85%로 납품하겠습니다.”

장사가 잘 되니, 주류회사에서도 영업을 나온다.

솔깃한 제안이었지만, 왕호는 크게 내키지 않았다.

사람들의 취향은 다양하다. 당장엔 금전적으로 이득일지 몰라도, 길게 보면 손해 보는 장사다. 게다가 손님들의 선택의 자유를 굳이 빼앗고 싶지는 않다.

“죄송합니다. 독점은 힘들 것 같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저희도 이해합니다. 그럼, 혹시 입간판 하나만 세울 수 있을까요? 물론 광고비는 따로 드리겠습니다.”

“입간판이요? 그거야 뭐······.”

이건 굳이 거절할 필요가 없다. 광고비까지 챙겨 준다니 확실히 이득이다.

“잠시만요!”

영업사원은 혼자 영업을 하러 다니는지, 끙끙대며 입간판 하나를 질질 끌고 왔다.

사람 크기만 한 입간판에는, 고혹적인 모델이 늘씬한 다리를 뽐내고 있었다.

입구 옆 잘 보이는 곳에 입간판을 설치한 영업사원은, 잠시 숨을 고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헥헥. 이게 보기보다 무겁습니다. 광고비는 어떻게 받으시겠습니까? 계좌로 쏴드려도 되고, 저희 제품으로 드리는 방법도 있습니다. 제품으로 받게 되면 시세보다 10% 싸게 쳐드리구요.”

“그럼 제품으로 받겠습니다.”

“예. 내일 저희가 이곳으로 배달해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럼, 번창하세요!”

영업사원은 들를 곳이 많은지, 입간판이 실린 승합차를 타고는 빠르게 빠져나갔다.

‘앗싸! 웬 떡이냐.’

될 놈은 된다고, 계속해서 좋은 일만 터진다.

그리고 영업사원이 떠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수상하게 보이는 중년 커플 하나가 포차 안으로 슬그머니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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